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신학 -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
권율 지음 / 샘솟는기쁨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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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사랑,결혼에 대한 책을 93권을 읽었다.

그래도 실전 연애가 한 번도 없으니까 그냥 이론에만 그친다.

기독교신앙서적은 기도를 하고 자신을 가꾸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보면 연애에 대한 애매모함이 많이 해결될 것 같아서 읽었는데 나한테 더 하라고 하는게 많다.

나의 짝이 어디 있는지 저자가 왠지 방향을 제시해 줄 것같았는데 비신자는 안된다고 한다.

서로 알아 보고 끌리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께서는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실려고 남자친구의 스웨터도 만들고 웨딩드레스도 만드셨는데 엄마께서 헛수고를 하시는게 아니도록 이 책의 도움을 받고 남자친구를 꼭 만나고 싶고 잘 이끌어 가고 싶다.

나의 우선과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이고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며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안에서 하는 방법을 알려주니까 좋은 것 같기는하다.

난 항상  내가 하나님이 연인이라고 생각하고 배우자기도를 어릴때부터 계속했는데 기도는 응답이 목적이고 기도가 수단이라고 이엠바운즈가 그러던데 응답을 못 받는 이유도 좀 알고 싶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에 대한 이론을 이 책은 알려주기는 주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만 집중을 하고 자기자신을 계발하고 배우자를 만나도 함께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져야 하고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신앙훈련을 받았다.

이 책은 혼전순결을 사수하라고 하는데 사수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라는 것이다.

모솔이면 저절로 지켜지던데 혼전순결 서약할 때 너무 비장했다.

순결을 잃을 상황이면 죽기를 각오하거나 범죄자를 죽여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앞에 서약할 걸 지키겠다고 자살을 하거나 타살을 하는 건 또 다른 범죄이다.

나처럼 공부만 하고 책만 보고 집에만 있고 아빠엄마랑 다니는 사람은 평생 남자랑 손잡을 기회도 없는데 난 정말 비장했다.

남자랑 손잡은 게 교회장로님이랑 악수하고 대학때 찬양한다고 둥글게 모여서 손잡았던 게 다였는데 너무 비장했다.

그래도 저자는 사수하라고 하고 난 하나님뜻을 이루고 지켰으니까 하나님께 칭찬 받고 싶었는데 저자는 더 가혹하게 더더더  하지 말라고 하는게 더 있다.

난  더 혼란스럽고 고민스럽다.












저자는 목사, 상처입은 치유자, 선교사이다.

경북대 영문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SFC학생신앙운동 간사로 캠퍼스 사역을 한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자주 섬겼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SFC활동을 했다.

저자는 성경을 최고의 연애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연애는 세속적인 개념부터 떠올리는데,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비전에 맞춰질 때 정말 아름답고 거룩한 수단이 된다.

저자는 연애와 결혼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들이 결국 하나님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우리에게 계속 도전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또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저자는 생생한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연애와 결혼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일상이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연애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나라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맥락에서 연애가 이해되어야 한다.

연애는 물론 성도의 모든 일상이 장차 임할 그 나라에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

연애야말로 세상과 다른 존재임을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청년들의 연애를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되기를 바라신다.

감정은 식거나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결단이자 확신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항상 궁금하다.

감정의 흥분 상태는 언젠가 따라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긴 감정도 얼마 가지 못한다.

사랑의 결과로 생긴 것이지만 감정은 감정이다.

감정의 짜릿함이 가라앉아도 사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인류의 최초의 연애이자 결혼은 하나님께서  직접 짝지어 주신 것이고 그 후로 계속 소개되는 연애와 결혼도 당사자들의 로맨틱한 사랑보다는 부모의 의중이나 외적인 요소에 의해 거의 결정되다시피 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이 그랬고 야곱과 라헬의 만남도 그랬다.

나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딱 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니까

하나님께 물어 본다.

다른 것에는 응답을 늦게 하시거나 어쩔 때는 안 하는 것도 있는데 연애나 배우자에 대해서는 바로 아니다라는 대답만  많이 들었다.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또한 하나님의 비전 성취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비전은 온 세상이 죄가 없는 하나님 나라로 완성되는 것이고 십자가의 복음이 온 땅에 영광스럽게 증거되는 것이다.

저자는 연애 신학이라고 하는데 신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또는 우리가 하나님을 말하다는 뜻이다.

연애 신학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연애를 통해 말씀하시다 또는 우리가 연애를 통해 하나님을 말하다라는 의미이다.

성경 말씀은 문맥이 제한하지 않는 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주님의 명령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임을 사수해야 한다.

사수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는 완전 반대한다.

사도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해서 비밀이 크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이 비밀이 크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가  큰 비밀이라는 것이다.

결혼 관계의 궁극적인 실체가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남편과 아내 또는 신랑과 신부로 비유한다.

교인들이 결혼 제도의 큰 비밀만 제대로 인식해도 이혼율이 이토록 높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얘기가 있다.

난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거다.

연애는 결혼의 부분적인 그림자이다.

연애와 결혼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다.

연애는 연합을 이룬 상태가 아니라서 파기가 가능한 일시적인 관계이다.

결혼은 파기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언약이다.

연애중에는 결혼 생활에서 누리는 완전한 배타성의 은밀한 관계를 누릴 수 없다.

연애와 결혼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친밀한 관계가 이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연속적이지만 각각의 본질적 속성을 볼 때는 불연속적이다.

사랑은 존재의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명사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동사이다.

스스로 고정되어 있거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동적인 존재의 영역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언어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다.

스턴버그라는 학자는 사랑의 3가지 요소인 친밀감, 열정, 책임이 정삼각형을 이울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분석한다.

사랑을 구성하는 형식에는 의지와 감정이 포함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면 사랑은 감정을 수반하는 의지의 작용이다.

