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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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달째 유례없는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치며 집콕 생활을 일상화하고 있지만, 이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시기에 유명해진 소설이 한 편 있었으니, 바로 유명한 미국 스릴러 소설 작가인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이라는 작품이다.

거의 40년 전 발간된 이 책 속에 '우한-400'이라는 바이러스가 소재로 등장한다.

그 명칭에서부터 느낌이 오듯 '우한-400'은 요즘 코로나 19 사태의 시작인 중국의 그 '우한' 외곽에서 개발된 완벽한 생화학 무기를 가리키는 말로, 소설 속 이 바이러스는 접촉한 지 네 시간만에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있고, 감염이 된 사람은 24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죽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치사율을 자랑한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티나 에번스'는 라스베이거스의 골든 피라미드 호텔에서 '매직!'vip 시사회를 앞두고 있다. 무용수로 일했으나 무용수의 생명이 짧음을 인식한 티나는 안무가로 자신의 능력을 넓혀가고 결국 큰 쇼의 연출과 공동제작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1년 전 캠프를 갔다가 버스 사고로 숨진 아들 '대니'의 죽음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 그녀는 대니의 꿈을 자주 꾸는데, 대니가 그녀를 부르지만 그녀는 곁으로 갈 수가 없거나 혹은 끔찍한 형상의 괴물이 나타나거나 하는 꿈이었다.

vip 시사회가 예정된 날의 새벽, 그녀는 역시 꿈을 꾸다 잠이 깼고, 자신 외엔 아무도 없을 집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집 안을 살피다가 대니의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대니가 사용하던 이젤의 뒷면 칠판에 서툰 글씨체로 쓰여진 "죽지 않았어"라는 글자를 보게 된다.

다음날 공연 리허설 후 집에 들러 다시 가본 대니의 방, 이젤의 칠판엔 또다시 "죽지 않았어"가 씌여 있다. 분명 새벽에 글자를 지웠는데도.

또한, 티나의 집을 청소해 주는 '비비언' 역시 대니의 방에서 이상한 현상을 경험한다.

그 후에도 티나의 주변에서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직원이 출력해 준 vip 고객 명단에 "죽지 않았어", "대니는 살아 있어", "도와줘", "날 도와줘"라는 글자들이 등장하고,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티나는 시사회에서 알게 된 변호사 '앨리엇 스트라이커'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대니의 무덤을 열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앨리엇의 도움으로 일이 진행되려는 그때, 앨리엇과 티나는 괴한의 침입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무사히 빠져나온다.

 

대니의 죽음에 뭔가가 있군...

스카우트 단원들이 모두 죽은 게 이상하긴 하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은 달라.

그 버스 사고... 거짓말이지? (p. 190)

 

그들을 위협하며 다가오는 적들은 과연 누구일까?

대니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전직 육군 정보부 출신인 변호사 앨리엇은 티나와 함께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협한 이로부터 알아낸 '판도라 프로젝트'에 대해 알기 위해 대니의 죽음에 대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소설은 무척 긴박하게 진행된다. 그도 그럴것이, 상대는 명칭조차 알 수 없고 어떤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정보기관이고, 이쪽은 그저 둘 뿐이다.

다행히 앨리엇은 육군 정보부 시절의 경험과 지략으로 그들보다 반 발자국 앞설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 위험성이 전혀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티나를 돕는 알 수 없는 힘... 힘이라고 표현하면 되려나, 기운이라고 표현하면 되려나...

여튼 그녀를 돕는 기운이 있어 둘은 힘든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알려 줄 그 공간까지 나아가게 된다.

 

소설은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음... 알 수 없는 힘(물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알게 되지만...)의 존재가 조금 마뜩찮았다.

음... 뭔가 아쉽달까.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상상력은 좋지만,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는 데에 그 힘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듯 했다.

