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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3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월
평점 :
대학에서 인문학부의 통폐합 및 '인문학의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학교 바깥으로 인문학 강연들이 이뤄지고 있다. 대안연구공동체, 철학아카데미, 다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 아트앤스터디(인문숲)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 정도 된다. 비서울권 지역에선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 지역에선 도서관을 거점으로 인문학 특강, 저자 강연 등을 열기도 하고(정독도서관에서 특히 더 그런 것 같고, 마포도서관에서 한길그레이트북스 같이 읽는 모임도 페이스북을 통해 봤다) 서울의 인문학 단체들이 지역공동체를 찾아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특강은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하니 겉으로 보기에 인문학의 수요-공급은 풍요로워보일 정도이다. 적어도 양적 측면에서는. 혹은 양적 측면에서만. 최근에 읽은 황현산 평론가의 칼럼을 보면(아마 경향신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대학에서 HK연구교수 제도 등을 통해 논문을 양산해내고 양적으로는 인문학이 풍요로워보일지 몰라도, 그에 따른 질적 성장도 이뤘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주신다. 국제학술지(특히 미국의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이 올라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관습과 더불어 인문학 분야에서도 영어로 논문쓰기를 요구(강요)하고 있는 판국이라 모국어로 사유해야 하는 인문학이 깊은 뿌리를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였다(<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제국의 언어-학술어'인 영어, 최소한 독일어로 논문을 써야지, 그것도 안 되면 모국어를 외국어처럼 써야 한다는 웃픈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실력 있는 인문학자를 길러내는 일은 유능한 엔지니어/기술자를 길러내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고 한다. 직업상의 위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 역량을 전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까지 다른 분야에 비해 더 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과학자나 예술가에게도 통용된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이고 즉각적으로 쓸모를 제공하는 '유용성'과 멀리 있는 작업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외롭고 쓸쓸하지만, 어쩌면 좀 더 높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한마디로 인문학자는 학원에서 단기 6개월 코스를 착실히 밟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눈에 보이는 수치로 성과를 환원해 평가하고 지원금을 줄지 말지 결정하는 '조급한' 사회에서 인문학에는 잉여의 딱지가 붙는다. 내가 잉여라니. '괜찮은' '그럴싸해 보이는' '그럴 듯한' 직업에 '지원'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스펙을 생각하면 인문학은 내게 가장 많은 주고 남기지만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인문학을 스펙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려오기 하지만 거기서 인문학적인 것, 인문학의 본질을 요구할 것 같진 않다. 스펙으로서 인문학(스펙이 군사무기를 설명하는 용어였다고 하니 인문학을 들고 취업(전쟁)시장에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 책을 읽고 자유의 의미에 한층 다가섰다고 해서 그 자유가 즉각적으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최소한의 물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지-한마디로 밥 굶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걱정되는 날이면 부자 부모님에게 용돈 타가면서 문학하고, 학문했던 이전 세기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물론 개중에는 베냐민처럼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어쨌든 시민/대중인문학이 확산되면서 여러 곳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길어도 8강(8주)이어서 깊이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강의만 듣고 해산하다 보니 친구를 사귀기도 힘든 환경이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은 경복궁 맞은편에 위치한 <시민행성>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학 세미나이다. 작년에는 세계문학 세미나로 2주에 한 번씩 8번, 16주 동안 카프카, 보르헤스, 체홉을 다뤘고 올해에는 한국현대시 세미나로 개편해 황동규,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등을 읽어나가고 있다. 띄엄띄엄 읽었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작년 여름에 매봉 역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스페이스 공감 공연을 보러 가면서, 보고 나서 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날카롭게 찔리고(punctum) 베이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래서 뒹구는돌, 뒹구는돌 하는구나 했더랬다. 그런데 겨울에 작가세계 김우창 특집호에서 문광훈 교수의 김우창론에서 제2회 김수영문학상 심사평에서 뒹구는돌에 대한 비판적 비평적 견해를 접하면서 '아, 보기에 따라선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이게 소위 말하는 주례사 비평과는 다른 Kritik이구나 했다. 그리고 2월 15일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같이 읽었다. 돌아가면서 같이 읽어보고 싶은 시를 낭독하고, 낭독이 끝난 후 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내가 염두해둔 시는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였으나 다른 분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바람에 코멘트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이분의 코멘트에서 공감했던 부분은 나누고 싶어 여기 옮겨둔다.
이 시에서 어딘가 뭉개진 것들이 나온다.
뭉개진, 문드러진, 흘러내리고 있는 기형의 존재들.
