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이랑의 정규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가 발매되었다. 8번 트랙의 곡 제목은 <박강아름>. 2년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봤던 <박강아름 결혼하다>의 주인공이었다(GV가 재밌었던 걸로 기억...). 8월 19일에 정식으로 개봉한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영화인 박강아름이 남편 '성만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영화이다. 다음은 지니매거진에 게재된 영화 소개글이다.
영화감독 아름은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에 진보정당 활동가이자 요리사인 성만을 만나 결혼한다. 아름은 결혼 후, 본인이 오랫동안 준비한 프랑스 유학행에 성만도 데리고 떠난다. 프랑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가사 노동 밖에 없는 불어 까막눈 성만은 주부우울증에 빠지고, 아름은 공동 생활의 경제와 행정 업무를 책임진 상태에서 임신을 한다. 아름은 우울한 성만을 위해 정해진 날에만 집에서 요리하고 손님을 받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둘은 '외길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출산 후 아름이 본격적으로 학업과 영화작업에 집중하면서 성만의 독박육아는 더 심해지고 둘은 더 격하게 싸운다. 결국 성만은 파업을 선언한다. 아름의 결혼도 영화도 이대로 잘 갈 수 있을까?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음악 페스티벌이나 수업시간표처럼 타임테이블을 펼쳐놓고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한 고뇌가 요구된다. 인기 있는 영화들은 이미 모두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어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리가 널널하게 남아 있는 비주류 중 비주류 영화를 보게 되는데 이런 영화일수록 사전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영화제 측에서 제공하는 시놉시스에만 의존해 영화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처음 들어보는 감독, 배우, 심지어 국적의 영화를 '예고편' 없이 본편으로 바로 뛰어들어 관람하는 상황이 영화제의 재미를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성공했을 때 짜릿함이 꽤 크달까.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정식개봉으로 이어지지 않/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봤다는 사실 혹은 남들보다 미리 봤다는 사실이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영화제가 아니라면 절대 볼 일이 없었을 1980년대 필리핀 여성영화라든지 사회학자 엄기호를 통해 말로만 들어본 적 있던 '하자센터'에서 은퇴를 앞둔 무용수 남정호가 학생들과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구르는 돌처럼> 같은 영화는 신촌 메가박스(상암월드컵경기장 메가박스)까지 간 수고를 보상해주는 영화들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놀이공원에서 파는 티켓처럼 싼 가격에 많은 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이용권을 사전판매해준 덕분에 코시국 이전까지 3년 정도 개근할 수 있었다.
기성의 젠더적 역할 분담이 역전된 부부의 결혼생활을 감독이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비혼주의를 지향했던 이가 상대방과 결혼이라 불리는 사회적 결합을 맺어 살아가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영화의 성격에 혹해 관람을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소위 '안정적인 직장'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경제적인 불안정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막연한 불안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 실제적으로 맞딱드리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겪어나가고 풀어가는지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결혼하면 뭐가 좋은지, 뭐가 힘든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귀할 것 같았다. 가보지 않은 곳을 먼저 걸어간 이에게 조언을 구하듯 주변에서 직접 만날 수 없지만 책이나 영화를 통해 '선배'로 삼고 싶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박강아름은 전작 <박강아름의 가면무도회>를 찍고 평단의 주목을 받긴 했으나 생활적 측면에서 개선된 부분이 미비했던 것 같다(독립영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면 상업영화계의 '콜업'을 받게 되는데 여성영화의 약진 이전에는 대부분 남성감독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한다. '영화제 영화' 성향이 강한 작품을 찍는 감독이라면 영화제 수상실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거나 기관이나 재단의 지원을 받거나 선택의 여지가 더 좁아지는 것 같다. 영화계뿐 아니라 예술 장 일반에서 비슷한 구조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며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지겹도록 다닌 그 학교라는/이름의 공간에 서른 살/마흔 살이 되어도 계속/계속 다니려는 걸까"(<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박강아름>). 학생이란 신분은 가난한 상태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장학금도 있고, 뭣보다 독일 같은 나라는 학생들에게 지원과 복지를 다양하게 지원한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얻은 배움은 작품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외국대학의 학위를 받으면 아무래도 귀국하고 나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도 주효하리라.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맥락을 고려해보면 한국에서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는다고 했을 때, 지금 당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적공'(원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은 백낙청의 글에서 알게 된 원불교 개념)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녀들은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는 것 같다.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프랑스의 영화학교에 다니는 박강아름이 수업에서 받은 과제는 영화를 찍어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상영하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성만 씨'가 폭발해 촬영(과제수행을 위한) 중단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업 선언 이후 홀로 카페에 나와 3유로 짜리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이어지고 얼마 안 가 세 가족이 비오는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는 장면이 결말 부분의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고 있다.
