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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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플라톤


 그리스에서 철학은 서로의 생각을 경쟁하는 대화의 행위였고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행위였다들뢰즈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조금 비틀어 진리와 친구가 되는 행위라고 표현했다1여기서 말하는 친구의 의미는 무엇인가그것은 상대방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될 수 있도록,상대방의 아레테arete를 구현할 수 있도록 경쟁하는 선의의 라이벌일 것이다2그리스에서 친구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존재가 망각하고 있는 진리가 깨어날 수 있도록존재가 진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무지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친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의식할 수 있도록 이성logos을 통해 어둠을 비춰주는무지의 앎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대철학으로 무장한 문학비평의 세례를 받은 나에게 플라톤은 공공의 적의 이미지였다그는 주적이었다차이를 강조하는 프랑스 철학자들은 동일성을 강조한 헤겔의 시원을 플라톤에서 찾아 공격했고이성 중심주의에 반기를 들고 몸의 존재론적 지위의 복권을 시도하는 철학자들은 정신과 몸의 이분법적 사고의 근원을 역시 플라톤에서 찾아 공격했다. ‘이게 다 플라톤 때문이다’ 니체의 세례를 받고스피노자의 복권을 주도한 현대철학자들은 플라톤을 마치 존재의 실존을 위해 극복/살해해야 하는 프로이트적 의미의 아버지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이 친부살해는 니체의 신의 죽음에서 예고된 일이었다플라톤이 낳은 기독교의 신이 죽었으니 이제 죽어야할 건 신의 아버지플라톤이었다.


 내가 플라톤의 철학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매력 없는 철학자였다이데아론으로 표상되는 그의 철학은 나의 존재론적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할 거라 생각되었고현대사회를 사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낡은 철학일 거라 생각되었다그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기 전의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항연>, <국가>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었다. ‘플라톤은 진정한 철학자다’ 그는 끊임없이 내게 사유를 촉발시켰고 강제시켰다이데아론으로 표상되는 그의 보편철학이 지적 유희의 결과물이 아닌 치열한 존재론적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그의 철학이 현재에도 생명력이 있는 사상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들뢰즈는 플라톤이 이데아란 개념을 창조했고그 개념은 전형적인 그리스적 상황에서 산출되었음을 설명한 바 있다3그리스 사회는 민주주의였기 때문에 군주가 신하들에게 정치적 직무를 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해 권력을 쟁취해야 했다정치가가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빵집 주인부터 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한 정치가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이 주장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정치가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진경은 보편성universality과 일반성generality을 구분하면서 보편성은 어떤 것들이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법칙들인데 반해 일반성은 존재론적인 평면성이라 설명한 바 있다4플라톤이 보편성을 주장하기 위해 찾은 대상은 인간의 이성이었다데카르트가 원숭이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를 보면 생각하는 능력 = (신이 주신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란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하는 입 먹는 입’, 정치적 인간과 동물적 인간좋은 삶과 삶의 전통적 구분에서 볼 수 있듯 사고하는 능력이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인간을 동물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 지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플라톤에게 있어 정치는 철인의 일이었고철인은 이성을 극대화시킨 인물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정치가가 될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선별해 교육시켜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5을 보면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구체적으로 말하면 quantity’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플라톤이 말하는 이성이 현대철학에서 비판하는 기계적 이성은 아니지만 이성은 본질적으로 존재 전체를 직관적으로 인식하기 힘들기 때문에 존재를 부분적으로 나눠야 하고,이 분석의 과정에서 존재의 질적 차원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부분으로 나눠야만 가장 이성ratio적인 언어인 수학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고,그래야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언어로 사태를 설명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플라톤이라면 취미활동도 하면서 공부를 하는 북유럽 식 교육이 아니라 공부만 주야장천으로 시키는 한국식 교육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4시간 공부하는 아이가 10시간 공부하는 아이보다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설명해 납득시킬 수 있을까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사회에서 이성만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판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 양화된 시간개념은 매우 그럴 듯한’ 설명을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이진경은 수학언어의 이중적 성격을 지적한 바 있다6사람A와 사람B 1 1이라고 표현했을 때이는 둘의 계급적 차이 내지는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의 지평에 올려놓는 급진적radical 평등성을 담지하고 있지만동시에 둘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는 폭력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플라톤의 위대함과 한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선택과 집중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사건을 그들의 중요한 핵심개념으로 삼은 것도 동일성의 차원에서 양화된 시간의 질서에 분열을 일으키고 반전시킬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형적 시간관에서 뒤처진’ 자의 역전은 불가능하니까플라톤은 국가란 정치체의 머리를 토막 냈고정치엘리트들을 선별해서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아레테를 최대한의 양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엿보인다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그럴 듯한’ 설명에 수긍한다나는 개인적으로 수긍방식의 두 가지 양상을 발견했다.


