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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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줄리언 반스를 처음 만났다. 책에 대한 인상. 안 읽힌다. 이건 소설인가, 수필인가하다가 마지막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을 읽고서야 이 글이 에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해설부터 보고 읽을 걸. 대체로 책을 읽을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뒤에 있는 해설부터 읽는 것은 피하는 편이다. 읽어보기도 전에 글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도 있고 나의 책읽기가 해설에 너무 의존한 읽기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책만은 미리 해설을 읽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은 소설인가 에세이인가를 고민하다보니 몰입이 되지 않았고 대체로 작가의 글이 너무 딱딱하여 뭔가 답답한 느낌이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영국 사람의 특징이 작가의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전반부는 열기구를 개척한 사람들에 대한 단상이고 후반부는 죽은 아내에 관한 기억인데 이 두 글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지금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시 읽어보고 이 책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나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그 답답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아서 아마도 다시 읽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을 움직이는 몇몇 문장들이 보여서 옮겨본다.

 

우리는 신의 위치를 잃었고, 나다르의 위치를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깊이를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6피트의 깊이를 외면하고 얼마간의 높이를 다시 얻고 싶다는 듯이 자신의 유골을 로켓에 실어 하늘로 보내기도 했다. -142-

 

기구는 자유를 대변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였다. -21-

 

아내는 딱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온전히 과거에 속하지도 않고, 그사이 어딘가의 시제 속한다는 점에서 과거적현재형이다. -179-

 

아내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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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비 - 뇌에 숨겨진 행복의 열쇠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지음, 한윤진 옮김 / 엘도라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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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비, 생소한 말이다.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조금 읽다 보니 림비는 저자가 대뇌변연계를 캐릭터화한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대뇌변연계는 최소 1억 5,000만 년 전부터 진화해왔다고 추정되며 '포유류의 뇌'라고 불린다. 고양이, 개 등 포유류에 공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감정을 관장하기 때문에 '감정의 뇌'라고도 한다.

 

반면 이성을 관장하는 것은 대뇌피질이다. 그래서 이 대뇌피질을 '인간의 뇌, 이성의 뇌'라고도 한다.우리가 책을 읽는 동안에도 대뇌피질에서는 셀 수 없는 복합적인 프로세스가 동시에 실행된다. 대뇌피질은 새로운 생각을 준비하고, 여러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며, 신체 감각기관을 감시하는 멀티스태킹 능력을 지녔다. 반면 대뇌변연계 즉 림비는 한 번에 딱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똑같은 포유류의 일종인 인간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고도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뇌피질 덕분이다. 림비가 충동적이라면 대뇌피질은 끈기가 있다. 끈기는 재능을 이긴다. 인내란 미래에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오늘 당장 쓰고 싶은 것들을 참는 일이다. 대뇌피질의 차가운 억제 시스템이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대뇌피질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인간의 이성의 영역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보다는 대뇌변연계를 더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림비는 어린아이처럼 충동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림비의 기분을 적당히 맞춰줄 수 있어야 림비의 주인인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몰입'이라 부르는 순간은 이 림비와 대뇌피질이 절대적인 공조 아래 함께 협력하는 마법과 같은 순간이라고 한다. 내 안의 림비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특히 사춘기의 뇌에 관한 설명이다. 사춘기는 뇌의 재정비 기간으로서 인생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전전두엽피질과 대뇌변연계와의 결합이 일정 기간 동안 제어가 잘 되지 않거나 교란이 생긴다. 사춘기의 뇌는 복합적인 전환을 매우 어려워하며 두려움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십대의 뇌는 특히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스태킹을 힘들어 한다. 사춘기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를 뇌의 작용을 통해 설명을 듣다보니 청소년들에 대해 좀더 유연한 생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 종교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종교의 원형은 대뇌피질과 림비가 내면 깊숙이 잠재한 공포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거기에 대뇌피질의 투영능력이 더해지면서 훨씬 진전된 형태의 신앙이 생겼다. 결국 종교란 인간이 뇌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종교인들은 이런 설명에 불만을 갖겠지만 종교에 대한 재미있는 접근법이었다.

