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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5개의 단편 – 종달새상점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스이”
1. 봄_화상흉터
2. 여름_통증
3. 가을_기억
4. 겨울_재능
5. 시작-이어짐.. 연승, 계승
‘라이트 문예(경문학)’와 ‘로우 판타지’ 장르의 경계 안에서 조용히 빛나는 소설이다. 세계의 균형을 뒤흔드는 대단한 마법은 없다. 대신, 일상의 틈 사이로 스며든 작은 기이함과 슬픔, 그리고 아주 조용한 회복이 있다. 이 작품은 그만큼 가볍게 읽히지만, 읽고 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속에 한 문장이 오래 머문다. 나에게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정서와 전개 방식,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들과 사건들은 익숙했고, 어쩌면 심심할 정도로 무난했다. 그러나 무난하다는 건, 예상대로 잘 읽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5개의 단편을 묶은 단편집같다.
하나의 줄로 꿰어놓은 목걸이같은.....
1편 소꿉친구 간, 화상자국
2편 시한부 화가 이야기
3편 소설가 창작활동
4편 형의 그리움
5편 마법사 스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였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GPT를 떠올렸다.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놓고, 막상 받아든 글을 보며 “이건 내 글이 아닌데” 하는 이상한 거리감.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나'가 아직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른다는 감정의 투영인지도 모른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창작 고민을 넘어, ‘타인의 손을 빌린 자기 서사’가 과연 진짜 자신의 것일 수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는다. 요즘처럼 AI가 텍스트를 대신 쓰는 시대에, 놀랍도록 현실적이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이야기, ‘스이들의 이야기’였다. 책의 처음부터 등장한 마법사 스이는 알고 보면 단 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이라는 이름은 계승된다. 마법사가 마법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마지막 마력을 담아 제자에게 건넨다. 이것은 누군가에겐 정체성의 이양이자, 삶과 죽음의 연결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감동보다 조금은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름을 물려준다는 것,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루이 14세는 그저 외우기 쉬워서 좋았는데, 이게 현실로 다가오니 느낌이 좀 달랐다. 그 장면은 내게 감동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았다.
‘정체성이란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름이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는가?’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어쩌면 그런 설명되지 않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돌’이다.
왜 하필 돌이었을까.
나무도, 불도, 새도 아니고, 보석처럼 반짝이지도 않는 돌.🪨
그것은 마법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물건이며, 버려도 돌아오고, 색이 바래면 죽음을 알린다.
말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돌.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감정, 기억, 상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잊고 싶어도 돌아오고, 계속 쥐고 있자니 무거운 어떤 것.
그 돌 하나가 이 이야기 전체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종달새 마법상점』은 화려하지 않다. 구조적으로 실험적이지도 않고, 반전을 즐기는 소설도 아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슴슴하다.
(중략)
이 책은 마치 물 같다.
돌이라는 소재가 등장했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곧장 물을 떠올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물이었다.
간이 센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달지도 않은 물.
하지만 그런 물이 때로는 마음을 가장 조용히 적셔주는 것처럼,
이 소설도 내 마음속에 어떤 격한 돌도 던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바람 같았다. 살랑이는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시작으로 이어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무언가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삶도, 마법도, 그리고 이름도 그렇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