GV 현장이었는지 다른 매체에서 어느 여성 영화평론가가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손희정 평론가였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불확실하다). 박강아름 감독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여성감독들의 에세이 영화, 다큐가 나르시시즘적이고 타자나 사회로 시선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비판(주로 남성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제기된)을 자신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기존의 비평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게으르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고, 젊은 여성 영화감독들이 보여주는 세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비평이 기여하고 싶다고. 박강아름은 솔직하게 말한다. '저는 저를 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래서 "저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연습을 한다기 보다, 저를 담는 작업이 재밌고 그렇게 담긴 저를 통해 제가 몰랐던 저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너무 재밌고 멈추고 싶지 않아서 계속 하고 싶은 것 같아요"(지니 매거진의 인터뷰에서 인용)라고. 이랑이 올바르게 지적했듯 박강아름은 박강아름을 너무 사랑해서 카메라로 기록한다기보다 박강아름은 박강아름에 대해 알고 싶어 궁금해서 찍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부분에서 나르시즘적 자기기록이 범람하는 SNS의 시대에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카메라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는 것 같다. 이를 이랑은 이렇게 표현해낸 바 있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는 '박강아름'의 모습을 통해 나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공통의 질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노랫말은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지만,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릴 것 같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편집해 전시하는 보여주기와 외부세계를 향한 지평이 닫힌 상태에서 독백을 통한 드러내기 사이에서 자신을 궁금해하고 탐구하는 박강아름의 시선은 친구가 묻는 안부나 질문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갖기 어려워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매개로 세계를 성실하고도 창의적으로 묻고 기록하는 그녀의 작업을 동료이자 친구 이랑이 응원하는 이유도 나와 같은 남의 모습에서, 남과 비슷한 나의 모습에서 공감하고 위로와 용기를 얻기 때문이 아닐까.
(지니 매거진의 인터뷰를 참조해 재구성함)
박강아름의 전작 <박강아름의 가면무도회>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랑의 1집의 곡들이 영화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강아름은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이랑의 목소리가 영화의 서사 일부를 담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랑에게 영화 음악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때부터 박강아름 감독님을 사랑했던 이랑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가족이 아닌 친척 만들기'라는 해러웨이의 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랑이다. 암에 걸린 친구의 치료비를 보태고자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소중한 친구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따서 '금융예술인'으로 거듭난 이랑('미가동'에서 벗어나셨을까요 이제). 에세이를 쓰고, 만화를 그리고, 노래를 쓰고, 공연을 하며, 앞으로 찍을 영화를 구상하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살아가는 이랑. 전화를 받고, 이메일 답장을 하고, 정산을 하고,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내는 프리랜서.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는 김승일 작가에게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의 자랑'인 이랑.
생각해보면 이랑의 1집 <욘욘슨>은 많은 데뷔작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오해하는 이들/남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려줬고, 세상의 리듬에 동화되지 못해 예의 없고 불친절한 이들에게 쿡쿡 찔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건 너의 리듬'(그건 나의 리듬이란 메시지도 내포되어 있는)이라고 위로하듯 응원하듯 노래했다. 럭키아파트의 복도에서 불어왔던 여름바람의 냄새와 질감을 더듬으며 추억을 꺼내보고, '뭔가 반복되는 기분/뭔가 반복되는 이별'의 루프 한복판에서 '이상한 일'(<이상한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연애를 떠나보내는 과정 모두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문득 한밤중에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가난한 자신이 내일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먹게 되리란 사실을 확인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고 욕망을 노래하고(<먹고 싶다>), 졸업하고 나면 뭐할지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영화를 봤던 (<졸업영화제>) 대학생은 이제 영화에 의지해 겨우 잠에 들었던 자신이 겪은 불면의 밤에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들 어떻게 잠이 들까 아마 나처럼 울고 있을까' 묻고 있다. 2집 <신의 놀이>에서 '내 안에 있는 그 노랠 찾아서/(...)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라고 노래했던 이랑은 준이치, 친구들, 힘이 없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환란의 세대'인 자신과 친구들에게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먼저 선수 쳐버리자'고 용기 있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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