 하나는 유전자 같은 선천적 요소를 끌어들여 이미 극복할 수 없는건널 수 없는 다리를 봉합하는 방식이다.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다’ 이 설명을 통해 내가 노력하지 않은 과거는 내가 노력해도 소용없었을 과거로 둔갑하게 되고개인의 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내가 아무리 의지를 갖고 내 현재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해도 과거에서 발생한 차이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영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자신에게 둬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는 고생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유전자에게 둬 자신은 그 과잉노동으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노력부족 같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다간단히 말하면 유전자라는 불가항력의 힘을 빌려 내 책임을 남(유전자)에게 돌려 내적으로 편해지는 것이다다른 분야보다 지성의 영역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더 팽배해있는 것 같다권투선수를 하다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안도 다다오나 남들보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공한 많은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부 앞에서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날아다녔던 천재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그들은 나와 다른 존재야선을 긋는다자기보존을 위한 자발적 구별짓기앎은 빛으로 존재하지만 무지는 어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아니 그렇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지성에 있어서 이분법적 사고방식 때문에 무지는 절대적 타자성의 옷을 입고 존재를 지적 피로호기심의 규제로 이끈다난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한줄 세우기 식 평가방식이 학생들에게 무한한 지적 피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한다지적 호기심은 절단되어 버리고한 번 낙오된 아이들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고통을 받는다한줄 세우기 식 평가방식뿐만 아니라 교육적 다양성의 부재 또한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한다국영수사과대한민국 사회에 잘 먹고 잘 살아보세말고 담론이 없는 것처럼 교육 또한 철학 없이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고 소모한다.


 내가 발견한 다른 양상은 이런 피로에 잠식당해 창조와 놀이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노동으로서의 공부를 하는 경우이다그는 공부를 할수록 피곤해지지만 공부를 통해 달성해야할 목표가 있기 때문에 공부를 수행한다그는 공부를 많이 했지만 공부 자체에서 목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과 같이 피로를 동반하는 수단적 공부를 하며 자기소외를 경험한다그의 지적 노동이 그의 것으로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외그에게 공부는 무의미하지도그렇다고 의미 있지도 않은 분열적 양상을 띠게 된다실존적 맥락에서 재의미화되지 않은 의미는 폭력적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그것은 법처럼 강제적으로수동적으로타율적으로 주체에게 방향을 제시해 이미 구성되어 있는 틀에 끼워 맞추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거기에는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이 지적하는 것처럼 폭력의 계기가 잠재되어 있다.