사랑을 감정적인 측면에만 두면 감정이 사라지면 헤어져야 한다.

처음에 연애를 시작할 때는 사랑호르몬이 작용을 하고 그 호르몬이 사라지면 의지로 노력을 해야 한다.

연인들이 바라봐야 할 같은 방향은 하나님의 비전이다.

비전은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이다.

비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바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즐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그분의 피조물이다.

사랑의 의지를 지탱하는 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비전이지만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키는 내적인 기준은 서로의 사명이다.

사랑의 의지는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을 위해 이성을 사랑하려는 갈망이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이 결혼을 두고 결단해야 할 시점이 올 때 계속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킬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서로의 사명이다.

이것은 성령의 이끄심에 대하여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키는 내적인 기준이다.

불타는 사랑을 하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의 사명을 확인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나도 연애하고 싶어서 하나님한테 연애해도 되냐고 물으면 바로바로 하지 말라고 응답하셨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어떤 짝을 정해 두시고 그나 그녀를 찾아가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오류 없는 예지의 맥락에서 자기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내다보고 계신다고 조심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때도 선택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의도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하나님이 특정한 짝을 정해 두셨다는 운명론적 생각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생각에는 단 하나의 길이 자기에게 최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난 한 명만 만나고 싶은데,,

자신을 위해 예비된 최고의 짝이 특정한 그나 그녀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선의 길은 단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수많은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것이 죄의 영역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하나님이 특정한 내 짝을  정해 두셨다는 생각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혹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짝과 결혼하면 내 인생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지  하나를 정해 두시고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엄마한테 우리 아빠 한 명만 주셨을까,,

그래서 나도 한 명만 만나려고 하는건데,,

저자가 여러 명 만나서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닌가,, 

죄의 영역으로 치닫지 않는 한 우리가 기도하면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는 최고의 짝이 미리 정해진 그나 그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나 그녀를 사랑할수록 그 사랑은 결국 하나님께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혼전순결을 사수하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열정과 순결에서 엘리엇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엘리엇은 결혼 전 키스에  대한 욕망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결혼 전에 키스까지는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결혼 전 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적 연합을 증거하는 방편이고 연애는 그 일을 부분적 그림자로서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다.

성관계는 파기할 수 없는 언약 관계의 부부 사이에만 허락된 것이다.

성적 쾌락은 부부가 서로 하나 됨을 오감으로 인식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난 솔직히 궁금한게 있는데 그런 행위를 할 때 영화에서는 깜깜해지는데 깜깜하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은데 그래도 할 수 있는건가,,

전 존재의 벌거벗음은 두 차원의 관계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순결과 한 배우자를 향한 나의 육체적 순결이다.

순결의 개념은 언약  관계에 있는 한 대상을 향한 배타적인 신실함이다.

크리스천 연인들은 결혼 전에 순결을 사수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스킨십하는 방법을 서로 공부를 해오는 건가,,

저절로 잘하게 되는건가,,

하나님은 연인들의 감정 상태를 소중히 여기시지만 그 감정이 극도로 불타서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 커플을 향해 질투의 불을 표출하신다.


















저자는 스킨십은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데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는 스킨십의 최후 지점은 키스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결혼 전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키스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엥? 왜? 난 연애하면 꼭 키스는 해보고 싶은데,, 너무너무 궁금한데 왜?

키스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왜 안돼?

키스는 순결과 관계없쟎아,,

키스는 앵두를  따다가 입술에 갖다대는 느낌이고 귀에서 종소리가 나고  코가 부딪힐 수 있고

초콜릿맛이 나고 구한말 선교사들이 전파해서 고려시대에는 키스가 없었다고 했는데 책얘기가 좀 그렇다.

그런데 또 궁금한 건 이빨를 꽉 물고 있으면 키스를 할 수 없는건가,,

저자는 이 얘기에 책을 덮어 버리거나 저자에게 야유를 보낼거라고 했는데 난 저자에게 그러고 있다.

자기는 다 해봤으니까 기대나 궁금함이 없겠지,,

저자는 목사의 양심을 걸고 성경에 비추어 주장을 굽히지  않을거라고 한다.

키스가 성경에 근거해서 영적 간음이라는데,,

저자는 성적 욕구가 강한 형제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단칼에 정리하라고 한다.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자신을 믿도록 고단수를 쓰는 형제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받아들이는 수준의 스킨십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수위를 높여 간다.

그녀가 안정감을 갖도록 서서히 길들이는 방식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그루밍수법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익숙해져 형제의 의도대로 순응하게 된다.

미혼의 자매들은 스킨십을 두고 결혼한 선배나 부모님과 일정 부분 공유해야 한다.

저자에게 상담한 어떤 형제는 자매가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마지노선을 넘어서 거기에 탐닉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중심적 연애를 사모하는 영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저자가 페이스북을 하던데 저자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지금의 사모님을 만났다고 했는데 저자는 결혼 전에 자매와 키스를 안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그런 건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성희롱이 되니까 물어 볼 수는 없다.

난 다른 책에서 연애할 때 순결은 지키지만 키스는 해도 되고 결혼 직전에는 애무인지 애모인지도 해도 된다고 읽었다.

난  연애를 하면 하면 키스는 해봐야지라는 생각은 책을 통해서 갖고 있었다.

난 순결도 지키고 키스도 안하고 다른 애들은 순결도 안 지키는 것 같은데 난 하나님때문에 키스도 안 되는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직접 물어 보겠다.

뭐라고 하시는지 언제 응답을 해주실지는 모른다.

오늘 밤부터 기도를 할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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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법 - 관용, 인간관계의 고통을 없애줄 확실한 키워드
백강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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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는 방법을 알면 세상사는게 편해 질 것 같다. 

