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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가끔은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내 분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내 이름을 도용해 나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도 내 얼굴, 말투, 철학까지 흉내 내며?
필립 로스의 Operation Shylock은 바로 그런 기묘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또 다른 ‘필립 로스’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디아스포라 반전’을 주장하며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정체성과 역사적 무게가 결합된 이 서사는 ‘진짜 나’라는 개념을 뒤흔든다.
소설 속 ‘진짜’ 필립 로스는 가짜를 찾아 나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애초에 ‘진짜 나’라는 게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로스는 현실과 허구, 자아와 타인의 경계를 교묘하게 비틀며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역사적 배경 위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그림자,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 20세기 후반의 이스라엘 사회 등이 서사의 한 축을 이룬다. 그러나 로스는 결코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냉소적 유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긴박한 스파이 소설 같은 전개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면서도, 끝내 작품은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사회가 원하는 ‘나’, 가족과 친구들이 기대하는 ‘나’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심리학자 칼 융의 ‘페르소나’ 개념처럼 우리는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현대사회에서는 SNS와 자기 브랜딩이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점점 내면보다 타인의 시선과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된 ‘나’를 소비하며, ‘팔리는 자아’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스릴러를 넘어, 현대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왜곡되며, 조작될 수 있는지를 짚는다.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은, 결국 내가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깨닫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필립 로스처럼 자신을 쫓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