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원사람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기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수원에서 살게 될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골목골목을 누비고, 밤 8시가 넘어 캄캄해져 조급한 마음으로 가슴이 터져라 집까지 뛰어간 적이 있고, 문방구 앞에서 딱지, 미니카 등 모르는 아이들과 같이 놀고, 초3 때 비슷한 또래의 아이에게 '씨팔' '개새끼' 같은 욕을 처음 배웠고, 아빠 따라서 몇번이고 다녔던 숙지산(의 족구장), 팔달산에 올라가 아이들과 드래곤볼 상황극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는 화서동, 인조잔디가 깔리기 전 흙바닥에서 점심시간이면, 심지어 쉬는 시간 10분에도 나가서 뛰어놀았던 율전초등학교, 성균관대를 가로질러 다녔던 20여분 정도의 정천중 통학길, 밤꽃 향기가 풍기는 구간이 있었던 50여분 정도의 동원고 통학길, 피씨방들, 친구네 아파트들, 인근에서 인조잔디가 가장 먼저 깔렸던 상률초등학교, 북수원도서관, 얘들과 가끔 가곤 했던 북수원 온천, 천천동의 학원가, 저녁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걸었던 화성행궁-초3?초4 때 참여했던 사생대회도 여기서 했었다, 고등학생까지 거의 유일한 영화관이었던 수원cgv, 양념감자(양파맛) 먹으려고 5살 정도였던 여동생 손을 잡고 갔던 화서시장의 롯데리아, 가족들과 운동하러, 자전거 타러 갔던 서호공원, 비행청소년을 만나 삥 뜯길 뻔했던 지동 시장,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만석 공원(고3 때 친구들이 비행청소년들에게 핸드폰과 MP3 등 전자기기를 다 뺏긴 바 있는), 광교산 보리밥, 막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 홍등가를 지나 1시간 동안 걸었던 새벽 길, 수원국제연극제를 보러 갔던 정자동의 SK아트리움, 이름만 들어본 파장동-우만동-고색동-오목천동-영화동... <문라이트>-한의원-나혜석거리를 만나봤던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연을 보러 몇 번 방문한 적 있는 영통, 그리고 곧 열릴 수원재즈페스티벌을 구경하기 위해 최초로 방문하게 될 광교신도시. 

 