희생자들은 곳곳에 녹아 흘렀다(눈)
구정물에 흐르는 종소리를 위하여(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맑은 물 /흐르고/ 흐르는 물따라/ 불구의 팔다리가/흐르는 곳으로/갈 수 있을까(다시, 정든 유곽에서)
내 노래를 주르르 흘러 내리기도 하였다(처형)
나는 너의 방이었다/(...)/풀밭 옆으로 숨죽여 흐르는 냇물이었다(세월에 대하여)
그의 목소리와 웃음과 눈짓은 흘러 내린다 집과 나무와 /전봇대도 흘러 내린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이도/흘러 내린다 (기억에 대하여)
내 사지는 못 박혀 고름 흘려요(사랑일기)
시간은 모래 언덕처럼 흘러내렸다(모래내-1978년)
왜 이렇게 흐르고 흘러 내리는가? 현실의 단단한 지반이, 육체의 유기적 조직이 무너지고 해체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의식 깊숙이 폭력이 각인된 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디가 고장나 문둥병 환자처럼 살이 썩어 녹아내리고, 인간이 벌거벗은 생명Homo sacer-고기'덩어리'로 소시지처럼 흐르는 풍경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아픈 마음은 잘 논다 놀아난다 얼싸' 이렇게 자동적으로 살아지는 생명-기계에 반발하고 저항하기 위해 시인에게 '깨어남'이 중요했을 것이다. 잠든 세상에서(몸은 녹슬은 기계, 즐거움에 괴로움 섞어/잠을 만드는 기계), 잠들길 강요하는 세상에서 꺠어있기 위한 발악으로 시인은 고통을 민감하고 섬세하게 감각하고 증폭시키는 하나의 증상/징후가 되길 거부하지 않았다(아픈 것들의 아픔으로 네가 갈 때까지/네 혓바닥은 괴로움의 혓바닥이요 네 손바닥은 병든 나무의 나뭇잎이요).
시인의 독백처럼 들리는 구절
<여러 번 흔들어도 깨지 않는 잠, 나는 잠이었다
자면서 고통과 불행의 정당성을 밝혀 냈고 반복법과
기다림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나는 놀고 먹지 않았다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날렸다>
이전 시간에 다룬 최승자와 맞닿은 부분도 많이 발견되었다. 잠자고 있는 세상, 꿈꾸는 시인. 이 꿈은 현실 너머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낭만주의적 꿈이라기보다 냉엄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뉘앙스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깨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순간이 있다. 고민일랑 다 잊어버리고 안식에 잠기고 싶은 때가... 그런데 시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망각은 삶의 죽음이라고... 그 편안함은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살아있지 않다는 가장 생생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뭉개진''흘러내림'의 이미지를 접하면서 나는 즉각적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떠올렸고, 이성복 시인이 스스로 밝힌 보들레르와 니체의 영향을 생각했다. 겉으로는 근엄하지만 속으로는 광기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처럼 그럴 듯해 보이는 현실에 내재한 광기와 고통을 드러내는 시인.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절실하게 묻고 또 물으며 찾아오는 시를 받아적는 기분으로 써낸 청년 이성복. 이원 시인은 시민행성에서 진행한 한 강의에서 '흘러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흘러내리게 하지만 그것이 얼굴 너머로 넘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이 베이컨의 윤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말은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고 적은 이성복과 공명했다. 이 시 곳곳에서 80년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현실의 갑갑함을 표현하는 '벽'이 출몰하지만 시인은 기억(대부분 한자표기)을 말한다.
'참회의 전날 밤 무릎까지 쌓이는 표백된 기억들'(다시, 정든 유곽에서)
고개 떨구면, 누룽지 같은 기억들이 일어나고(돌아오지 않는 강)
우리의 기억 속에 밥도 안 먹고 사는 사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우리의 기억 속에 꼼짝 않는,/ 앞머리 없는 기차(세월의 집 앞에서)
해장국 집에/ 들어갔다 선지 같은 기억들을 씹었다, 뱉았다(소풍)
뒹.구.는.돌.은.언.제.잠.깨.는.가.
사산아가 태어나고, 고름이 흘러내리는 처참한 이미지을 담담한 목소리를 그려내는 시 속에서 나는 베냐민의 정지변증법을 생각한다. 대답하지 못하는 세월들이 흘러갈지라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 흘러내리는 덩어리를, 흐르는 세월을, 부드러운 껍질을 뚫고 새어나오는 종기의 내장 같은 질문들을.
우연이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모래내-1978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