저자 백강이는 치열하게 사색하는 생각여행가, 10년차 작가이자 사색가, 네티즌이 선정한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 따뜻하고 다정한 문체, 핵심을 파고드는 통찰력 넘치는 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독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작가는 오늘도 힘겨운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만족도 필요하지만 독자의 편에서 힘이 되어야 한다.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삶의 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

타인은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이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듯이 그들 또한 때로는 실수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행복은 고사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다른 이에게 향하는 증오의 칼날은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워도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사람만이 참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만큼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은 없다.

누구든 용서하고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

관용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용서받을 짓 한번쯤 저지른다.

끊임없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삶이 보다 행복하고 평화로워 질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관용은 달리 말하면 용서라고 할 수 있다.

관용과 용서는 비슷한 말이구나,,

관용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관용은 진정한 정의로 용서를 뛰어넘는 것이다.

관용은 나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존재를 용서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즉 관용은 용서와 이해와 사랑이 토대이자 주축이다.

관용이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한다.

살아오면서 관용만큼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도 없다.

저자는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용기를 내어 관용에 관한 책을 썼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관용은 그다지 상업성을 지닌 키워드가 아니다.

특히 노골적인 성의 상품화와 자극적인 기사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관용은 더욱 낯선 단어일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더 신중하게 자신의 내밀한 면을 들여다보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넓은 가슴임을 알게 된다.

그 가슴이 바로 관용인가,,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머리에 깊숙이 각인시킨다.

한 문장으로 관용의 정의를 압축해본다.

관용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며,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려는 인간의 굳은 의지다.

관용은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는 인간만이 획득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다.

용서는 잘못을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고귀한 행위이다.

그 사람이 잘했든 잘못했든 그 어떤 행위를 했든, 그 사람을 전적으로 수용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용서는 방대하고 한 점 의혹이 없이 순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를 자신의 삶에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교류하고 교감하면서 삶을 유지하는 존재다.

인간은 다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만큼 타인은 우리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들을 수용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일과 다름 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인생에 전적으로 수용하는 일은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이해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경의라는 의미다.

더 세밀하게 파악해보면, 이해한다는 것은 한 인간의 역사를 전적으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이해는 다른 사람의 살아온 날들을 가감 없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역사는 바로 우리 자신의 나머지 역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사랑은 인류의 희망이요, 삶의 결정적인 축이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전기가 차단된 어두운 세상일 것이고 산소가 결핍된 죽음의 세상일 것이다.

빛과 공기가 사라진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

사랑은 빛과 전기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다.

사랑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궁극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쉽게 생각해본다.

사랑은 한없이 주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표본이다.

엄마는 자식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이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은 진정성 있고 깊다.

이처럼 사랑은 엄마처럼 다른 존재들을 한없이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심정으로 상대방을 염려한다면 상대방은  고마워할 것이다.

관용은 사랑으로 인해서 완성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궁극적으로 사랑이야말로 관용의 최대 요소다.

아무리 이해하고 아무리 용서한다고 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 전적인 이해와 용서, 무조건 기다려주는 것, 무조건 수용해주는 것, 무조건 믿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건 관용적인 인간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진다.

사랑은 불행을 행복으로, 가난을 풍족함으로, 불평을 감사로, 분노를 자비로움으로 바꾸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것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가능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런데 불가능은 관용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악마의 선물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악마는 언제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포기와 절망이다.

이 포기와 절망의 근원에는 무관용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관용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 사람이 산을 오르기 전에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난 저 산을 절대로 오를 수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는 당연히 산에 오를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산에 오르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가능성과 내면에 잠재된 힘을 믿지 않는 무관용을 했기 때문에 산에 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관용적인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산을 보면서 난 저 산을 오를 수 있어, 정상에 올라서 멋진 풍경을 볼 거야, 도전해보자.”라고 얘기한다.

이런 도전의식을 갖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관용이다.

자신을 관용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미진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관용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이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를 갖는다.

러한 기대가 삶 자체에 그대로 적용되어 어떤 일이든 의욕적으로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용하는 사람은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고 현명하게 그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것은 관용의 잠재된 힘이다.

하지만 관용을 배척한 삶을 사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은 불가능한 이유를 더 잘 찾아낸다. 이렇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고 거기에서 도전을 멈춰버리는 것이 무관용한 사람의 패턴이다.

관용이 없이 산다는 건 가능한 일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관용이 없다면 관용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없던 관용을 어떻게 내면에 채워 넣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실이 있다.

인간은 원래 관용적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관용이 있었던 것이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진실이다.

이 점이 의문스럽다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된다.

 우리는 서로가 행복한 관용을 추구하던 존재라는 점이다.

관용은 마치 화분에 심은 식물과도 같다.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어야만 잘 자라는 식물처럼 우리의 관용도 늘 주인의 관심과 사랑으로 유지되고 더 성장하는 가치인 것이다.

관용이 부족하거나 없다면 새롭게 그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

먼저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지니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변화시키면 하지 못할 일이 없고, 머뭇거리면서 포기하고 훗날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환경이 비참하다고 해도 관용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절망하거나 포기하기 전에 가슴속에 먼저 관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기는커녕 있던 꿈도 내팽개치고 다른 사람들과도 불화하면서 불행에 겨운 일생을 산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왜 누군 행복하게 살다 가고 누군 죽지 못해서 사는 걸까,,

어떤 선택일까,,

바로 행복해질 것인가, 불행해질 것인가 양 갈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열이면 열, 모두 다 자신의 행복을 바랄 것이다.

행복하게 한평생 무난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소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행의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것은 관용이다.

어떻게 관용이 그런 놀라운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시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관용은 생로병사를 주관하는 신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관용을 한다는 건 신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가는 성스러운 행위다.

불행의 악순환을 관용으로 멈추게 만든 사람의 예도 있다.

 K는 천애 고아였다.

부모는 그를 낳자마자 비닐봉지에 담아서 쓰레기장에 버렸다.

게다가 청각장애인이었다.

