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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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의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읽었다. EBS 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 [버블 패밀리]의 감독이 이런 제목으로 에세이를 썼다고 하니 북펀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 영화를 만들게 된 창작 배경과 만들고 난 후 뒷이야기 등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IMF 키즈라는 말이 있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어린 아이(청소년을 포함)였던 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들이 성인이 되며 IMF라는 공통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 집단을 이루면서 고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빌리티 연구자 안은별은 [IMF 키즈의 생애]라는 인터뷰집을 낸 바 있다. 책이 출간된 2017년의 분위기를 잠시 회상해보면 응답하라 시리즈로 대표되는 복고-레트로 열풍과 더불어 ‘9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하는 학술적, 역사적 질문이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때쯤 헬조선 담론이 유행하며 세대 논쟁,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던 것 같다. 특히 보수화된, 탈정치화된 청년 세대를 꾸짖는 586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환멸 같은 것들…. 안은별의 인터뷰집을 읽은지 오래된 터라 집필 의도, 기획 취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측컨대 기성 세대에 의해 납작하게 재현되는 청년 세대의 의식 구조를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입체적이고 복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 같다. IMF 사태를 일종의 원체험으로 경험해서 어렸을 때부터 중산층에서 탈락하여 언제든지 가난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았다고, 그래서 국가-사회는 자신을 지켜주지 않으며 나-개인의 생존과 성공을 최우선시하는 생존주의, 서바이벌리즘이 시대의 마음이 되었다는 서술. 이런 서술 바깥에서 IMF 키즈들은 IMF 사태에 얽힌 자전적 생애사와 더불어 자신의 세대가 정치적으로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풀어낸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감각을 갖고 안정적인 중산층이 되기 힘들 거란 비관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절망스럽게 자조하지 않으며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민사고? 같은 지사고, 특목고를 나와 외국 유학을 다녀 온 게임업계? IT업계 종사자와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을 오가며 여성-워킹맘으로서 정당에서 일하셨던 정치계 종사자 분.

인터뷰이들은 80년대생이었다. 90년대생인 나로선 비슷한 세대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지만 크게는 10년 정도 시차가 있다 보니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았다. 중산층 가족의 해체, 경제적 충격파로 인한 부모의 트라우마, 이 트라우마가 자식에게 굴절된 형태로 전가되는 경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탓에 경험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적었다.

동아리에서 문학과사회 하이픈 ‘다시 - 계급’을 읽은 이후로 가난에 대한 생각이 점점 늘고 있다. 대부분 청소년기까지, 혹은 이십 대 초반까지 감각했던 가난을 상대화해서 메타적으로 인지하는 거였다. 아파트와 비아파트,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옷의 구매 여부, 패밀리 레스토랑, 바캉스 같은 중산층 외식 문화의 경험 여부(스키장, 리조트), 휴대폰이나 MP3 전자기기의 스펙, 그리고 책을 읽는 부모 혹은 서재가 있는 집, 부모님의 학력, 해외여행의 경험치 차이-’효도 관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휴양지에 다녀오기도 하는. 대학 입학 이후로 사귄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 출신이었다. 그렇게 제한적인 계급/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축적된 경험의 확증 편향, 하비투스… 그걸 이제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마티 출판사의 on 시리즈로 ‘일인칭 가난’이란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가난을 재현할 수 있는가. 가난이 빈곤과 다르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통계나 숫자 같은 데이터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으로 설명되는 빈곤poverty이 아니라 자주 ‘불쌍함’으로 치환돼 값싼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는 가난poor(불쌍한 이란 뜻도 가지고 있는)을 어떻게 서사화할 수 있을까. 가난의 진정성을 따질 수 있다는, 크기나 정도를 비교할 수 있다는 믿음 앞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한 말하기에 타자의 층위를 끌어들일 수 있는 다성적 말하기의 가능성.

동아리에서 가난이 정체성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성적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박혜진이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을 논하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한 인물이 발전주의의 논리,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행복의 약속’) 일종의 탈주적 전략으로서 가난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긍정하고 있다고 읽었다. 과거에 노장 사상, 청빈 사상, 기독교? 카톨릭? 전통에서도 가난의 가치를 긍정하며 검소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삶을 긍정했다고 알고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낭만적 몽상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질문.

가끔 기사에 네이버 프로그래머 초봉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1인당 GDP 3만 불을 돌파한 경제 성장 부분을 여기서 체감할 수 있어서, 반대로 내 주변에서는 실질적 삶의 질(주거 비용, 물가 등등을 고려한)이 그대로이거나 심지어 더 하락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 말이다.

마민지의 책을 읽고 복수의 독서 루트를 정리한 지도를 그려보고 싶어졌다.



-불평등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키워드로 책을 꼽아본다면 전강수의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 김수현의 [부동산과 정치] 등등등



-아파트 거주에 대한 사회학, 인류학적 접근, 아파트를 통해 바라 본 중산층 문화를 키워드로 꼽아본다면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3부작, 인류학자 정헌목의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이인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등등등



-건축 정책 및 도시 발전사의 관점으로 서울을 탐구한 책을 같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박정현의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송은영의 [서울 탄생기],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3부작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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