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 지방대를 둘러싼 거대한 불공정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50
제정임.곽영신 엮음 / 오월의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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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지방대, 학벌주의를 주제로 한 신간이 오랜만에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3년 전에 읽은 <복학왕의 사회학>을 마지막으로 독서의 맥이 끊긴 상태였다.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가 나오자마자 주문해서 읽었다. 기획연재기사를 엮은 책이라 단행본에 기대하는 논리의 정합성이나 담론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긴 했다. 대신 지방대와 학벌주의라는 이슈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전체적인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밑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지방대를 둘러싼 거대한 불공정'이란 부제가 시사하듯 지방대 소외, 지역 격차(불평등)를 중심으로 한 논의였다. 서문에 제시된 집필의도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지방대 소외가 비정규직 등 일자리 격차로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과 서울 중심의 불균형발전으로 인한 ‘지역적 불평등’이 중첩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불평등의 피라미드에서 한 칸이라도 나은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노동시장에서 좀 더 나은 출발을 가능케하는 학력·학벌에 관한 집착을 낳고, 이 경쟁에서 실패한 이들을 차별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1960년대 이후 서울 등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몰아준 불균형발전 전략이 지방 소멸과 지방대 소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 자체의 개혁뿐 아니라 일자리 격차 해소, 증세·복지 확충 등의 경제적 불평등 완화 정책과 국토균형발전 전략 등 지역적 불평등 완화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13)


요컨대 지방 소멸과 지방대 소외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지역적 관점'이 강한 책이다. 내가 지방 소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지방 중소도시가 독자적 경쟁력과 고유한 개성을 갖추지 못하고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거나 그마저도 안 되는 경우 발전이 정체된 상태에 머문다. 과거 제조업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융성했던 지방 대도시들도 제조업의 쇠퇴에 직격탄을 맞아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책으로 양승훈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가 있다. 이 책은 산업도시 거제의 빛과 그림자, 즉 제조업 분야의 블루칼라 남성노동자가 가부장으로서 생계부양을 책임지고, 여성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머무르는 성별 분업의 가족 모델이 가능했던 과거에서 경제적 토대의 차원에서나 문화적 차원에서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더 이상 꿈꾸기 불가능해진 오늘을 조명하고 있다. 지방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로 열심히 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도모하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산업구조의 변화 - IT 분야 일자리들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조선회사의 서기로, 서울로 각자 뿔뿔이 흩어졌던 <땐뽀걸즈>의 멤버들처럼 내 주변에도 지방에 남거나 서울로 이주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인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추상적으로 여겨졌던 지역 불평등의 문제가 피부로 생생하게 체감되고 이런저런 질문들이 남곤 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 나온 친구는 취업을 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는'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할 운명이었기에 서울 잔류에 필사적이었다. 지금은 교사가 된 친구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수도권에 위치한 친척네에서 생활했다. 스터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한 학원 알바부터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을) 서울에 있는 친구/지인을 만나는 것까지 수도권에 남아 있기에 가능한 활동이었다(취업박람회, 스터디, 공모전, 경시대회 등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역에 따른 기회의 차이가 극심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지방시민의 삶을 가정/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난이도의 과제일 거라 생각된다. 서울 토박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비서울에서 살기 힘들 것 같다고, 그래도 한국에서 서울이 제일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도 서울이 좋다. 살아보면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지방 소재 대학을 나온 동창들 중 서울에서 방송계 일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고, 지역신문사에 취업해 대학 소재의 지방도시에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이도 있다. 방송계 일을 하는 이들의 경우, 학과 동기로 친하게 지낸 덕에 같이 살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생면부지의 룸메이트를 구하거나 주거의 질이 상당히 떨어지는 원룸에 살아야 했을 테니까.

만약 나도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살았더라면 대학원 진학을 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인문 계열 대학원 전체가 전반적으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지방대 대학원은 좀 더 전망이 어둡다고 들어서다. 서울 잔류가 절실했던 친구가 고향에 '아무 것도 없다'고 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영화학도로서 이용할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를 뜻하는 것이겠지만 대도시가 그나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나 고루한 젠더 의식에서 탈피해 도시적 근대성과 세련된 예절이 통용되는 공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하기 위해' 지방근무를 기피한다는 세간의 말에 사태의 핵심을 관통하는 진실이 들어 있다. 연애 상대를 찾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교육시키고) '행복의 약속' 혹은 중산층 내지 화이트칼라 가족의 유토피아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주택문제가 심각하기에 서울에서 거주하고 생존하기 만만치 않은 점이 있긴 하지만). 종종 지방도시를 여행하면 기시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포맷이나 풍경이 그대로 옮겨와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서울 따라하기(좁히면 '강남 따라하기')의 일률적 원칙이 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지우고 서울의 불완전하고 부족한 모사품으로 전락시킨 결과다. 불균형 발전, 압축성장, '따라잡기caught-up' 근대화, 중앙집중형 권위주의 체제 - 여전히 망령처럼 잔존해 있는 구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국가를 새롭게 디자인함에 있어 생태, 젠더와 더불어 지역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본문에서 전개된 문제의식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지방 소멸의 위기(서울/수도권의 인구가 타 지역 전체의 인구를 역전). 국토 불균형 발전에 대한 비판과 균형 발전으로의 전환을 촉구. 그러려면 지역의 인재들이 서울/수도권으로 유출되지 않을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조성이 요구됨. '대학의 공공성' 기능을 살려 지역 커뮤니티/지방 도시에 기여.

