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만들다 열린책들을 만들다 열린책들 아카이브 1
홍지웅.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미메시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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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리뷰는 아닙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출판계에 몸 담고 있는 지인을 곁에 두고 있는 건 아니어서 출판물에 활자화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의 <읽는 직업>, 기획회의 편집위원회에서 엮은 <한국의 출판기획자>, 장은수 편집자의 <출판의 미래>, 은유 작가님의 <출판하는 마음>을 재밌게 읽었다. 유유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책 만드는 법'도 서재의 출판/독서 섹션에 구비해뒀다(어느 작가님께서 이런 명언을 남기신 적이 있다. 서재에 꽂아두고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시작이 반'이라 했을 때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는 것으로 독서의 절반을 달성한 거라고 우겨본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작가, 편집자(교정/교열, 편집/ 재교-삼교-오케이교 ...), 교정교열 전문편집자(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의 코노 에츠코가 맡은 역할이 바로 교열편집자이다. 극중에서 교열만 하지 않지만 ㅎㅎ ), 북디자이너, 인쇄소 직원 등 '생산 라인'의 직종만 해도 다양하다. 마케터, 오프라인 대형서점, 동네서점(독립서점), 인터넷서점, 신문사의 출판담당기자, 도서관, 출판잡지, 도서출판 팟캐스트, 유튜브(북튜버) 등 책을 다루고 책과 관련된 분야로 시야를 넓히면 출판산업과 출판문화를 지탱하고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산업의 파이를 놓고 봤을 때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은 편이고, 학습지와 수험서를 내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출판사들은 중소 기업 규모의 영세적이라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디선가(<한국의 출판기획자>로 기억한다) 장은수 편집인이 대기업 출판사가 나오면 자금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과감하고 선도적인 기획출판을 이끌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출판 풍토에서 출판이 불황이다, 이 판은 망해가고 있는 판이다 같이 자조적이고 체념적인 인식과 정서가 출판계 내부에서 꽤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출판업계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세한 출판사의 물적 토대에 더해 출판업 본디의 노동집약적 성격이 합쳐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장은수 편집인의 페이스북에서 '3년차 편집자'가 출판계에서 희소하고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다. 출판업계의 열악한 처우로 인해 인재들이 떠나고 다른 업계에 뺏기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자세히 모르지만 연차별로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성장 단계 같은 게 존재한다고 들었다(파주에디터스쿨에서 <천년의상상>의 선완규 편집장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3년차에는 ~~ 역량을 키우는 시기(~~을 경험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시기), 5년차에는 ~~, 7년차에는 ~~. 아무래도 출판업계 자체가 이직이 잦고, 다른 직종에 비해 오래 몸 담을 수 없는 구조여서 (은퇴?가 이른) 출판인으로 오래 버티고 산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도전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자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해주고, 대우가 달라져야 출판업계의 내실을 안으로부터 다질 수 있을 거라는 지적이 있는 것 같다. 소명의식에 호소하고,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산업'인 출판을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역부족일 것이기에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전히 계속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고, 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알라딘에서 관심 가는 작가와 출판사, 시리즈물에 '신간 알림' 서비스를 설정해두었는데 오늘만 해도 8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8권 뿐이랴. 아마 오늘 하루만 해도 100권 이상 신간이 출간되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열린책들 출판사는 오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유명한 요나스 요나손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라는 번역소설을 출간했다. 번역을 맡으신 임호경 번역가의 이름을 2009년 1, 2월 즈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시리즈에서 처음 봤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타나토노트>, <뇌> 등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을 고른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1시간 이상 집중해서 정독하는 시간이 쌓여서 그런지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길러졌고, 고등학교 진학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야자'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세계문학전집으로 민음사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열린책들 책들도 많이 읽었다. 아니 사실 많이 읽진 못했고 많이 샀다 ! 최초로 출판사와 '라포'를 형성한 대상이 <열린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2 세련된 디자인 3 세계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우르는 지향성이 세련되게 느껴짐 4 홍지웅 사장님. <열린책들>의 입덕 포인트를 꼽아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 작가와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가져가 '대표작가'로 출판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에 홍지웅 사장님이 인물로 등장하는 부분도 라포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디자인의 경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주었지만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이 한 손으로 편하게 쥘 수 있다는 점, 크기가 작아서 책장에 세워두면 블록이나 성냥갑 같은 귀여운(?) 느낌을 준다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사철 방식으로 제작해 책을 오래 동안 튼튼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문구가 신뢰감을 줬다. 추리소설, 범죄소설, 스릴러 소설, SF소설 같은 '장르문학'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킨 점이나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의 전신 격인 Mr.know 세계문학전집에서 '젊은 고전'들을 소개한 점(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처럼)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2010년대 초반에 도서전 같은 행사에서 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최애 출판사를 꼽는 설문에서 문학동네와 열린책들이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열린책들>에 대한 호감은 어느 이벤트에 당첨돼서 무려 움베르토 에코 컬렉션 전집+ 움베르토 에코 소설들 + 미의 역사/추의 역사 를 받게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파주출판단지를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출판사 사옥/건물 역시 <열린책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열린책들의 형제 출판사 <미메시스>의 뮤지엄. <미메시스> 출판사는 내가 가장 최초로 접한 그래픽노블인 <아스테리오스 폴립>를 포함해 훌륭한 그래픽노블들을 지금까지 꾸준히 출간하고 있고, 건축과 예술 관련한 책들을 많이 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을 읽은지 꽤 되었다. 표면적으로 그때그때 당장 읽어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이 <열린책들>에서 낸 책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고, 한국문학/서양철학/사회학/문화이론 분야에 독서가 집중돼다 보니 접점이 잘 안 생긴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책들> 출판사의 홍지웅 대표를 '책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라고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소박하게 덕질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의 첫 손으로 꼽은 이유는 월북출판사의 홍영환 대표님이 쓰신 <출판인 홍지웅의 생애사 연구-번역문학을 중심으로>를 재밌게 읽어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1743.html#csidx1409f73bcf3f8c09b47e2fc2818ddb2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출신으로 학내 신문 편집장을 역임했던 홍지웅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열린책들> 출판사를 설립하고 초기에 주력한 대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들이었다. 1988년 '해금' 조치란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아나똘리 리바꼬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 시리즈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같은 책들을 출간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판매고를 올리지 못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했고, 사장으로서 회사와 직원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대출을 받아 출간한 책들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터져줘야 생활을 영위하고, 그 다음 책을 기약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해체에 따른 냉전의 종식, 1991년 5월투쟁의 패배라는 대내외적 사회변화 속에서 그는 다른 유럽문학을 출간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해외에 출판사와 에이전시에 접촉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국제 네트워크와 입지전적 면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유럽문학의 성적이 괜찮아서 위기를 넘기고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파스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같은 밀리언셀러들이 터져주면서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어느 인터뷰에서 홍지웅 대표는 <열린책들> 사옥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어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좀머 씨 이야기의 경우, 당해에 '올해의 상품'에 꼽히기도 할 정도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념/이념적 진정성과 같은 '무거움'으로부터의 도피, 민족 국가 사회 같은 거대한 집단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개인의 심리, '혁명/변혁의 시대'에서 소비자본주의로 급격한 사회변동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했다는 '좀머 씨 신드롬'에 대한 분석이 있으나 추후에 1990년대에 대한 비판적인 문화론적 독해의 대상으로 새롭게 논의될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상업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뒤에 도스토예프스끼 전집, 프로이트 전집, 움베르토 에코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같은 전집들을 출간한다. 전작주의와 개정판 출간이라는 <열린책들>의 특징이 전집 출판에서 잘 나타난다. 프로이트 전집의 경우 판본이 세 가지 존재한다. 1997년 초판본, 2004년 개정판, 2020년 개정판. 최근에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출간했으며, 5년 전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를 출간해 북디자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학부 시절에 정외과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그때 이 세트를 소장하고 계신 걸 확인하고 말씀드렸더니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사셨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구매자/독자 리뷰를 확인해보니 반양장본으로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제작하다 보니 상태가 고르지 못해 비판의 목소리가 꽤 존재하는 눈치다. 이 세트 디자인을 맡으신 석윤이 북디자이너의 채널예스 연재글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후임(?)이 유지원 선생님이셔서 나 미쳐...).

