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불가능
신은혜 지음 / 제철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으로 일을 벌인 적이 언제였을까. 딱히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한 지 꽤 오래됐다. 2022년의 이탈리아어 공부하기 프로젝트는 중간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고, 그나마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만한 프로젝트는 2019년 10km 마라톤 도전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팟캐스트도 만들어보고(1인 독립제작으로 <마음짐승의 책 먹는 시간>이란 제목의 팟캐스트를 만들었으나 1화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네이버 카페를 활용해 독서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원하나의 <독서모임 꾸리는 법>이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독서모임을 좀 더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을까? 그래도 민음 북클럽을 통해 함께 한 ‘희곡읽기 모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서 주관한 각종 공부 모임이나 공모전을 중심으로 ‘안 하던 짓‘을 저질러보거나 남들과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동력 자체가 많이 떨어졌음을 체감한다. 일상의 권태로움에 적당히 무뎌지고 어느 정도 마비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군대에 오고 나니 별다른 재미와 성취 없이 쪼그라들고 있는 나 자신을 덩그러니 마주하게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우울은 거의 사라졌지만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내 기분이나 감정이 어떤지 모른 채로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이상하게 짜증나는 순간이 잦아졌다. 친구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주지 않으면 먼저 전화하는 법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SNS와 블로그의 적당히 노출된 사적/공적 경계의 친밀성의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소통을 하고 연결감을 느낀다. 친구와 지인의 성장과 성취, 전진을 보며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모종의 경각심을 느끼긴 한다. 딜레탕트로서 책을 향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도 뭔가 멋진 일을 해내고 싶다고, 아니 멋진 일은 고사하고 어떤 일에 열중해서 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해보는 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그런데 각 잡고 글을 쓸라치면 온몸에 퍼져 있던 피곤함이 급 응축돼서 머리를 조여오고, 특별한 구성 작업 없이 초고(토고/토 나오는 원고)를 쓰고 나면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가 있었다. 비공개를 걸어둔 토고가 두 개 정도 쌓여야 하고 싶은 얘기가 명확해지고 초점이 맞춰지는데 너무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습관 교정이 시급해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쓰레기 같은 걸 쓰느니 차라리 책 한 자라도 더 읽자는 마인드로 쓰기를 미뤄왔던 나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쓰기의 누락으로 인해 읽기/공부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었는지 생각하면 뭐라도 쓰고 있는 지금이 나아 보인다.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시점이었을까. 학원을 다녀볼까 하는 생각에 잠시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논문 주제를 픽스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과 정력을 엉뚱한 데 쏟아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애매해질 거라고 스스로 판결을 내려 기각시켰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지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고(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하루하루 어제와 다르게 성장한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다고, 어쩌면 그런 색다른 자극이 신선한 영감을 줄 지도 모른다고. 제도권 내에서 학문적 글쓰기를 통해 전문적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훈련을 하고, 결과물을 내는 일을 해내야 했고, 해내고 싶었으나 도통 실마리를 찾지 못해 헛발질을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우울증에 걸려 자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라도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았고, 뭣보다 성취감과 보람,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시도한 도전 중 오직 달리기만이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달리기 말곤 제대로 도전한 게 없기도 했고, ‘기록의 단축‘ ‘완주‘ 신체 능력의 향상 및 건강 변화 같이 가시적으로 체감하고 느낄 수 있는 성격의 성취였다.

그런데 사실 첫 완주에도 기록의 단축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별다른 목표를 설정해두지 않고 달리기를 즐기고자 하는 아마추어였기에 결과로부터 극적 감정이 도출되지 않았다.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책에서였나 방송에서였나 제현주 작가가 얘기했던 것과 비슷하게 내 몸을 기능적으로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욕구의 충족 -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갈 때의 속도감이 주는 쾌감 등 - 과 최초로 참여한 마라톤대회였던 철원 DMZ 마라톤대회에서 느꼈던 달리면서 자연풍경을 호흡할 때의 황홀경. 달리면서 보는 건물, 자연이 좋았다(사람까지 볼 여유는 없고). 숨이 차올라 호흡이 불편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확 숨통이 트이면서 계속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가 좋았다(러너스 하이까진 아닌 것 같지만 여튼 정상 궤도에 오른 것과 같은 기분이 정말 좋다). 결국 이렇게 정말 좋았던 순간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연처럼 찾아왔다. 대신 이건 있는 것 같다. 빛나는 순간이 출현하려면 어느 정도 과정이 두텁고 풍부해야 한다고. 시적 순간은 산문적 성실성의 토대 위에서 출현한다고. 그래서 이 산문적 성실성의 무게감과 부피 자체가 도전 자체를 멋지게 만든다고. 도전 성공이나 기록 달성에서 오는 희열과 카타르시스는 어쩌면 지난한 과정들을 마지막 결과를 위해 존재한 것인양 기승전결의 서사적 배치를 통해 극적으로 연출한 효과인 지도 모른다. 과정으로만 이뤄진 삶을 편집권을 쥔 서사적 자아가 어떤 식으로 편집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의미를 비롯해 과정 자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신은헤의 <가능한 불가능>은 일한 기억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헛헛함에 시달리던 저자가 문득 ‘1년에 하나씩‘ 자신에게 불가능했던 영역에 도전해보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9년 동안 지속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서른 살에는 운전면허 따기(운전기술 익히기), 서른한 살에는 피아노 치기(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인 히사이시 조의 ‘summer‘ 완주하기), 서른두 살에는 영어 공부하기, 서른세 살에는 수영 배우기, 서른네 살에는 하와이에서 살아보기 ... ‘광고‘밖에 몰랐던 워커홀릭(책에서 그려지는 저자의 모습은 어느 정도 일밖에 모르는 바보, 일중독자에 가까워 보인다)은 우연한 계기에 절친과의 내기(50만원을 따기 위한!)에서 지지 않기 위해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를 완수하게 된다. 그렇게 ‘1년에 하나씩‘ 불가능했던 걸 가능하게 바꾸는 ‘할 수 있어 프로젝트‘가 9년 동안 이어진다. 저자의 30대를 꽉 채운, 카피라이터로서 신은혜가 아닌 자연인 신은혜로서 써내려간 삶의 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스토리.

무슨 도전이든 거의 실패 없이 척척해내는 유능한 저자의 성공담, 이었다면 지루했을 텐데 자신의 세계를 차근차근 확장해나가고 내실을 다져가는 성장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독서는 나도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다는, 나만의 ‘할 수 있어 프로젝트‘를 작당모의해보고 싶다는 욕망의 씨앗이 심어지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무슨 도전을 하더라도 이 도전을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동참할 수 있으며 도전의 시작과 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의 존재가 새삼 크게 다가왔다. 혼자였다면 분명 ‘어차피 난 안 돼‘하고 좌절했을 순간에 오기와 ‘억텐‘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친구(와 내기)의 존재 ! 2022년 ‘이탈리아어 배우기‘ 프로젝트는 거의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2023년에는 꼭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해서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리라. 이제 만 나이가 상용화되는 만큼 저자처럼 내년을 서른 살의 프로젝트 기점으로 삼아보련다. 프로젝트의 기술은 불가능했던 어제(작년)에서 가능한 오늘(올해)로 시간의 간격을 벌리는 데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에서 오늘로 점프해서 착지했을 때의 변화. 달라진 나 자신을 감각하는 편집의 기술. 하루하루 경험치를 쌓고 퀘스트를 깨나가는 게임의 주인공처럼 레벌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가능한 불가능>을 재밌게 읽을 거라 생각한다. 추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