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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ㅣ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평점 :
내가 읽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보다는 충격이 덜하다. 잔인함에서 덜 하기도 하고 흡인력에서도 조금 덜 한 것도 같고. 첫 번째 소설 <이렌>의 내용이 너무 자주 언급되고 있고, 베르호벤 형사의 심리적 갈등, 주변 인물에 대한 잡다한 스케치 등이 너무 많다 보니까 사건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뒤로 갈수록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잡다한 것은 가지를 쳐내고 내용을 좀더 긴장감있게 요약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넘어서면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그 반전을 위해 쓰여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렉스는 누가봐도 아름다운 여성이다. 50대의 한 남자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골목에서 무차별 폭행 후 트럭에 실어서 납치한다. 그녀가 짐짝처럼 부려진 곳은 버려진 건물이다. 남자는 알렉스에게 옷을 벗게 하고 궤짝에 넣는다. 그리고 궤짝에 줄을 매달아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알렉스는 새장에 갇힌 것이다. 남자는 한두 번씩 와서 물과 사료용 크로켓을 놓아두고 간다. 새장에 갇힌 알렉스는 단 몇 센티미터도 움직일 수가 없다. 남자는 알렉스에게 말한다. 난 네가 말라죽는 것을 보고 싶어. 그것이 남자가 알렉스에게 원하는 것이다. 알렉스는 그가 누군지를 짐작한다.
카미유 베르호벤 형사는 목격자와 함께 납치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도착한다. 이렌이 죽은 후 강력사건을 맡은 건 4년 만이다. 하지만 목격자의 증언으로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 없다. 다행히 근처 CCTV에 용의자가 타고온 것으로 보이는 트럭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한다. 마침내 용의자의 신원이 밝혀진다. 장 피에르 트라리외 50대 남자.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형사들과 마주친 그는 도주 끝에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려 지나가는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남자의 집과 컴퓨터 등을 조사한 끝에 남자에게는 파스칼이라는 아들이 있고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행방불명이 된 상태라는 게 밝혀진다. 파스칼과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이순간 알렉스는 새장 속에 웅크린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너무 두렵고 외로운 나머지 남자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랄 정도다. 몸은 점점 마비되어 가기 시작한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경련이 일어난다. 크로켓 주위로 한두 마리 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알렉스는 마침내 이 사료용 크로켓이 쥐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크로켓이 다 떨어지면 쥐들의 먹이는 알렉스가 되는 것이다.
카미유와 강력반 형사들은 납치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출동한다. 이곳은 낙서를 하기 위해 빈 건물을 찾아들어갔던 남자아이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카미유는 작은 몸을 이용해서 맨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은 시체 썩는 냄새 같은 악취로 가득하다. 마침내 카미유는 현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죽은 쥐 몇 마리와 바닥에 떨어져 조각난 나무상자만 있을 뿐이다. 사라진 것이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일지도 모르는 그녀가.
그녀는 파스칼과 그 이전에 벌어진 두 살인사건의 용의자이다. 파스칼은 나탈리 불리는 여자가 사는 집의 정원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두개골은 삽으로 수십 번 강타를 당하고 입안으로 부어넣은 황산으로 인해 목은 거의 녹아없어진 상태로. 하지만 그녀의 신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녀가 나탈리, 레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외에는.
카미유가 그녀가 사라진 현장에 도착기 전, 알렉스는 나무판자에 난 가시에 몸을 문질러 몸에서피를 낸다. 바닥으로 떨어진 피에 쥐들이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알렉스는 궤짝 위의 동아줄에 자신의 피를 묻힌다. 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피에 굶주린 쥐들이 동아줄을 갉아먹어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하자 알렉스는 온몸을 이용해서 궤짝을 흔든다. 마침내 궤짝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부서진 궤짝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건물을 탈출한다.
이때부터 알렉스는 피해자가 아닌 살인사건의 용의자로서의 행보를 더해간다. 하지만 그때마다 카미유는 그녀보다 한발작 늦고 나탈리, 레아 등등 불리는 그녀가 누군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사실 알렉스의 탈출 이후부터가 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녀의 살인수법이 지극히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인 듯하다. 그냥 무작위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추리소설처럼 마지막에 가서야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하나로 모아지긴 하지만. 중간을 넘어서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책이 많이 두껍다는 것. 한꺼번에 독파하기에는 책이 좀 많이 두껍다. 원래 추리소설이 이렇게 두꺼운 건가. 물론 <이렌>도 두껍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