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에 걸쳐 집을 청소했다. 서재 겸 침실, 부엌 겸 거실, 내가 영국식물원-지금은 말라비틀어진 바질 화분 세 개가 있을 뿐이지만-이라 이름 붙인 발코니. 저녁에 측근이 오기 때문이다. 함께 장을 보아서 밥을 지어 먹든지, 또는 측근의 기분에 따라 간편하게 뭔가를 주문해 먹을지도 모르겠다. 측근이 와 줘야 한다, 그녀의 맑은 영혼과 육체를 받아들일 집구석 먼지를 떨어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고르던 중 <책의 정신>이 손에 잡혔다. 들어가는 말에 저자 본인 인용의 이런 문장이 있다.
김훈이 쓴 책 <자전거 여행> 서문을 보면 ‘사람들이 새 자전거 사게 책 좀 사봐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저도 책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저렸거든요. 그 말을 제 상황에 맞추면 ‘사람들아 새 컴퓨터 하나 사게 책 좀 사봐라’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책을 안 사나? 여기(알라딘)서 지내다보니 정말 모를 일이다. 벌써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아 꽃을 사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커피 마셔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영화 봐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불어 배워라 책 좀 사보게... 마지막 사항은 물론 내 것이다. 우리가 점점이 외따로 콕 처박혀 사는 것 같아도 그 삶들이 다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남은 남이건만 남이 있어야 나도 있으며, 과연 꽃잎 하나가 지는 데도 전우주가 동원되는* 세상임을, 말끔한 집구석에 앉아 <책의 정신>을 손에 들고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본주의, 사고파는 상품이라는 자격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책의 정신.’
아 시간이 다가온다. 측근, 측근. 구차달 님으로부터 당당히 넘겨받은 ‘측근.’ 이 네모지고 무성(無性)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닮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의 경지는 아니라 해도, 단 한 번 츠, 혀를 차고 아래로 툭 떨어지는 단호하고 독립적이고 단단한 측근. 사랑하느냐고? 물론! 날씬하고 예쁘고 당찬 아가씨, 가출!한 조카인걸. 나비 같은 네 캔버스 운동화 발걸음으로 살살살 사뿐히 오너라. 눈길 조심, 길 건널 때는 차 조심하고.
*누군가의 표현인데, 그 누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롤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