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티 편집부 레터에서 소식 접할 때부터 기대하고 있던 책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지음, 라승도 옮김 / 곰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봉인된 시간의 각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 가치자유와 가치판단 - 전2권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맑스에 이어 베버 ... 길 출판사 화이팅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병권 선생님의 <다시 자본을 읽자> 서두에 적힌 독서론이 새삼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를 변화시키는 주체적·변혁적 독서. 약간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어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실상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얼어붙은 영혼을 일깨우는 도끼가 되었던 책이, 굳어버린 생각과 감수성을 살아 있게 하는 망치가 되었던 책이 예전에 분명 있었는데 말이죠. 앞으로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현재 내가 어떤 앎을 욕망하고 있는지, 그런 욕망의 발로로 집어든 책이 남긴 질문이 무엇인지 말이죠.


 1980년대 출판과 독서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이 시기 출판과 독서운동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중이어서요. 그래서 이번 북클럽자본 소식지 2호에서 1980년대 출판, 독서, 그리고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북클럽자본 독서모임 자체가 ‘1980년대 독서적인 것을 지속·반복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일신의 안위나 세속적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생각해서요.


 흔히 1980년대의 책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운동권, 이념서적, 사회과학, 세미나 같은 키워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혁적 사회운동의 이론적 자원을 얻고자,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의 해답을 얻고자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고 투쟁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들의 독서에 대한 독서를 제 나름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1980년대는 사회과학 출판의 전성기로 불리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기에 출판계의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혹시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세로쓰기로 인쇄돼 있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어야 합니다. 한국도 세로쓰기를 사용해왔는데 가로쓰기로 변경된 시기가 바로 1980년대입니다. 여기에 한자어 대신 한글 전용을 채택하면서 가독성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기존의 납 활자 식자에서 사진식자기와 컴퓨터 조판이 도입돼 제작 기간이 단축되고, 책값이 저렴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출판산업적 차원에서 일어난 질적 변화 속에서 대학진학율이 30%를 상회할 정도로 고등교육을 받은 식자층이 증가함에 따라 책의 초판 평균부수는 3,000~3,300부 수준까지 상향됩니다(현재 인문/사회 분야 신간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1,000부를 넘기는 책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ㅠㅠ ).


 이런 출판산업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뭣보다 출판문화적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화과학 출판의 시대를 이끈 출판인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지요. 이미 1970년대부터 (동아일보) 해직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등장했고, 학생운동권들이 졸업 이후 부끄럽지 않게생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출판업 종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민주화운동 중에 수배나 전과기록이 남아 일반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조건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출판 행위 자체가 정치적·문화적 운동이었던 셈이죠. 한편 이때까지 한국 출판계가 저작권법에 가입하지 않아 해적출판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 복사기가 도입돼 대량복사가 가능해지면서 대학가의 서점과 인쇄가게들에서 전공서적의 복사본을 팔아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 시기 출판업을 적은 자본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었던 일종의 벤처사업적 성격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고요.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면 사회과학 서점 및 운동권 네트워크를 통해 일정 부수 이상 판매고가 보장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성과 시장, 지적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는 1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출판사와 서점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 근대출판의 역사가 여타 유럽국가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출판부수와 종수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속한다고 합니다. 1970-80년대 사회과학 출판을 이끈 주역들의 이름을 살펴볼까 합니다. 1970년대 대표적인 사회과학 출판사로 전예원, 두레, 청람문화사, 정우사, 아침, 한길사 등이 있었고, 1980년은 오늘, 풀빛, 공동체, 한울, 백산, 거름, 녹두, 미래, 학민사, 세계, 석탑, 사계절, 온누리, 실천문학, 청사, 중원문화, 지양사, 한마당, 산하 같은 출판사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양서들을 많이 출간하고 있는 까치, 돌베개 같은 출판사도 중요한 이름인 만큼 적어둬야겠습니다.


