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기 시작하면 달라지는 것들 - 자신감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김유미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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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책을 번역한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원서의 출간 연도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다. 어떤 책은 번역되어 들어오는 순간 이미 시대의 공기를 잃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The Power of Self-Confidence는 조금 달랐다. 이 책의 초판은 2012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년 전의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이 사실이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삶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주제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을 믿어라.”


이 말은 너무 흔해서 식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인간은 이상하게도 이 단순한 말을 평생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존재다.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나는 감사의 글(Acknowledgments)에 **“망망 대해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연구라는 것은 때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배를 모는 일과 닮아 있다.

문제는 그때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나를 선택한 사람을 믿자. 내가 나를 믿지 못하던 그 시절, 나는 나의 지도교수를 믿었다. 그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고, 그런 사람이 나를 연구자로 선택했다면 완전히 틀린 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The Power of Self-Confidence는 바로 그 지점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메시지는 특별히 새롭지 않다. 서점에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자기계발서가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또 그런 이야기야?”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잔소리는 한 번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조금 스며든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시 들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도 주기적으로 읽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미라클 모닝》 역시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새벽에 일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라는 조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바쁜 일상 속에서 공부와 일을 병행하던 시절, 한 선배가 새벽 시간을 활용해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새롭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라, 자신을 믿어라, 꾸준히 노력하라.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는 이야기라도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The Power of Self-Confidence도 그런 책이다. 삶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인 통찰을 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이 결국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이 된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망망대해 위에서 배를 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배의 방향키를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끔은 그 항해사를 조금 더 믿어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이 오래된 자기계발서가 여전히 읽힐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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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
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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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솔직히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과 ‘라이프 해크’라니. 깨달음과 생산성 앱이 한 문장 안에 들어가는 이 시대적 조합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기자, 이 책이 단순히 불교를 소비하기 쉽게 포장한 요약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불교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불교를 살아보라고 권한다. 그것도 거창한 수행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는 방식으로.


저자는 사성제와 팔정도, 무상과 무아 같은 개념을 교과서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한가”, “왜 타인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망가지는가”, “왜 이미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 집착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밑바닥에 집착이라는 구조가 있음을 차분히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설명이 종교적 확신의 어조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교가 아니라 제안에 가깝다. “이렇게 바라보면 조금은 덜 괴로울지도 모른다”는 식의, 조심스러운 조언이다. 그 제안이 이 책을 끝까지 잡고 있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꾸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일이 돈이 되지 않을 때 불안해하고,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받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순된 태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게 진짜 너야?”


무아(無我)는 거창한 철학 개념처럼 들리지만, 이 책 안에서는 ‘지금 당신이 붙들고 있는 그 이미지가 진짜 당신이 맞는가’라는 질문으로 변환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괴로운 이유의 상당 부분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내가 나에 대해 만들어 놓은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감정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을 사실로 오인하지 말라고 한다. 화가 난다는 것은 ‘화가 난 상태’일 뿐, ‘내가 옳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문장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는 감정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다시 감정으로 강화한다. 그 순환을 끊는 첫걸음이 ‘관찰’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불교를 심리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 이 책이 깊은 불교 철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학술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전 해석의 엄밀함이나 교리의 역사적 맥락을 기대한다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다.


깨달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덜 괴롭게 사는 방법을 제안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다. 완전한 해답을 약속하지 않는 대신 태도의 전환을 말한다.


읽고 난다고, 삶이 갑자기 평온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다만, 흔들리는 나를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왜 나는 이 모양인가’라고 자책했을 순간에, ‘아, 또또또 잘하고 싶은 집착...’라고 중얼거릴 여유가 생겼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작은 해크(hack)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는 능력. 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결국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꿔보라고. 성공을 더 쌓기 전에, 이미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너무 심각하게 붙들지 말라고.


나는 아직도 돌밭길을 걷고 있지만, 적어도 그 길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덜 집착하는 법, 조금은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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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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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본 순간부터 시선을 잡아 끌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과글쓰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색이 있고, 어떻게 봐도 이쁜 책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떨까. 상상한 그대로다.


이 책이 가장 설득력 있게 말하는 지점은, 글쓰기가 시작되기 이전의 마음가짐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먼저 왜 쓰는지, 이 글에서 내가 감당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생각이 충분히 익지 않은 상태에서 쓰인 문장은, 아무리 매끄러워도 공허하다는 경고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은 기술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이며, 그 사유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말에 나는 대부분 동의했다.

다만 여기에서 책이 다소 보수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하나 있다. AI의 등장을 출판계와 글쓰기 세계가 쉽게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나는 이 부분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출판계는 늘 새로운 기술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흡수해왔다. 워드프로세서, 검색엔진, 전자책이 그랬듯 AI 역시 글쓰기의 본질을 대체하기보다는 글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도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AI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사유와 책임일 것이다.


책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성급함과 허영을 꼽는다. 잘 보이기 위한 문장, 아는 척하는 표현, 결론을 서둘러 단정하는 태도는 문장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책이 왜 ‘다정한 엄격함’을 지녔다고 느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혼내기보다,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것이다’라는 문장 종결을 분석적 성향의 글쓰기와 연결한 부분이다. 나는 이 해석에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것이다’는 반드시 분석의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밀어붙이는 주장형 문장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글은 분석의 여백을 남기기보다, 자신의 판단을 독자에게 명확히 제시하려는 의지가 강한 경우가 많다. 분석과 주장은 겹치기도 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그 차이를 조금 더 섬세하게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글을 쓴 뒤에 남는 책임이다.

글은 쓰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은 타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과 인용, 침묵과 단정까지도 감당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이 단순한 글쓰기론이 아니라, 지식인의 윤리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철학하다』는 다정한 책이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쉬운 위로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다정함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문장을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함부로 쓰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남는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글쓰기의 자세일 것이다.