그의 장애는 당시의 의술로는 도저히 고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는 입양되었지만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했고, 결국 학대를 피해 집에서 도망쳤다.

그는 대낮에도 목숨 걸고 다녀야 한다는 할렘가에서 구걸하며 목숨을 연명했다.

그런 그가 불행한 인생으로부터 벗어나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건 그가 어느 날 자신과 한 다짐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산다면 난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 거야. 이제부터 내 삶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어.  그래서 내게 있는 불행의 씨앗을 모두 제거해버리겠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겠어.”

그는 당장 그 거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건실한 일자리를 구했다.

배우지 못한 그가 할 일이라곤 육체노동뿐이었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일할 수 있음을 고마워했다.

열심히 10년간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음식점을 차렸다.

다행히 음식 맛이 좋았던 그의 식당은 성황을 이루었고, 그는 더 이상 굶주리면서 불행해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요리 공부를 해서 대학교수가 되었다.

이제 그는 예전의 자신처럼 불행의 늪에 빠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기부와 봉사를 하면서 행복을 전파하며 살고 있다.

그는 늘 행복하다고 자랑한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믿는 것이 바로 관용이다.

관용으로 자신을 휘감고 있던 불행의 사슬을 끓어버린 것이다.

불행을 부르는 것은 잘못된 신념과 사상이다.

즉 자신은 언제나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조가 그것이다.

그런 반관용적인 사상과 신념은 불행을 절대 벗어버릴 수 없게 만든다.

관용은 불행의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선물해준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또 양부모에게 학대받던 가난하고 불쌍한 고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사람이 된 K는 관용이 주는 기적을 선물 받은 사람이다.

한번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더 이상 희망의 빛이 안 보인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관용이다.

관용은 그런 자들에게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는 기적을 선물해줄 것이다.

누구든 관용을 베풀고 성공한다면 누구나가 다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에게도 베푸는 것이지만 자기자신에게 가장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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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전교 꼴찌 영준이는 어떻게 수능 만점을 받았을까?
송영준 지음 / 메이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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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공부법책은 안 빼먹고 읽고 싶다.

저자는 꼴찌를 하다가 수능 전국 1등으로  서울대를 갔다고 하는데 항상 공부를 잘하다가 조금 더 잘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저자같은 경우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저자가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속에서 찾은 공부방법은 뭔지 진짜 궁금했다.

꼴찌와 1등의 생각은 뭐가 다른지도 궁금했다.

1등은 어떻게 해보려는 방법을 찾고 꼴찌는 뭘해도 안 될거라고 포기를 한다고 한다.

몇 번 실패를 해도 계속 도전을 하는게 1등이라고  한다.

요즘 정치가의 자식들을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노력의 기적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일반 사람들은 평준화를 하고 정치가들의 자식만 전문직종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책을 보고 공부도 잘하고 전문직종자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좋겠다.

저자는 인생역전을 하고 온갖 공부법을 알려주니까 아주 마음에  든다.

공부는 오로지 자기자신만을 위한 행위니까 정말 중요한 행위같다.

저자가 공부에 대해서 재미를 맛보고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을 때 쓰는 방법도 잘 알려준다.

난  공부가 하기 싫을 때보다는 결과에 대한 공포감이 너무 커서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저자는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수능만점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

저자의 책을 보니까 나도 성공하고 인생역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진다.

이 세상에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큰 행복이고 큰 기쁨같다.

공부가 나에게도 그렇게 되어 줄 것 같다.


 









전국 1등한 저자를 책으로라도 만나니까 너무 좋다.

저자는 원래 공부를 아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김해외고에 들어가서 거의 꼴지를 하는 충격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저자에게 선생님이 다시 해보자고 하고 저자가 힘을 내고 공부를 하면서 전국 1등까지 하게 된 것이다.

공부법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책으로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항상 책을 봐야 하고 자격증이나 합격하고 따고 싶고 하고 싶은 공부가 많으니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기초 단계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는공부를 잘하는 자기 자신을 떠올리지 못한다.

난 항상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서 공부 잘하는 나를 떠올릴 수 있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나를 자신이 깨닫게 하고 그런 자신을 구체화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책을 잡기로 마음먹은 순간 우리는 책을 잡기 전의 자신을 완전히 잊어야 한다.

과거의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과거의 자신이 이룬 만큼의 성과밖에 얻지 못한다.

조금만 힘들어도 자신은 원래 이런 거 하는 애가 아니니까 하는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금방 제자리로 돌아간다.

기준점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뻗어 있어야 한다.

뭔가를 시작했으면 그걸 전혀 하지 못하던 시절의 자신은 잊고 언젠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계속 나아가야 한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과거의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나에게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얘기를 해준다.

저자는 수능을 준비하면서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그런 삶이 싫지 않았다.

힘들지만 싫지 않았다.

그만큼 저자의 목표가 쉽게 이룰 수 없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가치 있고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틀리지 않았고 그 모든 과정을 견디면서 성장했고 결국에는 전국 1등이라는 짜릿한 결과와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끝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국어 영역은 수능 중 가장 까다로운 과목이라고 한다.

애매한 문학 문제를 맞히는 요령을 저자가 알려 준다.

문학 문제를 잘 푸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내용을 아는 것과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문학도 문제 푸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문학 작품을 설명해 주실 때 간접적으로 소설이나 시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겠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분석과 더불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문학 문제 선지는 (작품 속의 내용)을 통해 (작품에 관한 주관적인 생각)을 알 수 있다.

문제의 선지를 객관성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야 한다.

비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턴이다.

수능 국어의 문제 패턴을 분석하고 그 패턴을 인지하면서 지문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먼저 문제의 패턴을 파악한 다음, 그 패턴을 통해 행동 요령(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정보를 이어 줘야 할 수도 있다)을 정해 놓은 뒤 읽는다.

