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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요즘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원작소설의 작가인 이도우 소설가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소설이든 만화든 에세이든, 좋은 문장을 보면 끄적이기 좋아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많이 들어보았고,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었는데도 정작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이제야 만나게 된 작가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속에는 내가 바랐던 것 이상의 따뜻한 문장과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진심을 쓴다는 마음은 여전해도, 그 마음이 무게와 가치를 지니고 오래 남아야 하는지는 내가 헤아릴 일이 아니었다.
나뭇잎에 한 장씩 쓴 이야기가 누군가의 책갈피에 끼워졌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P. 9)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여러 날에 야금야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건, 따뜻한 작가의 시선을, 그 위트를 금방 금방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015B의 노래를 많이 듣고 찾아봤다.
작가가 대학 시절 만가대 과수원 자취방에서 살던 때 즐겨 들었다던 015B의 '5월 12일'은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였다.
괜시리 이 부분을 읽다가 015B의 노래를 듣다 추억에 잠기다 급기야 눈물까지 났다. 결국 그 날은 이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감성적인 로맨스를 써 온 작가님이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동안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 또 계속 맴돌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시작은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015B의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같은 빌라에 살고 있던 첫사랑 오빠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는 늘 내 방 창가에서 한 손은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은 뭔가를 끄적이며 빌라로 내려오는 단 하나의 길을 지켜보고 지켜봤다.
(작가가 삼십 대 초반에 아프고 우울했던 시절에 아파트 뒷방 창을 열고 멀리 있는 산과 그곳의 작은 암자를 바라보았다는 부분을 읽을 때, 난 이게 생각났다.)
오빠네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오빠가 그 당시 인기있던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불렀었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친구 이야기에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지, 아니 되어버린 건 아닐지...
작가가 서귀포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할머니가 일반인 남극 탐험대에 도전하기 위해 영상 촬영 등의 도움을 부탁했다는 부분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났고 용기가 생겼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모험이란 과연 있을까. 기회는 어느 시절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걸까.(p. 170)"에 아니라고, 언제나 새로운 행복과 자유를 꿈꿀 수 있다라며 멋지고 아름다운 일탈을 상상하게 된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p. 288)
나이가 든 후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좋은 날인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거나 혹은 오늘 하루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없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이라는 걸 안다.
조금 생뚱맞은 예시지만, 너무 살이 많이 쪘다고 느꼈던 10년 전, 5년 전의 내 모습이 지금 현재의 나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시절이다. 그때가 제일 날씬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다는 걸, 너무 늦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는 포기하는 걸로... ^^;)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이번 산문집을 읽고 나니 작가의 소설들이 더 궁금해졌다.
작가의 문장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소설 이야기나 소설 속 인물들을 정말로 만나고 싶어졌다.
깊은 밤, 이야기하기 좋은 이런 밤, 굿나잇 책방 은섭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함께 반짝였던...
수많은 그 밤에...
굿나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