 20대 초반을 함께 한 대전이란 도시와의 추억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대전 엑스포 이응노미술관, 탈북다문화멘토링 친구와 함께 갔던 카이스트, 유성온천에서의 온천욕과 오모리 찌개, 대전 아트시네마-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사요나라, 안녕! 용문객잔, 미치광이 삐에로 등등등-, 선뜻 자신의 보금자리 한켠을 내줬던 후배의 자취방, 자동차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들렸던 혜화문화관 옥상, 나만의 노래방이 되어주었던 용운터널, 복도훈 선생님의 강추로 먹게 된 농민순대, 교수님 차 타고 다녔던 원미냉면, 시 모임 '시시'에서 갔던 탄다 디비라- 대패삼겹살 집, 튀김소보로 성심당, 가끔 걷곤 했던 도시 대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에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부암동, 숱하게 들렀던 국현미에서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빌 비올라의 <트리스탄의 승천>과 <불의 여인> 이때를 꼽을 것 같다, 시청 교동 전집, 광화문에서 세월호 천막과 탄핵 시위, 을지로 모듬순대, 지인의 옥상에서 올려다봤던 별들Estrella, 2010년 1월 뮤즈의 공연을 시작으로 몇 번 공연을 보러 갔던 올림픽공원, 2008년 내 생애 첫 콘서트였던 에이브릴 라빈 3집 내한공연을 봤던 악스홀(yes24 라이브홀), 국현미-서울시립미술관을 몰랐던 시절에 다녔던 한가람미술관, 청년 할인이 끝나기 전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예술의 전당, 이제 일산으로 이전하면서 갈 일이 없게 된 매봉역의 EBS 사옥에서 봤던 <스페이스 공감>-충격으로 따지면 잠비나이 1집 공연이 최고였지만 감동으로 따지면 누구를 꼽을 수 있으려나- 대학로에서 만나 성북천을 따라 고대 극회동아리 동방까지 갔던 밤 산책, 모이면 3~4차까지 가곤 했던 스무살의 술자리, 외대 역 근처에서 블로그 이웃들끼리의 회동(달팽이 님의 환대), 석계 역에서 먹었던 딱딱한 떡볶이와 곱창볶음, 날 좋은 날 걷기 좋았던 돌곶이 역에서 한예종 가는 길, 고대 생활도서관, 법학관 옥상에서 먹었던 피자, 맥주와 소시지가 맛있었던 독일 주택, 이제는 신촌에 사라지고 혜화에만 남은 도어즈, 이제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를 보러 들렀던 합주실, 알라딘 중고서점들, 이음책방, 종로서적이 들어서기 전에 애용했던 종각역 반디앤루니스, 세계적인 작가들과 석학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교보생명 23층 컨벤션홀, 가장 문학적인 체험을 했던 북촌 창우극장,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극장 위치를 찾지 못해 몇 번 표(생긴 표이긴 했지만)를 날렸던 대학로, 전국고등학교 독서감상문말하기 대회? 참석차 두 번 들린 바 있는 서초동, 들뢰즈 사후 20주기 학술행사 보러 처음 가봤던 서울대, 샤로수길 베트남 음식, 술 취해서 들어가 있었던 신촌의 어느 PC방 화장실- 알라딘 중고서점 대학로점 화장실 - 신촌 우드스탁 화장실 ... 종각? 종로 쪽 포장마차에서 외국인 한예종 영상원 교수랑 동국대? 영화과 교수랑 술 마시고 김승옥 서울 1964 겨울 얘기하다가 토함 - 첫 번째 구토부터 올해 삼일절 잭 다니엘 붓다가 한 구토까지... 조성룡 건축가와 함께 구경했던 선유도 공원, 신형철 평론가에게 싸인을 받았던 서촌 이상의 집, 김경주 시인을 처음 만났던 상수 이리 카페, 잠실 종합운동장, 삼각지 선방, 남산, 동국대 양 적고 맛 없었던 학식, 등록금 인하 현수막(2011), 아트하우스 모모 - 캐롤, 파우스트, 만신, 나의 시 나의 도시, 헤르보르 이야기, 타인의 삶, 공동정범, 낙원상가 앞 1500원? 2천원 짜리 국밥, 안암 참치무한리필, 학림다방, 압구정cgv 늑대아이 gv 이동진, 씨네큐브 미라클 여행기 허철(곧 만나게 될 김종관 정은채), 상상마당, 카페 꼼마, 돈키호테의 식탁, 명동역 씨네 라이브러리 외국영화잡지, 빨간책방 카페 이동진, 합정역 홈플러스, 인문카페 창비(합정 시절, 망원 시절), 사당 양꼬치, 구로cgv 베트남영화제, 광장시장 파전 떡갈비 족발?, 수유너머/수유너머104, 안국동 W스테이지 열린연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 서촌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 있는 한옥식 카페... 막차가 끊긴 사당, 막차가 끊긴 구로, 수원역, 병점역, 금정역? 여의도 KBS 탑밴드 로맨틱펀치 등등, 여의도 2만원 짜리 노래방, 신촌 찜질방, 용산 asus 서비스센터, 용산 아이파크 스타리그 4강전 이제동vs이영호, 이태원 Rabbit hole, 이태원 red rock 생맥주, 홍대 미대 실습실, 연대 도서관 대학생고전읽기 토론대회?, 굽은다리역, 노량진? 옥탑방 올리브, 불광역 혁신파크, 푸른역사아카데미, 통인시장 튀김떡볶이, 홍대 레드빅스페이스, 노랑통닭, 썬더치킨, 건대 석촌호수 슈퍼문, 아트앤스터디, 대안연구공동체, 명지대?, 중앙대, 한양대 레드벨벳?, 서강대 맑스코뮤날레, 성공회대 맑스코뮤날레, 서강대 카페 숨도, 산울림 소극장, 대학로 나온씨어터, 연우소극장, 명동프린스호텔 별관 황현산 조재룡 보들레르 말라르메 한용운, 대학로 예술가의 집 김중혁, 황정은, 오은, 박준,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추억-Adieu, Paradise.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으로 이전하기 전, 낙원상가 4층에서 <우리들>을 보았다. 개봉했을 때 놓쳤으나 어떤 기획의 일환이었는지 몰라도 아트시네마에서 단발적으로 상영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마 일요일로 기억된다. 생각보다 극장에 빈 자리가 많아서 아쉬움이, 예상 외로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오셔서 놀라움이 일었다. 영화 상영 전 내 주변에 앉았던 관객들의 대화와 영화 상영 이후 엘리베이버에 동승한 중년 부부의 대화는 주로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와 공감으로 이뤄졌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질문의 책>에서 네루다가 던졌던 질문들을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게 던지며, 최초의 순연한 마음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려 간지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한데 그 마음을 움직였을 때 오는 느낌이 너무 망연해서 설핏 설움이 닥쳤을 지도.

