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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딩 유어 도그 - 과학으로 반려견을 해석하다
미국수의행동학회 지음, 이우장 옮김 / 페티앙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우리는 종종 개의 눈을 보며 인간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아”, “자기가 잘못한 걸 아는 눈빛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Decoding Your Dog』은 그런 감상적 해석을 단호히 멈추게 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개의 행동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학습과 환경의 언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은 한 명의 훈련가의 경험담이 아니라, 미국수의행동학회(ACVB, 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Behaviorists) 소속의 행동의학 ‘전문’ 수의사들이 ‘집단’으로 집필한 연구서이자 안내서다. 각 장은 임상 현장에서 반려견을 진료해온 수의사들이 직접 쓴 것으로, 과학적 근거와 실제 사례가 정교하게 엮여 있다. ‘경험’보다 검증된 데이터가 먼저인 행동의학의 세계를 보여주는 점에서 이 책의 미덕이 분명하다.
책은 먼저 오래된 신화를 걷어낸다. ‘알파독’ 이론이나 “주인보다 위에 서려 한다”는 단순한 지배 구조의 해석은 이미 폐기되었다. 개의 공격성과 문제 행동은 대체로 불안, 공포, 통제 불가능한 자극에서 비롯된다. 즉, 개는 우리를 ‘이기려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세계의 균형을 잃은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훈육은 복종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책은 이러한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한다.
분리불안, 소음 공포, 배변 문제, 파괴적 행동 등 흔한 문제들을 “나쁜 습관”으로 단정하지 않고, 환경 조정과 보상 중심의 행동 수정으로 접근한다. 훈련의 핵심은 ‘벌’이 아니라 ‘이해’다. 주인은 개의 신호를 읽고, 그 신호가 일어난 맥락을 찾아야 한다.
책의 강점은 과학적 엄정함과 인간적 따뜻함의 균형에 있다. 수의사들은 신경학적 데이터와 임상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면서도, 개의 감정과 주인의 좌절을 간과하지 않는다.
“당신의 개는 당신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강점이 책이 말하는 ‘과학의 언어’의 한계인것도 분명하다.
책 전반에 걸쳐 “수의행동학자에게 의뢰하라”는 조언이 반복되며, 일반 반려인이 수행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는 좁다. 행동 해석의 권한이 전문가에게 집중되면서, 반려인의 일상적 관찰과 정서적 통찰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러나 실제 행동 문제는 진단보다 생활 맥락 속 미세한 변화에서 출발한다. 식습관, 산책 패턴, 주인의 감정 변화 같은 요소가 해석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언어는 과학의 언어이지만, 때로는 현장의 언어를 대체하려는 지식적, 정보적, 이론적 권력 압도한다. 이러한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질문이 생겨잔다.
“ 오직 전문가의 언어가 현장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가?”
또 책은 2010년대 초반의 ‘고전적 행동주의’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반려견 행동학은 이미 유전자–행동 상관관계, 마이크로바이옴–스트레스 반응, 품종별 행동유전학 등 다층적 생물학 모델로 발전했다.
보상과 처벌, 강화와 억제라는 단순한 이분법만으로는 개체별 행동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몹시도 어렵다.(심리학의 기본이쥐)
즉, 『Decoding Your Dog』이 제시한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언어는 낡았다.
과학이 멈추지 않듯, 과학을 근거로 한 텍스트 또한 끊임없는 갱신해야한다.
이 책은 2010년대의 과학에 정직하게 머무른 탓에(출간년도가 어쩔수 없지만), 오늘의 반려견 행동학이 가진 복합적 층위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미 있다.
반려견의 마음을 번역하는 일에서 시작해, 결국 인간의 ‘오만’을 번역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반려(伴侶)’라는 말의 근본 뜻이다.
결국 이 책은 ‘공감보다 과학’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다시 공감으로 귀결시킨다.
책은 반려견 행동학의 갱신이 필요한 교과서이며, 과학의 권위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게 하는 거울이다.
이제 우리에게 과제는,
과학이 가리키는 방향 너머에서 ‘함께 살아가는 언어’를 다시 배우는 일일 것이다.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P.S 두꺼운 책이 부담된다면, 각 장의 요점만 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