 

또 한 가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눈으로도 먹는다는 것이다. 단지 시각적으로 음미한 것만으로도 뇌의 같은 부위가 실제로 섭취했을 때와 동일한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음식 사진을 계속 본 림비는 포만감을 느낀다. 요즘 한창 유행인 요리 프로그램만 보아도 우리의 림비는 포만감을 느낀다니 다이어트에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결국 인간의 감정, 사고, 행동 등이 모두 뇌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게 되고 어쩐지 인간은 뇌가 작동하는 기계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 실은 우리가 굉장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이 림비의 충동에 끌려다니며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이 림비란 굉장히 감정적인 녀석을 제대로 아는 것이 결국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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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출장 - 우아하거나 치열하거나, 기자 곽아람이 만난 아티스트, 아트월드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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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좋다. 미술 기자로서 미술이 전시되고 거래되는 현장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객관적인 기자의 눈으로 때로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작가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은 현대미술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미 미술은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이나 부의 과시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일부 작가의 작품은 너무 천문학적인 가격이어서 어쩐지 의심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미술시장이 끓어오르면서 홍콩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발돋움 하고 있었다. 1986년부터 홍콩 경매를 열어온 크리스티는 2008년부터는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서도 뉴욕이나 런던과 마찬가지로 이브닝 세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 50-

 

위의 글처럼 미술시장은 자본과 함께 움직인지 오래 되었다. 예술의 태생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애초부터 그림은 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는 교회에 의해 그려졌고 이후에는 왕이나 귀족의 필요에 의해 그려졌고 이제는 돈을 가진 사람들에 필요에 의해 그려지는 시대가 되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데이미언 허스트와의 만남은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그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작품사진을 본 기억은 있다. 포름알데히드로 방부처리한 상어를 전시한 사진이었는데 그 작품의 제목이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란다.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그가 화가인지 사업가인지 애매하다. 그의 작품에 그 엄청난 가격이 매겨진 것은 그를 띄워 돈을 벌어보려는 자본의 속성 때문인 것 같고 그도 그런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잘 이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제프 쿤스도 그에 못지 않게 비싼 작품 가격으로 유명한 화기이다. 기자는 이 화가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인터뷰 내내 까칠하게 대하던 모습과는 반대로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중적인 그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 보라색 포장에 금색 리본이 묶인 세이크리드 하트는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적재적소의 배치가 아닌가 싶다. 백화점과 300억짜리 예술작품이라, 완벽한 조화다.

 

로버트 인디애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지만 LOVE를 재배치한 그의 작품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게 작품이란 걸 모를 만큼. 그냥 글자인 줄 알았다는... 로버트 인디애나는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서 누구나 이 이미지를 베꼈고 그의 작품은 저평가되기에 이른다. 기자가 그가 살고 있던 섬으로 가서 그를 만났던 집이 기억에 남는다. 기린 등 온갖 동물 인형들에 둘러 싸인 모습이 동화 속에 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랄까.

 

기자는 책을 읽는 내내 출장의 힘듦을 이야기했지만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부럽기만 했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선 화가와 그림들을 만날 수 있고 게다가 여행까지 덤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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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기 3 : 통일천하 - 사마천의 사기열전 소설로 만나다, 개정판
김병총 지음 / 문예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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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시황제의 짧은 통일 이후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지고 전국의 영웅호걸들이 대륙의 땅을 놓고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시작한다. 그들 중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가 유방과 항우였다. 2권의 전반부까지는 항우가 더 우세한 세력을 보이다가 유방이 관중 땅에 먼저 입성한 이후 유방의 세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유방이란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작가의 편견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실제 유방이 그런 인물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천하의 황제로서의 품위랄까 혹은 항우 같은 기개도 느껴지지 않았다. 2권에서는 적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서 유방이 마차에 탄 아들을 던져버리자 같이 타고 있던 신하가 유방의 아들을 다시 구해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방의 인물됨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유방 스스로도 자신이 항우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계략도 어딘지 대범해 보이지가 않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같다는 인상이었다. 때로는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못해 팔랑귀 같다는 인상도 있고.

 

진정한 천하의 영웅은 항우이지 않을까. 물론 그는 이전에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은 성을 함락한 이후에는 성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매장하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지만. 유방의 계략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군사들은 다 도망가고 사랑했던 우희마저 패배을 예감하고 자결을 한 후에 이미 승패가 결정지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싸움에서 항복하거나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도망가는 길을 택하는 대신 마지막까지 칼을 휘두르다 자신의 목을 전쟁터에 바치는 모습이 더 영웅다워 보였다.