저자가 비문학 문제를 풀 때 신경 쓰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반대 상황을 항상 신경을 쓴다고 한다.

예를 들어 통화량이 증가할 때의 상황을 다룬 지문이라면 통화량이 감소하면 어떻게 될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지문 속에서 답을 찾으면서 읽는다.

비례, 반비례 관계는 무조건 문제로 나온다.

예를 들어 질량이 커지면 무게가 커진다라는 내용의 지문에서 이런 관계식들은 문단을 띄어서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1문단에 질량이 커지면 무게가 커진다는 말이 나오고 3문단쯤 가서 무게가 커지면 힘이 커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종적으로 시험 문제에는 질량이 커지면  힘이 커지는가를 확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정보를 다루는 데 자신이 없다면 시험지에 따로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거나 지문에 표시하면서 내용을 정리한다.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할 때는 차이점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차이가 생기는지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할 공통점을 반드시 확인하면서 읽어 나가야 한다.

1문단에서는 주로 구체적인 문제가 나오기보다는 글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려 준다.

따라서 1문단을 앞으로 이런 얘기를 하겠구나 예상하면서 읽으면 새로운 정보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단순히 나열하면서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하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영화적 독해와 영화에 대한 역사적 독해는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두 축을 이룬다라는 문장이 나오면 역사에 대한 영화적 독해와 영화에 대한 역사적 독해가 비교 대상으로 놓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과거의 이론이 나오면 현재의 이론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 과거, 옛날, 17세기 초와 같은 시간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나올 경우, 보다 최근의 이론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 나가야 한다.


















글을 보다 효율적으로 읽고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행동 요령 없이 글을 읽으면 긴 지문에서 어느 부분이 중요하고 문제로 나올 확률이 높은지 모르므로 지문 전체를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고 어떤 정보가 주로 출제되는지 알고 있다면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므로 긴 지문일지라도 적은 힘으로 공략할 수 있다.

저자는 김해외고에서 127명중에 126등을  하다가 3개월 열심히해서 127명 중 87등을 했다.

여름 방학에 괜찮은 공부법을 발견했다고 한다.

저자의 수학 공부법의 핵심은 어려운 문제는 일단 제쳐 두고 넘어갔다가 쉬운 문제를 모두 정복하고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개념 설명을 다시 읽으면서 설명해 놓은 개념에 문제를 대입해서 푼다.

답지를 보지 말고 다시 풀어서 정답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를 잘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일단 책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영어는 어휘력싸움이다.

영어는 어휘력싸움이 끝나면 문장 읽기 능력싸움이 시작된다.

아무리 아는 단어가 많아도 실제 그 단어가 쓰인 문장을 해석하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자주 나오는 문법 표현 익히기와 끊어 읽기 훈련을 한다.

저자는 제 2외국어를 일본어를 했다.

시험을 볼 때 집에 가지 말고 끝까지 시험을 보라고 한다.

문제를 풀 때 문제를 풀고 맞혓으면 동그라미를 틀렸으면 세모를, 모르는 문제는 별표를 친 다음, 답지의 문제 풀이를 확인하면 된다.

문제를 풀고 난 뒤 본인이 한 생각을 되새기면서 풀이의 문제점을 찾고 놓친 점을  체크하고 개선 방안을  스스로 제시하는 일련의 과정은 머리를 굴려야 해서 상당히 고생스럽다.

문제를 바라보며 사고하는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부는 기출 풀고 모의고사를 풀면 된다.

저자처럼 공부 잘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는 건 항상 행복하다.

전국 1등, 만점이라는 얘기도 가슴 떨리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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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만만해지는 책 - 영어 때문에 멘붕 오는 당신을 위한
벤쌤 지음 / 체인지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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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다.

그냥 잘하는게 아니라 진짜진짜로 잘하고 싶다.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책이나 보고 공부나 잘해야 할 것 같다.

춤도 못춰, 노래도 못해, 놀러가는 것도 싫어해, 몸도 약해, 운동도 못해,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어해, 그러니까 공부만 잘하고 싶은 것 같다.

저자는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어했지만 시골에서 알파벳도 못 외우고 눈물겹게 공부를 해서 토플 고득점을 받고 외국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떨어졌다.

저자는 진짜 영어가 아니라 점수영어만 공부를 했다는 걸 느꼈나보다.

나도 점수영어만 공부했다는 걸 느낀다.

저자의 영어공부법을  우리에게 전수해주는 이런 책 정말 좋다.

저자의 영어공부법은 소리를 통해서 배우고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정을 살려 트레이닝을  한다.

미국인의 사고를 하고 말을 하는게 진짜 영어라고  한다.

저자의 책은 영어만 잘하게 하는게 아니라 뭐든지 하면 된다는 동기와 자신감도 심어준다.

나도 책을 많이 읽으니까 공부법이나 독서법같은게 서서히 변하게 하는 것 같고 도움도 된다.










저자에 대해서 더 깊이 얘기하면  20년이 넘도록 영어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던 영어 통합 꼴찌였지만 지금은 수많은 영포자들의 영어 멘토로 대활약 중이다.

누구보다 영어를 싫어했기에 영포자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는 영어는 아주 재미있는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수많은 영포자들을 영어를 즐기는 자로 만드는 중이다.

YBM어학원에서 영어회화 1스타강사 로 활동하면서 8만 명의 수강생을 영친아로 만들고 그들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또한 벤쌤에듀의 대표 강사로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많은 수강생과 매일 소통하며 전 세계 영어 초보자들이 영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상상을 해보면 조금 전까지 자신은 대한민국에 있었다.

그러나 영화<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처럼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뿅 하고 미국 뉴욕 한복판에 떨어졌다.

다행히 터미네이터와 달리 옷은 걸치고 있다.

지갑도 두둑하다.

근사한 선글라스도 끼고 있다.

