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나라 혹은 선진국에 가면 그 나라의 좋은 면이 부각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편파적 관점이랄까. 적어도 내게는 독일이 각계 각층 인사들이 롤모델로 꼽는 킹왕짱 나라로 지난 몇 년 동안 회자되었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교수님들은 독일 대학의 학비와 유학생에 대한 독일 정부의 대우를 높이 샀다. 아이를 낳았을 때 지원되는 생활비, 보모 는 처음 들었을 때 꽤 쇼킹하기까지 했다. 비정상회담의 다니엘을 통해 노잼 이미지가 굳어지긴 했지만 아무말대잔치와 어그로 키배로 얼룩진 온라인상에서도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게 합리적인 토론을 이어가는 성찰적 면모가 한국에 비해 두드러진다고 하니 역시 칸트의 나라-철학의 나라라 불릴 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은 공무원 생활을 때려치우고, 소설가-번역가로서 삶을 개척한 배수아 의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핫한 곳으로, 페이스북 포스팅에 따르면 성폭력 또한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지인이 베를린에서 1년 정도 생활을 하면서 만든 팟캐스트를 통해 베를린이란 도시와 베를리너로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집값이 비싸져 다른 도시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지인은 베를린에서 프랑스인 룸메이트와 함께 지냈는데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살며 클럽으로 출퇴근했던 그녀의 마음이 이제 조금 이해될 것 같다고, 자기도 또 한 번 기회가 된다면 혹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문화예술의 도시, 가장 리버럴한 도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글로벌한 공간, <생각은자유>에 그려진 베를린 또한 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2 연구년을 맞아 베를린에서 1년 동안 생활하게 된 극작가/교수와 배우 부부(아마 아내가 배우였던 걸로 기억). 전반적으로 연극은 이 여행-체류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외국에 나오자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좀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독일사회를 거울 삼아 한국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구도는 내게 굉장히 익숙했다. 싱가포르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로 나가야만 내부가 보이는 안과 밖, 주체와 타자의 변증법적 운동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한 달 동안만큼은 한국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정치, 사회 면의 기사들이 알게 모르게 행사하던 중력으로부터 풀려나 부분적 무중력 상태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무관하다는 느낌 - 마치 이전에 신자유주의 사회가 각자도생하게 만듦으로써 개인으로부터 공동체적 감각을 박탈시킨다는 지적, 바로 상대방의 고통과 불행이 나와 '무관'하다는 감각을 만든다는 지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세 번째 출국만에 1달이란 생활 리듬이 교체되는 기간 동안의 타지 생활을 통해 모국어-모국과 이어져 있던 심리적, 정신적 탯줄이 끊어진, 실은 끊어진 건 아니지만 너무 익숙해져 느껴지지 않았던 텐션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의식한 순간이었다. 어쨌든 나처럼 고국에 대한 관심에서 풀려나는 경우와 외국으로 유학 간 예술가들이나 학자들이 종종 보인다는 '애국심 포텐'이 터져 정신적 고아 상태를 상징적 아버지와의 유대를 통해 극복하는 경우 두 가지 유형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애국심 포텐'이라 희화화시킨 감이 있지만(사실 극중에서 한인협회 관련 이들을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감이 있다. 보수라기보다 국가주의적 성향이 짙은 국뽕으로 말이다.) 사실 공동체적 감각의 각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경계가 해체되고, '한민족' 감각이 피부에 뿌리내린 세대들이 다 가고 나면 어떤 구호와 논리와 감각으로 우리가 공동체임을 자임할 수 있을까, 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 민족주의의 문화적 유전자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기미가 보이지만 베를린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304켤레의 구두 퍼포먼스를 하고, 탄핵 정국에서 시위를 하는 등 이역만리의 타지에서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시민권 여부를 떠나서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했다손 치더라도) 공동체가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공동체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상상될 수 있는지, 다르게 상상된 공동체가 어떻게 도래할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3 혹자는 이 연극이 에피소드의 나열에 그쳤다고 평가했는데 나 또한 일기와 기사의 조각들을 이어붙인 에세이 혹은 다큐멘터리를 읽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연출가/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걸 일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서술한 감이 있어 좀 더 작가적 관점이 투영되어 입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아쉬움이 남았다. '생각은 자유' 구호가 결과적으로 너무 나이브하게 들렸달까. 그건 한국사회의 모순과 갈등에 작가이자 시민으로서 개입하려는 연출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문매체에 기고를 하고, 퍼포먼스를 조직하고 등등) 한 발짝 뒤에 서서 관찰자의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아서였달까. 한마디로 일반적인 의미의 '연극적'이지 않은 연극이었다. 다큐멘터리 연극 장르를 표방했다고 하나 지식인의 고뇌를 바라보는 관객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니 수평적, 민주적인 소통이 어려웠다고 할까. 가장 민주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연극의 장점이 어떤 부분에서 발현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처지고 지루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이렇게 극적 사건 없이 일정한 톤으로 이어지는 연극치고) 소소한 재미와 유머가 흘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지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자리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p.s 그러고 보니 베를린'자유'대학... 베를린이란 도시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언젠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