 이런 사회과학 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은 검열 등의 출판탄압으로 인해 대형서점에 진열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과학 책은 오늘날 사회과학코너에 분류되고 진열되는 책과 좀 달랐다고 합니다. ‘이념서적이라 불리는 책들이 사회과학 책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이지요. 이런 책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사회과학 서점들에서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과학 서점들은 출판사와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고리, 자율적인 문화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많은 사회과학 서점들이 대부분 폐업해서 현재 남아 있는 서점은 서울대 근처 <그날이 오면>과 성균관대 근처 <풀무질>이 유이하다고 합니다. 이런 서점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공간이 보존하고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확인할 길이 없어져서요


 당시에 존재했던 사회과학 서점으로 광장’ ‘열린 책방’ ‘그날의 오면’ ‘집현서점’ ‘장백’ ‘논장’ ‘민중서점’ ‘오늘의 책’ ‘ᄋᆞᆯ’ ‘다락방’ ‘인 서점’ ‘나눔터’ ‘전야’ ‘풀무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이오면> 서점이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으로 전통을 연속적으로 계승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풀무질>은 청년들이 인수해 경영인이 바뀜에 따라 동물권, 비거니즘, 페미니즘 등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의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1980년대는 출판-서점-독자의 네트워크가 역동적이고 끈끈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그 시대 특유의 출판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독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서점을 찾아 책을 짚어들었던 걸까요. 사회변혁을 위한 이론적 무장과 이념의 학습 같은 목적지향적 언어로 포괄되지 않는 미세한 마음의 결들을 상상해봅니다. 영화 <1987>에서 호감 가는 선배의 권유를 따라 만화동아리에 갔다가 광주비디오를 보게 되었던 연희’(김태리 분)처럼 당대 청춘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건넨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듣다 보면 책과 더불어 사람과 사회를 한꺼번에 만나는 독서를 했을 때 가공할 만한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회를 잇는 서점이란 공간은 소중한 것 같습니다. 서점뿐 아니라 자취방에서, 공장에서, 재수학원 등지에서 함께 읽기를 수행했던 1980년대의 독자들을 떠올리며 어떤 책을 누구와 어떻게 함께 읽어내야 할지 고민해봅니다.

 

참고문헌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 한겨레출판

양평·이두영·이중한·양문길, <우리 출판 100>, 현암사

정종현·천정환, <대한민국 독서사>

조상호,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 나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1호 : 기후와 마음 - 2021.여름호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잡지 [바람과 물]을 펀딩했다. 창간호가 나와 잡지를 읽었고, 창간호에 참여한 편집위원과 필진들이 대거 출연한 특강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쩌다 이 잡지의 후원자가 되었을까 하고. 직접적 계기는 김희진 편집자의 인스타 홍보글이었으나 좀 더 거슬러올라가 내 나름의 작은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작년 여름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최한 편집자 특강을 수강했다. 문학동네 비문학팀의 이연실 편집자, 은행나무 해외문학팀의 심하은 편집자, 사계절 출판사의 김태희 편집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여기에 더해 유유 출판사에서 간행한 '~~책 만드는 법' 시리즈를 접하면서 '편집자의 일'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알게 되었다. 이때 사회과학 출판을 담당해주신 편집자가 전前 반비 출판사 편집장 김희진 편집자를 알게 되었다.

