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21514491&code=940100&nv=stand


<청소년교육 활동가 김은산씨는 “남자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건강한 공격성을 해소할 기회가 없다보니 무기력해지거나 게임·야동·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를 발산하고 있다”며 “공격성을 풀어낼 장소, 기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소년성에 대해 생각이 점화되었다. 최근 씨네21에 연재되고 있는 김중혁 소설가의 <바디무비>에서 다룬 <보이후드>에서 '소년'이란 화두를 전달받았는데 잠복하고 있던 생각이 점화되는 순간은 이렇게 글쓰고 싶은 욕구와 함께 오곤 한다. 


 공격성. 이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이었다. 프로이트는 세계대전이 억눌려 있던 공격본능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고 그의 유명한 개념인 '억압된 것의 회귀The return of the repressed'로 설명한다. 투견, 투우 등 공격성, 폭력성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야만'이라 규정하고 문명이란 이름 아래 억압한 결과 한꺼번에 공격성, 폭력성이 표출된 거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분석의 적확성을 떠나 문명이라는 양식과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으로서 공격성과 폭력성이 조화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폭력성은 꼭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가? 경험상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격성과 폭력성-남성성과 소년성. 연결이 되면서도 다른 지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남성성의 경우 부정적인 측면은 몸소 경험했으나 긍정적인 측면은 별로 경험하지도 책에서 읽어보지도 못해 고등학교 때 괜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돌아보니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을 만한 상황이 많았다. 대부분 에너지가 넘쳐서 행동을 했거나(중학교 때 친한 친구에 대한 애정표시로 툭툭 친다던지), 어떤 불만을 참으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표출한 것이 후회의 대상이 되었다. 나이 먹고 읽은 책들에 등장한 (특히 현대프랑스철학) '여성성'은 남성성의 부정적 측면을 상기시키면서 이해됐던 것 같다. 남성성의 긍정적 측면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물론 문학서적에서 본 남성적 문체 같은 표현을 보면서 남성성의 긍정적 측면의 뉘앙스를 어렴풋이 전달받을 수 있었다. 힘 있고, 추진력이 강하고, 외향적인. 또 함성호 시인과 김소연 시인을 함께 다룬 기사에서 김소연 시인이 함성호 시인의 <키르티무카>를 평가하면서 남성적 상상력으로 쓴 시라는 표현을 듣고 스케일이 큰, 굵직굵직한, 촘촘하고 섬세한 여성적 세계와 대비되는 남성적 세계의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었다. 


 소년성에 대해서도 갖고 있는 한 가지 재밌는 이미지가 있다. 어떤 역사학자가 친일파 청산 문제 얘기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문제는 진짜 보수의 부재를 지적했는데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같으면 나라 팔아먹는 수꼴매국노 새끼들은 십대 후반 소년들에 의해 찔렸는데 지금은 그런 실행력이 강한 급진좌파 세력이 없어서 수꼴들이 무서움 없이 날뛴다는 이야기. 어쩄든 소년에겐 바로크적인 면, 과장되고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순수해질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책을 읽으면서, 특히 글을 쓰면서 공격성을 표출했다. 수능만을 위한 교육 시스템과 야자가 있던 시절의 폭압적인 남고의 관습, 그 시스템 자체인 베테랑 교사들. 폭력과 폭언을 교육이라 믿는, 아니 교육은 상관없고 그냥 학교가 굴러갈 수 있도록 편한 통제수단으로 삼는 아저씨들. 나는 그들을 혐오했다. 폭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교사의 권위를 오용하는 행태에 분노하면서 속으로 삭여야 했다. 잘못된 건 알았지만 그 잘못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할 확신이 없었고, 괜히 '나댔다가' '찍힐까봐' 피곤해질까봐 참는 쪽으로 타협했다. 덕분에 그때 내가 즐겨 쓰는 어휘는 '부조리'였다(당연히 카뮈에 심취했다). 가장 무서운 건 그 폭압적 방식에 '적응'해버린 아이들의 회고담, 직접 듣진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관리'해주시는 그때가 좋았었지라며 후일담을 늘어놓는다고 했다. 일상 속의 파시즘. 자기예속의 메커니즘. 최근엔 엄기호 등의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교사 자질의 문제가 아닌 무너진 공교육의 시스템의 문제란 건 이해했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가해진 상처를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감정은 이성보다 호소력이 클 떄가 많다. 


 한 가지 재밌는 기억은 인권조례 발의로 야자는 해제되었지만 대책은 없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옛것은 죽었으나 새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참여한 토론대회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것이었나, 교육을 위한 체벌은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뭔가 그런 풍의 주제였던 것 같은데 시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대표로 뽑히려면 A4 2~3장 분량의 글을 써서 예선(?)을 통과해야 했다. 어떻게 어떻게 예선을 통과하긴 했는데 지금도 의아한 점은 내 작은 반항심으로 선생님을 선생님이 아닌 선생이라 표현한 글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2인 1조로 참여하는 대회에서 전교권에서 노는 얘와 토론 잘하는 친구가 한 팀을 먹고 경쟁했는데 친구 조는 아마 이런저런 외부자료를 갖다쓰느라 자기 주장을 펼치는 데 부족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라 확인할 길은 요원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대회에 나가 1번 타자로 '심문'을 받고 처참하게 꺠졌다. 나는 공부 잘하는 친구와 팀을 만들어 나갔는데 친구는 완전히 이과형 인간이라 토론/주제에 열의도 없었고, 외워서 발표하라고 준 발표문도 다 외우지 못했다. 나도 열심히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결과는 안 좋았지만 나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공격성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마음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받지 않았는데 만약 심하게 받았다면, 문자로라도 얘기할 수 있었던 친구여자가 한 명도 주변에 없었다면, 약자를 비하하고 공격하는 데서 쾌감을 찾는 가학적이고 도착적인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중학생의 내가 친구들을 툭툭 치면서 잘못된 방식으로 애정표현을 한 것처럼 타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기가 속한 동일성의 세계로부터 거리가 확보되지 않으면 객관적 시선을 갖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중독의 무서운 점은 자기가 중독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 중독이라는 악무한, 인문학-비판과 성찰의 지성이 없는 사회는 경제성장이 됐든 뭐가 됐든 악무한의 길을 달리다 스스로 추락, 침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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