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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 ㅣ 묻고 답하다 6
고관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4년 9월
평점 :
미생물의 영향력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질병과 재앙을 넘어, 우리의 사회와 문명, 심지어 사고방식까지도 변화시켜왔습니다. 고관수 교수의"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역사 속 미생물의 강력한 역할을 중심으로, 그들이 인류와 어떻게 상호작용해 왔는지를 다루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책은 과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미생물이 인간의 진화와 문명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점은 마땅히 주목할 점이었습니다. 효모를 이용한 술과 빵, 결핵균과 산업혁명, 살모넬라와 고대 그리스의 몰락 등 다양한 사례는 미생물이 단순히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문명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효모의 변이를 보면 인류의 맛 계통도가 보인다"는 책의 설명처럼, 효모가 만든 술과 음식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전쟁 속에서 미생물이 어떻게 인간을 괴롭혀 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주목할 점이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발생한 한타바이러스의 유행을 예로 들며, 미생물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작가는 "한타바이러스는 어느 것 하나 바꾸지 못한 존재 같지만, 실은 모든 것을 바꾼 미생물일 수도 있다"는 들어가는 말을 통해, 미생물이 어떤 상황에서 인간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미생물이 주로 질병을 일으키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에게 이로운 역할을 한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도 다룹니다. 항생제의 발견,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등 미생물이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한 사례들은 독자들에게 미생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줍니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질병 치료와 인간의 건강, 심지어 성격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은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미생물이 역사적 사건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역병이 살모넬라균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시야를 넓혀줍니다. 살모넬라 엔테리카라는 세균이 단순한 전염병으로 그치지 않고, 아테네의 민주주의 몰락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미생물이 단순한 병원체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미생물은 그저 질병을 일으키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적 변화를 초래하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페스트와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들이 유럽과 아메리카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식시켜줍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천연두 창궐은 원주민들을 무력화시켜, 유럽 식민지 세력이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에서 미생물은 단순한 교역의 일부가 아니라, 신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은 핵심적인 요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저자는 미생물이 역사를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변수가 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가장 큰 매력은 미생물과 인간이 얽힌 공진화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효모와 술의 관계를 설명하며 인류가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문명을 일구어냈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특히,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은 인류가 술과 발효 음식을 통해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흥미로운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가설은 단순히 미생물의 발효작용이 인간의 음주 문화를 낳았다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진화와 미생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미생물이 인간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 깊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생물의 유전체 연구가 인류 진화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미생물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 행동 사이의 연결성을 소개합니다. 특히,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최신 과학이 인간의 성격, 행동, 심리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미생물의 역할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또 다른 매력은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사례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 방식입니다. 효모를 통해 술과 빵이 만들어지며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 점을 다루거나, 결핵균이 산업혁명 시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흥미로운 관점이 빛을 발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잊혀졌거나 사소하게 여겨졌던 미생물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며, 독자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미생물이 미래에 어떻게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포스트 항생제 시대'의 도래, 분변 미생물 이식술과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하는 가능성 등을 다루며, 인류는 미생물과 공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임을 경고합니다. 특히, "미생물은 단순히 함께해온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은 물론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서는 인류의 미래와 미생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깊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관수 교수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어떻게 미생물과 공존해야 할지에 대해 모색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인류는 이제 다시금 미생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주며 저자는 미생물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 내성 문제는 현대 의학의 한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항생제를 남용하면서 미생물의 진화를 가속화시킨 결과, 이제는 기존의 항생제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질병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치료나 세균을 이용한 면역항암요법 등을 제안하며, 과학이 미생물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또한, 볼바키아라는 세균이 모기와 같은 해충을 퇴치하는 데 사용된다는 사례는, 미생물이 단순한 적이 아니라 환경을 개선하는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미생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책은 단순히 미생물의 과거와 현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어쩌면 인간은 미생물에 종속된 존재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를 통해 미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미생물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은 우리의 생존, 질병,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미생물이라는 작은 존재가 어떻게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생물에 대한 경외와 함께,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메시지는 지금의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미생물은 단순히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인간의 생존과 미래에 직결된 중요한 문제임을 이 책은 여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