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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작품 수록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평점 :
도도는 있고, 디디는 없다.
단순하다. ‘있는’ 디디는 단순해지자고 자신을 다그친다. 단순해지지 않는다. 단순히 단순해지자는 것인데 생각한다고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단순하게 살기로 한다. 단순하게 먹기로 한다. 생곡을 먹는다. 눈썹이 빠지고 있지만 이 또한 단순화의 과정이리라. 단순한 눈썹과 단순한 위장과 단순한 손톱과 단순한 정수리로 갖게 되면 단순해질 것이다. 단순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도는 있고, 디디는 없다.
단순하지 않다. 있었던 ‘도도’는 있고, 앞으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있었던 ‘디디’는 없고, 없을 것이다. 있는 지도 몰랐던 벽은 있는지 몰랐을 때도, 있는지 알았을 때도 계속 있는데 ‘디디’는 없다. 옥탑방에서 ‘도도’를 기다리는 게 좋다고 말해주던 ‘디디’도, 소설을 읽고 ‘도도’에게 이야기를 해주던 ‘디디’도, 버섯을 머리를 한 ‘디디’도 없다. 없지 않았는데 없다. 없는 중이다. 단순한 방에서 ‘디디’의 부재는 최대화된다. 이렇게 단순해져야 자기 안에 다른 것이 있는데 그 동안 그러지 않았다. ‘도도’는 ‘도도’였다. ‘도도’였던 ‘도도’는 ‘도도’인 중이다. 자연스럽게, 당연하게도, 당연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 없이. ‘도도’가 ‘도도’이고자 열심을 다해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있었다. 그랬는데 또 ‘도도’였다. 어김없이, 여지없이, 거리낌 없이.
왜,인가.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하고, 무사유는 죄다. 이런 말로 이 소설은 ‘단순’해졌는가. 무사유가 죄면 죄인들은 어떤 벌을 받는가. 재판관은 누구인가. 법조항은 무엇인가. 재판장은 어디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하면서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가.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했는가. 무엇은 무엇인가. 무엇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사람은...
도도는 있이 없고, 디디는 없이 있고,가 왜 아닌가.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이것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人文’는 아닐 것인가. ‘판단이고 뭐고 없이’ 하려면 판단도 뭣도 하지 않을 때 판단이고 뭐고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몸-마음의 패턴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힘들면 적어도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판단이고 뭐고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몸-마음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흉’해진다. 단순하다. 하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나온다. 하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나온다는 걸 미처 상상하지 못한 ‘도도’는 괴로워한다. 우리는 재난교육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재난교육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재난교육을 하고 있다. 단순해졌는가? 단순해지지 않는다. 단순해져야 한다. 단순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생각해’오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다. 해야 한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