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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 일, 관계,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30가지 제안
지샤오안 지음, 권용중 옮김 / 홍익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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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주변을 어떻게 치워야 할 지도 잘 모르고, 정리하는 방법 같은 것도 잘 모른다.

그런데 참 기막히게도 이 군더더기와 복잡함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규칙은 있어서, 나는 내가 필요한 물건들이나 신랑이 찾는 물건들을 잘 골라낸다.

아, 그런데 이 책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이야기를 하는데에 있어 주변의 물건 정리정돈은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제목은 단지 은유적일 뿐, 이 책에서는 단순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살려면 물건 정리정돈도 물론 필요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힘들게 느끼는 일, 사람과의 관계, 나의 생각과 마음을 되돌아보며 '단샤리(끊고, 버리고, 정리하다)'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 p. 10, 프롤로그 중

단순한 삶이란 무엇일까?그것은 사고의 단순화, 정신의 단순화, 인간관계의 단순화, 삶의 방식의 단순화를 의미한다.

-

단순한 삶 속에서 복잡한 것들을 버리게 되면 오직 나 자신만이 온전히 주인공이 된다. 그러면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유한한 시간과 자원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하게 살면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며,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과 함께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명작에는 군더더기가 없듯이 좋은 인생은 단순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에서 작가는 사회 저명 인사들을 만나보니, 그들의 삶이 놀라울만큼 단순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버릴 것,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리고 배제하여 자신의 모든 역량을 목표 달성을 위해 집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작가 역시 알고 있다. 이러한 단순한 삶을 아무나 이루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남들을 마냥 부러워하고 시기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다 다른 존재이므로, 누구든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뻔한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설명이 쏙 되는 작가의 문장을 만났다.

- p. 29

만약 당신이 사과라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면,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더 달콤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당신이 레몬이라면 더 새콤해지려고 발버둥 쳐야 한다. 자기가 사과인데도 레몬이 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당신 삶은 가시밭길이 될 게 뻔하다.

사실 '단순'이라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단순한 삶을 살고 싶지만 내 삶을 단순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 관계의 단순화는 힘들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딱딱 단순하게 정리되는 마음이란 건 어렵다. 나의 말에 누군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어쩔 수 없이 살피게 되고, 상대방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은 척 해야 할 때도 있다. 또 누군가가 나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때도 마음 속 불길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에서 작가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정을 낭비하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특히 고난이 왔을 때 그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 자신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고 말한다.

또 작가는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대해서도 말한다. 타인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 마음에도 없는 부탁을 들어주고 심지어 마지노선을 넘는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세상엔 뻔뻔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부탁을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를 한다. 우리도 익히 아는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가 않다. 괜히 힘도 내가 들이고, 욕도 내가 먹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작가가 말한 '쓰레기차 같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따져 물을 수 있다. 그러면서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쓰레기를 가득 담은 채 어디에 화풀이를 할지 눈을 부라리고 있는 그런 인간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냉정을 유지하고 가급적 타인과의 말다툼을 자제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아르바이트생이 까다롭게 구는 여자 손님의 머리에 뜨거운 국물을 끼얹은 사건이나, 길을 돌아간다고 시비를 거는 손님을 잔인하게 죽인 택시 기사의 이야기였다.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을 다 읽은 후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인생의 중간쯤'이라고 하면 40~50대를 가리키는 것인가? 책 속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가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건 사람을 너무 강인한 정신을 가진 대상으로 본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문장은 일응 타당한 말뿐이지만, 어디 일반의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못 하는 것인가, 말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 저 사람을 겪고 나서 인간관계에 너무 지친 사람이라면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게 실천해 보면 좋을 듯 하다.

나는 이른 나이부터 직장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겪은 탓에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많이 느꼈었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남들의 이야기에 신경쓰지 않는 삶을 택했고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정리했다. 그러나 아무도 내 옆에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필요없었다. 여전히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내 옆에 남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멀어진 것 뿐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인생의 중간까지는 오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도 삶에서 쓸모없는 번잡한 것들을 내게서 들어내고, 단순하고 소중하고 깊고 끈끈한 관계를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책상을 정리할 때다. 책상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도 정리하고, 조금씩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도 단순하게 바꿔 나가보자. 너무 고민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하게...

