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 p.17

밀란 쿤데라는 어떤 사람?🤔


1929년 4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생
1950년, 당에 반하는 활동을 했단 이유로 당에서 추방
1968년,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단 이유로 저서가 압수되고 집필과 강연 활동에 고초를 겪음
1975년, 프랑스 망명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국적 박탈
1981년, 프랑스 시민권 취득
1984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집필
1989년, 체코에서 쿤데라의 일부 저서 및 영화에 대한 판금조치 해제
2019년, 체코 국적을 회복 : 현재 체코 국적이며, 프랑스와 체코 두 개의 시민권을 보유중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땐, 프라하의 역사를 제외하고 사랑 이야기로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을 땐, 완벽하게 소설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읽었는데 그렇게 읽으니 그가 쓴 모든 구절들이 좀 더 섬세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좀 더 책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아래의 유튜브를 추천!


https://youtu.be/WgdyMPBsn_o



작가는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인생이란 가벼운 것인지 무거운 것인지를, 둘 중 어떤 것이 좋은지 우리에게 묻는다. 책을 읽을수록 삶이 이렇게 덧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그러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생각할 거리 1 : 사랑의 경중은 어디에 있을까?🤔

책에서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움'의 대표로,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움'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1) 토마시


토마시는 사랑과 성행위는 서로 다른 두 세계라는 생각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p.231




토마시는 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는 바람둥이다. 책 속에서는 두 종류의 바람둥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토마시는 다양한 여자들의 잠자리를 수집하는 부류로 나뉜다. 그는 테레자가 자기의 바람기로 고통받는다는 점에 괴로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는 단순히 우표를 수집하듯 여자들을 만날 뿐이며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은 테레자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는 테레자가 괴로워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 공감하여 괴로울뿐인 것이다. 그에게 잠자리는 가벼운 수집이다.

외적인 이야기로만 보면 토마시는 사랑에 있어서 가벼움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토마시야말로 사랑에 헌신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래야만 할까?' 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면서 결국엔 안정을 버리고 테레자가 있는 체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체코로 돌아와 정말 그래야만 했는가에 대해, 그건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는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도 드러난다.



테레자의 호흡이 한두 번인가 가벼운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토마시는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p.65




그럼에도 그가 테레자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여자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태도처럼 보인다. 테레자는 그가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과연 토마시의 사랑은 가벼운 것일까?




2) 사비나

사비나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문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은 저물기 마련이고 저문 사랑은 끝을 맺어야한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 이치를 실현할 때 다시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가는 '그 헤어짐의 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아닌가'에 있다. 이별을 결정한 것은 사비나지만, '헤어지자'는 말에 '그러자'는 동의가 뒤따라온다면 그들의 만남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녀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그 남자가 그녀를 뒤따라왔다면, 그녀는 좀 더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



"당신 힘을 가끔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야?"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프란츠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비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이 말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둘째, 이 말 때문에 프란츠는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 p.186




토마시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 '호기심'이라면, 사비나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은 '견디지 못함'이다. 그녀는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남자, 지배하려 드는 남자를 견딜 수 없다고 적혀있다. 즉, 힘으로 그녀를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포기하는 허약한 사람도 견딜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녀는 프란츠에게 에로틱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그를 견딜 수 없다.

더군다나 153쪽에서 시작되는 '이해받지 못한 말들의 조그만 어휘집' 챕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비나와 프란츠 간에는 너무나 많은 이해의 거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에서 배우듯이,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삶의 악보를 이해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비나는 그가 떠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 p.205




그녀가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실 그녀 자신에게서 기인했다고 본다. 존재가 무거워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는 프란츠가 그녀의 삶의 사전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고, '힘을 포기하는' 그의 헌신적 사랑을 알아볼 능력이 없었다. 20대에 이 책을 읽었을 땐, 토마시의 바람기와 테레자의 괴로움에 특히 몰입했던 것 같은데, 30대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사비나의 마음에 좀 더 몰입하며 읽었던 듯 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주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사비나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토마시는 '호기심'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고 사비나는 '견디지 못함' 때문에 실패한다. 우리가 사랑에 실패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 깨달음이 우리를 좀 더 온전한 사랑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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