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rikszine.korea.ac.kr/…/article/discourseList.minyeon…
'불행한 일들이 많고, 생존경쟁이 공격적으로 격화된 시대에 명랑을 말하기가 참 그렇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또 명랑해야 된다는 생각을 나는 하는데, 명랑하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 전체, 그 힘 전체를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명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힘을 다 해서 우선 그 자리를 밝게 만들고 우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활력을 갖게 만들어주고 하는 태도다. 자기 자신도 거기에서부터 어떤 힘을 얻고 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서 희망 같은 것을 얻어내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다. 그건 이런 시대에 한 개인의 성격적 표현이 아니라 어떤 덕목의 실천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명랑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 생각하고, 사랑하고, 옆에 사람들 염두에 두고 그래야 명랑하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이럴 때 그 명랑함이 만들어지고 그 덕목이 실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랑이란 단어를 딱 듣자마자 김애란 소설가의 '달려라 아비'가 생각났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 전체, 그 힘 전체를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 요즘 정치적 냉소주의나 냉소적 우월성-나르시시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어쩌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 전체를 다 쓰지 않아서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쓰지 못하고 남은 힘이 다 쓰지 못하게끔 만든 대상을 향해 이상한 방식으로 투사된 결과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명랑했던 적이 있었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그 자리를 어둡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의 힘을 빼앗았던 적은 기억이 잘 나는데...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권태롭고, 무기력한 기분에 자주 빠지게 되는 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명랑. 어떤 위기상황을 대비해 여분의 힘을 남겨놓지 않고 다 쓴다는 것.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애쓴다'는 표현이 입가에 맴돈다. 애쓴다, 애써. 무엇이 이뤄지고 이뤄지지 않고를 떠나서 애쓰는 자세 자체가 참 중요하게 느껴진다. 언어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상실하는 사람. 진은영 시인은 모리스 블랑쇼를 이렇게 소개했다. 애쓰는 언어는 가난하면서 고귀할 것이다. '달성되기 위한 희망의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을 제 청춘을 기어코 만들어내는 젊은 시인의 언어처럼. 희망은 그렇게 가까스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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