링크를 가져온 기사의 인터뷰에서 홍영완 대표가 지적하듯 <열린책들>의 대표저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이건 사실 다른 출판사들도 갖고 있는 문제이긴 하다), 한국문학 출간의 부재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일부 개선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번역출간을 주력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 시리즈는 괜찮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한국 출판시장에서 건재함을 자랑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더해 요나스 요나손 같은 작가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양서들을 꾸준히 내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특히 출판 편집자들이 교과서처럼 애용한다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꾸준히 출간하고, 출판계 후학(?) 양성에도 힘 쓰시는 걸 보면 출판인-편집자 라는 직업에 진심이신 것 같다(보통 대표 자리에 오르면 현업에서 물러나 경영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현역 편집자로서 필드에서 활동하신다고 한다). '아카이브'를 중시하고 성실히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수하는 부분도 출판인으로서 멋진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태껏 좋은 얘기들을 많이 써놨는데 사실 노동현장, 직장으로서 '열린책들'이 얼마나 괜찮은 환경일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것까지 꼭 포괄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열린책들> 정도 되는 출판사가 어느 정도 환경일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홍지웅 사장님이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나면 <열린책들> 출판사가 어떻게 될지도 ...

좀 더 알찬 내용의 본격적인 출판인 탐구 성격의 글이 되려면 홍지웅 사장님이 직접 쓰신 책들을 읽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너무 묵혀두기보다 부족하지만 일단 저질러보자는 생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은 종수의 책을 출간했다는 데서 보람을 찾는 어느 출판사 대표의 말에서 출판인이란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기쁨에서부터 문화를 창달하는 이로서 지닌 소명 의식(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고뇌,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자 하는 야심)까지 다양한 레이어의 꿈과 욕망들이 궁금해졌다. 평생 책을 만들며 '할아버지 편집자'로 살고/죽고 싶다는 소망,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소망, 독자와 책의 연결(성좌 그리기constellation)을 꿈꾸며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 개인적으로 <열린책들>에서 낸 책 중 딱 한 권만 꼽으라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꼽고 싶다(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 세 번 읽은 책. 아마 한 번 더 읽게 된다면 문학과지성사 판으로 읽게 될 것 같지만.

+ 고2 때였나. 수준별 분반을 운영했었나, 모종의 이유로 반을 이동해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다른 반에서 열린책들 판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양장본 말고 엄청나게 뚱뚱한 페이버백 버전)을 읽고 있었는데 (사실 가계도 - 이름 정리를 제대로 안 하고 읽어서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지만) 다른 반 아이가 다가와서 책 두께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약간 나를 신기해하고, (좀 과장하면) 경이로워 했던 순간. 그런 허세/자부심의 순간들이 독서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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