- 피라미드 식으로 위계화된 차별적 노동시장. '바보야, 문제는 불평등이야'. (이 책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비판의 논지가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구분했던 현실적 능력주의를 향한 것인지, 이상적 능력주의를 포괄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 파악을 하지 못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학벌(자매품으로 수능점수)이 물화된 자본으로, 능력을 입증하는 능력으로 기능하여 차별을 양산함(고용, 승진, 인사평가 등등). 책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같은 업무능력을 가진 경우, 혹은 업무능력이 상대적으로 조금 떨어지더라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 우대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적 격차의 사회사/문화사'(천정환 - <대중지성의 시대>에서 미네르바 사건을 다룬 바 있음). 격차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격차에 따른 차별을 긍정하는 분위기에서 혐오는 필연적으로 발생함.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파괴하여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짐.

- 학벌주의 내지 대학 서열주의의 대안으로 국공립 대학 네트워크 등이 있음. 일정한 수준의 학습능력/수학능력이 입증되면 제비뽑기/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대학을 배정하는 방식. 서울 소재 사립대학과 비교해 점점 위상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지방 국립대학의 부활 도모. 서울대는 학부교육을 하지 않고 대학원 중심의 연구 특화 기관으로 전환(하지만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 소재 사립대학들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거센 저항이 예상되고, 중산층 이상의 기득계층 또한 현재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자신들이 경쟁에 유리한 조건임을 알기에 변화/개혁을 격렬하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됨) '인구 절벽'이라 명명되는 학령 인구의 감소로 지방대 소멸 및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어떤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대학을 다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 대학 개혁은 초중고 교육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침. 부모의 소득수준과 거주 지역이 자녀의 대학을 결정하는 세습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함. 혹자가 말했듯 돈도 실력, 부모도 스펙이 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라는 고전적인 사회학적 명제의 확인에서 더 나아가 코로나 시국에서 교육이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음이 확인된 만큼 교육 개혁이 필요함(제일 어렵지만...).

[능력주의]

박권일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지방대 혐오가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로 ‘과잉 능력주의’를 꼽았다. 그는 “지방대에 다니는 것이 그 사람의 다양한 능력을 곧장 대변해주는 바로미터가 아닌데도 사회가 공부와 시험 등 몇 가지 한정된 능력만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입시 성적으로 ‘학벌 피라미드’의 아래 칸에 위치하는 순간, 차별과 배제가 당연시된다는 얘기다. (35)

박남기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절대적인 믿음으로 퍼져 있는 ‘실력주의’ 신화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성취라는 이유로 승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보상과 패자에게 주어지는 극심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실력주의가 가져온 불공정과 평등을 직시하고 그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실력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갖춰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 능력과 집념과 같은 ‘천부적 운’,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운’, 그 밖에 뜻밖의 행운과 같은 여러 가지 비실력적 요소가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엘리트나 큰 이익을 얻은 대기업은 과도한 보상을 당연시할 게 아니라 자신의 성취를 사회 또는 타인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활력을 위해 어느 정도 차등은 있어야겠지만, 지금처럼 승자독식에 따른 극심한 격차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반드시 줄여나가야 합니다.” (75-76)

학벌이 민주시민의 자격과 역할까지 침해하는 현상이 한국에 유독 심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교육이 희망이다>(2017) 저자 장은주 영산대 성심교양대학 교수는 우리나라가 ‘잘못된 능력주의 속에서 시민적 자존감을 잃어버린 사회’라고 진단한다. 그는 “능력지상주의는 능력 있는 승자만 존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접하면서 그렇지 않은 절대다수의 패자는 ‘2등 시민’으로 격하시킨다”며 “이 때문에 많은 지방대 출신이 자존감을 상실하고 사회정치적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103)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능력주의’입니다. 학교에서부터 자기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다는 원리를 가르치고, 시험을 통해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며, 그에 맞춰 지위와 재화를 얻는 게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여기서 능력이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질과 소양, 또는 천재성이라기보다는 한국 시험체제에 잘 적응하는 것을 말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거의 비례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사회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만들기보다 불의를 정당화, 영속화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습니다.” (243-244)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어독문학과)


