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물리학 - 화살에서 핵폭탄까지, 무기와 과학의 역사
배리 파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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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작가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무기들에 어떤 물리학이 숨어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문체가 제목 만큼이나 건조한 편이다. 그렇게 흡인력 있게 읽히지는 않는다. 교과서적인 설명 같은 느낌이랄까. 그다지 새롭지 않은 내용이다.

 

 청동기를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후 철을 사용한 무기를 사용하면서 더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것은 로마는 엄청난 군사력을 지녔던 반면 새로운 무기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있던 무기들을 개조해서 전쟁에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기술하면 무기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에트루리아인들로부터 전수받은 건축기술과 도로를 닦는 기술이 단연 으뜸이다. 어쩌면 로마는 굳이 신무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의 정예부대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폴레옹이 전쟁에 승리를 거둔 것도 신무기를 활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워낙 천재적인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부하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무기는 더욱 새로워지기 시작하는데 미국의 남북전쟁 때 이미 잠수함이 사용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기관총이 등장해서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고 참호전에 대비하기 위해 탱크가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컴퓨터가 쓰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더욱 복잡해진 암호를 풀기 위해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과학은 전쟁을 통해서 더욱 발전되는 모양이다. 전쟁의 필요가 과학을 낳고 과학은 더 잔인하게 전쟁을 수행하는데 일조하고.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그렇다. 아인슈타인은 대통령에게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쓰고 그 외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독일 쪽에서는 하이젠베르크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이 만든 두 개의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비록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긴 하지만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일본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는데 굳이 종전을 조금 앞당기기 위해 일본 땅에다 핵실험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원자폭탄의 성공에 이어 수소폭탄까지 성공하기에 이르고 무인항공기(드론), 전자폭탄까지 전쟁무기의 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다행인 것은 전자폭탄은 사람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각종 컴퓨터 장비를 교란시켜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컴퓨터시스템으로 제어되는 현대에서 전자폭탄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다. 만약 이 전자폭탄이 원자력 발전소를 겨냥한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책은 전쟁과 함께 한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느 한 나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물리학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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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관 산책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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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대략 100여 점이 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지 않다. 다섯 개의 미술관별로 나누고 다시 주제별로 나눠서 소개하기도 하고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국에 갈 예정인 사람들에게 특히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에게 가이드 북으로서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미술관에 가더라도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냥 그림일 따름이고 한참 보다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음악도 그렇고 미술고 그렇고 딱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 명작들의 고요한 고향

 이 장에서는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가 인상깊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썩 잘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BBC 방송국에서 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 그림 1위'라는 것이다. 이 전함은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대활약을 한 전함이었고 이 해전을 통해 나폴레옹은 영국침략을 포기해야했고 영국인들은 위대한 해군 제독 넬슨을 잃어야 했다. 역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영국의 역사를 모르는 우리는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유령선처럼 하얀배가 예인선에 의해 끌려 오는 그림을 보면서 위대함을 느끼지는 못할 테니까.

 

코톨드 갤러리: 인상파의 숨겨진 왕국

 새뮤얼 코톨드라는 부자 아저씨가 1971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파리 인상파 화가전을 보고 필이 꽂혀서 인상파 작품들을 컬렉션을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모아진 작품들을 기부해 만들어진 갤러리라고 한다. 이 갤러리는 유료이긴 하지만 사람이 많이 없어서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갤러리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인데 처음 볼 때 평소 알던 그림보다 좀 투박해보인다 싶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닌 마네가 직접 그린 복제품으로 친구의 부탁으로 원작보다 작게 그렸다고 한다.

 

국립초상화 미술관: 웃지 않는 영국인들

작가는 영국의 위대한 인물의 초상화를 감상하는데 굳이 시간을 할애할 이유는 없다고 했는데 오히려 이 장이 더 재미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인물소개가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연 으뜸은 한스 홀바인 2세의 '헨리 8세'가 아닐까 싶다. 작가도 말했다시피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잔인하지만 매력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심술궂고 뚱뚱한 아저씨의 모습이랄까. 화려한 여성편력을 지닌 매력적인 남자라기 보다는 실제의 헨리 8세는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낳기 위해 무자비하게 왕비를 죽이고 갈아치우는 폭군일 따름이다. 헨리 8세의 초상화에는 그런 모습이 여지 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블러드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 1세'의 초상화에는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는 소녀의 모습이 엿보이고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강력한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에는 냉정해 보이는 얼굴과 과장되게 부풀린 듯한 의상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테이트 브리튼: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이 장에 소개된 작품 중에는 로세티의 '페르세포네'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그림은 친구의 아내를 모델로 한 그림이다. 일화도 재미있는데 로세티의 친구는 로세티가 자신의 아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왠지 '페르세포네'는 신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대의 슈퍼모델 같은 느낌이다. 혹은 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도 기억에 남는 그림이다. 저녁무렵 정원에서 등불을 켜고 있는 친구의 딸들을 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도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그림 자체가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작가의 말대로 저녁에서 밤으로 바뀌는 짧은 시간을 아주 아름답게 포착해내고 있는 그림이다. 난 그냥 예쁜 그림이 좋다. 현대의 개념미술인가 이런 장르는 뭔지 모르겠고 바라봐서 한눈에 좋아보이는 그림이 좋은 것이다.