 

어느 나라의 역사나 비슷하지만 유방도 한나라를 세운 후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공신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유방의 천하통일을 이루게 한 세 신하 중의 하나였던 한신마저 죽이고 팽월도 제거한다. 그리고 소금에 절인 팽월의 머리를 경포에게 보낸다. 끔찍한 경고였다. 이 장면이 지나치게 끔찍해 보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되어왔다.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들의 권력놀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는지. 사실 백성들에게는 누구가 왕이든 무슨 상관일까 싶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군사를 보유할 수 있다는 뜻이고 백성들은 그들에게 전쟁 도구일 뿐이었다.

 

아마도 3권에서 가장 독보적인 장면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여태후가 한고조 유방이 죽자 유방이 사랑했던 척후의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내어 장님으로 만들고, 귀를 지저서 귀머거리로 만들고, 음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든 뒤 뒷간에 넣은 다음 황제 효혜에게 보여주면서 저것이 인저(사람돼지)라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 이 행동은 아들 효혜마저 어머니에게서 등을 돌리게 한다.

 

한고조의 죽음 이후 여태후를 중심으로 한 여씨일가와 공신들의 권력싸움으로 정국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공신들은 여태후와 여씨 일족과의 싸움 끝에 한고조 유방의 친자식으로 가장 연장자인 대나라의 왕으로 있던 유항이 효문제로 등극하게 된다. 이로써 3권이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은데다 눈뜨고 나면 권력관계가 바뀌는 상황을 놓치지 않으려면 소설인데도 역사서 못지 않게 집중력을 갖고 읽게 된다. 이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인간이 이렇게 폭력적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자가 말했던, 사람이면 갖기 마련이라는 측은지심 같은 것들이 정말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본성이 정말로 선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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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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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눈으로 본 한국미술에 관한 이야기다. 소개하고 있는 작가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조선미술 순례라는 제목을 붙이기에는 좀 미흡한 점이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왠지 주류보다는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곳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미술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여기에 소개된 현대작가들이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는 잘모르겠다.  

 

신경호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화가이다. 민중미술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작가의 면면을 알지는 못한다. 민중미술이 생각을 너무 직선적이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데다 거친 느낌이어서 그다지 좋아하는 계열의 작품은 아니다. 어쩐지 보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보는 사람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미술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불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감정을 불쑥불쑥 드러내는 사람이 좀 껄끄러운 것처럼 주제가 너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그림들 앞에서는 한발자국 물러서게 된다. 

 

신경호의 작품 중에는 달을 보고 짖는 개가 가장 인상적이다. 검은 바탕에 노란색으로 칠해진 개의 모습이 강렬하면서 단순하다. 그 작품과 관련된 일화를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월북 화가 이쾌대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그의 작품들 역시 강렬하다. '해방고지'가 그렇고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그렇다. 이쾌대의 그림들 중 군상 시리즈는 프랑스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연상되기도 하고 각 인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체에 대한 표현이 역동적이다. 이 책에는 실려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쾌대의 작품 중에서는 '봄처녀'가 가장 마음에 든다. 군상시리즈처럼 너무 서양적인 것을 좇아간 것 같지 않고 처녀가 입은 빨간 저고리와 둥글둥글한 초록빛 산들의 조화가 아름답고, 옆으로 약간 돌아서서 눈을 내리깔고 있는 듯한 시선에서 봄처녀의 수줍음도 느껴지고 어딘지 강단있는 듯한 모습도 느껴진다.  

 

신윤복의 그림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그다지 새롭지 않았는데 오히려 몇 해 전에 방영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작가와 대담이 재미있었다. 이정명 작가는 어렸을 때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는 화가가 분명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남자라는 걸을 알게 되었고 그걸 모티브로 해서 그 드라마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 그 드라마보면서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것이 아무리 드라마지만 너무 하다 생각했었는데 그런 발상을 하게 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작가라면 현실을 뒤집어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들 화가 외에 정연두, 윤석남, 미희, 등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정연두 외에는 내게는 낯선 화가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눈을 통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화가들을 알게 된 것도 이쾌대 못지 않은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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