 작년까지 나의 공부는 후자의 양상에 가까웠다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의식했던 대상은 중학교 때부터 책을 읽은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은 아이였다내가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탕진하는 동안 그들은 책 속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 멀찌감치 앞서나가고 있을 것이었다좋은 부모 아래에서 커서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을 거라 추정되는 상상의 라이벌들그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해야 한다sollen’로 이뤄지는 노동 성격의 독서는 분명한 한계점을 갖고 있었고 독서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목적적과정지향적 행위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아니 사실 그렇게 되었다고 확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경제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금의 상태에서의 변화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2년 전 경제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한 적이 있다겨울 공사장에서 2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초반엔 일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 열심히 독서를 했지만 이내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편안하게 시간을 때웠다7졸업 이후의 진로를 가끔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철학자의 가난을 주제로 한 고병권의 강의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8. 한 문장으로 강의를 요약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최소한의 생활을 통한 철학의 극대화그들9은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고 꼭 필요한 것만으로 생활을 최소한으로 구성했고철학을 했다그들은 연인에게 충실한 좋은 애인이었다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빌리자면 나는 아주 가끔 장막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마주함을 느끼는데 그 빛이 내 몸에 작용하면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충만함에 도취되곤 한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아니 이것만큼 꽉 찬 충만감을 주는 것은 없다내가 비어있지 않으면 텍스트에서 그 빛을 뽑아낼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다암실에서 사진이 선명하게 현상되듯 빛을 빨아들이기 위해서 최대한 어둠에 가까워져야 한다여기서 어둠은 무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어둠은 미학에서 말하는 미적 무관심성의 상태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난 여전히 플라톤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 같다일상의 비율ratio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이는 가장 효율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비율을 찾기 위함이다무작정 공부를 많이 하는 것보다 철학공부외국어공부글쓰기영화보기음악듣기 등의 비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험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합리성과 효율성은 유령처럼 모든 것을 배회하고 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맥락에서 욕망은 굉장히 문제적인 성격을 띤다스피노자와 니체의 관점대로 욕망을 자연학적 관점에서 보면 욕망의 과잉상태극대화시키는 전략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데 좋은 방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욕망은 생각대로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순수한 이성적 사유를 위협하는 몸-욕망의 위협으로부터 이성을 지켜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에서 예견되었듯 플라톤은 정신과 육체이성과 감성의 이분법적 사고체계를 세우고몸을 존재론적 지위를 격하시킨다나는 육체 내지 육체적 욕망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값싸고 저열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에서 내 욕망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하고 관리할 것인가 고민했고될 수 있는 한 접촉을 피하되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경우 관조하자는 계획을 세웠다사실 순수한 관조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그 이유는 내 안에 욕망이 이미지에 반응하기 때문이다이럴 때 이성은 이미지를 사물화시켜 욕망의 흐름을 방해한다이미지에 리비도가 투여되지 않도록리비도가 어차피 회수되지 않을 테니 리비도를 투여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판단을 내려 욕망의 흐름을 조절한다여기서 발생하는 질문은 이것이다이것은 욕망의 부정인가욕망의 부정이 아니라고 해도 이것은 욕망을 극대화하는 전략인가아니라면 욕망을 공부에 집중적으로 투여하면서 확대재생산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공부에서 아주 가끔 고밀도의 농축된 쾌락이 생산되지만 일상에서 욕망의 과잉상태를 만들기 위해 자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하지만 여기서 이 모든 논의가 욕망-리비도를 하나의 화폐로 인식하고화폐를 최대로 늘려 투자처에 최대한 많이 투자하려는 사고방식이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최대한의 추구는 최선의 결과를 낳는가우리는 앞선 논의에서 그것이 항상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했다.그런데 왜 최대한은 여전히 매혹/욕망의 대상이 되는가그것은 최대한의 논리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10.


 이렇게 해서 플라톤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플라톤 철학과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서로의 아레테를 발전시켜주는 그리스적 의미의 우애philia11재밌는 점은 이 무대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래서 글 제목도 내 친구 소크라테스가 아닌 내 친구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사유를 끝까지 밀어부처 앎과 무지가능과 불가능의 경계까지 간다는 점에서 무지의 앎으로 대변되는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높이 살만하지만 플라톤의 저작들에서 등장하는 그의 변증술은 사고를 특정 방향으로 흐르게끔 유도하는 벽처럼 느껴진다이는 다수의 진리를 인정하고 않고영원불변하는 진리는 오직 하나라는 대문자 진리를 신봉한 결과로 보인다12. 그는 진리를 찾기 위해 복잡다기한 4차원적 현실을 2차원적 평면으로 만들고그 속에서 제한적 진실을 담고 있지만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어 보이는 진리의 모조품을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대화는 그것을 표현하기 아주 적절한 형식이었다서로 다른 지평에 있을 때 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예를 들어 통일에 대해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한 사람이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 생각을 말하고다른 사람은 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본 생각을 말한다면 대화는 진행될 수 없는 것이다대화가 같은 지평에서 이뤄지려면 현실의 단면을 떼어서 대화의 테이블 위에 고정시켜야 한다그 단면이 계속 변화하고 생성한다면 데이터를 통한 객관적 논증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소크라테스-플라톤은 진리는 영원불변한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었고그들의 논증의 타당성은 오직 그 지평 위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기하학을 최고의 언어라 생각했던 만큼 그들의 진리는 납작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13.