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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비 - 뇌에 숨겨진 행복의 열쇠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지음, 한윤진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림비, 생소한 말이다.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조금 읽다 보니 림비는 저자가 대뇌변연계를 캐릭터화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대뇌변연계는 최소 1억 5,000만 년 전부터 진화해왔다고 추정되며 '포유류의 뇌'라고 불린다. 고양이, 개 등 포유류에 공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감정을 관장하기 때문에 '감정의 뇌'라고도 한다.
반면 이성을 관장하는 것은 대뇌피질이다. 그래서 이 대뇌피질을 '인간의 뇌, 이성의 뇌'라고도 한다.우리가 책을 읽는 동안에도 대뇌피질에서는 셀 수 없는 복합적인 프로세스가 동시에 실행된다. 대뇌피질은 새로운 생각을 준비하고, 여러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며, 신체 감각기관을 감시하는 멀티스태킹 능력을 지녔다. 반면 대뇌변연계 즉 림비는 한 번에 딱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똑같은 포유류의 일종인 인간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고도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뇌피질 덕분이다. 림비가 충동적이라면 대뇌피질은 끈기가 있다. 끈기는 재능을 이긴다. 인내란 미래에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오늘 당장 쓰고 싶은 것들을 참는 일이다. 대뇌피질의 차가운 억제 시스템이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대뇌피질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인간의 이성의 영역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보다는 대뇌변연계를 더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림비는 어린아이처럼 충동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림비의 기분을 적당히 맞춰줄 수 있어야 림비의 주인인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몰입'이라 부르는 순간은 이 림비와 대뇌피질이 절대적인 공조 아래 함께 협력하는 마법과 같은 순간이라고 한다. 내 안의 림비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특히 사춘기의 뇌에 관한 설명이다. 사춘기는 뇌의 재정비 기간으로서 인생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전전두엽피질과 대뇌변연계와의 결합이 일정 기간 동안 제어가 잘 되지 않거나 교란이 생긴다. 사춘기의 뇌는 복합적인 전환을 매우 어려워하며 두려움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십대의 뇌는 특히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스태킹을 힘들어 한다. 사춘기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를 뇌의 작용을 통해 설명을 듣다보니 청소년들에 대해 좀더 유연한 생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 종교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종교의 원형은 대뇌피질과 림비가 내면 깊숙이 잠재한 공포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거기에 대뇌피질의 투영능력이 더해지면서 훨씬 진전된 형태의 신앙이 생겼다. 결국 종교란 인간이 뇌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종교인들은 이런 설명에 불만을 갖겠지만 종교에 대한 재미있는 접근법이었다.
또 한 가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눈으로도 먹는다는 것이다. 단지 시각적으로 음미한 것만으로도 뇌의 같은 부위가 실제로 섭취했을 때와 동일한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음식 사진을 계속 본 림비는 포만감을 느낀다. 요즘 한창 유행인 요리 프로그램만 보아도 우리의 림비는 포만감을 느낀다니 다이어트에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결국 인간의 감정, 사고, 행동 등이 모두 뇌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게 되고 어쩐지 인간은 뇌가 작동하는 기계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 실은 우리가 굉장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이 림비의 충동에 끌려다니며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이 림비란 굉장히 감정적인 녀석을 제대로 아는 것이 결국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