그런데 뭔가 놓고 온 느낌이다.

뭐가 없는 지 생각을 해보니까 영어를 두고 왔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메인 스트리트 가득 메운 세련된 디자인의 광고판, 화려한 빛의 대형 스크린 그리고 노란색 신호등과 노란색 택시까지 이 멋진 뉴욕에 왔는데 영어가 없다니!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지도를 든 어느 할머니가 자신의 코앞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다.

은발의 파마머리를 하고 빨간색 티에 갈색 백팩을 메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미국 할머니다.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영어를 못한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꿎은 손바닥만 비비면서 난감해한다.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가 된 기분이다.

입은 뻐끔거리고 있지만 아무런 말이 나오질 않는다.

세상 모든 걸 다 갖고 있으나 영어 딱 하나 없는 자신에게 뉴욕은 마치 물속처럼 느껴진다. 산소호흡기도 없는 상태에서 깊은 바다에 풍덩 빠진 것 같다.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영어를 한다는 건 외국인을 만나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 상황에서 길 잃은 할머니를 도와 안내를 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추천하는 게 있다.

영어 어항 속으로 풍덩 빠지기, 영어가 완벽해지기 전에는 외국인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하며 영어 트레이닝을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우리 자신을 자발적으로 영어 어항에 풍덩 빠뜨려본다.

여기는 한국이고, 자신은 집이나 지하철 혹은 카페에서 이 책을 읽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한글로 적혀 있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친숙한 한국어의 세계에서 별다른 불편함 없이 살아간다.

이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어 어항으로 들어간다.

마치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인어공주가 문어 마녀와 계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도 영잘알이 될 수만 있다면 자기 한국어를 잃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영어의 세계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만 써보게 하면서 영어 말하기 상황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비추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뇌 속은 여전히 한국어가 지배한다.

영어 어항에 빠진다는 말은 생각조차 영어로 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신의 뇌와 혀를 준비시킨다.

당장은 힘들고 어렵겠지만 생각마저도 영어로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주변을 영어 환경으로 바꾼다는 말은 물리적 환경을 바꾸라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 바꾸기보다 더 중요한 게 일상에서 얼마나 영어를 의식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환경 바꾸기란 영어의 일상화를 돕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이다.

수단이 영어 환경으로 바꾸기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겉모습만 흉내 내다 내실을 놓칠 수 있다.

만일 수단과 목적이 잘 어우러져 제대로 영어 트레이닝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약 일주일 뒤에 환상을 경험할 수있다.

꿈속에서 여러 할리우드 배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난 배우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낮에는 잘 나오지 않던 말이 꿈속에서는 술술 나온 적이 수두룩했으니, 아마도 머리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몸이 알아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다.

하루는 강의 시간에 시험 준비하듯 영어를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답답해서 저자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어 스위치는 24시간 온이 되어야 해, 너는 자더라도 뇌는 켜져 있어야 한다고 공부가 끝났다고 진절머리 치면서 교과서 덮듯이 잊어버리지 마. 자려고 누웠는데 오늘 배운 영어가 생각나면 그냥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돼.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다시 일어나서 찾아볼 필요도 없어. 그냥 기억나는 데까지만 생각해 보면 돼.  그러면 네가 잠이 든 사이, 뇌가 그 꿈을 꾸게 해줄 거야그러면 꿈속에서 영어로 말하면 된다.”

만일 누군가가 영어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면, 그건 몰입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도 된다.

 ‘리슨 앤 리핏의 정확한 의미는 듣고 따라 하세요다.

 그런데 우리는 고질적인 교육 환경 때문에 이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의 교실을 추억해 보면 교사나 강사가 테이프를 틀어준다.

영어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말을 따라서 말한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슨 앤 리핏이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게 있다.

몸짓이다.

 그리고 표정 그리고 감정이다.

외국인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몸짓으로, 어떤 감정으로 이 말을 하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 우리는 영어 공부란 몸짓 없이, 표정 없이, 감정 없이 그저 말만 따라서 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어로 말하기?

아니다.

영어로 표현하기다.

말이 중요한 표현 수단인 건 사실이지만 유일한 표현 수단은 아니다.

말 말고도 몸짓, 표정, 감정과 맥락도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소통과정에서 몸짓과 표정, 목소리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영어를 로만 배웠다.

그래서 말 자체는 별로 틀린 게 없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경험을 여행지에서 자주 한다.

우리는 공부로서의 영어에 친숙하다.

반면 저자는 운동처럼 영어를 배웠다.

발음할 때는 안 쓰던 얼굴 근육을 쓰기 때문에 연습이 길어질 때면 턱이 빠질 듯 아플 때도 있었다.

안 쓰던 얼굴 표정도 많이 쓰기 때문에 나중에는 ‘저자는 천의 얼굴을 가졌어라는 말도 들었다.

안 쓰던 제스처도 쓰다 보니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말도 난생처음 듣게 됐다.

한국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건 때로는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남들 앞에서 얌전히 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표현하는 데 인색해진다.

반면 영어의 세계에 발을들여놓는다는 건 억눌렸던 우리의 표현 능력을 개방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처 몰랐던 자기 안의 에너지를 찾게 된다.

그 에너지를 품격 있게 꺼내 쓰는 것이 곧 영어를 트레이닝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영어 배우기란 실은 활력을 되찾고 인격을 배우고 꿈을 갖게 되는 일이라고 한다.

대신 영어는 소리를 통해서 배우며, 이미지를 떠올리며 배우고, 감정을 살려 배우는 것이다. 배우는 게 아니라 트레이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학습법이 아니다.

저자가 그랬듯이 우리의 숨은 열정을 불러 일으켜 줄 뜨거운 영어 학습법이다.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자신은 애국자가 된다.

