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형이상학 민음사 철학 에세이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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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자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가장 유명한 소설의 도입부로 꼽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소설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암시하고 있고, 대구를 통해 수사학적 효과를 내고 있기에 소설적으로 좋은 문장이기에 틀림없지만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지는 건 문장의 역도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나름나름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다. 비트겐슈타인이었다면 이 명제가 유의미한지 무의미한지 구분했을 테지만 문학에서 좋은 문장은 비문非文이거나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문장은 인생과 행복에 대한 톨스토이의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다. 이를 테면 톨스토이와 같이 러시아 문학계의 대문호로 뽑히는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이라면 톨스토이와 반대로 썼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행복과 불행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점이다. 행복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모두 행복한가, 불행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모두 불행한가 같은 질문들이 촉발되고, 본능적인 정열에 이끌린 안나-브론스키 커플과 의무와 책임을 따르는 레빈-키티 커플 모두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나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어떻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평가 이현우는 행복해야 한다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 삶이 행복하다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행복에 대한 물음은 불행이나 결핍의 자각에 따른 반작용인 경우가 많기에 행복이라는 인위에 얽매이지 않은 무위적 상태가 행복하다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내리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행복의 형이상학을 주창하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진리와 사건의 철학자 바디우는 언어학적 전회 이후 언어의 의미 해석(해석학), 언어 게임의 규칙(분석철학), 새로운 삶의 형식들-복수성의 발명(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반철학자들의 세이렌의 노래에 맞서 진리로의 여정을 떠나는 오디세우스를 자처한다. ‘존재는 언어에 선행한다는 명제로 주체는 술어의 수행적 효과에 불과하다는 주체의 죽음을 부정하고 제1철학으로서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복권시킨다. 진리철학은 다시 이론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삶을 철학의 무대로 불러내고, 행복은 당당히 주인공으로 사유의 향연에 중심에 선다.

 

1 행복은 진리들에 이르는 모든 통로를 가리키는 틀림없는 표지이다.(10) 행복은 미덕의 보상이 아니라 미덕 그 자체이다(스피노자, 11) 9 행복은 오직 개별자로서 주체 됨을 받아들이는 자를 위한 것이다(53). 그의 통찰을 빌리면 웰빙부터 행복에 대한 담론이 양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질적 행복에 있어 변화가 미비한 한국사회의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추구한 행복은 사실 실제적 행복아니라 만족이었을 지도 모른다. 부연하자면 행복의 성취보다 불행의 회피에 중점을 두고, 불행하지 않음에서 만족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행복이라는 정상summit에 도달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외부의 물질에서 행복을 찾는 소유하는 삶이 아닌 성찰적 태도로 내면을 보살피고 다스리는 존재하는 삶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분명 행복의 기준을 사회에서 제시한 척도가 아니라 자율적 주체에 두는 것은 핵심적인 사항이지만 이 또한 만족 추구의 변형된 형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일례로 달관 족이라 불리는 사토리 세대는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미니멀한 일상 자체를 긍정하는 모습으로 내면적 행복으로 충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불안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를 테면 탈정치적 지평에서 행복은 행복감이라는 형태의 심리적 차원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정신승리가 아닌 존재의 승리, 유한성에 맞서 유한성의 무한한 향유일 때 행복은 오롯이 삶에 깃든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철학은 구체적인 처세의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지만 나침반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자 진리와 친구가 되는 삶의 태도이자 방법이고, 온전히 진리를 따랐을 때 행복이라는 참된 정동이 젖과 꿀처럼 흐를 것이다. 행복은 일정 정도의 절망을 요구하기에 우리는 안전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바디우는 이 위험성과 고단함을 받아들이고 충실성을 견지하라고 한다. 그렇게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은 행복하자라는 혁명적 욕망을 설파하는 보편적 구호로 답변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형이상학,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민음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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