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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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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된 말. 불어의 음악성을 닮은 음악적인 세 음절. 불.란.서. 험버트 험버트에게 롤리타가 있었다면 나에겐 불란서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불란서는 그 이름만으로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찰스가 아니라 샤를이라서,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성씨로 착각할 수 있는 '장'이 있어서(미국에도 kim이나 lee는 많지만), 'r'발음이 특이해서... 가끔 이유 없이 좋은 것 앞에서는 무의식이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생각들을 접고 사근사근 피어나는 상냥함을 음미하고 싶어진다. 주머니 속에 구겨진 종이를 펴 운명이란 단어를 찬찬히 쓰다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르 끌레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어쩌다 운 좋게 파주북소리축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문학사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손 꼽히는 르 끌레지오의 강연이라 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황금물고기>도 좋았기 때문에 빗발을 뚫고 파주 출판단지로 거침없이 향했다. 르 끌레지오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강연을 했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난다. 하나는 의미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텍스트가 내 안에 흐르게 둘 것, 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여유의 태도에 대해 말한 건 맞다. 다른 한 가지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질문자들의 질문이었는데 한 분은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주셔서 놀란 동시에 부러웠고, 한 분은 불문학 전공이었는데 문학의 현실참여에 대해 질문했고, 나 또한 '문학이란~'으로 운을 떼는 비장한 질문으로 르 끌레지오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은 완전히 쓸모 없는 것' 대답을 이끌어내 스스로 절망감의 나락에 떨어졌다. 문학무용론에 대한 김현 평론가의 말이나 다른 무엇이 할 수 없는 예술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해 알았더라면 괜히 자기가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벌 받는 아이처럼 끙끙 앓을 필요 없었을 텐데 어렸기 때문에 가능한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앞에서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질문자 덕분에 '봉~쥬르' 한 마디만 하고 불어를 못한다는 고백을 하면 웃음이 유발될 것이란계산이 적중한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난다. 그때 웃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운 좋게도 불문학 전공자 분이 강의가 끝나고 카페에 남아주신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전공 시간에 누구의 텍스트를 읽냐는 질문이었는지, 작가 혹은 프랑스 작가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는지 헷갈리는데 그때 '모파상'이란 이름이 나왔던 건 확실하다. 모파상. 거의 2여 년 만에 귀환한 이름. 이제 그 편지에 답장할 수 없지만 편지를 받았으니 읽을 수 밖에. 미황사 청년출가학교에 가 있는 동안 책 추천이 이뤄져서 신간추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과 모파상 단편집을 받았을지 쾌재를 불렀다. 두 작가 모두 이름과 호평은 익히 들어 익숙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경우 오 헨리와 더불어 단편소설의 귀재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했다. 


 모파상을 읽기 전에 기억이 났던 건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 간의 거친 비교. 프랑스 문학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면, 독일 문학은 무겁고 삶과 죽음, 형이상학적 문제(독일 문학의 고전 중 하나가 '파우스트'인 것만 봐도...)에 대한 사유가 깊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불문학사나 불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던 중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나오셔서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이 '현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해주셨다. 독일 철학의 대표 기수로 꼽히는 칸트, 헤겔, 피히테, 셸링,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들이 세계 전체와 우주만물을 설명하려 했다면 프랑스 철학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동시대적 문제에 천착하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생각난 철학자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프랑스 정신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는 시오랑은 <독설의 팡세>에서 이렇게 적었다. 


일부 민족들의 심각한 기질을 안부인 기질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미래는 그 문제에 달려 있다. 만일 독일인들이 다시 예전처럼 일하기 시작한다면, 만일 러시아인들이 게으름에 대한 그들의 오래된 애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서양은 곧 파멸하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무위안일, 무관심, 낮잠의 취미를 개발해야 하고, 모두를 무기력과 변덕의 즐거움으로 빛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센이나 시베리아가 우리의 도락주의에 강요하는 해결책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헤겔이 독일의 재앙이었듯(강조는 윤스리), 루소는 프랑스의 재앙이었다. 체계에도 정신병에도 무관심했던 영국은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엮어왔다. 그들의 철학은 감각의 가치를 주장했고, 그들의 정치는 흥정의 가치를 주장했다. 경험론은 대륙의 졸작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답이었고, 의회주의는 유토피아, 병적 영웅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한가한 사람들, 즉 사교를 즐기는 사람들, 무사태평한 족속들, 말로 먹고사는 모든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세련된 태도의 모태는 대화이다. 거기에 무감각했던 독일인들은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렸지만, 프랑스인과 고대 그리스인처럼 수다스러운 백성들은 정신적 우아함에 단련되어 사소한 일들에 탁월한 기술을 발휘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말이 '정말' 많다고 하는 프랑스 남자들.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린 독일인과 수다스러운 프랑스인. 분명히 두 나라 간 사회문화적 배경에 상이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유가 깊기 때문에 독일문학이 프랑스문학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헤겔의 역사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어떤 목적(의미)을 상정하고, 그 목적에 따라 과정이 종속되는 모양. 이는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면과 거의 딱 들어맞는다. 최근 밀란 쿤데라의 신간이 출간됐는데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무의미의 축제>. 위의 문학무용론과 대조시켜 보면 재밌는 방식으로 공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해설에서 김현 평론가가 발레리가 음악적 시세계를 추구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도르노가 예술의 최고의 단계? 형식?을 음악이라 했던 말과 부딪치면서 시와 음악, 문학과 소설, '예술'이란... 대책없는 질문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밀란 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아도르노, 파울 클레... 등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화음' 속에서 자란 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김정환 선생님은... 괴물이시니까 ㅜㅜ) 


 플로베르였는지 다른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모파상에게 거리를 하루종일 쳐다보라고 시켰다고 한다. 모파상은 그게 그거인 것 같다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선배 작가가 그건 네가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관찰력. 편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 모파상의 단편들을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몇몇 작품들만 읽어도 뛰어난 관찰력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어 미시사회학의 자료로, 사회학자들의 필수자료로 사용되곤 한다고 하는데 이 작가도 그 목록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군중. 이야기가 없는 사람의 덩어리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 역사란 거대한 흐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하찮고 자잘하고 '수다스러운', 하지만 역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어떤 진실을 담지하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작가가 다 매력적이어서 다 읽어보고 싶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데이먼 러니언, 대실 해밋, 허버트 조지 웰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오 헨리, 대프니 듀 모리에... 아이맥스 영화 한 편 볼 돈으로... 라고 하면 영화팬 입장에서는 조금 치사한 교환등식으로 비칠 지도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




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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