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넘쳐나고, 인간은 배고프다 - 바츨라프 스밀의 세계를 먹여 살리는 법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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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Vaclav Smil은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에너지, 환경, 인구 변화, 식량 생산 및 영양, 기술 혁신, 위험 평가 및 공공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학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인간의 먹거리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무한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류에게 턱밑까지 쫓아온 식량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식량 문제는 단일 해법이 아닌 다중 접근(multiple pathways)이 필요하며, 그 출발점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왜 먹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있다.

오늘은 선거날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 얼마전에 난 사전투표를 했다. 정말 어떤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또 누군가의 식탁을 바꿀 수도 있기를 바랬다. 그게 아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에 관여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며칠 전 읽은 책에서 시작됐다. 『How to Feed the World』
이건 원제이고, 한국판 제목은 <음식은 넘쳐나고, 인간은 배고프다>의 굉장히 직관적인 제목이다.
‘어떻게 먹일 것인가’보다는 ‘왜 아직도 굶는가’에 가까운 책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열량을 넘치게 먹지만, 영양은 여전히 결핍되어 있다.”

칼로리는 광고되고 팔리고 버려지지만, 비타민 A나 아연 같은 건 뉴스거리도 안 된다. 영양은 작고 조용하고 손익 계산서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잊힌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잊힌 것들을 숫자로 다시 불러낸다.
전 세계는 하루에 인류가 필요로 하는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그런데도 굶는다. 왜냐고?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걸 나누는 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식량 위기의 원인을 농업 기술이나 자연 재해보다, ‘정책’에서 찾는다.
어떤 작물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어떤 음식이 값싸게 유통되며, 어떤 식사가 표준으로 간주되는가. 이 모든 건 국가가 결정한다.

‘식량 시스템’이라는 건 말이 좋아 시스템이지, 결국은 정치다.
어떤 정부는 빵을 보조하고, 어떤 정부는 설탕을 판다. 어떤 정부는 영양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예산은 늘 딴 데로 간다.
밥상은 늘 부엌이 아니라, 국회에서 결정됐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다시 그 국회의 구성을 고르고 있다.

사실 나는 굶주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캠페인을 보면 마음이 잠깐 무거워지지만, 곧 잊힌다. 기부를 하거나, 뉴스 한 꼭지를 본 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여긴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굶주림은 자원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분배의 실패’, ‘식단의 왜곡’, 그리고 ‘관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결국 나의 소비, 나의 무관심이 지구 반대편의 아이의 식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보여준다.

(중략)

그건 선택된 정책이고, 방기된 책임이며, 실질적인 굶주림이다.
공공영양정책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왜냐하면 당장은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침묵의 칼로리들이 누구의 혈관을 막고, 누구의 뼈를 약하게 만들었는지 드러난다.

그건 대개 가장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다. 아이들, 노인들, 여성들,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번 대선에서 기후환경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농업의 지속 가능성, 먹거리의 탄소 발자국, 식량 생산의 생태계 파괴에 대해 진지하게 다룬 후보는 없었다.

(중략)

“낭비를 줄이고, 정책을 바꾸고, 식습관을 조금씩 수정하자.”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리지만, 오히려 그래서 설득력 있다.
이 책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급식실에서, 각국의 예산안 속에서 식량 정의가 어떻게 조용히 만들어지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정책은 멀고 투표는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략)

우리는 단지 먹는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조안에서 먹고 권력안에서 굶주린다.
그 권력구조를 오늘 우리가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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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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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넘김
왼쪽 한 줄 소감 + 오른쪽 그림

중간 중간 한페이지 글.

사놓은 책을 거실에 던져놨더니, 작은애가 봤다.
이 책을 내가 보려고 샀는데, 위에서 설명했듯 글이 없어서 부담없이 집어 든 듯하다.

-엄마도 이랬어?
-엄마도 이랬어?
-엄마도?

끊임없는 질문에

대분분이 “응, 엄마도 그랬지.”

