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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필로미나가 자신의 아들을 빼앗긴 수녀원의 묘지에서 아들을 만나는 그 장면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비록 아들은 이미 죽었고 마이클 헤스란 이름의 비석만 남았을 뿐이지만. 아들 마이클은 언젠가 자신의 생모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그곳에 묻혔다. 어머니도 자신처럼 평생 아들을 찾았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수녀원 묘지에 있는 비석에서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장면이 가장 가슴 아팠던 것 같다.
뭐가 기적이란 걸까. 평생 그리워하던 아들이 죽은 후에 차가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발견하는 게 기적이라는 걸까. 아니면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걸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결코 기적일 수가 없다. 제목만으로는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리고 이야기이고 정말 기적처럼 아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필로미나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서만 등장하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아들 마이클이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서 와서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입양이란 사건이 마이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해
어떤 이들은 미국으로 입양되어 와서 공화당의 자문변호사로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던 것만 본다면 입양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이클의 인생궤적을 따라가보면 입양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양어머니는 쇼핑하듯이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선택해서(사실 그녀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입양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딸을 갖기를 원하는 남편을 위해서 딸 하나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수녀원에서 메리와 늘 함께 있던 마이클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마이클도 함께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미국이란 땅에 옮겨다 놓았다.
그 아이들이 입양되어간 가정이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어서 마이클에게 사회적 성공을 위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양아버지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세 형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 다행인 것은 양어머니는 진심으로 메리와 마이클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다. 게다가 마이클은 잘 생긴 외모에 다 음악적인 재능도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학업성적이 뛰어났다. 양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학업성적에 대해서만은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양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끝내 달라지지 않았고 한번도 마이클을 진심으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마이클이 자신이 원하는 법학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학비지원을 끊어 버리기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마이클은 공화당의 자문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사실 마이클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 쪽이었지만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에 공화당을 선택한 것이었다. 입양아란 배경을 가진 마이클과 같은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공화당에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는 수석변호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의 내면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그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뿌리째 뽑혀져 다른 곳에 이식되어진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불안함이었을 것이다. 마이클은 20대에 같이 입양된 동생 메리와 아일랜드의 수녀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수녀원에서는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를 거부한다. 마이클과 메리를 입양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버라 원장 수녀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음에도 그들을 입양보내는데 개입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거의 책의 말미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이클과 메리가 수녀원을 방문한 지 3주 뒤에 마이클의 어머니 필로미나가 수녀원을 찾아 바버라 원장 수녀를 만났지만 원장수녀는 마이클이 수녀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 후 30대 때 마이클은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다시 한번 수녀원을 찾는다. 그때도 수녀원에서는 필로미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다. 수녀원 측에서 조금만 더 성의를 보였더라면 마이클과 필로미나는 좀더 일찍 만났을 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수녀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아동매매나 다름없는 행위를 한 자신들의 수치스런 과거를 드러내가 쉽지 않겠지만. 가톨릭이 지배하던 당시의 아일랜드에서는 미혼모와 미혼모의 아이는 도덕적 수치이자 죄의 대가로 태어난 아이들이기에 수녀원에 아이들을 빼앗기다시피해도 미혼모 본인과 가족들은 그러한 사실을 평생 숨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끔찍하게 지배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마이클이 미국으로 입양될 당시에 아일랜드 정부에서도 입양과정에 아동매매 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양을 주관하는 가톨릭단체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고 묵인하고 있었다.
마이클과 필로미나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그 당시의 아일랜드에서 철저한 약자였고 그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필로미나가 50년이 지난 후에야 아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세상에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나 가톨릭 단체에서 자신의 잘못을 일찍 고백하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수녀원의 묘지에 있는 마이클의 비석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었다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