아니, 꼭 애국심 함양 까지는 아니어도 한국에 대해서 더 알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외국인이 한국 문화와 역사에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동반 투어를 위해서 저자는 경복궁에 얽힌 역사적 지식을 종이에 적은 뒤 중요한 부분은 하이라이트를 쳐서 갔다.

이 곳은 옛날 왕이 머물던 곳이고, 여기는 마지막 왕이 살던 곳이다등등 준비해간 학습 자료를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만일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짧은 영어 말하기라도 그들은 매우 고마워한다.

정말 다행히도 한국인은 영어 귀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원어민이 하는 영어와 원어민 아닌 사람이 하는 영어를 구분할 줄 안다.

심지어 영국인의 영어와 미국인의 영어도 구분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는 못해도 발음상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다.

영국 영어는 딱딱 끓어지는 발음이니까 미국 영어랑은 너무 틀리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자막붙은 미국 영화나 드라마, 미국 음악을 듣고 자라서 일 것이다.

그럼 남은 문제는,,

미국인의 발음을 쫓아가는 것이다.

발음 공부의 핵심은 귀에 있다.

절대 발음기호로 공부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혀 봐야 귀가 듣지 못하면 그건 발음 공부가 아니다.

영어는 발음 문제만 해결해도 먹고 간다.

설령 자기가 말을 못하더라도 들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듣지 못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과 들리지만 표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받아쓰기든 듣기든 표현을 익혔다면 그 발음을 그대로 모방해서 연습한다.

누누이 강조했듯이 영상으로 녹화한 뒤 직접 보면서 체크하거나 자기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가서 영상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면 좋다.

설령 나중에 찾아보지 않더라도 영상을 찍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발표 연습을 하는 것과 카메라를 의식하며 발표하는 것은 연습량에 차이가 있다.

영상 녹화는 확실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설령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종종 귀만 뚫으면 영어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아니다.

알아듣게 된 발음이라도 입에 붙기 위해서는 직접 발음해 봐야 한다.

이 책을 보니까 영어는 외국 사람이  말하는대로  연기하듯이 따라 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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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 가슴 뛰는 내일 - 100세시대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삶의 지혜
김양식 지음 / 수류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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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삶의 지혜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명상가, 문학박사, 퇴직을 앞두고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역사의 관점에서 노년 문제를 접근하는 동시에 역사인물의 노년기 삶과 사상을 통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는 지난 20여 년 요가 명상을 공부하면서 몸과 마음 수행법을 익혀 왔기에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삶의 지혜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현재 충북연구원 충북학 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요가문화협회 부회장,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 명상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00세 시대 바람직한 노년상과 정책적 시사점을 펴냈다.

분명한 사실은 백세시대가 성큼 다가왔어도 50세대 상당수가 그 위기와 기회 가능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냥 삶의 관성에 떠밀려 기존 방식대로 안이하게 살아간다.

이는 꼰대, 식충이, 삼식이 등과 같이 노인을 폄하하는 은어에 잘 나타나 있다.

점점 세대 단절을 가속화되고 노령층의 사회경제적 존재 가치와 위상도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등 고령화에 따른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깊이 드리우고 있다.

이미 여러 통계는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고령화 사회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실제 한국의 노인들은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어 세계 선진국 가운데 제일 가난한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의 빈곤 율은 OECD 평균 14.8% 보다 3배가량이나 높다.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해야만 하는 고용율 역시 선진국의 평균14.9% 보다 무려 배 이상인 31.3%에 이른다.

60대 이상 가계 대출 비중은 2014년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5세 이상 70%가 늙으신 부모를 부양해야 아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현실이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노년이 아니라 가난한 노년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고령층의 질병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89.2%가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3개월 이상 세 종류가 넘는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비율도 61.7%에 이른다.

그래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의사에게 처방을 받아 하루에 먹는 약이 평균 3.9개에 이를 정도로 약물에 의존 하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보고서의 내용이다.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며 늙어가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도 최근 5년간 28.6%나 증가하였다.

노인 자살률 역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아, 2015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58,6명이 자살하였다.

이와 같은 각종 통계는 회색쇼크라 할 정도로 우울한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우울한 장수시대,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가난하고 병든 노년기가 기다리고 있다.

오래 산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암울한 백세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명만 늘어난다면, 한국사회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이 들어 예전처럼 자식에게 의존할 수도 없다.

2019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의하면 늙으신 부모를 반드시 모시겠다고 답한 자녀의 비율이 23.3%에 불과하다.

이젠 더 이상 노후를 자식에게 기대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 노년기를 책임져야만 한다.

어두운 고령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고령자들은 설상가상으로 노화에 따른 개인적인 고통마저 감내해야 한다.

노화는 20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50대부터 뚜렷이 그 증상이 느껴진다.

노화는 인간 염색체의 유전 정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가 나이를 먹으면서 세포 분열이 반복됨에 따라 점점 그 길이가 짧아지면서 나타나,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화 증상은 다음과 같다.

걸음걸이가 점점 불편해진다.

눈이 점점 침침하고 나빠진다.

병원을 찾는 횟수가 많아진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시간이 많아진다.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무력해지는 자신을 종종 느낀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불안감이 더 커진다.

전보다 우울한 시간이 많아지거나 짜증을 잘 낸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전보다 고집이 세졌고 말이 많아졌다는 말을 듣는다.

일상생활에서 점점 재미있는 일이 줄어든다.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다.

며칠 전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약속이나 물건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노인 대접을 받는 일이 늘어난다.

TV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러한 노화 증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증상이 나타나는 나이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노화의 숲이다.

그 숲에는 노년의 4대 고통으로 알려진 빈곤, 고독, 할 일 없음, 질병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나이 들면서 노화에 따른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수시로 찾아오는 무릎 통증과 깜박이는 기억력은 불안감을 키운다.

상상만 해도 불안할 것 같다.