그 말을 들으면 어찌나 ‘깔깔’ 거리고 웃던지.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F딸_“나는 엄마가 제일 이뻐”
T엄마_“너 사회생활잘하겠다.”

T엄마_재밌어?
F딸_“응, 엄마, 찌찌 깨물어서 미안해..”

그리고 포~옥 안기는 딸

아이가 읽어준 육아에세이

F딸은 T엄마의 다른 말들을 삼키게 했다.

아이에게 읽어보게 하자.
육아의 고단함을 실제로 보게되면, 자연스럽게 교육이 된다.

청소년 성교육교재로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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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전스 랩 - 내 삶을 바꾸는 오늘의 지식 연구소
조니 톰슨 지음, 최다인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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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 올리고 잠시,

미팅 기다리며 잠시,
자기 전 잠시,
컴을 끄고 잠시,
컴이 업그할 때 그 잠시.

이 책은 내 하루 속 빈틈들을 기가 막히게 털어갔다. 👍스마트폰을 보던 시간에 이 책을 집었는데, 분량도 딱이고 내용도 딱이었다.

정신없이 읽히는데, 이상하게 똑똑해진 기분이 든다. 과학, 철학, 정치, 종교, 기술까지—세상은 이 작은 책 안에서 가벼운 척 하면서 사람을 끊임없이 툭툭 찌른다. 토막글로 구성되어 있어 ‘이게 무슨 위키문서 편집본인가’ 싶다가도, 읽다 보면 갑자기 허를 찌른다.

각 아이디어는 짧지만 알차다. 백신, 전염병, 인쇄기, 인터넷, AI, 공공 보건, 낙태, 죽음의 권리, 기후변화, 젠더, 결혼 까지. 어쩌면 이렇게 많은 주제를 담아놓고도 지루하지 않지? 서랍을 연 줄 알았는데, 무슨 타임머신이 튀어나온다. 한 페이지 넘어갈 때마다, 시간대가 바뀌고, 대륙이 바뀌고, 인간이 어디까지 오만했는지를 구경하게 된다.🤣

가장 놀라운 건, 이 책이 정말 웃긴다. 진화론이 사회 다윈주의로 왜곡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이기는 법을 만들고, 진 자들이 도덕을 설계했다”는 대목에선 커피 뿜을 뻔했다. 🤣현대 의료 시스템을 다루는 부분에선, “건강보험 없는 자본주의는 다이내믹하다. 병원비 고지서를 보면 혈압이 자동으로 올라 진단이 쉬워진다”는 농담까지 던진다. 블랙코미디 감성 제대로다. 내 취향!!

나는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이거 내가 써놓고 싶었는데’ 하는 유치한 질투심을 느꼈다. 좀 유치한편🙄🤣🌊

하지만 마냥 신나기만 하진 않는다. 이 책, 짧다는 게 장점이지만 동시에 한계다. 어떤 주제는 흥미롭게 던져놓고 그대로 달아난다. 예를 들어 ‘젠더’와 ‘가족 구조’ 관련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시작하지만, 한두 문장 던지고 마무리된다. 끝내지마!!

특히 과학적 개념들 중 몇몇은 용어만 훑고 지나가서, 배경지식 없는 사람은 “뭐가 빅이고 뭐가 미니지?” 하고 갸웃거릴 수 있다. 예컨대 양자역학이나 유전학 같은 주제는, 너무 압축되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 ‘작은 책에 큰 이야기를 담았다’는 기획 의도는 알겠는데, 가끔은 너무 작아서 진짜 안 보이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미친 듯이 유용하다. 짧고 강렬하다. 누군가와 밥 먹으며 세상을 욕해야 할 때, 논리적 근거를 대고 싶을 때, 이 책을 훑어보면 된다.

