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입니다 -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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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입니다], 배명훈, 문학과지성사, 2022

전쟁이 발발했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고 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한 장소는 군대의 행정반이었다. 2022년 2월 22일 2시 22분 22초, 얼마 전 sns에 유행했던 짤이 떠올랐다. 2022년이란 시간대가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며 ‘강한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의 전쟁광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던 거구나 여전히.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말이 수없이 들으며 자라온 세대인 만큼 가장 큰 위협세력인 북한 이외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만약에, 정말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현역 군인으로서 바로 참전하게 될 텐데 어이없게도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와 함께 이동하다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말이 떠올라 기가 찼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징그러운 거구나. 월급을 쪼개 유엔난민기구에 후원하고, 각종 매체에 게재된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의 원인과 배경을 분석한 칼럼을 읽으며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군사력의 우위 혹은 힘의 균형terror of balance을 통한 전쟁의 억지, 방어 전술을 기본으로 삼는 한국군에서 군대의 일원으로 전쟁의 억지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보람을 느끼면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불가피하게 자국민의 보호 및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이런 서글픔은 군인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모든 전쟁이 거의 정당한 명분 없이 일어나긴 하지만 러시아의 일방적인 침략전쟁을 두고 국제사회가 일제히 규탄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거라 예상했으나 이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전쟁은 고도로 정치화된 활동이라고 했던가. 서방국의 섣부른 참전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위험성을 갖고 있을 뿐더러 뭣보다 각 국가는 결국 자국의 이익이란 패를 한 손에 움켜쥐고 테이블 앞에 착석하고 있었다. 초국적 보편적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염원하는 시민들니 전 세계에서 반전 시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뭉클하면서도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성폭력이 자행되었다는 범죄 소식에 처연해졌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귀환, 난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증오 범죄, ‘극단의 세기‘ 20세기를 지배했던 거대 이념과 이데올로기는 종언을 구했는지 몰라도 그 시대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모순들이 좀 더 세련된 외피를 두르고 회귀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충돌과는 꽤 다른 국가와 국가의 무력 충돌, 세계와 세계의 충돌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SF 작가 배명훈의 에세이를 만났다. 자신이 SF를 쓰는 이유를 ˝국제정치학 소설을 쓰면 SF가 되기 때문˝([우리는 SF를 좋아해 #5] 은하 제국은 왜 안 돼?)이라고 답하는 국제정치학도 SF작가를. 그는 SF와 국제정치학이 얼마나 친연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자신의 사회‘과학‘적 SF 세계관에서 SF가 국제정치학적 사고실험을 풀어내기에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지를 역설한다.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국제정치학의 질문을 풀어가는 것이 제 목적이고요.?소설에서는 현실에서보다 질문을 자유롭게 던지게 되죠.˝([우리는 SF를 좋아해 #5] 은하 제국은 왜 안 돼?)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SF 작가입니다]는 앞에 (나는 국제정치학 공부한)를 괄호 친 거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국제정치학이 자주 등장하며(한국작가들이 주로 국문학과를 비롯한 어문 계열 전공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 정도로 자신이 적을 둔 학문을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설명한 사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청소년 독자 중 한 명은 혹해서 국제정치학과에 지원했을 거라 예상될 정도로 국제정치학이란 학문, 그리고 이 학과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국제정치학과에서 한국근대소설을 읽는 대학원 수업이 있다는 사실은 국문학도로서 거의 충격적이었다..!(국문학 대학원에는 국제정치학 수업이 없지만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탈식민주의, 비교문학은 사실상 국제정치학이나 다름 없다고 위안을 삼아본다. 식민지 근대성, 동아시아 담론,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정도면 ㅇㅈ?)

그런 면에서 배명훈 작가는 일반적인 SF 작가의 이미지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감이 있다. 자연과학을 전공했거나 자연과학적 지식이 해박해 작품에 구축된 세계의 과학적 설정이 엄밀하고 논리적인 하드 SF류를 쓰는 과학자st의 SF작가... 배명훈 작가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런 통념은 실제로 SF계에 통용되고 있는 편향이 반영된 결과인 듯하다.

물론 SF 영역에도 편향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 SF의 장에는 천문학과 물리학을 맨 위에 두는 특유의 위계질서가 있다. 중세의 신학만큼 절대적인 지위는 아니라 해도 사회과학적 추론이 맨 먼저 관심을 받을 여건은 아니다. (...) 그래도 나는 내 일을 계속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교과서 안에 박제해두지 않고, 본질이라 여겨지는 부분을 잡아채서 내가 창조한 세계에 놓여 있는 재료로 다시 조립하는 일을. 그것이 내가 하는 SF다. (69)