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진리에 천착한 이유는 무엇일까인간은 약 십 만 년 전부터 죽음을 의식했다고 한다14네안데르탈인의 유적에서 무덤이 발견된 것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다소크라테스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 죽음 앞에서 초탈한 모습을 보이며 인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천상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기뻐했지만 나는 진은영이 지적한대로 소크라테스가 수동적 니힐리즘으로 죽음의 무의미-허무를 극복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데 동의한다15죽음에 대한 그의 초월적 태도는 삶에 대한 부정정신과 대조되는 육체에 대한 경멸을 통해 획득되는 반동적reactive 성격의 초월 없는 초월이었기 때문이다그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라진다는16태어났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존재의 모순역설과 대결하지 않고 회피한 것처럼 보인다그가 죽음이란 절대적 무의미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삼은 것이 진리의 세계,혼의 세계정신의 세계였다이런 맥락에서 그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죽기 전에 남긴 철학은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는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철학이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니라 죽음을 연습하기 위해죽음의 허무에 존재가 잠식당하지 않도록 의미의 세계를 구축하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어로 의미를 뜻하는 Sens란 단어에 방향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굉장히 흥미롭다그림 속 소크라테스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그는 몸속에 내장되어 있는 무의미의 심연에 떨어지지 않도록 천상의 진리의 세계에 자신의 영혼의 자리를 예약해두었다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진리의 품 안에 안길 생각에 그는 죽음 앞에서 기쁨을 만끽한다그의 영혼에 진리에 대한 사랑이 싹튼 순간 그의 육체엔 죽음이 선포되었고무덤이 들어섰다진리에 대한 사랑은 육체의 관점에서 보면 광기 어린 내적 분열폭력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고깃덩어리로 인식하고, ‘에 천착한 아일랜드의 화가 베이컨의 그림이 보여주는 진실은 고깃덩어리의 필연적 죽음을 받아들이지못하고 진리와 천상의 저 세계에서 영생을 추구하는 철학자의 사랑이 실은 광기이며스스로를 이 세계와 저 세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분열적 존재삶도 죽음도 아닌 중간자적 존재로 만드는 파괴적 자기소외의 행위임을 드러낸다산 죽음living dead. 신과 절대자는 허무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아니었을까의미의 세계에 사로잡힌 정신주의적주지주의적 서양전통이 죽음이란 무의미에서 신이란 절대적 의미를 추출해내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그리스고전문헌을 공부한 니체와 하이데거가 모두 허무주의의 문제를 연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또 흔히 동양적 허무주의라 얘기되는 노장사상과 서양적 허무주의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지 연구해볼 만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보자플라톤의 국가 10권에는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이 등장한다이 글은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곤 하는 예술작품의 검열문제와 연관되는 문자 그대로 고전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플라톤의 주장을 간단하고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예술작품이 나쁜 걸 보여주면 얘들이 그걸 보고 따라한다는 것이다예술작품이 본받을 만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야지 아직 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타락시킬 수 있는 불온한’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역시 플라톤의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럴 듯함에 편승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연쇄살인범과 범죄영화의 영향관계에 대해 논하고성범죄자와 포르노의 영향관계에 대해 논한다견물생심見物生心애초에 이성을 방해하는 감성의 말을 자극시키지 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이를 통해 이성중심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이성을 통해 감성과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요지는 무엇인가인간이 감성과 충동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면 사회가 무질서의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이성규칙법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감성과 충동을 자유롭게 허용했을 때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방종과 타락의 세계에 빠져든 적이 실제로 있었던가?적어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그래서 플라톤의 이 주장은 푸코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해 홉스에게 있어서 최초의 전쟁은 없었다.”는 비판처럼 플라톤에게 있어서 최초의 방종과 타락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플라톤이 말하는 감성과 충동은 감성과 충동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성에 의해 상대화된 감성과 충동으로 보이고때문에 이성의 안티테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이성중심의 관점에서 이성의 장점은 감성의 단점과 대응하게 되고이성은 인간의 영역감성과 충동은 짐승의 영역으로 구분된다17.