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스비의 기도 세계기독교고전 55
오 할레스비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도에 대해서 존스토트, 리처드 포스터, 팀켈러 헨리나우웬, 브루스윌킨슨,빌 하이벨스, 이엠바운즈, 조지 뮬러, 마틴 로이드 존스, 씨에스루이스, 유진 피터슨, 잔느 귀용, 본회퍼, 맥스 루케이도, 토마스 아 켐피온, 기독교사상가들의 기도에 대한 책을 엄청 읽었다.

기도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도관계를 잘하고 싶다.

할레비스의 기도가 기독교고전이라고 하는데 처음 본 것 같다.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공감이 간다.

난 무능력해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서 기도를 했다.

난 나실인으로 살기로 서원했다.

거룩하게 살고 분별되게 살기로말이다.

그러고나서 기본적으로는 행복하지만 여러가지 고난도 많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나실인으로 살기로 해서 술도 마시면 안되고 혼전순결도 지켜야 하고 컨닝도 하면 안되고 이상한 동영상도 보면 안되고 교통법규도 어기면 안되고 불법 다운로드도 하면 안되고 등등 연애도 한 번도 안해도 하나님앞에서 정결하고 순결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병에 걸리고 사회와 차단되고 사람들과도 차단되고 병이 낫는데만 집중을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원망을 하고 욕을 했다.

그래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아니고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사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이 우주도 인간에게 넘기고 아담과 하와도 잃어 버리고 아들도 잃어 버리고 하나님의 모든 영역은 인간들에게 뺏겼다.

그래도 그 분은 우리를 찾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신다.

25살 때부터 계속 40일 작정기도를 하고 있다.

처음에 40일 작정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빨리 100% 응답을 해주셨는데 40일 작정기도가 반복될수록 응답이 점점 느려졌다.

기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나도 엄마의 영향으로 기도를 그냥 얘기하는 것처럼 고주알미주알얘기를 하는데 요즘도 잡다한 기도제목들은 금방금방 이루어지는데 정말 중요하고 빨리 응답받고 싶은 기도는 정말 느리고 아직도 응답 받지 못한 중요한 기도제목들이 많다.

기도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은데 성경과 신앙서적을 병행하면서 같이 40일작정기도를 하면 덜 지친다.

40일 작정기도가 끝나면 기도중독처럼 또하고 또하게 된다.

요즘엔 그냥 매일 기도한다.

안하면 뭔가 허전하다.

로렌쯔 수사는 몸도 건강하지 않고 힘들었는데도 기도응답을 하나님께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는 기도, 하나님과의 수다를 어떻게 제대로 떨어야 하는지 항상 추구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가득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넘겨서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게 되는데 기도를 안하면 하나님의 존재가 작아 진다.

그리고 나도 응답을 받지 않아서 믿음이 작아지고 소심해질려고 하는데 미친 믿음을 가지고 시간이 너무 빨라서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싫고 하나님과의 동행의 시간을 늘리고 세상의 헛되고 변하는 것들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

하나님과 딱 붙어서 평생을 살고 싶다.

깊어지는 기도의 영적인 비밀들을 알고 싶고 코람데오의 삶을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저자  오헬레스비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성경과 보수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루터교회 안에서 자랐다.

그는 20대에 임직을 했고,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30세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르웨이 자유신학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40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하고 노르웨이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세계 제 2차 대전 때 나치에 항거 하다가 종전까지 수감되었다.

 기도는 오직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 기도는 주 예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예수님이 우리를 움직여서 기도하게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들어오고 싶어 하신다는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결과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분이  그에게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에 공기가 조용히 우리의 폐 속으로 들어와서 자신이 늘 하던 일을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조용히 들어오셔서 거기에서 자신의 복된 역사를 행하신다.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와 더불어 먹는 것이라고 부르신다.

성경 언어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친밀한 기쁨의 교제를 상징한다.

산소가 폐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공기도 우리 전체를 내내 사방으로 감싸고 있다.

바로 영혼의 공기는 기도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차고 넘치는 각양 은혜로 우리를 사방으로 감싸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전부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우리는 영혼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의 메마르고 시든 심령속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 속에서 계획된 것인지를 유념해야 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가 처해 있는 곤경속으로 모셔 들여서 개입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곤경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의 곤경을 덜어주시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도에 대한 은혜로운 권면들을 봐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요5: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성경에 나오는 이 세 본문만으로도 예수님이 기도가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고자 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죄인에게 오셔서 죄의 잠에 빠져 있는 그를 깨우시고 회심시키셔서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그런 후에는 못자국이 선명한 자신의 강력한 손으로 그 죄인의 연약한 손을 붙잡고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 ,이제부터 나는 너와 내내 동행해서 너를 본향인 천국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것이다. 네가 환란과 어려움을 만나거든, 그 즉시 내게 말해다오, 나는 너를 못만났다고 꾸짖지 않을 것이고, 네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날마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차고 넘치게 부어 줄 것이다."

 특히 우리가 우리의 곤경이나 결핍을 예수님에게 아뢴 후에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기도 생활은 편안한 것이 될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우리보다 더 잘안다.

사탄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의 생명을 몰래 훔쳐내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성공할 확률이 대단히 높아진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우리에게 몰래 훔쳐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만 아니라, 거의 소통을 일으키지 않고 아주 조용히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탄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한다.

  사탄이 유혹하는대로 감정에 따라서 움직인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힘들다.

그리고 본성은 우리가 기도 안에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이다.

자신이 죽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즉 우리 속에서 때로는 강력하게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육의 다른 모든 죄악된 욕망들을 처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의 육이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것도 처리해야 한다.

기도와 관련해서 최초의 결정적인 싸움은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시간을 정해서 지키고자 할 때에 일어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싸움에 져서, 기도할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하게 된다면, 원수는 최초의 접전에서 이미 승리를 거두고, 이 싸움은 싱겁게 끝나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게 승리를 거두고 기도의 골방의 문턱을 넘었다고 할지라도, 기도에서의 골방까지 악착같이 우리를 쫓아온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의 육적인 본성은 우리가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이후에도 똑같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두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아주 산만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홀로 대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사탄이는 이렇게 간교하다.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 넘어가게 한다.

이렇게 되면 원수 사탄이는 아주 깔끔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원수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전장이다.

현실은 너무 유혹 받을 만한게  많다.

우리가 기도의 진짜 비밀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싸워 백전 백폐할 것임은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예수님에게는 나의 불안해 하는 생각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내 영혼의 게센 풍량을 꾸짖으셔서 광분하며 날뛰는 물들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다.

기도의 싸움을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된 큰 비밀을 깨달았고 ,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심지어 하나님은 예수님이 기도로 구하신 것조차도 들어주지 않았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 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다.

이 일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탄이가 예수님을 시험해서, 예수님에게 그 동안 내내 아주 분명했던것, 즉 그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호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고자 했을 때 일어난 것이다.

기도는 인격을 지닌 사람이 인격적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격적인 삶의 형태들과 특징들을 취하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도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우리 마음의 태도이고 그러한 마음의 태도로서의 기도는 조용히 생각하는 것으로도, 탄식하는 것으로도,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로도 표출되어 나올 수 있다.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과 삶으로 기도해야 하며, 우리가 약할 때 손 내밀어 주시는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신다.   

그렇기때문에 무조건 상황이 어떻든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