그래서 읽다가 가끔 '응?', 하며 약간 고개를 절레절레 하기도... ^^;;

 

그럼에도,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액션, 추적, 음모, 배신 등 재미있는 스릴러 소설의 요소요소가 빼곡히 들어있어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여전히 현역인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고 하는데, 과연 초기부터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른 딘 쿤츠!!!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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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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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눈여겨 보고 있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가치독서' 카페를 통해 함께 읽게 되었다.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차별'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선량'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책 제목은 무언가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약간 따끔거리게 했던 것 같다.

 

차별을 악랄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p. 60)

 

평소 나는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든지 일부러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등의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 같은 성격을 마구 내뿜었던 치기 어린 젊은 날엔 가끔 욕설도 내뱉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실수로라도 나쁜 말을 내뱉는 일이 없도록 나쁜 단어나 욕설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버릇을 들였다.

그런데 이런 나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나는 절대 차별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문장을 단언하여 말할 수 없었다.

 

우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사람들이 흔히 쓰는 단어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한다.

바로 '결정장애'라는 말.

나와 남편은 너무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바로 이 '결정장애'의 끝판왕이라 서로 자부하며 서로에게 결정을 미루고는 했었다.

그만큼 나도, 남편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자주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 단어도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말이었다. 그런 의도로 내가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장애'라는 말 자체를 무언가 부정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하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는 못하는 많은 차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한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억압이나 불평등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비난을 돌리곤 한다.

하지만 그 위치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지만, 난민 문제 등 이주민들과의 비교에서는 한국인이라는 다수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p. 189)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을 보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에 대해 '호'의 입장에 서고 싶다.

책을 읽음으로서 그냥 넘겼던 차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차별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지한다면, 곧바로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점차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된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어찌되었든 대놓고 차별하거나 불평등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아닐테니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익숙한 세계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몇 년 후에 이런 책이 또 나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덜 뜨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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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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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할러 시리즈 5번째 이야기 <배심원단>을 읽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미키 할러는 한때 좋아하는 감정을 지녔던 '글로리아 데이턴'의 죽음에 얽힌 사건과 그녀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사건과의 연결점을 파헤치며 진실을 찾아 헤맨다.

 

미키 할러는 LA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자신이 변호해서 석방된 피고인이 음주운전으로 딸과 잘 알고 지내던 무고한 두 사람을 죽게 만들자 딸에게서도 외면당하는 등 그의 평판은 현재 최악이다.

그러던 어느날(11월) 미키 할러에게 살인사건 수임 의뢰가 들어온다.

피의자 '안드레 라 코세'는 디지털 포주로 콜걸들의 웹사이트를 관리했는데, 자신이 관리하던 콜걸 '지젤 댈링거'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라 코세는 자신이 피해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하고, 그녀에게서 무슨 일이 생기면 미키 할러가 도와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그에게 연락을 했다라고 말한다.

미키 할러는 죽은 지젤 댈링거가 7년 전 자신이 새 출발을 하도록 도왔던 '글로리아 데이턴'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한다. 미키는 그동안 그녀가 하와이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글로리아의 행적을 조사하던 미키는, 그녀가 살해되기 전날 밤에 베벌리 윌셔 호텔의 객실로 손님을 만나러 갔지만 해당 객실에 투숙객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호텔 CCTV를 확인하던 중 누군가 글로리아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미행자는 모자를 쓰고 고개도 들지 않아 얼굴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4월 미키는 소환장을 받는다.

글로리아는 마약수사국의 비밀 정보원으로 '헥터 아란데 모야'라는 마약상 체포에 일조했고 헥터는 그 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복역중인 헥터가 자신은 억울하다며 '인신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키는 헥터의 인신구제 청구소송과 글로리아의 죽음이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한다.

글로리아는 왜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아니, 글로리아는 왜 미키를 속이고 하와이에 있는 척 했던 걸까?

 

미키는 헥터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인신구제 청구소송의 증인들을 확인하여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당시 몰랐던 사실들이 무엇인지, 글로리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글로리아를 죽여서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인지 등 미키는 사건의 숨겨진 사실들을 확인한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는 그렇게 진실에 다가가는 미키를 미행하고, 그를 협박하기도 한다.

