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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60-1999 ㅣ 환상문학전집 31
아서 C. 클라크 지음, 고호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마지막 여행이다. 어쩌면 이 책을 마지막으로 SF와는 이별할 것 같다는 예감을 하게 된다. 잠시 일지 오랜 기간일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질척거리는 인간의 땅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천천히 읽기로 했다.
이책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읽은 아서 클라크 단편집의 내용들은 대체로 가까운 미래에 관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5,60년 대에 씌어진 작품들은 지금으로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 이야기도 담겨 있고, 냉전 시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도 꽤 있었다. SF소설의 큰 스케일을 기대하고 이 작품들을 읽는다면 조금은 실망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보다 가능성 있는 미래, 과학적인 틀 안에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충분히 우리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을 거라고...
제목이 조금 SF소설 답지 못한 '의원과 죽음'도 가까운 미래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룬 작품이다. 배경은 70년대로 스틸만 의원은 다음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심장이 6개월 밖에는 견디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정리하고 가족과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소련의 우주 병원.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스틸만 자신에 의해서 폐기되었던 계획이다. 우주 실험실을 운영함으로써 얻는 이익에 비해 엄청난 예산이 지출된다는 이유로... 고민 끝에 그는 살기 위해 소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 짧지만 평화로운 삶을 선택한다.
작가가 예견하고 있는 것보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되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21세기인 지금에도 우주 병원은 아직은 꿈 속의 일처럼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걸 보면.
1975년 12월 1일 동시에 2억 5000대의 전화가 울린다. '프랑켄슈타인의 전화'는 전세계적으로 그물처럼 연결된 온갖 종류의 정보망을 통해 이제 막 지성을 갖게 된 뭔가(기계, 컴퓨터, 인터넷 뭐라도 좋다)가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막 걸음마를 떼고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 아이처럼... 신호등이 제멋대로 바뀌고, 은행의 잔고에는 9억 9999만 9897.99파운드가 찍혀 있고, 신문의 활자는 의미없는 글자로 채워져 있고, 거리에선 끊임없이 소방차 소리가 들려오고....
작가는 이런 현실을 심각하게 그리기 보다는 장난처럼 재미있게 그리고 있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상은 온통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 단편을 읽다보니 얼핏 요즘 빈번하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해커에 의한 정보유출이나 바이러스 같은 게 떠오른다. 비록 이 단편은 이기적인 한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물처럼 얼키고 설킨 정보망에 의해 스스로 지성을 키운 기계(눈에 보이지는 않지만)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일이지만.
'태양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돛과 바람을 이용해 항해를 하듯이 태양빛과 그 태양빛을 받는 돛을 이용해 지구에서 달까지 항해하는 이야기다. 적도 2만 2000킬로미터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는 7대의 태양요트. 주인공 머톤이 탄 다이애나호는160킬로미터의 돛대에 500만 제곱미터의 돛이 매달려 있고, 비누거품보다 조금 두꺼운 돛은 찬란한 태양빛에 팽팽히 당겨져 있다. 7대의 태양요트들은 서로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유지한 채 지구 위 무중력의 공간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다이애나호는 다른 요트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 아직 충분한 속도가 붙지 않은 상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요트는 가속도가 붙어 다른 요트들에 앞서 나갈 것이다. 다이애나호는 지구의 그림자 속을, 초승달 같은 지구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름달처럼 둥근 지구의 모습을 보면서 지구를 두 바퀴 돌았고 궤도는 몇 천킬로미터는 더 높아져 있다.
그 사이 다른 두 대의 요트는 바다에서 요트가 부딪치듯이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돛대가 부서져 버렸고,한 대는 너무 멀리 뒤쳐져 있고 또다른 두 대의 돛도 부서지고 말았다. 이제 다이애나호와 나머지 한 대의 요트만의 대결이었다.
이제 팽팽해진 돛에 태양빛을 받으며 달로 향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 태양폭풍으로 인해 경주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대로 항해를 지속하다가는 돛도 배도 머톤 자신도 어떻게 될진 불을 보듯 뻔하다. 다른 요트는 돛대를 스스로 자르고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다. 머튼은 다른 방법을 택한다. 다이애나호의 컴퓨터를 조작해 항로를 바꾼다. 이제 그는 비상용 우주복을 입고 다이애나호를 탈출하고 다이애나호는 지구로 귀환하는 대신 화성을 지나 심해 우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유유히 태양계 바깥을 향해 영원한 항해를 하게 될 것이다.
이미 태양계 가장자리를 지나고 있는 보이저 1호나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보이저 2호처럼.
아서 클라크의 작품은 미래에 대해 그다지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학자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면 그는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이애나호가 화성을 지나 심우주로 나아가듯이 우리의 미래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모습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우주를 언젠가는 개척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개척정신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일군 서구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아서 클라크의 단편에 대한 인상은 다른 단편들(주로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알려진 단편들을 묶어놓은 것이었다.)에 비해 소설적 재미는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과학적인 이론이나 예견을 소설적으로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달까.
마지막 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신의 망치'일 것이다. 영화 딥 임펙트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하지만 단편은 의외로 단순하다. 영화만큼 아슬아슬하거나 흥미진진하진 않다. 늘 지구에 있어왔던 소행성의 충돌이라는 사건이 바로 이 시점에, 인간의 문명이 어쩌면 최고조로 발달한 이 시점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기한 것. 소설이지만 결코 소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게 바로 클라크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은 어쩌면 우주에 관한 상상력보다는 기술과 과학에 관한 상상력을 극대화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