- p. 229, 시인 시무룽의 시

인생이 반쯤 남았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지나간 모든 시간과 잘못과 잃어버린 것을 정리해서

더 늦기 전에 나의 역사를 구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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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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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찬호께이 작가님이 호러소설을 썼다? 그동안은 작가님의 <13.67>이나 <망내인> 등 굵직하고 사회성 있는 메시지의 소설을 읽었는데, '호러'라니 어떤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무척 궁금했다.

이야기는 홍콩 문화대학의 기숙사노퍽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홍콩 문화대학의 기숙사는 노퍽관, 버밍엄관,요크관, 랭커셔관 등 4개가 있는데, 그 중 노퍽관은 괴담이 전해 오는 등 여러 소문이 무성한 곳이다.

홍콩 문화대학에 입학하게 된 아화는 기숙사 노퍽관을 배정받는다. 개강 전 기숙사 등록 첫 날에 학교에 온 아화와 친구 위키, 버스는 기숙사 1층 휴게실에서 기숙사에 머무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휴게실에서 아화, 위키, 버스, 칼리, 아묘, 샤오완, 산산, 즈메이, 아량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노퍽관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량은 4학년생으로 신입생인 다른 후배들에게 노퍽관의 7개 불가사의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퍽관이 지어지기 전 이 자리에 있던 이스트베스 저택에 화재가 발생했고, 조사 결과 지하에서 무슨 주술 의식이 있었던 듯 지하 바닥에 마법진 같은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 새 건물을 짓고 증축했으나 그 지하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지하실로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위키와 즈메이를 제외한 7명은 지하실로 간다.

그리고 지하실의 염소 얼굴이 그려진 마법진의 도안을 보고 그냥 올라오려던 때, 버스가 '초혼 게임'을 제안하고 그렇게 게임이 진행된다. 게임을 하고 아무일 없이 휴게실로 돌아왔고 그렇게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화장실을 다녀온다던 칼리가 돌아오지 않자 아묘가 그녀를 찾으러 다녔고, 아화는 칼리는 찾으러 다니는 도중 긴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의 뒷모습을 본다. 사실 아화는지하실로 가는 길에도 어린 아이의 모습을 봤고 약간 위화감을 느낀 터였다.

칼리가 샤오완이나 산산에게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들의 방에도 가 보지만 칼리는 물론이고 샤오완과 산산도 없다. 다시 칼리와 아묘의 방으로 돌아간 아화와 아묘 앞에 책상에 앉은 긴머리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긴머리 여자는 7대 불가사의 중 444호실 이야기 속 여자다. 그렇게 7대 불가사의와 관련한 무시무시한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희생되는 친구들마저 생긴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 p. 181

사문은 음기가 가장 강하고 불길한 방향이지. 옛 사람들은 사문으로 장례 행렬이나 잡은 짐승 등만 드나들게 했어. 길하고 좋은 일은 절대 그 방향에서 치르지 않았지.

-

그런데 우린 하필 그 방향을 비워놓고 놀이를 했지. 그 자리에 없는 손님을 초청하는 놀이를.

- p. 185

복도는 어둡고 조용했다. 기숙사 전체가 뭔가에 지배받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장기판의 말이 되어 '공포'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대국은 불공평하다. 우리는 오로지 잡아먹히는 쪽에 놓여 있다.

 

 

노퍽관에 전해지는 7대 불가사의는 다음과 같다.

- 살아 있는 조각상

- 불길 속의 원혼

- 거울에 비친 모습

- 나무에 매달린 시체

- 5층 반

- 방문 세기

- 444호실

아묘와 칼리가 배정받은 방이 '444호' 괴담 속의 실제 방이고, 아화는 거울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7대 괴담 중 일부를 실제로 보기도 한다.

괴담이 실제 상황으로 이들에게 시시각각 공포로 다가오면서 희생자도 발생하고, 겨우 남아 있는 자들도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렇게 괴담에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건가, 라는 생각에 안타까우면서도 왜 이들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라는 궁금함에 책장을 계속 넘겼다.

분명, 책을 읽는 동안에 위화감이 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위화감이란 게 그저 느낌일 뿐이라서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 뿐 논리적인 설명은 전혀 내 머릿속에서 할 수 없었고, 그 후에는 이들의 위급한 상황에 빠져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 동안 좀 무서웠다. 집에서 혼자 읽기가 무서워 카페나 도서관을 일부러 찾아가서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었다.

괴담, 특히 학교와 관련된 괴담은 우리도 어린 시절 이것 저것 들으며 자라서인지 좀 더 가까운 공포로 느껴졌다.

