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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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따옴표없음/현재형 동사/주요등장인물 5명

아이의 발걸음은 작고 조용하다. 그러나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검열의 그늘 아래 가려진 진실이라면, 그 조용함은 더없이 큰 울림이 된다. 어떤 이야기는 말보다 침묵이 많고, 어떤 소설은 줄거리보다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사회가 ‘정상’을 규정하고, 그 정의 바깥에 선 존재들을 조용히 제거해 나갈 때,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이름이 아니라 목소리다. 작고 약한 존재부터, 말수가 적은 이들부터, 시와 기억과 진실이 은밀히 깃든 존재들부터. 그러나 아이는 그 사라진 목소리를 향해 걷는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상처였는지, 혹은 저항이었는지를 묻지도 않고, 다만 남겨진 단어와 풍경을 좇으며.

이 소설은 어떤 거대한 사건에 대한 '느낌'과 '기억'으로 구조화된 세계다. 모든 사건은 감정과 내면을 타고 흐른다. 아이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명확하다기보다 흐릿하고, 그 흐릿함 속에서 더 분명한 것이 떠오른다. 가족은 무엇이고, 진실은 어떻게 억압되는가, 그리고 언어는 어떻게 금지가 되는가.

이 소설은 가깝고도 낯선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PACT(Preserving American Culture and Traditions)'라는 법률이 시행되며, 정부는 '비미국적'이라 판단되는 언어·예술·사상을 검열하고, 그에 연루된 부모로부터 자녀를 분리시킨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실종된 채 남겨진 12살 소년 ‘버드(노아)’. 그는 어느 날 도착한 의문의 메시지를 계기로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어머니가 시인으로서 남긴 언어의 조각들(종이조각)을 통해 엄마의 세계를, 엄마를 통해 세계를 다시 읽어 나간다.

(중략)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보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여백’이다. 어떤 대사는 들리지 않고, 어떤 감정은 표현되지 않지만, 느낌적으로 알수 있다. 그 말의 결락, 그 표정 없는 얼굴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 특히 아이가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여정은 물리적 재회보다는 존재의 뿌리를 찾아가는 정서적 순례에 가깝게 읽혔다.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고, 감정을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신,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감정의 구조와 윤리적 조건들을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밀도있는 문학을 경험할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따옴표가 생략된 대사는
생각과 말,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지워내고
🌊짧고 반복적인 리듬은
인물의 심리를 시처럼 그려낸다는 것이다.

따옴표가 없다는 것이 놀랍게도 훨씬 몰입도를 높인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확신보다,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감정이 마지막 페이지에 남는다.

작품 속 어머니는 단순한 실종자를 넘어, 그녀는 시와 이야기, 침묵과 여백을 통해 언어와 저항의 뮤즈로 묘사된다.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녀의 문장은 살아남는다.
아이는 그것을 읽고 이해하며, 🌊 다시 써내려간다. 이 방법은 이 작품이 택한 구원이자 회복이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상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 이후를 견디는 언어를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이 작품은 바로 그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어지며,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 누군가의 침묵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고쳐 쓰는 일이다.
그것은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 없이 저항하는 이야기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어쩌면 무언가를 ‘찾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신, 무언가를 '되살렸다‘는 느낌은 남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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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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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에세이스트로, 『어느 가족』, 『그리고 아버지가 된다』 등 가족과 기억, 사회적 경계를 다루는 작품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로도 잘 알려진 그는 감독이자 작가로서, 항상 '삶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사유해온 인물이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映画の生まれる場所で)』는 그가 프랑스에서 촬영한 영화 『진실(La Vérité)』의 제작 과정을 중심으로 쓰인 에세이이다. 단순한 제작 비화에 머무르지 않고, 언어의 장벽, 문화적 충돌, 창작을 둘러싼 협업의 모순까지 정직하게 고백한다. 일본과 프랑스라는 서로 다른 제작 환경 속에서, 그는 감독이자 인간으로서 흔들리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순간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중략)

