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모닝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잠깐 냉장고를 열었는데 맥주병들이 나란히 맞아주었다. 맞아, 어제 마트 다녀왔지. 커피메이커가 꾸륵꾸륵 소리를 내려면 아직 기다려야 하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시는데, 와-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500cc 모닝맥주 후에 마시는 따끈한 커피. 아- 행복해.


어제 과외에서 <이방인>의 이런 문장을 만났다.


A Paris, on reste avec le mort trois, quatre jours quelquefois. Ici on n'a pas le temps, on ne s'est pas fait à l'idée que déjà il faut courir derrière le corbillard.


그렇게 복잡한 문장도 아닌데, 수업 끝에 방전이 되는 바람에 선생(즉, 나)의 살짝 당황한 기색을 알아챘는지, 학생님이 그럼 김화영 선생님은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한번 볼까요?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뭐, 괜찮았다. 선생도 선생이 필요한 법.


1. 파리에서는 시체를 사흘씩이나 묻지 않고 두는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럴 시간이 없다. 실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벌써 영구차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화영, 민음사, 책세상)


2. 파리에서는 고인과 사흘, 때로는 나흘 동안 같이하곤 하는데, 여기에선 시간이 없어서, 벌써부터 영구차를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지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기언, 문학동네 <이인>)


3. 파리에선 때로 망인을 사나흘씩 곁에 둬도 괜찮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선 그럴 시간이 없지. 미처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장의차 뒤를 쫓아 뛰어가고 있어야 하는 판국이니……. (김예령, 열린책들)


4. 파리에서는 시신과 사흘, 때로는 나흘 동안 함께 지내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럴 시간이 없어서, 실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벌써 영구차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수철, 시공사)


저 문장은 양로원의 수위가 파리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여기(알제리)의 장례 풍습이 파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얘기한 내용을 화자가 자기 말로 옮겨놓은 부분이다. que절이 l'idée의 내용이라고 본다면 아주 단순한 문장이다. ‘~한 생각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라는 점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다.’ 수위의 입장에서 말한 내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거기에다 ‘~하다는 것이다.’를 붙여 전하는 게 더 명확할 터인데, 그놈의 반복되는 ‘것’이 정말 문제로구나.


1. ‘때로는 나흘’이 빠졌고 구두점을 무시, 임의로 문장을 잘라 옮겼다. 엄밀히 말하면, 내용이 통하는 굉장한 의역이다. 수위를 포함한 ‘우리 파리지앵들’은 곧장 영구차를 쫓아가는 생각을 품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좀 적다.


2. 두 문장을 쉼표로 이어 한 문장으로 옮겼는데, 책의 제목까지 과감히 바꿔가며 야심차게 내놓은 번역본인 만큼 (적어도 이 두 문장에 있어서는) 원문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 영구차를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지가 못하다.’는 인과관계가 들어서버려서 문장이 이상해졌다.


3. ‘괜찮잖아요’, ‘판국이니…….’ 카뮈의 문장은 ‘섬’이라 했다. 원문에 있지도 않은 말줄임표까지 넣어 질질 끌어가며 옮긴 이유 알 수 없고, 문제의 두 문장을 포함한 문단만 읽어보아도 직접화법, 간접화법, 화자의 독백을 아주 ‘자유롭게’ 옮겨놓으신 게 보인다. 할 말을 잃게 하는 놀라운 번역이다.


4. 원문의 구두점과 ‘때로는 나흘’을 그대로 살렸고 1번의 번역을 유지했다.


‘파리에서는 고인과 사흘, 때로는 나흘까지도 함께 머문다. 여기서는 미적거리지 않는데, 영구차를 벌써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도가 어떨까 생각해본다. 꽤 많은 번역본들이 나와 있는데, 그 모두가 ‘가까이, 더 가까이’의 마음으로 나온 거 아니겠나. 미묘한 뉘앙스, 문체, 의도, 매끄러움 등등에 더해 취향까지 따지자면 앞으로도 몇 배의 번역본이 더 나온 뒤에도 이 책은 여전히 ‘이방인’일 거라는 사실. 좀 슬픈가? 아니오. 읽히고 또 읽히고 쓰이고 다시 쓰이는 게 고전이며 그것이 위대한 작가를 영원히 살게 하는 우리 독자의 몫 아니겠습니까.


취기와 각성이 번갈아 오고 간 오후, 다음 수업부터는 예습을 좀 하고 학생님과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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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0-0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닝맥주와 이방인 원문의 조합은 최상이네요. ㅋㅋ

에르고숨 2013-10-03 00:23   좋아요 0 | URL
뽀 님은 맥주에 유난히 민감하신 걸로 밝혀져ㅎㅎ. 근데 정말 빈속에 맥주의 청량감이 끝내줬어요, 주말 아침 커피 마시기 전에 꼭 한번 해보시라고 권합니다. (물론 술병 난 아침에는 어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