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정의했을 때 여기에는 정치는 이성의 영역이라는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정치가가 감정과 충동에 휘둘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정치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정치가에겐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정서적 감응능력과 공감능력 대신에 냉철한 판단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지조가 요구된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세월호 사건도 결국 현 대통령이 그런 구시대적인 정치가18특히 자신의 아버지의 이미지인 카리스마적 정치가의 상을 학습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국민들은 여성대통령에게 여성적 공감능력을 기대했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는 안티고네처럼 남성화된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병권은 자신의 니체 연구서에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니체의 정치철학을 재구성해 차이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19하지만 빌헬름 딜타이와 들뢰즈-과타리가 보여주었듯 우리 안에 언제 심어졌는지 모르는 파시즘의 씨앗이 잠들어 있다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정치그러면서도 개인주의로 빠지지 않는 차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는 가능할까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정치철학을 전복할 수 있는 진보적 정치를 한국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의 나에게 이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이는 자크 랑시에르다그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란 저서에서 치안과 정치를 구분하고치안을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권력이라 설명하는 반면 정치는 몫 없는 자들에게 몫을 분배하는 행위라고 선언한다국가 1권에서 글라우콘은 법을 정의의 기원이자 본질이라 주장하며정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불의를 행할 힘이 없어서 마지못해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주장하고(359b), 개인에게는 불의가 정의보다 훨씬 더 이익이 된다고 누구나 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하고(360d),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362a). 한마디로 정의는 불의보다 힘이 약한데 그 이유는 불의를 행했을 때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정의와 힘의 역학관계에 대한 탐색은 정치철학과 법철학의 근본을 이룬다힘을 고려하지 않고 정의만 내세우면 현실적 설득력이 없고정의를 고려하지 않고 힘만 내세우면 동물적 야만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역사는 정의보다 힘의 힘이 강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물론 금방 망하긴 했지만 진나라는 법가를 통해 전국시대의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서양의 역사에서도 가치나 윤리를 내세우는 정치보다 마키아벨리식 힘의 정치가 우세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치는 가치가 아닌 힘의 영역이다정치는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같은 명제들이 도출되었다고 본다하지만 사상의 힘은 힘보다 강할 때가 있다세계사에서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낸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손꼽히는 프랑스혁명이나 조선 민중의 진보적 역량을 보여준 동학농민운동에 자유주의계몽주의 사상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내천 사상의 사상적 기반이 없었다면 사회를 뒤엎을 만한 규모의 혁명적 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급진적 사상이 시민들에게 동의를 얻고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전격적 변화를 요구하는 혁명적 운동이 일어나고이 운동이 사회에 수용됨에 따라 운동의 근간이 된 사상은 법제화되면서 현실적 효력을 획득한다사회를 실제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고 새로 제정해야 하지만 새로운 법이 통과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선 사상의 확산을 통한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관건은 현실적 효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상적 사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는 것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행적 질서에 균열을 일으켜 다른 삶-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 삶이 정치적 실천에 의해 이 삶-세계에 구현될 수 있음을 깨닫는 정치적 주체화의 지점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사람들을 평등한 관점에서 보았고제한된 몫을 더 많이 갖기 위한 투쟁이 불가피하게 때문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막기 위해 국가라는 괴물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오늘날 우리는 헌법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지만 굉장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상위 1%에게 90%의 부가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란 지배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약자들의 연대가 아닌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한 줌의 기득권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현행적 질서를 강화하는 방식의 사회의 보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내가 정치 공론장에 올리고 싶은 의제는 책 읽을 여유/자유이다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책 읽을 여유와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것책 읽을 수 있는 몫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몫을 분배하는 것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일상의사회의 비율을 완전히 재조정해 시간과 감각을 재분배하고 재배치하는 것나는 작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68혁명 당시 독일에서 이런 구호가 있었다고 한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그 전복적 전환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나는 플라톤의 제자가 아닌 친구로 계속 그와의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1. 질 들뢰즈 A to Z
  2. 고병권은 그의 여러 저서(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언더그라운드 니체)에서 이런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의 도편추방제는 독재자, 독보적 일인이 나타나 서로의 경쟁을 종식시키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지혜로운 장치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리스 사회에서 경쟁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수단적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훌륭함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적 활동이었던 것 같다. 그 훌륭함이 결과적으로 남들을 제치고 권력의 자리에 앉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경쟁 자체에서는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훌륭함의 추구가 목적이 되었을 것이다.
  3. 질 들뢰즈 A to Z
  4. http://www.nomadist.org/xe/index.php?document_srl=21437&mid=Nzine&sort_index=regdate&order_type=asc
  5.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국가를 수호하기에 알맞은 적성을 타고났는지 가려내는 일” 국가 제 2권, ‘한 사람은 한 가지 일만 잘할 수 있네’ 국가 제 3권, 천병희 역, 숲.