 

미키는 사건의 관련성과 진실을 밝히고, 의뢰인 라 코세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

 

스릴러 거장이라는 호칭은 괜히 붙여지는 건 아닌가 보다. 얇지 않은 책인데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작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돈 밝히고 악덕 변호사 취급을 받는 미키 할러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미키는 자신이 풀어준 의뢰인이 사람을 두 명이나 죽였다는 것에 괴로워한다. 딸이 자신을 경멸하고 외면하는 것에 대하여도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다.

거기다 한때 자신이 좋아했고 믿었던 여성이 자신을 속였고, 그 판 위에서 자신은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조사를 진행하던 중 소중한 사람을 잃는 사건까지 생긴다.

이건 뭐 설상가상, 점입가경이다. 그래서 계속 긴장감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괜히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

능력있고 훌륭한 사무실 식구들과 정신적 지주 리걸 시걸,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 출중한 미키 할러는 이 난관을 다 헤쳐 나간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시리즈별로 집중적으로 본 게 아니라서 몰랐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유명한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가 이복형제였다. 두둥...

언젠가는 각 시리즈를 순서대로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 각각의 캐릭터들의 매력을 모두 확인하고 싶어졌다.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야기, 끊임없이 유지되는 시원한 긴장감까지 스릴러 소설의 매력을 모두 가진 소설이었다.

 

(p. 27)

법은 유연한 거야. 구부릴 수도 늘일 수도 있지

 

(p. 510)

누구에게나 배심원단이 있다. 마음속에서 함께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얼 브릭스가 내 배심원석에 앉아 있고, 글로리아 데이턴도 그렇다. 케이티와 샌디, 내 어버니와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얼마 안 있으면 리걸 시걸도 합류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나를 축복하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들.

내 단죄의 신들. 나는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날마다 그들 앞으로 걸어가서 변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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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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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원작소설의 작가인 이도우 소설가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소설이든 만화든 에세이든, 좋은 문장을 보면 끄적이기 좋아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많이 들어보았고,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었는데도 정작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이제야 만나게 된 작가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속에는 내가 바랐던 것 이상의 따뜻한 문장과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진심을 쓴다는 마음은 여전해도, 그 마음이 무게와 가치를 지니고 오래 남아야 하는지는 내가 헤아릴 일이 아니었다.

나뭇잎에 한 장씩 쓴 이야기가 누군가의 책갈피에 끼워졌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P. 9)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여러 날에 야금야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건, 따뜻한 작가의 시선을, 그 위트를 금방 금방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015B의 노래를 많이 듣고 찾아봤다.

작가가 대학 시절 만가대 과수원 자취방에서 살던 때 즐겨 들었다던 015B의 '5월 12일'은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였다.

괜시리 이 부분을 읽다가 015B의 노래를 듣다 추억에 잠기다 급기야 눈물까지 났다. 결국 그 날은 이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감성적인 로맨스를 써 온 작가님이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동안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 또 계속 맴돌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시작은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015B의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같은 빌라에 살고 있던 첫사랑 오빠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는 늘 내 방 창가에서 한 손은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은 뭔가를 끄적이며 빌라로 내려오는 단 하나의 길을 지켜보고 지켜봤다.

(작가가 삼십 대 초반에 아프고 우울했던 시절에 아파트 뒷방 창을 열고 멀리 있는 산과 그곳의 작은 암자를 바라보았다는 부분을 읽을 때, 난 이게 생각났다.)

오빠네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오빠가 그 당시 인기있던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불렀었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친구 이야기에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지, 아니 되어버린 건 아닐지...

 

작가가 서귀포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할머니가 일반인 남극 탐험대에 도전하기 위해 영상 촬영 등의 도움을 부탁했다는 부분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났고 용기가 생겼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모험이란 과연 있을까. 기회는 어느 시절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걸까.(p. 170)"에 아니라고, 언제나 새로운 행복과 자유를 꿈꿀 수 있다라며 멋지고 아름다운 일탈을 상상하게 된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p. 288)

 

나이가 든 후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좋은 날인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거나 혹은 오늘 하루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없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이라는 걸 안다.

