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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나의 조선미술 순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눈으로 본 한국미술에 관한 이야기다. 소개하고 있는 작가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조선미술 순례라는 제목을 붙이기에는 좀 미흡한 점이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왠지 주류보다는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곳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미술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여기에 소개된 현대작가들이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는 잘모르겠다.
신경호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화가이다. 민중미술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작가의 면면을 알지는 못한다. 민중미술이 생각을 너무 직선적이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데다 거친 느낌이어서 그다지 좋아하는 계열의 작품은 아니다. 어쩐지 보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보는 사람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미술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불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감정을 불쑥불쑥 드러내는 사람이 좀 껄끄러운 것처럼 주제가 너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그림들 앞에서는 한발자국 물러서게 된다.
신경호의 작품 중에는 달을 보고 짖는 개가 가장 인상적이다. 검은 바탕에 노란색으로 칠해진 개의 모습이 강렬하면서 단순하다. 그 작품과 관련된 일화를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월북 화가 이쾌대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그의 작품들 역시 강렬하다. '해방고지'가 그렇고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그렇다. 이쾌대의 그림들 중 군상 시리즈는 프랑스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연상되기도 하고 각 인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체에 대한 표현이 역동적이다. 이 책에는 실려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쾌대의 작품 중에서는 '봄처녀'가 가장 마음에 든다. 군상시리즈처럼 너무 서양적인 것을 좇아간 것 같지 않고 처녀가 입은 빨간 저고리와 둥글둥글한 초록빛 산들의 조화가 아름답고, 옆으로 약간 돌아서서 눈을 내리깔고 있는 듯한 시선에서 봄처녀의 수줍음도 느껴지고 어딘지 강단있는 듯한 모습도 느껴진다.
신윤복의 그림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그다지 새롭지 않았는데 오히려 몇 해 전에 방영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작가와 대담이 재미있었다. 이정명 작가는 어렸을 때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는 화가가 분명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남자라는 걸을 알게 되었고 그걸 모티브로 해서 그 드라마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 그 드라마보면서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것이 아무리 드라마지만 너무 하다 생각했었는데 그런 발상을 하게 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작가라면 현실을 뒤집어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들 화가 외에 정연두, 윤석남, 미희, 등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정연두 외에는 내게는 낯선 화가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눈을 통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화가들을 알게 된 것도 이쾌대 못지 않은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