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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웃더라 나를 보고 - 달마 시그림집
황청원.김양수 지음 / 책만드는집 / 2025년 3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달마가 웃더라 나를 보고》는
소리 없이 읽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울리는 시집입니다.
📚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소 안에, ‘자기 자신’이 함께할 것입니다.
결국 달마는 우리 모두입니다.
외로워서 웃고, 무거워서 노래하고, 아파서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한한 존재가 되는 그런 존재.
황청원 시인이 오래도록 불교와 인생을 관조하며 쌓아온 깊은 자각이,
시를 통해 다정하게 말을 걸어 옵니다.
그리고 김양수 화가는 그 언어를 색과 선으로 살며시 붙들어주고 있습니다.
▪️황청원 시인은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7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시와 방송을 오가며 대중과 호흡해 왔습니다. ‘무무산방’이라는 자신의 공간에서 귀범전가(歸凡傳家)의 삶을 살아오며, 삶과 시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수행으로 삼아 살아온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마음의 고요와 실천적 삶에 바탕을 둔 시적 성찰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새벽안개" 등 여러 권의 시집이 있으며, 그의 시는 짧지만 진한 울림을 주는 ‘선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양수 화가는 동국대와 중국 중앙미술대를 졸업하고 후학을 길러온 화가로, 선화(禪畵)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는 한 줄의 시를 읽고, 그것에 사유를 담아 붓을 듭니다.
이번 책에서는 ‘달마’라는 아이콘을 통해 세속과 구도, 슬픔과 환희,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비언어적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선시화집 "산 아래 집을 짓고 새벽별을 기다린다"를 통해 작가로서의 독자적 색깔을 보여주었습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는 선종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로, 중국 소림사에서 면벽 9년 수행한 인물로 전해집니다. 달마는 모든 개념과 언어를 넘어 ‘마음을 보는 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에서 달마는 더 이상 성인의 모습이 아닌, 삶과 동행하는 ‘벗’이자 우리 내면의 분신으로 재탄생합니다.
▪️선시(禪詩)는 깨달음, 무념무상,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사유를 간결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복잡한 수사를 지양하고, 짧은 언어 속 깊은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선시의 미학입니다. 황청원 시인의 시는 이 선시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맞춘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의 시는 짧고 깊으며, 그림은 그 시의 숨결을 따라 자유롭게 흐릅니다. 두 예술가가 2천 년 전의 수행자 ‘달마’를 오늘로 불러내 일상의 고요 속에서 말을 건넵니다. “수행자 달마가 무무산방 시인을 방문하고, 그의 일상을 함께 걷는다면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시적 명상입니다.
총 73편의 시와 그에 대응하는 달마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시는 명상적이되 일상적이며, 깊은 사유와 다정함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에 젖는다는 것"에서는 누군가가 비를 맞고 찾아온 모습을 통해 따뜻한 연민과 포용을 노래합니다.
📚 책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잔잔한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전하는 감성적인 예술 작품이자,
삶의 지혜를 건네는 인문학적 텍스트입니다.
⁉️시인은 물음표를 던지지 않지만, 한 줄 한 줄마다 질문이 생깁니다.
“왜 아플까?”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사는 게 꼭 이렇게 아파야만 할까?”
➡️ 그 답은 시와 그림 사이의 여백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시 '오도송'에서는 부처의 위치조차 변화무쌍하다는 진리를 전하며, 깨달음이란 고정되지 않은 것임을 말합니다.
📌“어느 땐 부처를 머리에 이고 / 어느 땐 부처를 발아래 밟고 / 어느 땐 부처를 마음에 품고”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유연함은, 삶의 수많은 관계와 의미를 재해석할 여지를 줍니다.
김양수 화가의 달마는 시의 울림을 이미지로 ‘묵언’합니다
세탁하고, 휘파람을 불고, 동백꽃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멍하니 바라봅니다.
이러한 일상적 행위를 하는 달마는, 시인의 언어와 만났을 때 진정한 인간,
또는 우리 자신이 됩니다.
📌"오늘은 새가 물기 서린 깃털 말리듯 나를 말린다”
예컨대 '빨래 끝'이라는 시와 함께한 그림은, 일상의 빨래가 삶의 기억이고 수행이며 고요한 관조의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빨래를 널거나, 꽃을 건네고, 시를 읽는 모습은 철학자보다 평범한 이웃의 풍경처럼 다가옵니다. 이 속에서 달마는 더 이상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친구로 변화합니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로 피고 진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지는 꽃이 나를 보고"에서는 모든 존재의 일시성과 공감을 이렇게 담담히 전합니다.
📌“나는 피었다 진다/ 너도 피었다 진다/ 가끔 꽃 피던 시간 그리울 때 있겠지.”
이 문장은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읽힙니다. 시인은 슬픔을 지우지 않되, 눈물로 마무리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시 끝에도 꽃 핀다'라는 시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피어나는 생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피 흘리고 아파도 꾸욱 참고 기다리지/ 언젠가 그 가시 끝 꽃 필 날도 있을 테니.”
누군가의 날선 말이나 상처에도 침묵하며, 언젠가 그 고통조차도 꽃 피울 수 있음을 말합니다. 고요히 참는 것이 결코 약함이 아님을 보여주는 시이며, 상처를 품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이 시집은 그렇게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맞는 비처럼 그 곁에 머무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화두를 들다’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드디어 마음 깊은 곳 한없이 꽃비 내리는 일.”
깨달음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하루의 한 장면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달마가 등을 돌리고 꽃을 숨긴 장면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시인은 그 꽃을 “스스로 깨달아야 볼 수 있는 꽃”이라 표현하며, 삶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면의 여정을 조용히 독려합니다.
이 시집은 시인이 그린 마음의 풍경과 화가가 빚어낸 달마의 모습이 만나는 예술적 접점이자, 삶의 고요를 찾는 수행의 공간입니다. 그 속에는 상처를 보듬고, 무상함을 받아들이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삶의 공부’가 녹아 있었습니다.
마음을 가만히 비추어보고 싶을 때, 무심한 듯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이 책은 조용히 곁에 머물러줄 것입니다.
✨️[달마가 웃더라, 나를 보고.]
그 웃음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나를 다시 들여다본 자의 미소일지도 모릅니다.
💐《달마가 웃더라 나를 보고》 는 3월 어느 봄날,
소리 없이 다가와 마음 한복판에 꽃을 피워 주었습니다.
시는 묵언처럼 조용히 스며들고, 그림은 웃음처럼 따뜻하게 번져갑니다. 살아가며 묶인 마음, 피 흘리는 상처, 지치고 꺾인 하루들 속에서
누군가 “괜찮아, 그냥 웃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듯한 책이었습니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고요한 것을 깊게 전할 줄 아는 시인의 말과,
그것을 너그러이 품는 화가의 그림은 이 책을 ‘기도하는 책’으로 만들어줍니다.
🧐 한 편씩, 한 장씩, 천천히 마주한다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달마가 웃던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 웃음은 나를 보고 웃는 것이리라.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