내게 반비 출판사는 건축, 환경, 페미니즘을 주제로 좋은 책을 내는 '작지만 튼실한 중소출판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반비가 업계 최고라 할 수 있는 민음사의 임프린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출판사'라는 인식이 틀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 모 출판사와 임프린트의 관계를 알지 못해서 - 여튼.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나름의 출판사 분류법이 하나 있는데 가격과 관련된 것이다. 12000/15000/16000/18000/20000 이런 식으로 백 원 단위 이하가 0으로 채워진 가격과 그렇지 않은 가격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책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잘 보면 출판사의 가격정책에 따라 백 원 단위 숫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체계와 통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확인을 위해 알라딘에서 반비 출판사의 도서목록을 확인해본 결과, 내 예상에 비해 500원으로 끝나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후자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완독한 책으로 <후쿠시마 이후의 삶>, <논객 시대>,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냉면의 품격>이 있고, <나의 조선미술 순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토록 두려운 사랑>,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을 팟캐스트, 잡지 릿터, 저자 강연 등으로 접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목록을 열거해놓고 보니 <후쿠시마 이후의 삶>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 환경 이슈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를 개안하게 만든 이슈가 '탈핵''탈원전'이었고, 2016년 정외과 수업에서 페미니즘과 환경 같은 비주류(아직도 유효한 명명이려나?) 정치학을 배우면서 경주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해에 포항에서 지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전의 기숙사에서 책상이 흔들리고, 일렬로 세워놓은 책들이 쓰러지는 정도로 맞닥뜨렸던 지진의 체험. 그런 환경에서 <후쿠시마 이후의 삶>, <한국 탈핵>을 읽고 좀더 심화학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환경이슈를 어젠다로 삼는 단체에 가입해 밀양에도 다녀왔었다. 하지만 아직 내 안의 녹색정치에 대한 비전과 가치관이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보니 몇 번 기웃거리다가 흐지부지 되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녹색평론선집이나 환경운동, 생태정치의 고전격에 해당하는 책들을 읽어봤지만 깊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어조에서 선각자의 메시자주의적 비장함이 풍기거나 시민사회와 동떨어진 것 같은 도덕주의적 언사가 심리적 거리감을 형성시켰다. 근대성이나 물질문명의 반생태성, 폭력성을 지적하며 자연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어딘가 허공에 떠 있는, 무엇보다 지적으로 불성실한 원론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나 자연에 선험적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상상적 자연'을 발명하고 있다는 혐의를 짙게 풍겼다.


당시 교수님이 이성과 합리의 언어로 생태정치적 의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뭣보다 '감수성'의 차원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주셨는데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당시의 나는 고도로 세련된 이성과 합리의 이성체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던 터라 시기상조였던 것 같다. 이를 테면 어깨 대신 머리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상태였달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뭣보다 생태적 이슈를 내 현실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미흡했던 것 같다.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태위기의 현황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북극에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위기에 처해 있고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구호에 익숙해져 시큰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이전에 생태 이슈에 대한 학습과 경험은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성격이 강했다. 비건 페미니즘, 비거니즘, 제로 플라스틱 활동가, 해양생물 플라스틱 이슈, 공장식 사육, 치킨 관련 행사장에서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등등 뉴스를 꾸준히 접했지만 진지하게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단계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같은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브한 수준에 도덕적 감각이 생겼고, 주말에 플라스틱 재활용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잠시 반성하고, 정육코너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단백질 보충을 위한 거니까' 자기정당화를 하고 닭가슴살을 구매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외식할 땐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 '인류세'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내 생활세계와 생태이슈가 다른 시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텍스트로 존재하나 실감하기 어려운 조합이 아니었다. 이제 시민으로서, 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동물권/비거니즘/인류세/기후위기 같은 주제에 대해 내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정치적 포지셔닝을 가져갈 필요성을 느꼈다. 그야말로 '보편적'이고도, 현재적이고, '인문적'인 문제였기에 사유의 권리와 의무를 방기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지적,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고자 (라고 하면 좀 거창하고 비장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바람과 물>을 펀딩했고, 창간호 '기후와 마음'을 전달받았다.

가장 놀랐던 점은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발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2015년에 한국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여해와함께로 단체명을 변경했기에 발행 주체는 재단법인 여해와함께이다. 3년 전에 열심히 공부했던 '1970년대 여성 노동자 글쓰기'는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발행한 잡지 '대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978년으로 기억하는데 월간 <대화>에 석정남의 수기가 실리면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후 <공장의 불빛>이란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된다. <공장의 불빛>의 석정남, <서울로 가는 길>의 송효순, <빼앗긴 일터>의 장남수 를 비롯해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야학에서 글쓰기 수업의 결과물을 엮어 펴낸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같은 책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활발히 나오게 된다. 이런 새로운 문화, 정치운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리스천아카데미 같은 종교단체의 사회참여(+노동운동, 노동조합), 의식 있는 대학생들의 야학 활동, 노동자들의 앎에 대한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고된 노동 끝에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휴식으로 시간을 채우지 않고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해 자취방에 모여 읽고 쓰고 토론했던 노동자들. '(자기)해방'을 위한 공부이자 글쓰기의 역사적 사례로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쟁점과 영감을 제공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소외를 사회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동자운동, 빈민운동 등을 이끌며 사회의 '인간화'를 추구했던 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각 종교들 간 공존과 조화를 표방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또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배곳 바람과 물'로 확장되었다. 개인적으로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주관한 포럼에서 민중신학 연구자 김진호 선생님과 불교철학자 조성택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 신기했다. 인연, 연기설 그런 재질...