아쉽게도 나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건 고레에다 감독이 남긴 ‘메모’들이었다. 그것은 회의록도, 시나리오도, 일기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에서 막 태어난 이미지들—촬영을 앞두고 반복해 그려낸 장면 구성, 배우의 움직임, 프레임의 감정값까지—영화가 되기 전의 영화들이 그 속에 살아 있었다. 나는 그의 놀라운 꼼꼼함에 감탄했고, 단정한 손글씨에서 전해지는 진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또 다른 지문”이라는 말이 있다면, 글씨는 아마 그 사람의 정신세계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쓴다고 했지만, 그 정리된 생각은 하나의 독립된 예술 언어처럼 느껴졌다. 악필이지만 끊임없이 메모하는 나로서는, 그의 필체가, 그의 생각이, 그의 그림과 그것을 구성해내는 작은 상자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생각을 하나의 단어와 이미지로 정리하고, 그것을 순서대로 배열해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무리 사회화가 많이 되어도, 그건 참 버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그는 그 일을 무심한 듯 툭툭 해낸다. 솔직히 그의 다이어리를 훔치고 싶었다.
그런데… 나 일본어 모름. ^^;;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화 『진실(La Vérité)』은 2019년 제76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개막작(오프닝 상영작)으로 초청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일본에서는 『真実(しんじつ)』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개봉되었다. (중략)특히 일본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진 첫 외국어 영화라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업이다.

이 책은 창작이라는 일이 어떻게 타인과의 충돌 속에서 다듬어지고, 작가 자신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가장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종이 위에서 태어난 프레임들, 그것을 구성한 문장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놓인 메모들—우리는 그 메모의 자리에서, 영화가 태어나는 정확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세상에 없다고 믿어지는 것을, 내 머릿속에서 꺼내어 종이 위에 옮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다시 그려지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그의 글에는 욕지기가 나올 법한 순간들도 많다. 요즘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총’이고, 폭력성은 극대화된 시기다. 그런 나는 분명히 격하게 반응했을 상황들을, 그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느긋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별거아닌 듯 담담하게 헤쳐 나간다. 뭔가 해탈한 느낌이랄까. 글이라 그런가?
그래서일까. 요동치던 내 마음이 그를 따라 잠잠해진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
문화 간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는 분
창작 과정에서의 고민과 성찰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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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것과 그리고 전부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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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일본 청춘소설은 대부분 너무 친절하다. 다정한 서술, 아름답게 포장된 상실, 감정선의 예측 가능한 흐름. 죽음조차 하나의 성장 장치로 기능하며, 주인공들은 눈물 한 바가지 흘린 뒤 훌쩍 커버린다. 왜 그렇게 다들 성장시키려하는지. ‘아름다운 이별’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그것은 소비되기에 알맞다. 문학은 때로 감정의 안전지대를 제공해야 하기도 하지만, 생과 사의 경계를 다루는 작품이라면 그것이 갖춰야 할 윤리적 긴장감이 있다.

이번 작품은 그 흐름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흔한 드라마틱함이나 플롯 중심의 반전 없이, 조용히 정적을 견디며 서사를 끌고 간다. 이야기의 배경은 그저 여름방학, 그 속의 짧은 여행. 중심 인물은 10대의 남녀, 겉보기엔 수많은 일본 청춘소설의 전형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핵심이 관계의 진전이 아니라 소멸의 방식에 있다는 점이다.

작품은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는다. 병명은 언급되지 않고, 죽음의 예고도 감춰져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점은 때로 답답하다. 명확히 알고 싶은 욕구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외면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낭비, 소비하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주인공 사브레는 삶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녀의 말투, 눈빛, 기묘한 여정의 목적을 통해 삶의 피로와 소멸의 기미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생사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매우 윤리적이다. 죽음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창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성찰하는 내면의 거울이다. 문학은 그 거울을 조심스럽게 비춰야 하며, 독자로 하여금 한 인간의 삶을 재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작품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지킨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설명은 최소화된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것이 좀 답답하게 읽힐 수도 있다. 이건 뿌우연 안경을 끼고 있는 듯한 느낌, 혹은 실루엣만 보이는 그림자 영화를 보는 듯도 하다.

주인공 메메는 사랑을 품고 있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사브레는 죽음을 준비하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그러나 바로 그 ‘말하지 않음’ 속에서, 사랑의 본질과 죽음의 품위는 오히려 또렷이 떠오른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이렇게 썼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침묵의 미덕이 아니다.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지점에서, 침묵이야말로 유일한 표현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작품 속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다. 말하지 않는 대신, 곁에 머무르고, 눈빛을 건네고, 함께 걷는다. 그 모든 것이 언어보다 정직한 방식으로 감정을 전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전하는 가장 깊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말해지지 않은 것들 속에 존재한다. 말하지 않음이 곧 외면이 아니라, 사랑의 가장 조심스러운 형식이자, 죽음을 품위 있게 감당하는 마지막 태도인 것이다.