조금 생뚱맞은 예시지만, 너무 살이 많이 쪘다고 느꼈던 10년 전, 5년 전의 내 모습이 지금 현재의 나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시절이다. 그때가 제일 날씬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다는 걸, 너무 늦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는 포기하는 걸로... ^^;)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이번 산문집을 읽고 나니 작가의 소설들이 더 궁금해졌다.

작가의 문장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소설 이야기나 소설 속 인물들을 정말로 만나고 싶어졌다.

 

깊은 밤, 이야기하기 좋은 이런 밤, 굿나잇 책방 은섭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함께 반짝였던...

수많은 그 밤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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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총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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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현대식 스포츠 전당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와일드 빌 그랜트 로데오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퀸 부자와 그들의 집사 주나, 주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왕년의 영화 스타 카우보이 '벅 혼'을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개막식의 오프닝은 와일드 빌의 총성을 신호로 "벅 혼이 이끄는 마흔 명의 기수들이 경기장 주위를 돌며 벌이는 전력질주 추적 쇼"가 시작된다.

관람석을 가득 메운 2만 명의 관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하며 그를 반기고, 앞서 달려가던 벅 혼이 천장을 향하여 총을 발사하자, 뒤따르는 기수들도 모두 위를 향해 총을 쏘아 올린다.

그런데 사격 직후 벅 혼은 말 위에서 떨어지고 그의 몸은 뒤이어 오던 말들의 발굽에 짓밟힌다.

 

벅 혼의 사망 원인은 심장을 관통한 단 한 발의 총알이었다. 2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 그러나 기수를 포함한 관람객 모두의 소지품을 검사했으나, 벅 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총을 찾지 못한다.

 

벅 혼을 죽인 총은 25구경으로 보통 서부극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총이었다. 마흔 명의 기수에 교묘하게 끼어든 기자 테드 라이언스를 찾아내지만 그가 가진 25구경 권총 역시 벅 혼을 죽인 총은 아니었다.

 

필요한 건, 한 사람의 죽음.

사용된 건, 한 발의 총알.

간결하고, 정확하고, 기계적이군요...

모두 합해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아버지? (p. 146)

 

콜로세움 전체를 확인하고, 관람객 모두의 소지품을 검사했지만 살해 무기는 발견되지 않고, 엘러리는 주변 인물에 대한 미행 등을 부탁하고, 자신 역시 벅 혼의 주변 인물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사건을 조사한다.

엘러리는 어떤 단서를 찾고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신중히 증거를 찾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고, 아버지인 퀸 경감에게도 자세한 사정을 밝히지는 않는다.

 

사건이 지지부진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에, 콜로세움 출입 금지가 해제되고 와일드 빌 그랜트의 로데오가 재개장하고, 그렇게 2만 명의 관중이 가득 모인 쇼에서 기수들을 맨 앞에서 이끌던 '외팔이 우디'가 벅 혼과 동일하게 죽음을 당한다. 심장에 단 한 발의 총상을 입고 즉사, 살해 무기인 총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크하하하하.

솔직하게 이번 이야기 역시 범인에 대한 감을 조금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죽였는지, 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엘러리는 모든 단서를 공평하게 독자에게 제공했다면서 우리한테도 범인을 맞춰보라고 말하지만, 도저히 나는 모르겠더라.

 

범인을 알고 난 후에 보니, 과연 단서가 여러 군데 흩어져 있었고, 내가 눈썰미가 조금만 더 좋았어도 범인은 알아챌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이번 이야기는 읽는 동안 좀 더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특히 탄도학 전문가인 놀스 경위와 커비 소령의 총에 대한 그렁그렁한 애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캐릭터들이 좀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달까.

그리고 확실히 국명 시리즈의 뒤로 갈수록 현대와 더 가깝기 때문인지 사건 해결이나 조사 과정을 어색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도 역시나 기다려진다.

다음에도 독자에의 도전은, 좋아!! 받아들입니다!!!

(다만, 범인을 맞춘다는 말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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