 

테이트 모던: 미술 놀이터가 된 화력 발전소

매년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영국의 최고의 미술관이지만 작가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인 곳이 못 되는 모양이다. 이 미술관은 지금은 영국 최고의 미술관이 되었지만 화력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다는 발표를 할 당시에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반대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처형 삼부작'이 아닐까 싶다. 이빨이 강조된 괴수의 형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테이트 모던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피카소의 '울고 있는 여인', 살바도르 달리의 '산 위의 호수'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영국의 미술관을 한 바퀴 빠르게 순례한 느낌이다. 너무 빨리 책장을 넘기면 앞에 보았던 작품들이 순식간에 묻혀버리므로 한 미술관씩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미술관을 먼저 보던 상관없다. 자신이 읽고 싶고 평소 관심있는 분야부터 읽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영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국립초상화 미술관을 먼저 둘러 보고 평소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했다면 코콜드 갤러리를 먼저 보면 된다. 도판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글자가 작은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 책 한 권으로 런던 미술관을 돌아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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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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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란 쉽다. 하지만 쓰는 일은... 모르겠다. 그저 내 방식대로 읽고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고 그러면 참 재미있겠다 싶다. 아줌마라고 드라마 이야기만 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일상에서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만큼 수준 높은 대화는 아니더라도.

 

어쟀든... 이 책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독서력이 형편없는 탓에 이 책들 중 읽은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호밀밭의 파수꾼' 뿐이다. 그것도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국은 사랑 이야긴데 너무 어렵게 말하는 거 아니야 싶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뭐가 그렇게 좋은 소설이란 거야 싶었다. 이 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에서도 나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음 그렇군, 나만 그렇게 읽은 건 아니군'하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어떤 작가가 말했다는 청소년 소설아냐,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소년의 넋두리 같은 것. 난 솔직히 근거 없이 아파하는 소설에 공감하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언제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내는 인물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그 유명하다는 소설을 읽지 않은 이유 중 한 가지이기도 하다. 왠지 조르바라는 인물에게 어떤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그리스인 조르바'였구나 다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냥 조르바가 아니고 그리스인 조르바가 무슨 관용구처럼 익숙한데도 그리스라는 나라 이름을 보고는 '아, 그 그리스였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난 그동안 그리스와 조르바를 한 자리에 놓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스의 이미지와 조르바의 이미지가 많이 어긋나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 책을 읽고도 끌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부러 찾아서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속죄'는 가장 읽고 싶어지는 책 중의 하나다. 영화 '어톤먼트'를 케이블 TV에서 우연히 보다 말았는데 주인공 소녀가 언니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를 읽는 장면과 소녀의 단발머리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성인 주인공은 틸다 스윈튼이었든 것 같은데 역시나 소녀시절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답답함이 싫어서 보다가 말았던 것 같다.

 

'파이 이야기'도 꼭 읽어봐야지 하는 책이다. 영화도 그렇고. '파이 이야기'에서는 그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는 종이가 모자랄 걸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먼저 떨어진 것은 펜이었다."

작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제목을 잘 짓는다 말에는 백번 공감한다. 그 외에는 반반. 우선 하루키의 소설은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선굵은 서사와 메시지가 없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단편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번 여름에는 이 책에서 소개한 7권의 책으로 무더위를 이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도서관에 책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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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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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필로미나가 자신의 아들을 빼앗긴 수녀원의 묘지에서 아들을 만나는 그 장면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비록 아들은 이미 죽었고 마이클 헤스란 이름의 비석만 남았을 뿐이지만. 아들 마이클은 언젠가 자신의 생모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그곳에 묻혔다. 어머니도 자신처럼 평생 아들을 찾았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수녀원 묘지에 있는  비석에서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장면이 가장 가슴 아팠던 것 같다.

 

뭐가 기적이란 걸까. 평생 그리워하던 아들이 죽은 후에 차가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발견하는 게 기적이라는 걸까. 아니면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걸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결코 기적일 수가 없다. 제목만으로는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리고 이야기이고 정말 기적처럼 아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필로미나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서만 등장하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아들 마이클이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서 와서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입양이란 사건이 마이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해

 

어떤 이들은 미국으로 입양되어 와서 공화당의 자문변호사로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던 것만 본다면 입양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이클의 인생궤적을 따라가보면 입양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양어머니는 쇼핑하듯이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선택해서(사실 그녀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입양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딸을 갖기를 원하는 남편을 위해서 딸 하나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수녀원에서 메리와 늘 함께 있던 마이클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마이클도 함께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미국이란 땅에 옮겨다 놓았다.

