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22.
한참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공대생도 울린’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면 그 책에 대한 신뢰를 곧잘 잃어버리는 편이라 읽지 않고 묻어두었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시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오히려 (저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이 그 시를 쓸 때의 정황이나 그가 쓴 다른 시가 일종의 단서가 되어 시를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걸 보면서 코난이 단서를 찾아 수사하는 과정에 견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잘 읽는 편은 아니었다. 언젠가 나에 대한 마음을 장편의 시로 고백한 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때 그 문장들에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숨어있던지, 얼핏 맞을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은 그 느낌의 묘미가 얼마나 컸던지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떤 구절들은 지금까지 명확히 기억에 남기도 한다. 그 시를 써준 사람은 나에게만큼은 꽤 오래 기억에 남는 시를 써 준 시인이었던 셈이다.
역시나 시를 읽게되는 건 아끼는 누군가가 생겼을 때 또는 잃었을 때인 것 같은데 내게 그 시작은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었고 그 끝은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었다. 시에 대한 기억을 총집합 시켜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장 열심히 시를 암기했던 것은 학창시절이건만 그때 배운 시 중에서는 좋아하는 시가 하나도 없으니(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예외) 이 책의 저자의 말대로 학교의 문학 수업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학창 시절 시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누구나 그랬듯이, 나 또한 ‘아니, 저걸 저런 의도로 썼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가 있나.’라고 의심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시를 쓴 시인이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을 경우엔 더더욱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인 듯 하여 그때부터 시에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시에 흥미를 다시 붙인 건 앞에서 말했듯 내게 고백한 한 선배의 시 때문에, 그리고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시 때문에, 그리고 과장이 조금 담겨있다면 담겨있겠지만 마지막은 이 책 때문이라고 해둬야겠다.
언젠가 내가 좋은 국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분께서 말하기를, 문학 수업은 시 하나를 읽으려 해도 시인의 삶을 알아야 하니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하셨는데 그 말을 이 책을 읽고나니 조금은 이해할 성도 싶다.
지난번 알라딘에 갔을 때 이훤 시인의 시집을 사려다가 사지 않고 그 돈으로 아메리카노를 사 마신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때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시집을 샀어야 했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오버스러운 일이다. 이제와서 시를 산다고 말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요즘 시집을 선물하는 재미가 들렸는데, 앞으론 시집보다 이 책을 먼저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