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립도서관에 꽂혀 있는 녹색평론 1-2월호를 읽었다. 작년 9월 29일 시민행성에서 강의하신 나희덕 시인의 <대화적 스승 무지한 스승> 강의록을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에서 제안한 예술적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 아니 길러낸다기보다 학생 내면에 잠재된 가능성을 스스로 끄집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 출처가 불분명해진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필자가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청소부와 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프랑스의 문화적 수준에 대해 부러워했다는 내용.

2. 스마트폰의 유해성을 중점적으로 논의한 대담도 재밌게 읽었다. 대담자로 나오신 시민운동가 분들이 참여한 EBS토론도 봤던 터라 생각을 연장해볼 수 있었다. 중, 고등학생들이 직접 참여했던 토론회에서 '전문가' 어른들이 스마트폰이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 등등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아이들을 의식화하려는 계몽적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접근으로는 학부모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규제하는 걸 부추길 수 있겠지만 아이 스스로 자제력을 키우고 조절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적'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미 중독된 아이를 대화와 교육적 접근만으로 회유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보이는 동생을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였다. 대화를 '잘' 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겠지만 '가장 가까운 타자'인 가족 간 소통불능성이랄까... 외부의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다.

3. 사색/사유/고독 불능의 사태로 몰아가는 '스마트'폰은 학생들을 가장 광범위하게 침해하고 있지만 정부는 스마트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이를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영유아. 엄마들이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어준단다. 부모는 죄를 짓기 가장 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시민들의 무지를 탓하기 이전에 아무런 법적 규제나 공론화에 관심이 없는 정부와 핸드폰 파는 데 눈 먼 대기업을 비판해야 겠지만 시민사회에 스마트폰의 악영향에 대한 인식이 뿌리내리기 전까지 스마트폰이 뿌리내릴 몸들을 생각하면 무서운 이미지들이 육박해들어온다. 피해는 낮은 곳에서 발생한다. 스마트폰 랜덤채팅을 통한 여중생/여고생 성매매. 특목고나 자사고, 강남 지역의 아이들의 경우 스마트폰이 없거나 2G폰을 쓰는 비율이 높다는 내용이 대담에 나온다. 법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드러난 법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정의로 이끄는 법-폭력.

4. 작년 시민행성에서 들었던 도정일 선생님의 말씀.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도 스마트폰하느라 탈출하지 못했다는 내용. 지나가던 말씀으로 가볍게 던지셨는데 그땐 아마 평소에 대학강단 내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부정적 효과에 대한 걱정이 크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고 이해했다. 만약 스마트폰이 문제라 치더라도 누구/무엇에 책임을 물어야 할까. 스마트폰에 중독된 당사자? 스마트폰을 사준 부모? 이렇게 중독성이 높은 유해상품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 그 스마트폰을 각종 혜택으로 치장해 팔아먹은 핸드폰 장사꾼들? 자본주의 사회에선 피해자/가해자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의 대기권 내에선 우리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고 세월호이지 않을까.

5. 중독. 작년 6월 7일 시민행성에서 진행한 세월호 시민 집담회에서 진은영 시인은 우리 모두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녹색평론 대담에서 김종철 선생님도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쓸데 없이 이것저것하게 된다고 했다. 나도 평소에 책이 잘 안 읽힐 때 인터넷 사이트를 돌며 글을 봤던 습관이 있어 격하게 공감했다. 포털사이트에 걸린 기사들, 씨네21, 웹진 문장, 예스24 칼럼들, 페이스북, 대산문화, 민연, 블로그 등등... 하지만 그렇게 '발동'이 걸려 게걸스럽게 조각글을 읽을 때는 긴 글을 소화하기 무척 힘들었고, 읽고 나서도 남는 게 거의 없었다. 모니터를 1시간 이상 보고 있으면 머리가 조금 띵해지고, 열받는 느낌이 드는데 전자파에 맷집이 약한 것 같다. 운 좋게 노트북이 고장났고 3달 가까이 노트북 없이 살고 있는 중이다. 필요할 땐 시립도서관 정보자료실을 이용하는 데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최대시간이 3시간이라 쓸데없이 서핑하는 시간을 줄이게 된다. 무엇보다 노트북으로 흘렀던 리비도로 인한 희미한 공허감, 권태감으로부터 해방된 게 최대의 수확이다. 도서관에 올 일이 많아지니 종이신문도 읽게 되고, 인터넷으로 딴짓(?)도 안 하게 되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도 좀 더 집중력이 붙은 것 같다. 문제는 이제 노트북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 번 중독되면 끊기는 어렵지만 재개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중독의 위력을 상기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해보게 된다. 조금 거창하게 이런 생각도 덧붙여보기도 한다. 중독된, 오염된 몸을 어떻게 정화할 것인지, 해방할 것인가.

6. 술, 담배 말고 한국형 중독 금은동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SNS/야동/치킨(육식)/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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