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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1 ㅣ 로마제국 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단다. 오늘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들은 말이다. 그래서 요 몇년 사이 역사책에 눈길이 가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사실 학교 다닐 때에는 역사나 세계사만큼 어렵고도 지루한 과목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생기고 어느 정도는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기기도 하나보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역사를 좋아한단다. 그런데 지나치게 우리나라 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우리 것을 과대평가하고 무조건 우리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TV 속에서 무조건 우리 것이 최고여, 하는 소리를 들으면 낯간지럽기도 하다. 우리 것이 최고라고 고집할 때는 지난 것 같다. 우리 것이 볼품없다고 느끼던 시절에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니 이제는 그 말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들도 최고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우리들로서는...
로마의 건국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부터 시작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제목대로 이 책은 로마의 건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쇠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제목에 맞게 로마의 건국과 주변국들을 차례차례 정복해나가는 과정까지는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건국부터 정복이 완성되기까지를 어느 정도 알고서 읽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시대나 인물들을 설명할 때 많이 헷갈리기도 한다. 워낙 방대한 책이니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서민들의 생활문화도 많이 실려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에 가까운 것 같다. 역사란 서민들의 문화사가 아니라 왕들의 정복사 위주일 테니까. 또 어찌 생각해보면 2000년에 가까운 역사가 이렇게 사실대로 남아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 하나, 결국엔 역사란 전쟁의 역사일 뿐이라는 것.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나 우리의 역사나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라는 것. 그 전쟁의 역사 속에서 평화의 시기가 찾아오면 문화가 번영하기도 하고, 서민들의 생활이 조금 나아지기도 하다가 또다시 야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권력자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짓밟히고 만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면 아니 잠시 멈추면 불안정한 평화 속에서 서민들은 또 애써 살아가고...
2세기, 로마 최고의 번영기 안에서도 기번은 로마의 쇠퇴의 기운을 알아차린다. 1세기에 겨우 브리타니아(영국) 속주를 병합하고(그것도 남쪽 일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경쟁심이 불타올랐던 트라야누스황제에 의해 정복되었던 동방의 나라(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등지)들에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즉위하자 로마군을 철수시켰으며 로마의 영토를 유프라테스 강까지로 국한시켰다. 정복의 역사는 끝이 나고 이제는 제국을 방어하는 일에 군사력을 집중하게 되었다. 정복 대신 방어를 택한 로마는 어쩔 수 없이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물론 로마는 그 뒤로는도 1000년 이상 건재했고 로마의 몰락은 때로는 눈에 띄게, 때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징후들을 남기면서 서서히 이루어졌다.
의문 하나, 전성기 이후로도 1000년 이상 지속된 나라에 쇠망사라는 명칭이 어울릴까 생각하게 된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멸망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1권에서는 아직 쇠망이라하기에는 로마의 힘이 주변의 페르시아나 아직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오지 않은 유럽의 야만인들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하다. 가끔 유럽 야만인들의 결집력이 강력해지거나 페르시아의 힘이 강력해져 로마를 위협하기도 하고 이집트에서는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로마는 로마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제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개의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보하고 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이 로마의 길을 통해 속주에서 오는 동방의 사치품과 다양한 문화들이 넘나들고 로마의 선진문명이 속주로 스며들어 갔으며 속주민들 또한 로마의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
또한 로마의 길을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로마군보다 먼저 서유럽으로 확산되었고 다른 문화에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던 로마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교세를 점점 더 넓혀 나가게 된다. 사실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인상 때문에 로마의 황제하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왕으로 각인되어 있다. 물론 유명한 네로황제의 박해나(로마의 대화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던 흉흉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유대인 중에서도 그리스도교인을 화재의 주범으로 몰았다. 동경의 대지진 때 일본이 천재지변으로 인해 이반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폭동의 혐의를 덮어 씌웠듯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이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인지. 특히 권력자들의 본성은 더욱 변하지 않는 것일까.)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의 박해 그리고 콘스탄티누스황제에 의해 국교로 인정받기 전에 갈레리우스 황제에 의한 전면적인 박해 등이 기록에 남아 있지만 또한 그리스도교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펼친 황제들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에서 분리되어 나와 오늘날과 같은 교세를 떨칠 수 있었던 건 로마 제국이라는 시대에 발흥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거대한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로마 제국 안에서 토대를 마련하고 때로는 박해를 받기도 했던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초창기 그리스도교가 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 제국은 주변 속주의 다양한 종교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민족의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나타나 유일신이라는 배타적인 종교관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도 외에 모든 것은 우상이며 수많은 로마와 주변 속주들의 신들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신성불가침인 유일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신념은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종교관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교인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인이 더 배타적이고 독선적(요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박해의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초기의 그리스도교인은 자신을 스스로 고발해서 순교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그 후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유일신이란 개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의문을 던지는 누군가가 또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전 뉴트리온이 빛보다 빠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며 100년 동안 진리로 믿어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역학을 뒤엎었던 것처럼 과학자들에게 진리로 믿어온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시간에 의해 뒤짚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믿어온 진리조차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엔 종교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선 종교 못지 않게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것처럼 보이던 로마의 황제라는 자리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세습왕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로마의 황제는 어찌보면 권위나 전통성이 부족해 보이기까지 하고 오히려 위태로워 보였다. 로마 시민들에게는 세습 황제라는 관념이 없었다. 원로원이나 집정관 중에서 혹은 변방의 속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중에서 권력에 영합한 누군가의 추대와 원로원의 사후 추인 아래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여러 명의 황제가 로마를 나누어서 다스리는 경우가 많았고, 게다가 황제의 자리가 공매에 부쳐진 경우도 있었다. 위대한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 황제가 악행으로 가신들에 의해 살해되고 그들에 의해 로마 총독이었던 페르티낙스가 새로운 황제로 지목되었을 때, 새 황제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근위대에 의해 페르티낙스 황제가 살해되고 3개월도 안 돼 또 다시 비게 된 황제의 자리는 근위대에 의해 공매에 부쳐졌다. 그 결과 부유한 원로원 의원 율리아누스에게 황제의 자리가 돌아갔다. 그 후로 브리타니아에서는 알비누스, 시리아에서는 니게르, 판노니아에서는 세베루스가 돈으로 황제 자리를 꿰어찬 율리아누스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고 최종적으로 세베루스가 승리하게 된다. 근위대는 또한번 황제를 살해하고 세베루스를 로마의 새로운 황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베루스 이후 원로원의 권위는 더욱 떨어지고 군인황제의 시대가 이어진다.
황제의 지위는 원로원이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었고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절대 안정적인 자리일 수가 없었다. 특히 군사정부 시절에는 군인들에 의해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떠밀리다시피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야망이 큰 부하에 의해 황제의 자리가 찬탈되기도 했다. 페르시아의 포로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아들 갈리에누스 황제 때에는 19인의 참주가 등장해 로마 제국을 어지렵혔다. 책을 읽다 덮는 순간 그 많던 황제의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짧은 기간 동안 수없이 등장하고 사라졌던 수많은 황제들 때문일 것이다.
1권은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박해가 끝나면서 마무리된다. 새로운 종교의 부상으로 고대세계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1권을 마무리하면서 감상을 덧붙이자면 워낙 광대한 제국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마치 정글 속을 헤매다 나온 기분이다. 사실 읽기를 마치긴 했지만 내가 정글 속 어디를 갔다왔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제대로 알려면 몇 번은 정독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절대 엄두는 안 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