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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오르부아르>의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는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조금 밋밋한 맛이 난다. 반전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소름이 끼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도 아니다.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이 수없는 찬사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앙투안이라는 살인자이지만 살인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소년이 사흘 동안 겪는 심리 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이웃인 데스메트 가족이 기르는 개에 대한 앙투안의 애정 혹은 애착은 데스메트에 의해 개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 걷잡을 수 있는 분노로 변하고, 결국 이런 분노가 살인으로 귀결된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 후 앙투안은 평범한 어린아이에서 살인자로 변한다. 그런 그의 마음이 어떨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린 앙투안이 사흘 동안 두려움과 절망, 안도감, 포기 등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순간들을 묘사한 작가의 글 솜씨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대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앙투안의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와 보발에 들이닥친 자연재해에 대한 설명이 어우러지면서 독자는 앙투안의 내면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보발에 사는 모든 이들을 절망에 빠지게 한 폭풍우는 한편으론 앙투안의 절망과 두려움, 또한 결심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앙투안에게 더욱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세월이 흐른 후 앙투안의 삶을 다시 조명하면서 하나의 사건이 결국 그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여기에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았나 싶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조금 아쉬워할지도 모르지만 하나의 사건과 그로 인한 한 사람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들여다보며 인간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