이 학교의 불가사의 중에도 있지만,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에도 운동장의 동상에 관한 괴담은 너무도 많지 않았던가?

(밤 12시가 되면 학교 안의 동상이 운동장을 걸어 다닌다든가, 움직인다든가 하는 괴담 말이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단숨에 읽었다. 결론에서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곳곳에 존재했던, 하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트릭과 복선을 알게 된 순간에도 "아..."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흔하고 뻔한 학교의 괴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쩌랴 싶다. 이렇든 저렇든 이 소설은 너무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는 너무 훌륭한 페이지 터너 호러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 p. 166

그런데 왜 우리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을까?

아까 휴게실에서도 우리뿐이었잖아. 이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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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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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미술품 거래상인 '게오르고 칼키스'의 장례식 날, 장례식이 끝난 후 칼키스의 저택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가운데, 칼키스의 변호사인 '마일스 우드러프'가 고인의 서재에 있는 금고 속 유언장이 들어 있던 철제 상자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우드러프는 장례식 행렬이 집을 떠나기 오 분 전에 자신의 눈으로 금고 안의 철제 상자를 확인했었고, 서재를 지킨 집사에게 물어봤지만 서재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 출동해 집 안을 수색하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몸 수색을 했으나 유서와 철제 상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드러프에 의하면, 칼키스가 사망하기 전 칼키스 갤러리의 상속자를 빈 칸으로 둔 새 유언장을 작성했고, 칼키스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빈 칸에 이름을 기재하고 봉인해서 우드러프조차 새로운 상속인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앨러리는 새 유언장이 들어 있는 철제 상자가 칼키스의 관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리를 했고, 무덤을 파헤쳐 관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교살되어 잔뜩 부패한 또 다른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교살된 시체의 정체는 미술품 절도범이자 위조범이었던 '앨버트 그림쇼'로 밝혀진다.

또한 칼키스의 비서인 '조앤 브레트'에 의하면, 칼키스가 사망하기 전 목요일 밤에 앨버트 그림쇼가 저택을 방문했고, 다음날인 금요일 밤에는 그림쇼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남자가 함께 방문했다라고 말한다.

앨버트 그림쇼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그림쇼가 머물던 호텔에 목요일 밤 그를 찾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호텔 직원을 통해 저택 사람들 중 그림쇼를 찾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거짓으로 진술한 사람들이 몇 몇 드러나지만, 그림쇼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앨러리는 범인에 대한 첫번째 추리를 펼치지만,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로 그 추리는 성립할 수 없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추가로 발견된 사실들과 단서를 토대로 엘러리는 범인을 지목하는 두번째 추리를 펼치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쏴 죽은 채로 발견된다.

퀸 경감을 비롯한 사람들은 ○○가 자살했고 그를 최종적인 범인으로 특정하고 사건을 종결하지만, 엘러리는 또다른 진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찝찝해 하고 다시 사건을 되짚어가며 미심쩍은 부분들을 확인해 나간다.

엘러리는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 p. 255

엘, 그 생각은 잊어버려라. 세상이 끝난 건 아니잖니.

추리가 실패할 수도 있지 뭘 그러냐? 잊어버리라니까.

-

잊어버리라고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

앞으로 이 원칙만은 꼭 지킬 겁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사건과 조우하든,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남아 있고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없는 한은 절대로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 p. 328

표면적으로는 모든 사실들이 이 사건에서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주는 인물이나 사건)'라는 것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기는 한데요,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너무도 잘 들어맞아서 저한테는 거의 설득력이 없거든요.

지난번에 우리, 아니 제가 누군가한테 속아서 잘못된 해답을 냈던 걸 기억하시죠...? 그때 제 추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그대로 종결되어 범인을 놓쳤을지도 몰라요. 그때의 뼈저린 경험을 상기해야 해요, 아버지.

이번에 우리가 전부 수긍하고 공표까지 한 이 해답에는 전혀 빈틈이 없거든요. 흠잡을 만한 데가 없어요. 소위 말해서 '너무 완벽하다'는 거죠.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조차 없어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이야기는 국명 시리즈로는 4번째 이야기지만, 시기적으로는 기존 사건들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다. 엘러리 퀸이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의 사건으로 이 때만 해도 엘러리가 퀸 경감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인정을 받지는 못했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젊은 앨러리는 특유의 날카로움과 스마트함을 가졌지만 번번히 그의 추리는 실패하고 만다. 적어도 그가 최종적인 범인을 찾아내기까지는 똑똑한 범인에게 조금 휘둘렸고, 범인이 의도한 대로 추리를 펼쳐나가기도 한다. 범인이 흘려 놓은 단서를 따라, 범인이 정해 놓은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엘러리의 반짝이는 머리는 역시 범인보다 한 수 위였다. 다른 이들처럼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단서만을 쫓아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미심쩍고 조그만 구멍이라도 보이면 그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끝까지 나아갔다.