그래서 노화에 따른 증상과 심리적 불안감에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손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굳어진 고정관념과 생활습관은 새로운 변화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교육 개혁가인 호로스만이 습관은 철사 꼬아 만든 쇠줄과 같다고 말한 것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은 손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된 자신의 몸과 삶의 환경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 지향적인 삶을 사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삶의 질이 훨씬 높다는 연구들이 많다.

세포의 노화를 막는 방법을 연구한 미국 애리조나 의과대학의 앤드루 웨일교수는 우아하고 곱게 늙어가는 장수비법으로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해소, 잦은 스킨십 등을 제시하면서 최고의 비법은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지혜, 깊이, 부드러움과 같은 나이듦의 장점들을 적극적으로 살려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영적인 나이 듦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필요하다. 21세기 현대사회는 고도의 산업화, 도시화, 지식정보화가 이루어짐으로 인간의 존재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인간의 존재가치 상실과 그에 따른 정체성 혼돈은 인류 문명의 위기의식마저 초래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로 상징되는 지식정보화는 인간을 지식정보의 도구로 전략시키고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고립시키고 있다.

위기의 극복은 궁극적으로 생명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서 가능하다.

생명 탐구는 곧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살아가는 삶이 단지 만족스럽고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희망에 찬 열정과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활동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

노년기는 한 마디로 인생의 쇠락기, 사회로부터의 은퇴기,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런 것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부정적 노년관에서 비롯된다.

그런 노년 인식에서는 노년기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이해와 창조성을 찾기 힘들다.

실제 나이 들어 살아가는 모습들은 다양하다.

체념형은 노년기 노쇠함과 질병에 시달리며 죽음만 기다리면서 더 이상 생산적인 생명 활동을 포기한 유형이다.

꼰대형은 집 안팎에서 어른 대접만을 받고자 하는 유형이다.

은둔형은 노년기를 사회경제적 은퇴기를 보고 일선에서 물러나 혼자만의 은둔생활을 하는 부류이다.

이런 유형은 주변인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혼자만의 은일한 생활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쾌락형은 우리 주변에서 인생은 뭐 있어 또는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외치며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아가는 나이 드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때로는 행복해 보이고 때로는 노년기를 참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유형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삶의 유희, 욕망의 실현에 불과하다.

바람직한 삶이 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궁극적으로 행복이다.

행복은 만족, 열정, 의미 등이 복합된 개념이다.

따라서 바람직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아실현을 통해 보다 높은 초월의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인생 후반기에 결실을 거두는 삶의 과실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한 평생 살아온 자기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

이와 같은 후반기의 삶은 의롭고 곧게 살면서 만물을 살리는 이타적 삶이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 얘기는 나이와 관련된 책에는 전부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배움에는 생물학적인 나이는 무의미하다.

바람직하게 나이 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배움이라고 한 것은 아주 오래 된 미래 가치이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둔 이후 70세에 대자유인의 경지인 종심에 이른 것도 끓임없는 배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배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았다.

그들은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노환을 오히려 배움의 기회로 삼았으며, 나이 들어 깨우치는 진리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퇴계 이황이다.

이황은 죽기 4년 전인 66세에 오랜 지병과 노환으로 몸이 불편하였는데 매일 자연을 거닐며 사색하거나, 책이 가득한 방의 책상 앞에 앉아 고요히 명상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이치를 터득하는 일상을 보냈다.

때로는 배움의 즐거움에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이미 2천 년 전에 노년기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학문을 익히는 미덕을 널리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멋있는 것 같다.

나이 60-70대를 인생의 제 3기로 설정한 월리엄 새들러 역시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배움에 있다고 하였다.

​자기 몸의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기능 향상을 돕기 위해서 뇌를 늘 젊게 해야 한다.

​자기 몸의 컨트롤 타워인 뇌를 잘 관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나이 듦을 위해 꼭 필요하다.

치매 같은 인지 장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도 필수이다.

뇌를 젊게 하려면 매일 새롭고 건강한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껴봄으로써 감각 기능을 되살려 뇌를 활성화시킨다.

아무리 좋은 행동과 습관이어도 반복하다 보면 뇌가 게을러진다.

게으른 사람은 뇌가 약하다는 말이 있다.

부지런히 뇌 운동을 해야 건강하다.

 뇌 운동은 크게 학습을 통한 뇌 운동, 정서적 뇌 운동, 신체적 뇌 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습을 통한 뇌 운동은 게임, 퍼즐, 독서, 암기, 잠언 낭송, 문제풀이, 사경, 명문장 필사하기 등과 같은 직접적인 두뇌 활동을 통해 뇌를 단련시키는 방법이다.

이들 학습은 나이 들면 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억력이 나빠서, 도는 머리가 안 좋아서 등의 이유를 댄다.

정서적 뇌 운동은 긍정적이고 유연한 감정과 마음을 갖는 것으로 영화 보기, 음악 감상, 여행, 그림 그리기, 허브향 맡기, 익숙하지 않은 냄새 맡거나 소리 듣기 등이 좋다.

특히 좋아 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나 수다가 효과적이다.

난 정치나 시사적인 얘기를 하는 건 좋지만 감정적인 얘기를 하면 멀어지는데말이다.

신체적 뇌 운동은 보통 걷기나 스트레칭이 유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지속가능한 뇌 운동을 통해 뇌를 활성화하면 뇌의 노화를 억제하고 인지능력을 향상시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새로운 백년을 맞이하기 위한 인생 설계는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긍정적인 프레임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백년을 위한 첫 출발점 역시 긍정 마인드이다.

오늘 새벽에 내 방 창문을 열었는데 빨간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 방에서 일출이 보인다는 건 처음 안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산정상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가 자욱해도 빨간 태양이 보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인생도 그 태양처럼 떠올랐다가 지게 되어 있다.

지는 태양은 어떤지 미리 알고 싶어서 지혜가 깊은 저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봤다.

역시나 끓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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