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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메아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고를 때 꺼리는 소재 중 하나는 아동성범죄에 관한 내용이다. 어린 딸아이가 있다 보니 책을 읽다 흥분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책을 읽은 후의 여파도 만만치 않아서이다. 그렇지 않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범죄를 어떻게 제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아동범죄를 다루고 있다. 물론 아동범죄가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눈은 오로지 이 범죄를 저지른 자가 누군지를 찾아 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밝혀지는 범인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죄를 짓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에 안타깝기도 했지만 자신의 병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치료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자신의 병을, 그것도 남들이 들으면 혐오할만한 병을 선뜻 드러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병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죄를 짓기 전에 치료법을 찾아나서야 했다.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치료해야 했다.
이런 모습은 버지니아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행복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내면을 흐르는 죄의식이 결국은 그녀 자신을 망쳤다. 자신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울림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었다.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는 버지니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할 수 있다. 죄를 짓고 그 결과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누가 선뜻 그 죄를 고백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는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평생을 울려퍼질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가지. 버지니아와 나탄의 모습에 너무 흥분하지 마시길.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수없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