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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ㅣ 일공일삼 7
랑힐 닐스툰 글, 하타 고시로 그림, 김상호 옮김 / 비룡소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이사 후 집 주소를 몰라서 잠시 방황했다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가끔 우스개 소리로 듣는다. 이 작품 속의 아빠도 그런 경험을 한다. 끝까지 읽다보면 단지 주소를 몰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발적 방황일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이사하는 날 버스 속 퇴근길. 아빠는 옆자리에 앉는 낯선 꼬마한테서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는다. 제 엄마에게 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아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느라 내릴 곳을 놓치고 버스 종점까지 가고 만다.
"아빠가 왜 필요해요?"
아빠가 왜 필요할까? 돈을 번다. 그건 엄마도 할 수 있다. 운전을 한다. 그것도 엄마가 할 수 있다. 부서진 곳도 고치고 못도 박는다. 그것도 엄마가 할 수 있다.
월요일 밤,종점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탄 아빠는 몇 번을 왔다갔다 하지만 내릴 곳을 알지 못한다. 결국 종점에 남게 된 아빠는 개썰매를 끌고 있는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북극(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작가 답다)을 탐험하러 가는 중이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바로 이 작품의 묘미다. 아빠는 남자의 북극 탐험에 동행하고 하룻밤을 돌아 다시 그 버스 종점으로 되돌아온다. 남자는 이미 북극점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실망하며 탐험을 포기하고 어딘가로 가버린다.
화요일 밤, 낮에 회사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남편에게 화를 내며 아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번에도 버스 안에서 왔다갔다 하다 종점에 내린다. 아빠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검은 하늘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땅으로 내려온다. 땅에 내린 것은 새가 아니라 행글라이더다. 아빠는 행글라이더를 타고 있는 남자에게 집을 못 찾겠다고 한다. 남자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아빠는 행글라이더를 타기로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도 집은 찾을 수가 없다.
수요일 밤, 이번에 나타난 남자는 카레이서다. 카레이서는 도시를 질주하고 싶지만 도로 여기저기에 있는 신호등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다며 불평한다. 아빠는 카레이서의 차에 올라타 밤새 도로를 달려보지만 집을 찾지 못하고 다시 버스 종점에서 내린다.
목요일 밤, 말을 탄 카우보이를 만난다. 밤을 따라 걷던 말은 어느새 사막에 도착한다. 사막에서 카우보이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카우보이식 식사도 배우고 홀로 탐험을 하는 카우보이게서 쓸쓸함을 느낀다.
금요일 밤, 아빠는 지칠대로 지쳐서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아간다. 그 곳밖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준비한 따뜻한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아빠는 그곳에서 자신 또한 어렸을 때 아버지와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는다. 아빠의 아버지도 언제나 바빠서 자신과 놀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아빠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줄 아빠. 아빠는 어머니의 집을 나선다.
토요일 어딘지 모를 집으로 길, 눈길을 걷다 넘어져 눈속에 파묻힌다. 눈썰매타고 있던 아이들이 와서 아빠의 손을 잡아주고 옷에 묻은 눈을 털어준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들과 딸 이름을 대며 그 아이들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때 한 아이가 말한다. 알아요. 며칠 전에 우리 옆집으로 이사온 아이들이에요. 아이가 가르쳐준 집의 현관문을 열자 아이들이 반갑게 아빠를 맞아준다. 아빠는 지금 당장 눈썰매를 타러 가자고 말한다. 아내는 말한다. 당신 시간 없잖아요. 그리고 집안일도 해야한다고요. 아빠는 집안일은 나중에 하면 된다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내는 갑자기 달라진 아빠의 태도에 의아해하다가 결국 눈썰매장으로 향한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은 밤새 눈썰매를 탄다.
질문을 거꾸로 해야할 것 같다. 아빠에게 가족은 왜 필요하냐고. 때로는 북극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 지상을 떠나 하늘을 날고 싶기도 하고, 카레이서처럼 도로 위를 질주하고 싶기도 하고, 카우보이처럼 황량한 사막에서 외롭지만 방랑자처럼 살고 싶기도 한데 왜 가족을 벗어날 수 없느냐고. 이렇게 답하면 어떨까? 평생 모험 속에서 살 순 없지만 가족과는 평생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