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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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적이 두 번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의 수영장에서, 22살 때 싱가포르의 수영장에서.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에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습하는 두려움, 위로 폴짝폴짝 뛰면서 겨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전력으로 레일을 가로질러 수영장 옆면으로 향하는 몸부림,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급격하게 소모해서인지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화이트 아웃‘의 시간.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캐리비안베이에 갔다. 메인 코스(?)인 파도풀을 재밌게 타고 나서 자율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기구나 코스에서 놀던 중에 뒤따라가던 친구를 놓치고 물살의 힘을 못 이겨 다른 쪽으로 떠내려갔다. 변기물에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휴지처럼. 뒤돌아 역방향으로 열심히 물장구를 쳤지만 당시 내 근력으로는 물살을 거스를 수 없었다. 자아의 완전한 내려놓음, 나를 압도하는 힘에 대한 완전한 순종, 온전한 체념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었던 것 같다. 고요한 수면 아래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끔 만드는 마성의 힘을 지닌 물의 이중성. ‘맥주병‘이란 표현이 시사하듯 사람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 목숨을 잃게 만들 수 있는 물의 위력. 중력이 지배하는 평평하고 단단한 대지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물의 세계.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물에 대한 호감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2015년 여름방학, 친구와 함께 한 달 정도 수영장에 다닌 적이 있다. 많은 수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물 밖의 세계에서 물 속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찾아오는 정적이 너무 좋았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됨과 동시에 내면의 소란까지도 일순간에 잠잠해져 고요와 평정이 찾아왔다. 굳이 어렵게 명상을 할 필요가 있나 살짝 현타가 오기도 했다. 수영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물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상관 없었다. 물 속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거두고 단순해질 수 있었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수영장(대전 용운국제수영장) 물이 좀 달랐는지 몰라도 대충 누워도, 몸에 힘을 완전히 빼지 않은 상태에서도 몸이 떠올랐다. 그래서 배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배영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살짝 붙어 친구에게 교습을 받아 자유형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심이 깊어져 발이 닿지 않는 구간 직전까지만 딱 찍고 돌아오는 식으로 안전하게 수영을 즐겼다.

그때 기억 때문이었을까. 한창 슬럼프에 빠져 있던 시기에 수영을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딱 <가능한 불가능>의 ‘할 수 있어 프로젝트‘마냥 한동안 별다른 성취나 배움의 기쁨 없이 지내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이 찾아와 의욕 상실, 무기력, 일상의 활력 저하와 생기 잃음을 겪던 차에 번득 ‘수영‘ 생각이 났던 것이다. 휴식과 놀이, 운동이라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최고의 카드 ! 하지만 집 근처 마땅한 수영장이 없었으며 시간대가 안 맞는 이유 등으로 강습을 수강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세계로서의 물/수영장. 그런 수영을 소재로 한 그림과 더불어 휴식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책이란 설명을 듣고 <풍덩!>에 다짜고짜 ‘풍덩!‘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동안 <풍덩!> 덕분에 주말을 주말답게 보낼 수 있었다.

2

저자는 말한다. 모두가 지쳐있다고. 이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축에 속하는 ‘과로사회‘인 탓도 크지만 사람들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성과를 내기 위해 쉬는 법을 잊어버리고 일에 중독된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휴식의 욕구 자체를 억압하고 부정하거나(휴식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껴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법을 몰라 스스로 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쉬는 게 아닌 결과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휴식 하면 ‘수면‘을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잠이 다시 노동을 하기 위한 재생산의 기능에 그친다고 했을 때 잠이 휴식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 휴식은 일-수면-일-수면으로 무한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리듬을 잠깐이나마 바꾸는 일,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일례로 지친 몸을 침대 위에 내동댕이치듯 던져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다. 수면이 생존을 위한 생명 에너지를 보존하고 충전하는 최소한의 휴식에 가깝다면 저자 우지현이 말하는 휴식은 ‘삶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을 되살아나게 하고, 창조적인 영감이나 생각을 들게 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행위. 이처럼 삶에서 휴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휴식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는 영역으로 주변화되어 있고, 성과지향/중독 사회에서 ‘나태함‘이란 도덕적 굴레를 덧씌워 휴식의 가치가 왜곡되고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쉬어야 한다고, 휴식을 잘 하면 삶을 잘 살 수 있다고 설파한다.

글은 조금 심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휴식을 옹호하고 권하는 힐링 에세이에 있을 법한 평이한 내용들이 부분적으로 보였다. 이런 약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인 이 책의 강점은 수영을 소재로 한 그림(무려 100여 점!)이 배치된 그림 에세이라는 점이다. 수영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회화부터 동시대에 그려진 작품까지 수영을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제시해 수영-휴식의 이중주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수영과 휴식을 넘나든다. 수영 그림으로 채워져 있지만 수영만을 논하지 않는다. 휴식에 관해 말하지만 휴식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미술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영과 휴식에 대한 산문집일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감상하는 화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어떤 종류의 책으로 다가가든 책을 보며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책을 덮고 각자의 휴식을 즐기게 된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 같다.(10p)

책에는 강렬한 햇빛 아래 여름바다를 만끽하는 작열하는 청춘의 이미지(마치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 속 청년들처럼)가 있고, 해수욕장에서 누워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람 없이 텅 비어 있는 수영장이지만 왠지 모르게 평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풍경이 제시된다. 수영장은 수영장대로, 해수욕장은 해수욕장대로, 개인 풀장은 개인 풀장대로, 인적이 드문 바닷가는 바닷가대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보편적인 휴식의 정념과 분위기를 풍긴다. 물이 인간을 헐벗음에 가까운 몸둥어리로 존재하게 만들어서인지 물 속의 세계에서 인간들은 순수하게 동물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물 속에서 움직이고, 지치면 밖으로 나와서 쉬고, 배가 고프면 뭘 먹고, 졸리면 자고... 자연적인 욕구를 강렬하게 감각하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삶. 휴식이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깃들게끔 사람을 순하게 길들이는 물살의 손길.

아무래도 내년에는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 그리고 잘 쉬는 법을 꾸준히 배우고 연습할 생각이다. 미술관에 가지 못하더라도 그림 에세이, 화집, 사진집이 대상과 나의 시선, 내면의 풍경만이 존재하는 ‘사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했기에 또 이런 류의 그림 에세이를 찾아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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