 14년에 아트시네마를 자주 찾았다. 14년 겨울에 불현듯 걸려온 전화를 끊지 못하고, 1시간 정도 통화를 하는 바람에 여차저차해서 공연 관련 멤버십에 가입을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가입선물 식으로 끊은 뮤지컬 <카르멘>은 성에 차지 않았고(바다 대신 차지연 이 카르멘으로 공연하는 분을 봤다면 조금이나마 만족도가 올라갔을 것 같지만), 후에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 공연이 카르멘과 같은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2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콘서트는 몇 번 가지 못했다. 박재범-그레이-로꼬, BMK, YB 정도가 생각나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스트레스 풀자는 심산으로 가입했으나 시간이 안 맞거나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돈을 버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였던 ...

 그나마 이벤트 식으로 연극, 영화, 전시 등의 티켓을 추첨을 통해 줬는데 아무래도 경쟁률이 낮아서 그런지 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볼 기회가 많았다. 아쉬운 건 1인 2매였으나 대부분 1매를 버렸다는 것. 매표소로 향하는 사람을 붙잡아 표를 줄까도 생각해봤지만 고작 해야 눈에 잘 띠는데 티켓을 올려놓고 온 게 전부였다. 미국으로 유학 간 Y와 <안드레이 류블료프>를 같이 본 기억(나는 GV까지 듣고, 그녀는 영화가 끝난 다음 가버린 기억), 순천에서 온 친구 J와 파졸리니의 <종이꽃> 단편(아마 제목이 종이꽃이었을 것이다. 로마? (혹은 파리)의 거리와 카스트로, 정치인들의 이미지가 몽타주되면서 낯선 감각들을 촉발시켰던)과 강도와 살인사건으로 당대 이탈리아 사회의 어두운 면을 풀어낸 장편을 같이 본 기억 등이 동반관람의 몇 안 되는 추억들이다.

<철의 꿈> <거미의 땅> 전위적인 한국의 다큐멘터리들도 좋았고, <바이 바이 몽키>(마코 페레리), <거울의 여자들>(요시다 기주) 같이 평생 이름 한 번 들어보기 힘든 영화를 보기도 했고, <솔라리스>를 바로 이 극장에서 봤으며,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의 GV로 정성일 평론가를 처음으로 영접했으며(질문해주신 분 중에서 영상원은 아니지만 한예종에 다니신다고 밝히신 분이 학교건물이 있던 터가 예전에 고문실로 쓰여서 그런지 땅을 파보면 유골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비록 나는 조는 바람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코언 형제의 <블러드 심플>을 보기 위해 모인 영화학도들, 영화인들 - 한예종 점퍼 등 -을 보며 같은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각기 다른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게 문학작품의 낭독이나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모인 공동체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고, 극장에서만 두 번 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을 처음 본 극장이 이곳이었으며, 마이클 만의 <히트>를 틀 때 지금까지 극장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큰 음향으로 인해 귀가 떨어지는 줄 알았으며(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수준... 영화를 보고 난 후 얼마간 귀가 멍멍하고, 이명 같은 게 들렸을 정도로. 사실 난 <히트>보다 <콜래트럴>을 더 좋아한다. 그래도 <히트>에 어렸을 때 재밌게 본 <세인트>의 주인공 발 킬머가 나와서 좋았다. 또 다른 아메리칸 뉴웨이브의 기수 브라이언 드 팔마 최고작으로 나는 <스카페이스>를 꼽겠다. <언터쳐블>도 괜찮았지만. <미션 임파서블>을 다시 보면 순위에 변동이 있을 수도?!) 모두 낙원에서의 일이다. 왕빙과 더불어 끝까지 다 보는 게 도전이었던 자크 리베트의 <미치광이 같은 사랑>은 낙원인지, 서울극장인지 살짝 헷갈리는데 아마 낙원일듯. 중간에 가야 해서 그랬는지 가끔 의자들 옆 복도에 서서 영화를 보던 기억 또한 낙원 시절만의 전유물이다.

 

 

 서울에서 잠을 잔 적이 별로 없다. 날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첫 차 타고 집에 와서 잤으니까. 데이트는 서울에서 했지만, 사랑은 수원에서 나눴다. 아마 서울에서 살았다면, 서울에 내 집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있었다면 많이 달려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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