그런데 생각해보면 외계생명체, 보다 정확히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지구상에서 조우했다고 했을 때 문제가 되는 지점은 주권과 영토이다. 그러니까 이는 지극히 근대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이방인/외국인이든 외계인이든 자국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 주권의 자장 안에 포섭됐을 때 고깃덩어리(외계인은 -신체가 있다면- 신체를 이루는 물질의 구성 요소가 단백질 위주가 아닐 가능성도 크지만)가 아니라 ‘시민‘이란 정치적 권리를 지닌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SF영화 [디스트릭트 9]을 보면 (기억의 회상에 의존해 글을 쓸 예정이라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외계인들이 갑자기 남아공 어딘가에 불시착했을 때(왜 미국이 아니라 남아공이냐 하면 감독이 남아공 출신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세계는 보통 이런 식인 경우가 많다), 일단 이들을 난민 캠프 같은 곳을 조성해 수용한다. 그리고 정부의 수뇌부가 모여 이 외계인의 법적/정치적 지위와 권리에 대한 논쟁을 이어간다. E.T 같은 외계인 친구 하나만 지구에 왔다면 다락방을 지니고 있는 미국 가정집에서 부모님 몰래몰래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게 가능하겠지만 (아파트가 지배적인 주거구조인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불가능에 가깝다) 집단으로 함께 오면 주거지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문제가 된다. ‘내 집 마련‘의 열망이 엄청나게 강하고, 공공주택의 입주권을 따내기도 엄청나게 힘든 한국에서는 시민들이 외계인 수용에 대해 굉장히 날 선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여간 물리적으로 점유할 공간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이방인에게 법적으로 정치 공동체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다. 국가적 차원, 대내적 차원에서 극적으로 합의를 도출해냈다 하더라도 국제정치 사회의 승인 혹은 간섭이라는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미국이 판단했을 때 자국에 불이익을 미칠 위험성이 큰 존재로 판단한다면... 중국은? 세 사람만 모여도 점심 메뉴 하나 결정하기가 어려운데 국운이 걸려 있는 국제정치적 사안을 논의하려면 무려 6자 회담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게 한반도의 실정이다. 한국-미국-일본 의 자유주의 진영과 북한-중국-러시아의 사회주의 진영... 이건 마치 민초파와 반민초파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각설하고

(스포 있음 !!!)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Arrival)도 겉으로 보면 언어학의 사피어-워프 가설과 고전 역학의 해밀턴의 원리(최소 작용 원리)가 적용된 과학적 텍스트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 부분에서 국제정치학적 부분이 중요한 텍스트이다. 자신과 외교적, 군사적 노선을 취하고 있는(이에 대해 중국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다른 세계를 설득해내는 과정 - 외계인들이 알려준 헵타포드어를 이해해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파악해 미래를 기억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결말 부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설득의 기술이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가족 치트키‘라는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외계인의 외계어라는 절대적 타자성 앞에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루이스의 학자로서 성실하고 용기 있는 태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딸의 죽음이란 미래를 내다봤지만 그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마저도 감내하게 하는 만남의 축복을 선택하는 엄마의 사랑의 깊이. 한평생에 걸쳐 있는 어머니의 도저한 사랑을 한 순간의 선택에 응축시켜 느낄 수 있게끔 했다는 점에서 전율스런 감동이 전해졌던 게 아닌가 싶다.

하여튼 외계인이 지구에 오면 그를 친구로 봐야 할지, 적으로 봐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이 타자에 대한 환대라는 윤리적, 정치적 질문에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지닌 이들끼리 함께 답을 도출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난관과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인데 바로 그런 점에서 SF의 상상력은 빛을 발할 수 있다. SF는 인물이 아닌 세계를 창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이 세계의 초기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명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지 관찰하기 용이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마치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상태를 파악함으로써, 우주의 기본적인 셋팅 값을 역추산함으로써 현재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처럼 세계를 부숴 말랑말랑한 반죽 상태로 만들어 다른 모양으로 빚어보면 알 수 있다. 세계의 특정한 조건이 현재 우리를 어떤 식으로 결정지었는지 - 그걸 비교해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해주는 SF 소설을 우리가 획득함에 따라.

SF의 상상은 그런 것이다. (...) SF에서 가치 있는 상상이란 다른 것과 동떨어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통합적 상상을 말한다.(82)

SF 작가에게는 바로 이런 감각이 필요하다. 다른 행성에 세워진 국가는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우선 우리가 아는 국가 개념에서 2020년 지구라는 특수한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요소를 떨어내고, 보다 본질적인 내용울 추출한다. 그다음 새로운 행성의 특수한 환경에 이 핵심 요소를 대입한다. 그런 방법이 현실적이다. (...) SF 작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막스 베버의 책을 막힘없이 읽어내는 독서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다양한 상황에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말랑말랑한 상상력이다. (62-63)

창작자들은 아직 아무도 언어로 포착해내지 못한 변화의 실마리에 이름을 부여하고 가중치를 주어 돋보이게 한 다음, 자기 창작물과 동시대 사회에 대입해보곤 한다. 예술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80)

이런 예술적 상상력, 과학적 상상력이 소위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시도하는 순문학의 예술적 상상력과 다른 지점일 것이다. 이제껏 하위장르, 주변부의 매니악한 장르로 머물러 있었던 SF가 주류로 부상하며 저변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과학‘과 ‘상상력‘의 경계가 널리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식 지평의 확장˝이란 개념이 SF 비평에서 중요한 개념이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특수한 정체성과 표지를 깃발 삼아 대립하고 반목하고 배제하는 증오와 혐오가 빈번해진 시대에 경계를 뛰어넘는 확장의 상상력이 우리를 여태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중요한 주제인 전쟁에 대한 배명훈 작가의 인터뷰 내용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전쟁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전혀 안 좋아해요. 그냥 전쟁이라는 게 존재할 뿐이에요. 이걸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잖아요.?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를 실현할 수는 없어요.˝([우리는 SF를 좋아해 #5] 은하 제국은 왜 안 돼?)

전쟁을 연구하는 반전주의자. 당신이었군요, 배명훈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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