먼저 잡지에 대한 내 주관적인 인상은 다음과 같다. 만듦새는 굉장히 괜찮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분량은 조금 아쉽다(요즘 잡지들이 경량화되고, 글의 부피도 짧아지고 얇아지는 추세라지만 그래도... ㅠㅠ).

아마 가격적인 측면도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다 보니 기존 제작비용 자체가 늘어났을 지도 모르겠다. 강연에서 디자이너 분이 설명해주신 내용을 상기해보면 파란색 컬러인쇄를 따로 해야 하는 공정이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컬러토너의 낭비/폐기를 발생시키지 않고자). 이렇듯 미래에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환경비용을 포함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형성된 기존의 가격대에 비해 환경친화적 선택과 소비가 좀 더 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착한 가격'이란 표현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와 비인간존재'에 마음을 쓰는 사람의 세력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로다가 접근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실제로 비거니즘이 확산되는 국면에서 대기업 차원에서 '경제적 합리성'의 작동결과로 두부면, 두부패티, 채식 버거 같은 신제품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일상에서 보다 쉽고 친숙하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제와 필진이 다양해서 좋았다.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고 짧다면 짧다고 볼 수 있는 '3년'이란 기간 동안 '프로젝트'로서 <바람과 물>의 포지션을 생각해봤을 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한상 차림'을 내놓고, 여기서 각 독자들이 자신에게 좀 더 와닿는 주제를 다루는 '전문점'을 찾아나가는 방향을 생각해보게 된다. 혹은 독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접하는 과정에서 '생태적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런 관점을 잡지가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매우매우 유의미할 것이다.

특강 자리에서 팟캐스트, 뉴스레터, SNS 등을 통해 접했던 분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일상기술연구소>의 제현주 대표님(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에서 하신 인터뷰도 좋았다!), 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밀레니엘 저널리즘의 대표주자 <뉴닉>의 이소연 대표님, <혼밥생활자의 책장>을 운영하시는 전 PD-현 기자의 김다은 님, 동물해방물결의 이지연 대표님 등 코시국에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뵐 수 있어 뜻 깊었다. 특히 이소연 님과 이지연 님은 나와 또래이다 보니 그분들의 성장과정과 현재 활동이 시사하는 바가 좀 더 남달랐다. 리더라 불리는 이들의 시야와 실천성, 비전은 다르구나, 멀리 보고 사유의 높이가 높고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활동하시는구나 느꼈다.

이번 호를 통해 제노사이드에 비견되는 '에코사이드' 개념을 알게 되고 더불어 기후위기를 인권과 민주주의, 정치의 문제로 좀더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제현주 님의 '510억 톤이라는 문제'에서 너무 복잡한 문제인 만큼 단순하게 숫자로 표현된 기후위기의 현주소와 과제를 알게 된 것, 각자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방향을 보고 협력하고 연대했을 때 어떤 콜라주가 완성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호를 읽는 동안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비건지향인'이 되었다는 사실(그래서 내 광고에 응해 후원자 이름에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을 알게 되어 오랜만에 만나 메밀 막국수와 메밀전을 먹었다. 유학 중에 방학을 맞아 귀국한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되었는데 자신이 비건임을 알려줘서 돌아가기 전에 비건식당 맛집을 잘 찾아서 같이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고 바꿔보고 배워나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