나 오늘 리뷰 괜찮아?? 갑자기 내 리뷰가 이상하게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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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
홍익희 지음 / 책과삶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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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트코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자,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암호화폐 자체가 아니라 화폐라는 개념이 인간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자리를 옮겨 왔는지에 있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비트코인은 결론부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상당히 긴 화폐의 역사와 맥락이 차분하게 쌓여 있었다.

저자는 화폐를 단순한 교환 수단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무엇을 믿어왔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화폐의 형태가 바뀔 때마다 신뢰의 대상 역시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를 따라간다. 조개껍데기와 금속 화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금과 은, 그리고 종이화폐를 거쳐 신용화폐로 이어진다. 이 흐름을 읽다 보면 화폐의 변화가 사회가 커지고, 전쟁과 교역이 반복되고, 국가라는 체계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기존의 화폐는 늘 부족해졌고, 그때마다 새로운 형태가 필요해졌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특히 금본위제 이후의 이야기였다. 금이라는 실물에 묶여 있던 화폐가 국가의 신용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흔히 교과서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도덕적 타락이나 일탈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쟁을 치르고 복지를 유지해야 했던 국가에게 금본위제는 더 이상 현실적인 제도가 아니었고, 결국 화폐는 가치가 있는 물질이 아니라 국가가 보증하는 약속이 되었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과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달러는 단순히 강한 경제 덕분에 선택된 화폐가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 제도와 금융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 결과였다는 점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화폐가 얼마나 정치적인 산물인지, 그리고 중립적인 존재로 남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트코인은 이런 긴 역사적 흐름의 끝자락에서 등장한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구원처럼 묘사하지도, 위험한 투기 수단으로만 몰아가지도 않는다. 대신 국가와 중앙은행이라는 기존의 신뢰 구조에 균열이 생긴 지점에서, 사람들이 왜 알고리즘분산 네트워크라는 낯선 대상에 신뢰를 맡기려 했는지를 설명한다. 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비트코인은 기술 혁신이라기보다, 신뢰의 귀속처를 다시 이동시키려는 하나의 실험처럼 보이게 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남은 인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화폐는 언제나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돈 역시 역사 속 수많은 과도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화폐 체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과거의 사람들 역시 반복해 왔던 착각이었고, 그 믿음은 늘 새로운 형태의 화폐 앞에서 흔들려 왔다.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은 화폐가 사회를 어떻게 떠받치고 또 흔들어 왔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게 만드는 책에 가까웠다. 돈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 사람과 권력, 신뢰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그래서 이 책은 투자서라기보다는 화폐를 통해 사회를 읽어보려는 독자에게 더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살까??? 아 돈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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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그녕 marmmo fiction
류현재 지음 / 마름모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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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재 작가는 2015년 <야미>를 시작으로 이미 5권의 소설을 출간한 베테랑이다. 2022년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극지슥한 족속, 가족>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책이다.

「빼그녕」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었다. 삐삐는 오래전 장거리 운전을 하며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세부 장면을 정확히 복기할 수는 없지만, 빼그녕을 읽는 동안 느껴진 분위기의 결은 분명 그 기억과 닮아 있었다. 빼그녕은 일곱 살, 삐삐는 아홉 살이라는 연령대의 근접성, 그리고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공통점은 어른들의 언어와 행동을 낯설게 비틀며 ‘풋’ 하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의미와 맥락으로 굳어진 세계가 아이의 눈에는 어색하고 이상한 풍경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매력적인 출발을 한다.

초반부에서 제시되는 ‘기억력 과잉(과잉 기억력)’이라는 설정 역시 흥미롭다. 지나치게 정확한 기억은 어른들의 모순을 확대하고, 말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희극적으로 드러내며 서사의 리듬을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설정은 점차 설명을 요구하는 장치로 변하고, 감정과 사건을 밀어붙이기 위한 도구처럼 사용된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맡은 역할이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관찰자이자 연결자라면, 설정은 보통의 어린이 정도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과잉 기억력’이 아니어도 가능한 장면들 위에, 굳이 과도한 능력이 덧씌워진 인상이 남는다.

이 차이는 「유괴의 날」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유괴의 날에서 아이의 똑똑함은 상대가 극단적으로 우직하다는 설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이후 유괴가 셀프 유괴의 형식으로 전환되며 사건의 주도권이 아이에게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여러 상황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이 아이여야만 하는 이유”, 그리고 이 아이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아이의 비범함이 장면 장치가 아니라 사건 전체를 쥐고 흔드는 동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빼그녕에서 기억력 과잉은 사건의 구조를 지배하는 힘으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중심축으로 축적되기보다는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상을 남긴다. 후반으로 갈수록 굳이 이 아이가 과잉 기억력을 지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분명해진다.

특히 남녀 사이의 오묘한 감정을 포착하려는 대목에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말보다 공기로 전달되는 감정, 설명되지 않는 기류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설레지도, 쓰리지도, 먹먹하지도 않다. 기억력 과잉은 정보의 축적에 가깝고, 감정은 관계와 사회성의 문제이다. 이 둘을 하나의 축으로 묶으려는 순간, 소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억력을 감정 해석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끝내 해석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 빼그녕은 그 경계에서 끝내 한쪽을 선택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정리된다.

결국 이 소설은 초반의 재미를 위해 설정된 장치가 끝까지 설득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인상을 남긴다. 이는 설정이 과해서라기보다, 그 설정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 설정에 대한 충분한 자료 조사와 사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모든 이야기를 어린이라는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했을 서사에서, 과잉 기억력이라는 장치는 끝내 필연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흥미로운 장면 장치로 소비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완결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가 끝내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 채 남겨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

읽고나니 표지가 요약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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