같은 작가의 전작, ‘췌장을 먹고 싶다’는 작품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감정을 적극적으로 연출하며, 사건을 통해 서사를 밀어붙인다. 물론 그 역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눈물을 유도하는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죽음을 단지 ‘감동의 재료’로 소비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번 작품은 그러한 위험을 피한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교훈을 들이밀지 않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죽음을 통과한 후 남겨진 자의 변화보다,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존엄에 더 무게를 둔다는 사실이다. 흔히 청춘소설은 살아남은 자의 성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히려 "떠나려는 사람"의 선택을 조명한다. 그것은 매우 드문 시선이고, 현실적이며 동시에 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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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식물의 말 - 마음을 회복하는 자연 필사 100일 노트
신주현(아피스토).정진 지음 / 미디어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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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들려주는 사색의 언어를 따라 마음의 고요를 찾아가는 100일의 여정이다. 시인의 따뜻한 문장과 정신과 전문의의 해설이 더해진 구조는 치유를 설득하거나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해한 언어로 독자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사유를 강요하지 않으며, 문장들은 마치 식물처럼 존재하되 설명하지 않는다.


원래 있던 식탁의 꽃처럼.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다육이처럼.

필사라는 행위는 단지 ‘쓰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잠시 멈추는 경험이 된다. 매일 한 문장을 베껴 쓰는 동안 문장은 손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닿고, 그렇게 문장 하나에 멈추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문장과 자신을 조용히 대조하게 된다. 억지로 다독이려 하지 않고, 설득하려 들지 않으며, 애써 치유하겠다는 포즈조차 취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식물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숨결로 곁에 머문다.

정제된 해설은 감정을 억제하는 듯 보이지만, 그 억제 속에 오히려 더 큰 열정이 있다. 이 책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다만 ‘살고자 하는 사람’ 곁에 머물 줄 안다. 시와 상담, 자연이 어우러진 이 섬세한 책은 스스로를 돌볼 틈조차 없었던 사람에게,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르게 되는 감각을 되찾게 한다. 위로가 되지 않더라도, 하루 한 문장을 따라 쓰며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어쩌면 가장 적극적인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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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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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견디는 일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글쓰기에 대한 고백이자 자백이다. 대단한 이론이나 화려한 기교는 없다. 대신 글을 쓰는 사람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 자기혐오, 불안,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쓰게 되는 어떤 집착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이건 누가 꾸며낸 말이 아니라, 직접 망가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라는 걸.

 

책에는 여러 시기의 메모와 편지, 단상들이 실려 있다. 모두 제각각인 것 같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절대 평안할 수 없다는 사실. 좋은 문장을 쓰겠다는 욕망,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한 줄도 못 쓰는 날의 자괴감, 방금 쓴 문장을 다시 지우고 또 지우는 강박. 그런 반복 속에서 이 책은 태어났다.

 

읽다 보면 웃긴다.

의도적인 유머는 아니다. 자기가 쓴 문장에 괴로워하며 편집자에게 하소연하고, 멋진 글 뒤에 숨은 무력감을 고백하는 모습은 블랙코미디 그 자체다.

 

자기가 자기를 조롱하고, 그래도 또 쓰고, 또 절망한다. 어느 순간엔 글쓰기라는 행위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도망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걸까.

 

이 책의 힘은 정직함에 있다. 스스로 잘 쓴다고 믿지 않는다. 천재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언어가 담겨 있다. 그 언어들이 짧고 단순해서 더 아프다. 마치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말을 혼잣말로 꺼내는 것처럼. 그 안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외로움이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의 편집 방식이 다소 어수선하다. 흐름이 뚝뚝 끊기고,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편집자가 조금 더 주제별로 정리했더라면 집중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읽는 입장에서는 처음의 몰입감이 점점 줄어든다. 분량보다 밀도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쓰기 위해서. 쓰고 싶은데 못 쓸 때, 한 줄이라도 썼다가 절망할 때, 이 책은 묵묵히 말해준다. “나도 그랬다. 근데 그냥 계속 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쓰기라는 일은 결국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있는 끈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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