 

 그 아이들이 입양되어간 가정이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어서 마이클에게 사회적 성공을 위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양아버지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세 형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 다행인 것은 양어머니는 진심으로 메리와 마이클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다. 게다가 마이클은 잘 생긴 외모에 다 음악적인 재능도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학업성적이 뛰어났다. 양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학업성적에 대해서만은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양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끝내 달라지지 않았고 한번도 마이클을 진심으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마이클이 자신이 원하는 법학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학비지원을 끊어 버리기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마이클은 공화당의 자문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사실 마이클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 쪽이었지만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에 공화당을 선택한 것이었다. 입양아란 배경을 가진 마이클과 같은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공화당에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는 수석변호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의 내면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그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뿌리째 뽑혀져 다른 곳에 이식되어진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근원적인 불안함이었을 것이다. 마이클은 20대에 같이 입양된 동생 메리와 아일랜드의 수녀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수녀원에서는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를 거부한다. 마이클과 메리를 입양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버라 원장 수녀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음에도 그들을 입양보내는데 개입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거의 책의 말미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이클과 메리가 수녀원을 방문한 지 3주 뒤에 마이클의 어머니 필로미나가 수녀원을 찾아 바버라 원장 수녀를 만났지만 원장수녀는 마이클이 수녀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 후 30대 때 마이클은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다시 한번 수녀원을 찾는다. 그때도 수녀원에서는 필로미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다. 수녀원 측에서 조금만 더 성의를 보였더라면 마이클과 필로미나는 좀더 일찍 만났을 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수녀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아동매매나 다름없는 행위를 한 자신들의 수치스런 과거를 드러내가 쉽지 않겠지만. 가톨릭이 지배하던 당시의 아일랜드에서는 미혼모와 미혼모의 아이는 도덕적 수치이자 죄의 대가로 태어난 아이들이기에 수녀원에 아이들을 빼앗기다시피해도 미혼모 본인과 가족들은 그러한 사실을 평생 숨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끔찍하게 지배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마이클이 미국으로 입양될 당시에 아일랜드 정부에서도 입양과정에 아동매매 등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양을 주관하는 가톨릭단체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고 묵인하고 있었다.

 

마이클과 필로미나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그 당시의 아일랜드에서 철저한 약자였고 그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필로미나가 50년이 지난 후에야 아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세상에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나 가톨릭 단체에서 자신의 잘못을 일찍 고백하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수녀원의 묘지에 있는 마이클의 비석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었다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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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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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고 산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쩌다 읽을 때마다 창피하게도 눈물이 쿡 밀려나오는 시들은 여전히 있다. 아마도 그런 시들은 잘 썼다는 느낌에 앞서 그냥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그렇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그렇고,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 그렇고, 천상병 신의 <귀천>이 그렇다. 이런 시들은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저 읽기만 해도 마음이 먼저 알아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먼저 느끼는 것이다. 

 

시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려운 시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해석이 너무 억지스럽다는 느낌 마저 들기도 한다. 혹은 저자의 지적대로  김수영 시인의 <눈>에 대한 해석처럼 너무 상투적인 것도 같고. 저자는 <눈>을 예로 들면서 좀더 다른 해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눈'을 순수나 순결로 읽는 대신 엄청난 추락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기적, 부활의 주인공으로 읽고 있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자'라는 표현은 기성문화에 저항한 로커들처럼, 근대화에 반기를 든 히피들처럼, 침을 뱉을 용기와 행위가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런 해석도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으며 독자들 스스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시에 관한 내용만을 다루지 않는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가 고3 때 한 살 위인 대학생 누나늘 짝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라든가, 또 이 시와 관련이 있는 영화 <편지>, <기쁜 우리 젊은 날>, <8월의 크리스마스>도 함께 소개하면서 시에 대한 흥미를 더욱 부추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은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을 <즐거운 편지>로 하려 했지만 편지가 먼저 나오는 바람에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란 제목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또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시인들의 사생활도 조금씩은 엿볼 수 있다.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 2>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치환 시인의 시조 시인 이영도를 향한 애절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고, 김소월의 한이 맺힌 시에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을 넘어선 애절한 가족사가 담겨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에 관한 일화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또다시 가슴이 저려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가 힘들다.  

 

한때는 우리나라에도 시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시가 여전히 읽히고 제법 팔리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모르겠다. 시가 여전히 팔리는지. 쓰고 보니 민망한 말이다. 소설이 팔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시가 팔린다는 것은 조금 불경스런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시인도 소설가처럼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을...

 

시집을 손에 들어 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몇 년 전이라고 말 할 수도 없을 만큼. 요즘 활약하는 소설가들의 이름은 가끔 들었어도 시인의 이름은 풍문으로도 전해 들은 지 오래다. 오랜만에 시, 시인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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