다른 편도 물론 좋았지만, 이번 편은 범인이 의외여서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번 편에서도 나는 범인 맞추기에 실패했다. 진짜 범인이 흘려 놓은 미끼에 보기 좋게 낚여서 애먼 사람을 의심했다. 진짜 범인을 잡기 직전에 범인으로 몰린 이 사람을 나는 범인으로 의심했고, 책이 몇 페이지 남지 않았을 때 그가 범인으로 몰리자, "크하하, 이번엔 맞췄구만..."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ㅋㅋㅋ

하하하하... 이번에도 실패!!!

아직 엘러리 퀸의 사건 일지는 많이 남았으니, 계속 도전이다!!!

- p. 342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사건에서 많은 요소들이, 아버지와 샘슨과 페퍼와 청장님 그리고 신이 볼 때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거예요. 제가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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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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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열세 살때부터 '재'의 밑에서 일하게 된 '나'. '재'는 나의 아버지가 나를 담보로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지 못했으므로 이제 자신이 나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처음 한 일은 재의 사무실 건물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처음엔 졸기도 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는 차츰 일에 익숙해지고 더이상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목소리, 표정이나 옷차림 등에 관심이 없는, 그저 그들을 하나의 선(숫자)으로만 보게 된다.

- p. 21

너의 빚이 '0'이 되는 순간 너는 자유다. 그때 너는 그 누구의 아들도 아니란다. 알겠니?

그렇게 숫자를 세던 나는, 이어 숨어 있는 표적들을 찾아내는 임무를 맡게 되고, 그 후 열아홉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직접 표적을 처리하는 일을 했다.

빚을 0으로 만들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러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던 일을 실패하게 되고, 다시 재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아 새로운 표적을 처리하게 된다.

- p. 39

지난 이름은 폐기되었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름이 없는 상태였다. 재가 새로운 이름을 구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저 무력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재'는 지난 실패한 일을 언급하며 새로운 표적은 B구역에서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B'구역은 수년 전 화학공장들이 화재로 폭발한 이후 폐쇄된 재난 구역으로, 그곳의 독성물질에 감염된 사람들이 식인귀가 되어 눈에 띄는 사람들을 죽인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런 B구역에서 살아남아 돌아오기 위해 어린 시절 살았던 집, 지금은 재개발을 앞두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에 들러 언젠가 재에게 받았던 폴딩나이프를 챙긴다.

동네를 나서던 때 예전 자신의 표적이었던 '서유리'를 만나게 되고, 서유리는 살고 싶다면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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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어느 순간 살인마가 된 남자는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는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도시는 너무도 화려하고 랜드마크의 꼭대기에서 늘 반복되는 광고는 그저 행복하고 환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발을 디디고 있는 세상은 어둡고 돈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거나 자신의 친모의 생명을 담보로 걸기도 한다. 자신부터가 아버지의 빚 때문에 이런 세상에 던져졌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남자는 빚이 0이 되는 날을 꿈꾸며 표적을 처리하고 재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나 슬프게도 남자는 재의 본심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전혀 자유를 줄 생각이 없었던 재의 본심을, 자신이 그동안 사용했던 새로운 이름들의 실체가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말이다.

자유를 갈망했던 남자는 이 도시에서는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다. 자유를 되찾고자 '재'의 밑에서 일했지만, '재'가 없더라도 또다른 '재'는 언제까지고 자신을 옭아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자가 정착하게 되는 곳은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오히려 그들에겐 세상이 지옥이었기에 이름없는 이 곳에서의 생활이 더 평안했으리라.

- p. 205

나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세상의 끝인 이곳에서 나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이름을 버렸다고, 그 이름으로 내가 저질렀던 악행들이 사그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라면,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은 세상의 끝이 아닌 세상의 시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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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도망치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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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 등 사람을 피해 떠난 도피 여행에서 사람을 통해 치유받고 희망을 꿈꾸는 이야기라니, 거울속 외딴성, 아침이 온다 같은 큰 감동을 줄 것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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