  6. 이진경, 수학의 몽상, 휴머니스트
  7. 니체가 (과도한) 노동을 비판한 이유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신노동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의 독서는 텍스트를 정보로 전환시키고 비판적 대화의 가능성을 현저히 감소시킨다. 비판적 대화는 기본적으로 능동적, 적극적 행위이므로 수동적 독서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직장생활을 할 당시 퇴근 후 세 시간 동안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의 직장이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곳이었다면 지금의 김연수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8. https://www.youtube.com/watch?v=Wk3z6gYmEKg
  9. 이 강의에서 등장하는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비트겐슈타인, 스피노자, 디오게네스, 예수이다.
  10.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과 영국에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퍼져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른 글 <쾌락에 대한 단상>에서 쾌락은 좋음이고, 고통은 나쁨인가를 질문으로 설정한 것도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적 도전을 하기 위함이었다.
  11.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애의 층위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익, 즐거움, 아레테.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예외들>에서 정치적 우애에 집중해 논의를 펼친다.
  12. “최선의 상태에 있는 것들은 다른 것에 의해 바뀌거나 변동될 가능성이 가장 적지 않을까? 예컨대 가장 건강하고 강한 몸은 음식과 훈련에 의해 가장 덜 바뀌고, 가장 건강하고 강한 식물은 해와 바람 등에 의해 가장 덜 바뀌지 않을까?” “가장 용감하고 가장 지혜로운 혼도 외부의 영향에 동요하거나 바뀔 가능성이 가장 적지 않을까” 국가 2권, 천병희 역, 숲. 플라톤이 무대에 올린 소크라테스의 화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연물을 통한 유비적 설명을 즐겨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연물을 통한 유비적 설명을 통해 자신의 논증의 타당성을 입증하려 하지만 인용한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완벽한 것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며, 가변적인 것은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는 그의 확신은 이런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이 자신을 바꾸기를 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네. 신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하기에 저마다 늘 변함없이 본래 형상을 견지하는 것 같으니 말일세.” 니체가 지적하듯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철학이 죽음을 위한 지식으로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시간성을 사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정신적인 것은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비시간적 존재, 탈시간적 존재로 사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간은 창조와 생성으로서의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완벽한 이데아가 존재하는 천상에 대비되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지상의 양식이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변화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13. 이진경은 <수학의 몽상>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무너뜨리는 리만기하학이 나왔을 때 수학자들이 이를 은폐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믿고 서 있는 근거grund들은 사실 심연abgrund이며, 심연에 빠지지 않도록 아주 얇은 유리판을 붙잡고 그 위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우리 인간의 실제 모습은 아닐까?
  14. 유기환, 조르주 바타이유(저주의 몫, 에로티즘), 살림.
  15.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16.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두 번은 없다 中), 비스와바 쉼보르시카,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용 부분의 다음 구절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우리가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서로 다를지라도’ 쉼보르시카는 사라짐을 허무로 인식하지 않는다. 쉼보르시카의 죽음의 운명은 현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아름다울 수 있게 만드는 장치이다. 우리가 영생한다면 우리의 현재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소한 행동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이기심도, 이기심에 반하는 이타적 행동의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타적 행위가 아름다운 이유는 개체보존의 본능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남에게 도움을 줬다는 표면적 이유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한한 삶을 남을 위해 썼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유한한 자신의 삶을 타자에게 열었을 때 삶의 무한한 지평이 열리고, 레비나스(levinas)의 표현대로 타자는 무한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17. 서양은 끊임없이 Homo ~~란 정의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구분을 시도했다. 이성이 중심이 되는 근대까지 자연과 동물은 문명과 인간의 적이었다.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나온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서야 생태주의적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동양은 처음부터 자연친화적 세계관을 강조했다. 이 차이에 대해서도 비교철학적 탐구주제로 괜찮아 보이는데 예전부터 제기된 관점이기 때문에 이미 일정 수준의 연구결과가 나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비는 서양전통의 이분법적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18. 수는 개혁한다는 개혁적인, 혁신적인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승리 이후 대통령은 자신과 굉장히 친밀한 사람만을 요직에 앉히는 낡은 정치, 썩은 정치를 고수하고 있다.
  19. 고병권,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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