[지방대 혐오/소외 와 학벌주의 ]

20대 국회에서는 지방대 문제와 관련해 학력차별금지법, 출신학교차별금지법 등 5개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력·출신 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출신 학교를 이유로 고용, 국가자격 등의 부여,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의 영역에서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한다”고 못 박았다. (39-40)


노동경제학에서 통계적 차별이란 고용주가 개인의 역량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을 때 인종·성별·출신 학교 등 제한된 정보를 활용,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수하다는 기존의 경험과 고정과념을 바탕으로 차별적 평가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차별당하는 집단은 실력을 갖췄더라도 충분한 기회와 보상을 얻지 못하고, ‘해도 안 된다’고 낙담하면서 자기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악순환을 겪는다. (74-75)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은종 선임연구원은 “지방대생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다수의 지방대 출신이 취업할 때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에도 업무, 승진, 배치 등에서 지속적인 차별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대학서열에 따른 차별적인 프레임 자체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75)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는 <한국의 교육열>(2014)이라는 논문에서 고등학교들이 명문대 보내기에 매달리는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대학의 평판 서열이 그 어떤 나라들보다 극단적으로 획일화되어 있어 지위 성취와 재생산을 위한 견고한 상아탑이 세워져 있다. 한국사회에서 단순히 학력이 아니라 연고주의적 학벌의 개념이 적절성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대학의 특성은 사라지고 중고등 공교육 기관은 서열화된 대학으로 학생들을 진학시키는 것이 제1순위 목표가 되어 있다. 교양과 예술, 인격 수양과 민주시민의 양성이 아니라 오로지 대학, 그것도 서열화된 대학으로 학생을 진출시키는 것이 명문 학교로 평가받는 길이다.” (108-109)

최근까지 한국 교육 정책의 방향은 김영상 정부의 ‘5·31 교육개혁’에 기초했다. 지난 1995년 수립된 5·31 교육개혁은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포괄하는 거시 교육 정책으로, 자율성과 다양성, 세계화를 목표로 22개 분야 120여 개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세계 속 경쟁력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교육 경쟁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약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주요 정책인 대학설립준칙주의(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주는 제도), 국립대 법인화, 특수목적고 및 자립형사립고 설립, 사학의 자율성 확대 등은 대학의 난립과 교육 서열화를 촉진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일반대학 수는 1996년 134개에서 2014년(제도 폐지) 189개로 55곳이나 늘었다. (247)


시민단체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는 “5·31 교육개혁은 그 당시 국내외 분위기를 반영해 공급자 중심의 교육에서 소비자 중심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조하고 학교 다양화,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등 시장주의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공공성 차원에서 교육을 긴 안목으로 보지 못한 면이 컸으며, 그 결과 학교를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고 계층 간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평가했다. (247~248)


심승환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또 “지방대 차별과 소외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학벌에 따른 경제적 보상의 불평등, 명문대를 명품처럼 여기는 문화적 계층화, 학벌·학연의 정치 세력화 등 한국사회 정의의 문제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단순히 교육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회정의교육을 통해 공동체성과 협력, 소외 주체에 대한 배려 등을 강조해나가면 큰 틀에서 학벌 문제를 극복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52)

[불평등]

대학교육과 일자리 등에서 ‘결과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에 ‘과정의 공정’에 더욱 집착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입시 공정에 관한 논의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까?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공정은 상위 20% 집단을 위한 것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빈약하고 납작한 개념이 되어버렸다”며 “공정이 정의의 원칙으로 넓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평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학교 간 서열을 완화하거나 없애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학교 간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20)


한국 교육에서 승자가 자원을 독식하고 그로 인해 더 강력한 승자가 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소수 상위권 대학과 학생들에게 각종 재정지원을 몰아주어 더욱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사이, 대학서열이 낮은 대학은 지원에서 소외돼 교육환경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133)

황갑진 경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사회 불평등과 교육>(2018)에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권력, 돈, 명예와 같은 사회 희소가치를 얻을 기회가 주어지는 명문 학교 입학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학교가 학부모나 학생들의 성공 욕구에 편승하여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과열된 입시 경쟁과 학벌주의 역시 ‘일자리’가 양극화되고 불평등이 확대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울 명문대’ 등에 집착하는 학벌주의를 완화하고 지방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과도한 노동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190)