읽고 나면 뇌 한쪽이 기분 좋게 간질거린다. 누군가는 ‘너무 가볍다’고 말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가볍게라도 생각하는 게 중요한거 아닌가?
생각 안 하고 사는 건, 고장난 뇌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책은 뇌를 고치진 않지만, 최소한 점검하게는 해준다. 아, 그리고 휴대성도 최상이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펼쳐도 눈치 안 보인다. 글씨가 큼직큼직한 건 아니지만, 문장이 쿡쿡 찌르니까 집중력은 알아서 올라간다.

짬나는 시간에 세상을 통째로 씹고 뱉은 느낌이다. 가끔은 좀 더 오래 씹고 싶었는데, 이미 삼켜버린 뒤라는 게 문제. 그래도 좋다. 또 다시 꺼내어 씹으면 된다. 그러라고 책장에 꽂아둔 거니까.

4월 8일에 온 📚
한 달 동안 계속 스토리 올릴까하다 종종으로 바꾼 책.

느긋하니 아이에게도 읽히고, 설명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여유롭고 유쾌했다.

아이들은 짧아서 더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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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전략 수업 - 돈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남는 15가지 시스템
폴 포돌스키 지음, 고영훈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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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고, 통장은 늘 강제 다이어트 중이다. 통장 잔고는 숨바꼭질의 달인이고, 월급은 입금되자마자 25년 3월 8일의 누구처럼 고의에 의한 불법이나 합법적 탈옥을 한다. 예산은 계획이 아니라 환상이고, 지출은 매일이 계엄을 선언한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책이 하나 있다. 기가 막히게 불편하다. 조지오웰이 “글은 독자가 불편해야한다” 라고 했다.

그럼 읽자. 직면은 원래 불편하고 아프고 눈을 감고 싶은 것이니....
마치 거울에 비친 생얼처럼.

이 책은 ‘돈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처음엔 헛웃음 나왔다. 하루살이 인생에 뭘 어떻게 설계하라는 건지.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그 허탈한 웃음 뒤에 남는 건 진지한 침묵이다. 진짜 돈을 내가 끌고 다닌 적이 있던가? 늘 돈이 나를 끌고 갔지.

책에는 15가지 시스템이 나온다. 대단히 과학적이거나 금융 공학적인 구조는 아니다. 오히려 씁쓸한 커피 한 잔 앞에서, 카드값 명세서를 보며 벌어지는 뇌내 폭풍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

돈에 대한 환상, 돈으로부터의 공포, 돈이 만들어내는 위계와 거짓말까지. 마치 심리학 책을 위장한 경제서 같다. 게다가 이 책, 꽤 유머러스하다. 물론 그 유머는 블랙에 가까워서 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은 돈과의 전쟁인데, 이 책은 전략서인가, 항복 사유서인가.' 🤣

그런데 책은 항복을 권하하기보다 무기를 쥐여준다. 그 무기가 총칼이 아니라 '판단력'과 '사고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전투는 생각보다 고차원적이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그토록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단순히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선택지를 넓히는 사고의 힘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이 책이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식의 자본주의 주술을 해독해준다는 점이다. 반박하고 싶지만, 자본주의에서 어찌 돈이 중요하지 않을까.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쵝오지!!”

그렇지마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에 잡아먹히지 않는 감각이 더 필요하다. 그걸 모르면, 마트에서 물티슈 하나 고르다가 인생의 허무와 맞닥뜨리게 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책은 그 모든 혼란에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따뜻하진 않지만, 현실적이다. 약간 냉소적인이라서 더 좋다. 난 위로보다 냉철한 말이 더 와닿는다.

결국 이 책은 돈 얘기를 빙자해 인간의 불안, 욕망, 그리고 생존 전략을 해부한다. 그 해부의 메스는 꽤 날카롭고, 가끔은 출혈도 감내해야한다. 하지만 출혈의 위치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멈출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금융 응급처치 매뉴얼로 보인다.

읽고 나면 질문이 생긴다. 내 통장 속 숫자들이 나를 대변하는가, 아니면 나를 구속하는가. 매달 반복되는 경제 드라마의 각본을 쓴 건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의 주연인가, 엑스트라인가.

