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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한국사 - 경계를 넘나들며 만들어낸 한국사의 단단한 궤적
박광일 지음 / 생각정원 / 2024년 10월
평점 :
박광일 작가는 역사 스토리텔러이자 유튜브 채널 ‘이강민의 잡지사’에서 활동하며 한국사의 큰 흐름을 폭넓게 해석하는 역사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동아시아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한국사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며, 한국사의 지형을 넓히고 국제적인 맥락에서 사건을 해석하고자 합니다.
한국사는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의 중국, 일본과 지정학적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근대 이전부터 유목 민족의 영향,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들의 침탈, 그리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는 수많은 외교적·군사적 사건들을 거치며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복잡한 역사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국제적 상황을 다각도로 살피고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한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박광일 작가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닌 넓은 관점에서 사건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긴 호흡의 한국사’ 읽기를 권장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사의 사건들이 단일 민족국가의 범주를 넘어서, 세계와의 교류와 갈등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한국사에 영향을 준 경계인들, 즉 한반도 안팎에서 한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외국인과 해외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한국인들을 조명하며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책은 한국사를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닌, 넓은 시각으로 이해할 것을 권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가 중국 역사에 포함될 위기에 직면했던 역사적 갈등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나아가 신라와 페르시아 왕자의 교류까지 다루며 동아시아 및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한국사의 필수 요소로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한반도가 자주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 강력한 외교와 군사적 선택지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고려의 외교 사례는 특히 인상 깊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몽골에 굴복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고려가 몽골 제국이라는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택한 생존 전략을 이야기하며, 생존과 번영을 위해 외교가 중요했음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군사력 이외의 수단으로 국가의 존립을 보장했던 한국사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경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민족의 경계를 넘어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외국인들과, 세계 각지에서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사가 단일 민족만의 독립적 이야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스코필드 박사, 황기환 선생과 같은 인물들은 한국 독립운동에 큰 기여를 했고, 그들의 노력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자부심에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가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던 사건을 다루며, 한국사에 이들이 남긴 희생과 헌신을 조명하는 작가의 시선은 뭉클한 감동을 전해줍니다와 쿠바에서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한인들의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감동적입니다. 파리에서 정착한 황기환 선생은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외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무덤에는 “대한인 황기환지묘”라는 묘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잊혀졌지만, 끝까지 대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던 것입니다.
“후세(일본인)는 1926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관동 대학살에 대한 사죄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후세는 일본 내 한국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역사를 지켜주는 것은 꼭 조국을 넘어선 다양한 인물들에 의한 노력임을 상기하게 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 보물입니다.”
6.25 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 명령에 맞선 김영환 대령의 일화로, 역사의 문화적 가치와 소중함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는 여러 문화 교류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조선이 발전시킨 한글, 동아시아 불교 네트워크 속에서 조성된 팔만대장경, 고려시대 불교 및 상업 문화는 한국적 유산이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발전된 것입니다.
저자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다만 “실현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것들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여 탄생한 것이 한국의 문화유산”임을 설명합니다. 한글 창제 과정 역시 한국어의 음운체계와 다른 언어들과의 차이를 고려해 새로운 문자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한글은 가장 한국적인 문물이면서도 인류 공영을 위한 보편적 유산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책의 이러한 서술은 단순히 한국적이라고 치부했던 문화들이 사실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탄생했음을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특히 한국사가 한반도 내부의 역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국제적인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구려의 대중국 외교, 삼국시대의 외국 귀화정책, 고려와 조선의 다양한 외교적 선택들은 모두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 것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생존의 힘은 강한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에서 나온다’고 표현하며, 한반도의 국가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해 외교와 군사력, 경제적 교류를 유연하게 조율해 왔는지 설명합니다 .
이러한 다양한 관점은 삼국 시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삼국의 귀화정책이나 고려의 외교적 균형 전략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방편을 넘어,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한반도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갔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역사의 강자가 되는 것은 단지 강력한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며, 유연한 사고와 선택이 오히려 장기적 생존을 담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반도가 단일 민족국가로만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역사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자부심을 가지되 우월의식을 경계하며 세계사 속 한국사를 이해하는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강렬히 와닿았습니다. 또한 책을 통해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던 한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졌습니다.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노력한 외국인과 해외의 한인들이 없다면 오늘날 한국이 존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특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작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유연하게 생존을 모색해 온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책 속에서 삼국시대의 치열한 외교와 연합,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고유한 문화와 제도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군사력 외에도 외교적 협력, 유연한 문화 수용 능력이 필수적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한국사 교육이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해와 개방성을 키워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책은 민족적 우월감에 빠져있기보다 다양한 문화와 교류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을 이해할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타자를 통해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읽고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와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유익한 역사서로,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