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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ㅣ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좀 많이 지루하다. 만약 중간중간 인용된 희곡작품들과 경험담 같은 사례들이 없었다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 만남으로서의 존엄성, 사적은밀함을 존종하는 존엄성 등 8개의 장으로 나누어 무엇이 존엄성인지 또한 존엄성이 얼마나 훼손되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1장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에서는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를 통해 인간이 수단으로 이용될 때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보았다. 비록 그 난쟁이가 스스로 선택한 행위라고 해도 인간의 손으로 던져지는 난쟁이는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가 아니라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난쟁이 스스로 그 일을 자처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엄성을 판 행위였다.
2장 만남으로서의 존엄성. 80년대 초 독일 겔젠티르헨에 사는 어느 남성이 피프쇼라고 불리는 나체쇼를 정식으로 허가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피프쇼는 회전무대에 등장하는 나체의 여자들을 관객이 지켜보는 형태의 스트립쇼인데 관객이 각자 1인용 캐비닛에 들어가 동전을 넣으면 일정 시간 동안 조그만 창문이 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여자는 관객을 볼 수 없다. 두 가지 상반되는 판결이 흥미로운데 피프쇼를 허가하려는 재판부는 관찰자의 익명성과 회전무대에 선 여성이 관객과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는 상호대면의 차단성이 여성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방식이라고 이해했다. 반면 상위 재판부에서는 바로 여성이 상대방 남자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여성이 단순한 물체 또는 욕망의 생산을 위한 도구로 격하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로 만남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3장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에서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인용한다. 오랜 기간 결혼 생활을 해온 마사와 조지 부부는 자신들이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만 알고 있는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상대방의 존엄성에 상처를 내고 굴욕감을 준다. 그들의 치부를 그들만 알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제3자에게 알려졌을 때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위협받고 있는 존엄성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켜지고 싶은 비밀이 어떤 통로를 통해 드러나버릴 지 알 수 없는 사회가 되었고 심지어 그 비밀 때문에 개인의 삶이 철저히 파괴되기도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니까.
4장 진정성으로서의 존엄성. 에마뉘엘 카레르의 책 <적>에는 실제로 있었던, 평생 주변 사람들을 속이며 살았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클로드 로망은 의대에 진학에서 12년 동안 날조된 병원진단서를 가지고 의대과정에 새롭게 등록하기를 반복한다. 결혼 이후에는 세계보건기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생활비를 가져다주기 위해 친지들에게 사기행각을 반복하다 결국 모든 거짓말이 들통나게 된다. 저자는 로망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진짜이게 하는 의지, 거기에 한 인간의 참됨이 놓여 있다. 이 참됨을 이루는 것은 사실을 견디는 용기이다. 로망이 존엄성을 상실한 것은 바로 이 용기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253-
자신에 삶에 정직한 것,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존엄성을 지키는 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5장 자아존중으로서의 존엄성.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은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자아존중심을 짓밟고 파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노부인 클라라 배셔는 처녀였을 때 알프레드 일이라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 알프레드 일은 법정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는 두 사람의 증인을 돈으로 사서 그녀와 동침했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한다. 클라라 배셔는 소송은 기각당하고 이후 그녀는 매춘부가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여러 가지 사업으로 성공한다. 귈렌 시로 돌아온 그녀는 돈으로 복수를 시작하는데 알프레드 일이 살해당함으로써 1차적인 복수가 이루어진다. 노부인은 귈렌 시민들을 돈으로 유혹해 그들의 자아존중심을 잃게 만듦으로써 2차적인 복수에 성공한다. 예전에 자신이 귈렌 시민들에 의해 존엄성이 훼소되었던 것처럼.
6장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 로만 프리스터의 자서전 <납작모자 혹은 목숨의 대가>에서 주인공 프리스터는 나치 유태인 수용소에서 강간을 당하고 가해자에게 납작모자까지 빼앗긴다. 이 납작모자를 쓰지 않은 수용자는 총살당한다는 규정 때문에 프리스터는 다른 남자에게서 납작모자를 훔쳐온다. 심지어 프리스터는 행복한 기분으로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다. 이 사건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프리스터의 관점은 달라졌다. '어둠의 시대에 속해 있던 사건을 빛의 시대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봉해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올바른 시각을 찾으려는 시도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존엄성의 모습일 수 있다. -335-
지금의 시각으로 프리스터의 행동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도덕적으로 진실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7장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는 한 여인의 시도를 그린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인형으로 결혼해서는 남편의 인형으로 그저 편안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지의 선택에서 로라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녀 또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자신의 행위와 감정이 진짜로 참된 것인지, 그리고 중요한 것을 찾기는 했는지 때때로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무를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존엄성을 이룬다. -382-
그녀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옳다고 믿는 길을 가려고 애쓰는 것 자체에서 존엄성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다.
8장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노화나 질병은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이로 인한 인간관계의 상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험에 빠뜨린다. 인간이 맞이하는 마지막 과정인 죽음은 가장 존엄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순간을 이렇게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인생과 그의 마지막 모습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죽음의 존엄성이 가지는 기본 개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각자 서로 다른 개별적 죽음의 과정, 자신만의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419-
지금 우리가 맞는 죽음의 순간이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모습과 어울릴까. 이젠 모든 사람은 병원이라는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마치 죽음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 같다. 나의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진정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