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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ㅣ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두번 째 읽었는데 여전히 신선하다. 기억력이 나쁜 탓에 줄거리가 기억이 안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환상과 현실의 결합을 통해 결국은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편이 끝날 때마다 그 다음편이 궁금해서 손이 금방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는 있지만 잠시 멈추고 이야기 속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 끼리 묶어 보면, "긴 여행의 목표"는 한번도 집이 주는 그리움, 가족이 주는 그리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시릴이라는 아이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자인 아버지가 죽자 시릴에게는 엄청난 재산이 상속된다. 하지만 대대로 물려오던 대저택과 영지마저 넘겨버리고 시릴은 세상을 헤맨다. 그러다 독일 은행가의 집에서 우연히 본 그림 한장에 매료된다. 깎아지른 계곡 한가운데 있는 궁전 창문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데 창문 너머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시릴은 이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어쩌면 가본적이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저 그림자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시릴은 그림 속 궁전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난다. 그리고 함께 간 많은 사람들을 잃고 그림속의 궁전을 찾는다. "길잡이의 전설" 역시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그리워하는 이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히어로니무스는 기적이나 다른 세계를 꿈꾸는 아이였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니 기적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 마술사로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세계의 문을 발견한다. 하지만 스스로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생각하는 히어로니무스는 그 문을 향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가난한 마술사로 세상을 떠돌다 다시 그 문을 발견하게 된다.
짧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였다. 한 부부가 로마의 허름한 골목을 여행한다. 두 사람은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라는 건축물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통로안을 먼저 들어가던 아내가 뒤따르던 남편을 돌아보고 기겁을 한다. 입구에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 거인처럼 보이는 것이다. 거인 같은 남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작아진다. 하지만 정작 걸어오는 사람은 자신이 작아지는 걸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주변의 기둥이나 문들도 같은 비율로 작아지기 때문이다. 부부는 통로 저쪽을 바라본다. 통로 저쪽에는 끝이 있는 것일까?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는 아닐까? 그리고 며칠 뒤 부부는 통로 저쪽을 향해 탐험을 떠난다.
"교외의 집"과 "미스라임의 동굴"도 비슷한 맥락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교외의 집"은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외에 작은 집이 있다. 이 집은 마을 사람 누구도 출입할 수 없으며 쇼아스발리라는 작은 체구의 여자만 드나든다. 나는 형과 함께 그 집 현관에 열쇠를 달러 가게 된다. 그때 형과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 집은 앞뒤, 옆이 모두 같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바로 맞은편 문으로 나오게 된다. 왼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문으로 바로 나오게 된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어느날 그 집에 나치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민간인 복장을 한 십수 명의 사람들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걸 목격한다. 나와 형은 절대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집에 어떻게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수 없다. 그리고 며칠 뒤 집은 폭격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 교외의 그 자리에 집이 있었던 증거들을 찾으려고 애써보았지만 100평방 미터가 조금 넘는 그 집터는 문서상으로는 존재하는 땅이란 대답만 들을 뿐이다. 나치에 협력했든 혹은 방관했든 간에 나치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그린 우화가 아닐까 싶다.
"미스라임의 동굴"은 동굴 속에 사는 그림자의 이야기다. 그림자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 믿으며 철저한 통제 속에서 생활한다. 그림자들은 목소리가 말해주는 시간에 자신의 잠칸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주어진 일들을 한다. 그 일에 의문을 품는 그림자는 아무도 없다. 이브리를 제외하면. 이브리는 꿈에 보았던 창문을 그려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창문을 그리고 지운다. 이브리는 철저한 통제 사회에서도 그 통제를 벗어나고자 꿈꾸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조금 작지만 괜찮아"는 작은 자동차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고 있다. 결코 작지 않은 이 자동차안에는 방과 연회실과 식당과 심지어 이 자동차를 넣을 수 있는 차고까지 있다. 가벼운 소품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정도이다.
이 책의 표제작인 "자유의 감옥"은 111개의 문에 갇힌 인간의 이야기다. 나는 이 중 하나의 문을 선택해서 나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하나의 문을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110개의 가능성의 문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기를 주저할수록 문의 수는 점점 줄어 들고 드디어 하나의 문만이 남게 되었을 때 나는 감옥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문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깨닫는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