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찮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문을 닫아버린 세계이며 두 번 다시 그 문을 열지는 않겠지만, 내가 남겨두고 온 것이 가장 소중한 선물임을 알기에 때로 밤이 되면 아쉬운 듯 그 문 앞을 서성인다”(『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책읽는수요일)는 헨리 밀러의 말에 가장 진한 밑줄을 그은 이후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단지 어제 읽은 루이자 메이 올콧(올컷)이 저 닫힌 문 앞으로 나를 확 데리고 와버렸기에 복도에서 조금 배회하는 주말이 된 셈이다. ◇◆◇◆가(家)에 더 이상 가정교사로 머물 수 없는 ○○을 위해 다른 집에 자리를 봐주기 위한 추천서를 쓰다 말고 ◇◇이 하는 말.
“○○, 돌아가서 편지를 마저 써야 할까요, 아니면 여기 남아 당신에게 이 노인이 당신을 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작은 아씨들』을 내가 읽었던가? 알 수 없다. 본가 책꽂이보다 더 가까운 알라딘 보관함에 펭클본으로 담을 수밖에 없게 하는 올콧. 이런 문력이라면 아동용 축약본으로 영접해서는 안 된다. 아무렴. ‘왕처럼 관대하고, 대낮처럼 정직하며, 아이처럼 단순한, 존경받는 노신사’ ◇◇의 저런 우아한 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 저런 말을 해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러고 보니 조금 더 늙어서 저놈의 문을 열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 내가 지금.
올콧에서 시작되어 살랑거리는 마음이 ‘아쉬운 듯 문 앞을 서성’이기에 책만 한 것이 없을진대, ‘내가 남겨두고 온’ 반짝이고 설레는 순간들을 재회하게 했던 대화(혹은 독백)문들을 대충 찾아보았다.
“무엇 때문이지요? (…) 부인은 그래서는 안 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무엇 때문이라니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이 갈색이고 관자놀이까지만 자라니까 그렇고, 그 사람이 두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그 사람 코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아서 그렇고, 또 그 사람은 입술이 둘이고 턱이 네모이며, 어렸을 때 야구를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가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져서 손가락을 똑바로 펼 수가 없어서 그렇지요. 또…….” (『이브가 깨어날 때』)
“분명히 벨이 울리고 있어. 이런 밤에 누가 왔을까? 자네 친구?”
“내 친구는 자네 한 명뿐이야.” (『셜록 홈즈의 모험』)
“왜 안 돌아가는 겁니까?”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순수의 시대』)
“선생님은 뭘 사러 오셨어요?”
“글쎄, 사실은 살 게 없어.”
“아니, 제 길동무가 되려고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응. 그러면 안 되나?”
“이 동네에서 자네를 보게 될 줄 몰랐어. 자네 사는 곳은 여기서 정반대가 아닌가? 캠퍼스 근처?”
“맞습니다. 그래도 가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래도 바로 이 술집을 고르다니!”
“아, 선생님께서 여기 자주 오신다는 말을 어느 학생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싱글맨』)
크레오소트환(丸) 하고, 그러한 약 이름이 적혀 있어, 그러면 여자는 폐를 앓고 있는 것인가고,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자기를 방 안으로 인도해주지는 않았던 것일까고, 갑자기 그의 가슴은 애달픔으로 가득 차서, 나는 상관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안말로 그러한 것을 중얼거리기조차 하며, 그러는 한편으로는 또 여자가 그 약 이름을 자기에게 일러주었을 그뿐으로, 이미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한끝을 보여준 듯이나 싶어, 그는 이제 새삼스러이 여자의 입으로 들어보지 않는다더라도, 분명히 여자는 자기를 그만치나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라고, 제 마음대로 그렇게 혼자 작정해버렸던 것이나,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나는 제의할 것이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있어요.” (『소유』)
“내일, 헤어진 다음에 밀려들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황인수기』)
“오, 겨울이다.”
“겨울이면 뭐해, 오줌만 마렵지.”
(사랑의 대화 맞음.)
다시 읽어도 하- 애틋하다. 문 너머 방안보다 복도가 더 화려하고 다채롭고 깔끔하고 쿨하고 멋지고 내가더잘생겨지고배도날씬해지고말도더잘하고더웃기고땀냄새도안나고더섬세하고뽀뽀도더잘하고이런원더랜드... 그만하자. 닫힌 문을 뒤로 하고 다시 서재로, 지금-여기로 안착시킬 든든하고 단단한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김재규 평전> 헛, 독서와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소중한 선물’이지만 다는 아니다. 문 여전히 잘 닫혀있음을 확인하고 이만 돌아선다, 실내화를 살살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