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한동안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책이 어려워서 쓰지 못한 것이 아니다. 재미가 없어서도 아니다. 쉽사리 글을 쓰지 못한 것은 이 책에 바로 내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사형수 손철희, 의문의 여인 민초희 등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들 대신 글로 남겨주는 대필 작가 임순관. 이웃이나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지내는 그와 나는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르다. 사람을 대하는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르고,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다르다.
모든 점에서 다른 그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은 점이 하나가 있었다. 그도 나도 마음속 어딘가에 독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자신의 아파트에 쳐들어온 경비원과 이웃집 여자를 향해 실제로 독을 내뿜었다는 점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하지만 임순관의 행동만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다른 사람의 집을 침범한 경비원과 이웃집 여자의 행동이 정당한가? 단순히 그가 이웃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이유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이 임순관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독이 활동하게 만든 방아쇠였다면 그들에게도 적지 않은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임순관이 변해가며 내뿜은 독은 뒤틀린 채 또 다시 세상으로 스며들어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독을 깨우는 화학작용을 다시 일으킬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이들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독을 품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