장근호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8년에 발표한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2000여만 명 가운데 대기업·정규직에 근무하는 1차 노동시장 종사자는 213만 명으로 10.7%에 그친다. 2차 노동시장 종사자는 1787만 명으로 89.3%였다. 양극화한 두 시장 간에는 이동이 잘 이뤄지지 않는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3년 후 정규지긍로 전환될 확률은 22%에 불과했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치다. (191)


양준석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선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파견(파견이 금지된 제조업에서 위장도급 등을 하는 것), 납품단가 인하, 기술 탈취, 시장 독과점 등 불공정 행위를 없애 중소기업이 정당한 이윤을 확보하고 적정한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6)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임금을 회사가 독단으로 정하거나 노조·회사가 협상을 벌이는 등 사업장별로 결정해, 노조 교섭력이 있는 곳은 노동자 권리를 수호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임금이 적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개별 기업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연대임금 제도를 통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지향해야 한다”며 “노동자·사용자·정부가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어 연대임금에 대해 논의하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

[지방대생은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지금 다니는 대학 전공수업을 들어보면 교수와 학생 모두 열정을 잃은 것 같고, 강의와 과제의 양과 질에서 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88-89)


지방대생의 심리적 위축과 소극적 성향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대학 생활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양민옥 숭실대 사회복지학 강사의 논문 <지방대학교 대학생으로 살아가기>(2015)는 지방대생의 대학 생활을 ‘열등감을 갖고 대학생활 시작’‘열등감과 적응 사이의 갈등’‘외적인 지지가 대학생활에 도움이 됨’ 등 3단계로 정리했다. 지방대생은 성적에 맞춰 입학한 뒤 열등감 속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다른 대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만 열등감과 현실 적응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등 외적 지지가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92)

부산 동명대 이정민 신문방송국장은 “청년이나 대학생 이슈에 대해 지방대 학생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언론에서 별로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다”며 “서울지역 대학생의 목소리가 대부분인 기사들을 볼 때마다 ‘왜 우리 지방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질문을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101)

임지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 나 역시 지방대 출신으로서 열등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있다.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있다. 내 후배들은 이런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시리즈에 참여했다.(258)


박두호 단비뉴스 기자 : 정말 많은 지방대생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놀란 점은 내면에 패배주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방대생 상당수는 소위 ‘스카이’라 불리는 대학에 정부의 지원과 혜택이 몰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260)