그렇다고 이 책에 답이 있지는 않다. 그 답을 누가 알려주겠는가. 대신 아주 핵심의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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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리의 뼈 로컬은 재미있다
조영주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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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작품은 각각 과거로의 회귀, 죽음 직전의 응시, 망각된 시간의 복원을 다루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다다른다.
“우리는 지금, 현실을 살고 있는가?”
『크로노토피아』의 인물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후회는 반복되고, 삶은 루프처럼 감긴다.
『은달의 뜨는 밤, 죽기로 했다』의 인물은 찰나의 순간에 멈춰서 삶과 죽음의 저울을 들여다본다.
『쌈리의 뼈』의 인물들은 살아 있으되 기억을 잃거나, 기억을 품은 채 과거를 걷는다.

이들은 모두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정작 ‘지금 여기에 있음’을 살지 않는다.
시간을 지나가지만, 현실에는 머물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윤명자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머릿속은 과거에 닿아 있다.
딸 윤혜환은 엄마의 오토픽션을 이어 쓰며 문학 속 가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가상, 망각, 기억, 허구, 반복. 이들은 ‘현재’라는 자리를 점유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현대인’이라고 불리지만 결고 현재를 살지 못한다. 현실을 살면서도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이라는 과거형의 후회에 머물거나,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라는 미래형의 낙관으로 지금을 유예한다.

결국 오늘이라는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우리는 그 자리를 비워둔 채
과거나 미래의 망상 속에 자신을 분실한 채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현재는 정말 존재하는가?

1분 전의 나와 1분 후의 나는 확실히 다른 존재지만, ‘지금’이라는 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를 기준 삼아 과거와 미래를 나누지만, 정작 현재는 그 경계 위에 있는 찰나적 착각에 불과한 것 아닐까?

조영주 작가는 이 3부작을 통해 시간의 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존재를 들여다 보게한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며, 시계 바늘처럼 정확하게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반복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며, 때로는 완전히 멈춰버리기도 한다.

『크로노토피아』에서는 되감기고, 『은달』에서는 정지하며, 『쌈리의 뼈』에서는 붕괴된다.

흔히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은 이미 이렇게 말한다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일방적인 흐름으로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흘러간 과거는 후회의 목록으로 남고, 다가올 미래는 불안과 기대의 혼합물로 덮인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며 살아진다.
매 순간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참고 견디는 현재.
그래서 조영주 작가는 말한다.

“시간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저 지나간 숫자이고 망각된 기억이며, 채우지 못한 공란일 뿐이다.

『쌈리의 뼈』를 읽고 리뷰를 쓰지말까 했다.
치매, 망각, 가족, 사랑, 연대 그리고 회복... 이런 키워들은 내 입장에선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을 연결짓는 소재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 요즘 폭력적 성향이 많이 올라와서 종종 검, 총, 불 같은 단어에 끌리기도 한다. 그래서 잠시 뜸을 들였다. 과연 조영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진짜 그거일까?

내가 외면한 기억들, 내가 놓친 말들, 내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순간들.
그것들을 조영주 작가는 시간 3부작을 통해 부드럽고도 단단한 문장으로 하나하나 꿰매어준다.

삶이란 그렇게 꿰매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간 속에서, 관계 속에서, 기억 속에서 삶의 자락을 다시 꿰어 잇는 일. 꿰매진 자국이 남을 지라도 그 또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작품들은 같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과거에, 누군가는 망상에, 누군가는 욕망과 현실의 어디쯤에 걸쳐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볼수 있다.

삶은 언제나 ‘지금’에 있다고. 그러나 그 ‘지금’을 살아낸 사람은 드물다고.

과거를 반복하거나, 죽음을 응시하거나, 망각 속을 헤매며 우리는 현실을 통과하고, 현실을 부재한 채 시간에만 거주한다.

조영주 작가의 시간 3부작은
시간을 말하지만 시간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엔 우리가 놓친 현실, 지금, 나 자신이 있다고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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