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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최항기 지음 / 세나북스 / 2016년 4월
평점 :
11줄의 짧은 노랫가락에 무슨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 작가는 다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헤쳐 나간다. 노래로 이어진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 운명의 얽힘 등 온갖 인생의 모습들을 담아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처용가는 학교 다닐 때 배운 이후로 다시 들쳐볼 일도 찾아볼 일도 없었던 내용이다. 간단한 노랫가락인 처용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에 궁금해졌다. 과연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 처용이 외계인이라는 조금은 황당무계한 설처럼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을까?
버려진 아이로 지상사에서 자란 처용의 인생은 시작부터 쉽지 않지만 그에게는 노래가 있기에 이를 견뎌낼 수 있다. 효병 스님에게서 노래를 배운 처용은 그를 따라 나섰다 인신매매단에 의해 노예로 팔리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를 구한 이는 권력다툼에 신물을 느낀 신라 귀족 위홍이다. 처용과 위홍은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친구가 되고, 당나라 왕족인 이원과 당나라로 유학 온 최치원도 이들과 합류해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소설 전반에 걸쳐 말하듯이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 노래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위로받는 이들을 수없이 보았다. 신라로 돌아온 처용, 김위홍, 최치원 등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경연대회에서 처용이 부른 처용가는 모두의 아픔과 슬픔을 담을 만큼 크고도 큰 그릇이었다.
노래는 그렇다.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아픈 이의 마음을 보듬어 다시 삶을 이어나가게도 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도 용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당나라에서도, 신라에서도, 2016년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노래의 힘이다.
역사적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뒤섞여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처용>은 마지막 순간까지 신비롭고 은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들려주는 노래의 힘을 보여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