1980년대의 대학진학률은 30% 정도였다.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 실시, 대학입학 정원 확대 같은 유화 조치가 적용돼 70년대에 비해 수치가 크게 증가한 결과였지만 여전히 대학생은 특혜를 누리는 특권적 계층이었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국면에서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경제적 특혜도 있었지만 학생운동을 통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결과 대학생 집단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대학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는 말이다(이를 테면 야당 대표가 전대협 대표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1년 5월투쟁과 1996년 연대 사태를 거치며 학생운동 진영은 궤멸하다시피 했다고 알려져 있다. IMF 금융위기 사태를 겪으며 대학생 또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하자 각자도생, 무한경쟁, 생존주의 같은 말들로 수식되는 대학 풍경이 펼쳐졌다. IMF 금융위기 사태는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급격하게 바꾼 사건이었기에 대학의 변화 역시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생 정치가 완전히 궤멸되지 않았더라면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제동을 걸고 견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대학이 공공성을 상실하고 '장삿속'을 챙기는 기업으로서 시장주의적 야망(등록금의 대폭 인상 등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말이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비극은 86 세대가 보수뿐 아니라 진보의 목소리와 상상력까지 과대대표하고 있다는 점이고, 소위 87년 체제의 정치적 상상력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대안적 상상력,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만한 정치 세력이 출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1990년대의 개인주의와 문화주의의 세례를 받은 X 세대나 생태/젠더 같은 대안적 가치지향을 갖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MZ 세대가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을까(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인 질문이나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그래서 질문을 좁혀 지방대 출신으로서 내가 집중해보고 싶은 질문은 '지방대생은 말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이는 <한편 6호>의 권수빈 선생님의 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능력주의에 따른 위계화된 차별의식을 내면화함으로써 잃어버린 시민적 자존감을 회복하고, 격차를 생산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사회질서에 의문과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에 휩싸여 있던 지방대생들의 모습을 '적당주의' 레짐으로 해석하는 연구자의 오만(지방대생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 지방대생이 열등감과 더불어 체화할 수 있는 지방대 혐오에서 벗어나 '서울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지역적 관점의 렌즈로 지역 불평등과 소수성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대학생들의 시국 선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던 시기에 지방대생의 시국 선언이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실린 적이 있다고 한다.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존재로 치부되었기에 그의 말은 공론장의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비시민이 내는 소리가 되었던 것이다. 지적 격차의 문화의 자장에서 공론장에서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시민권은 학력이나 학벌, 직업에 따라 분별된다. 최근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정규직 교수는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비정규직 강사는 그렇지 않았다. 연구자로서 학문적 성취와 상관없이 직업/직위의 위계에 따라 지성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반지성(주의)적인지 차치하고, 이런 인식이 대학사회(교수 채용 체계, 연구자 사회의 생리)에 무지한 대중이 싸지른 댓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실제로 고매하신 교수 집단이 학벌을 근거로, 정교수/비정규직 강사 직위를 바탕으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언행을 보이는 일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내 경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는지 고민하다가 혐오와 조롱, 비난이 두려워 침묵을 지킨 기억이 있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질문을 마음 깊이 두려워했다. 명문대 출신 상대방이 학력과 학벌에 의한 차별을 긍정하는 능력주의자일 까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스스로 내가 받고 있는 '강의와 과제의 양과 질에서 크게 아쉬움'을 느끼고, 열의 없고 비판적 의식이 결여된 학생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해 내 출신을 부끄러워했다. 내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라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휩싸이다가도 한국 교육의 입시지상주의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교육방식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자기혐오의 괴로움을 덜어내곤 했다.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에 열심히 발품을 팔아 '순수한'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미래에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고 능력주의자로서 열심히 살았다. 언제 혐오의 대상으로 모욕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좀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동력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환경파괴의 비용을 발생시킨 화석연료처럼 상대방과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감수성을 해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입장에 놓여 있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하는 힘을 기르는 데도 큰 장애물로 기능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길이었고, 어떤 면에서 보면 무능해지는 길이었다. 지방대 출신으로서 겪은 경험으로부터 자기연민과 극복의 성공서사를 끌어내는 게 아니라 지역적 관점을 바탕으로 중심부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세상의 상식에 의문과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인문적 힘을 끌어내자고 생각했다.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가 제기한 질문과 화두를 오랫 동안 품고 있고 싶다(요즘 지구력 있게 한 가지 생각을 오랫 동안 깊게 이끌어가는 힘이 상당히 떨어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하...).

임명묵 작가의 <K를 생각한다>를 읽으며 세계화와 정보화에 한국적 방식으로 적응한 결과 '이중경제체제'라는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되었고, 인구와 교육의 미스매치가 '학력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대학사회에 많은 사회적 재원이 투여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같은 2차 노동시장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1차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동성과 이동성(계층 사다리)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대안 제시에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현실경제'를 도외시한 좌파 경제학의 도식에 갇혀 있어서 그런 것일지, 형평/평등/필요 중 분배정의(혹은 공정)를 어떤 식으로 실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지 가치관이 선명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 어쩌면 아직 내 계급적 위치/계급성을 제대로 파악한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통장에 임금이 꽂히고, 결혼이나 '내 집 마련'을 꿈꾸게 되고(이게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깨닫게 되고), 가능성이나 잠재성으로 불렸던 내 사회적/계층적 운신의 폭이 대략적으로 결정된 상황이 되면 한국사회의 현실원칙과 시스템에 대한 선명한 입장을 정리하기 조금 수월해질까? 맑스(주의) 책을 읽으면 위로를 받기도 하고, 현실에 대항할 선명한 논리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용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노동자라는 집합적 정체성으로 결집해 노동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것 같다(종래의 구좌파적 정치문법에서 벗어난 다중의 자율적인 정치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서 고민하고 상상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으로 자신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일터를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한 곳으로 변화시키고자 투쟁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의 서사를 그려낸 소설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

p.s 요즘도 사람들이 통성명의 절차로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자매품인 '몇 학번이세요?'는 중년 세대 사이에서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정보를 가장 압축적으로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은 학벌주의자가 아니기에 이 질문이 별다른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건조하고 중립적인 질문이라 여길 지도 모르겠다. 이 질문이 표방하고 있는 효율성이 폭력성으로 얼마든지 전화될 수 있음을, 대졸을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디폴트 값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정보를 드러내라는 요구가 무례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싶다. 출신 대학이란 정보에 결부된 편견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본질을 통찰하고, 가시적 정보와 지표들이 말해주지 않는 행간을 상상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싶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출신 대학은 그다지 많은 걸 알려주지 않을 수 있다. 사고방식과 가치관, 취향과 같은 '자기표현'적 정보들로 호구조사가 아닌 대화를 나누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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