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살아 있을 때 꼭 봐야 하는 책들이 자존감에 대한 책들, 공부법에 대한 책들, 상처에 대한 책들, 영어에 대한 책들, 성공에 대한 책들, 신앙에 대한 책들, 중국어에 대한 책들 분노에 대한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와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을 해보면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데 자신의 단점을 얘기하거나 장점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 두고두고 상처나 분노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나 꿈을 이루지 못할 때 또 자기자신에게 분노가 생기는 것 같고 어떤 사회의 현상을 볼 때 상식이나 도리에 벗어난 것을 볼 때 또 분노가 생긴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상처가 제일 크고 아픈 것 같다.
상처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위로와 아무것도 아닌 나를 특별한 존재로 다독일 수 있는게 책안에 있는 글들이었다.
오늘도 문득 생각을 하니까 책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놓지 않고 계속 붙들고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했던 것 같다.
상처는 사람들한테 얘기해봤자 다시 나중에는 독이나 공격으로 돌아 온다.
내가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상실감때문에 사람을 멀리하는데 사실 사람을 배제하고 살아 갈수는 없다.
지금도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아니면 가족이나 형제들사이에서 부글부글거리는 문제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나는 사회에 나간 것도 아니고 방구석에만 있는데도 이런 저런 상처가 많이 생기는데 복합적이고 확장된 곳에 나가면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저자는 상차와 분노를 심리학적이고 신앙적으로 풀어내서 나한테는 더 와닿을 것 같다.
이 책은 상처와 분노를 치유를 받고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는게 희망적이다.
지금도 난 너무 불안하고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아서 너무 힘들다.
이 책을 읽으면 나를 또 다시 일으켜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다.
저자 드와이트 엘 칼슨은 의학박사로 의학과 심리학에 관한 9권의 책들을 출판하고 35년 건 내과와 정신의학과 전문의로 UCLA에서 임상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산타바바라에 살고 있으며 성경 연구에 충실한 연구 연구자이다.
이 책은 분노를 나쁘다고 배운 사람들에게 분노를 건설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도움을 받길 바라는 목적으로 썼다.
사람들이 분노를 포함한 자신의 모든 감정적 상태를 잘 파악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그것이 어떤 결과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건 맛, 냄새, 촉각 같은 오감을 잃어버린 것과 같고, 그 결과 역시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 욕구의 필요, 특히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에 미숙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 매우 수동적이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것은 분노를 제대로 조절 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기여 인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대개 사람들의 감정과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얘기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여유로워 보이는 겉 모습이 다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겉 모습만 보고 평가할 때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자기가 냉소적이고 심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심각한 성인병 중의 하나인 관상동맥은 분노, 적대감, 공격적인 의식 같은 행동방식이 주요 원인이거나 병을 더 악화 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의 모든 공통분모는 결국 '분노' 였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단순하게 '분노를 발산'하는 것은 심장 질병과 고혈압, 동맥경화와 우울증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준다.
분노를 발산하면 할수록 건강상의 위험이 훨씬 더 가중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분노가 신앙적으로 죄이며,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분노를 일으키는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애써 무시하려고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처신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분노를 해결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를 이런 식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분노를 감정적으로 인식조차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분노를 인식하는 능력에 있어 각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는 나와 또 다른 자아가 발생하는 분노때문에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편 끝에서는 자신에게 분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 대한 자의적인 부인은 내면에 쌓여 가는 억압된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전시켜 버린다.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철저하게 감추는 것 또한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다.
분노에 대한 성경적 원리는 누군가에 화를 내는 것이 죄라는 설교를 성경말씀의 인용과 더불어 듣게 된다.
실제로 성경 말씀도 분노는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명백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반대로 분노가 옳은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상반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분노로 말미암아 정죄 받지 않는 또 다른 존재는 예수님이시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매우 거룩하고 경건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하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 하셨다.
성경의 보편적인 측면에서는 우리가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처럼 그분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 순간에는 우리도 분노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타인의 행동 때문에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모욕감과 어금니를 꽉 깨물게 하는 분노로 몸은 긴장상태로 바뀌고 보복에 대한 욕구가 번개처럼 내리칠 그때!!!!!!!!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분노와 적대감 그리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가장 이상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알아 두면 좋다.
분노를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노, 불쾌감에 쌓여 상처 입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첫 단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또 누군가에는 노력하여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억압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면에 어떤 상처와 분노의 감정이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그 감정의 원인이 합리적인지 또는 옳고 그른지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분노가 어느 단계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분노해야 할 때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말 소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화를 내는 불균형적인 행동을 초래하게 된다.
정말로 화가 많이 났다면 '백 까지 헤아려 보라' 라는 격언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격언은 분노가 가지는 폭발력을 다스리는데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현실의 TV 뉴스를 통해서 보면 여중생들 폭력사건도 역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것 때문일 것같다.
이렇게 분노하면 이성을 잃은 상태일 것이다.
분노의 감정을 얼마나 많이 억제하고 있는가와 얼마나 그 상황을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노하는 행위를 절대로 서두르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 29:11)
"자존심이 센 바보는 자신의 모든 분노를 입 밖으로 내뿜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절제하며 밖으로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분노했을 때는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박자 쉬는 태도가 좋다고 알려 준다.
두 번째는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이다.
상황에 태그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화났어?"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아니' 라고 충동적으로 대답한다.
이와 같이 대답하는 것은 나중에 다시 그 문제를 대두하기도 어렵게 만들뿐더러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을 때 "화났어?" 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응,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아, 하고 솔직히 대답하면 어떨까",
분노의 상황에 태그를 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상황에 태그를 붙이는 것은 나와 상대방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만듦과 동시에 감정 표현을 의식적으로 지연시켜 분노로 인한 실수를 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두 가지 결론을 내자면, 첫째는 본인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표현했다는 것과 둘째는 분노의 감정을 곧바로 표출하지 않고 상황에 태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있다.
두 번째로 해야 할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배려 하라는 것이다.
감정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제나 '시기의 적절성' 이다.
분노를 표현하기에 앞서 항상 살펴야 하는 점은 충분하게 숙고했는가와 더불어 합당한 단어와 신중한 행동을 선별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한 후에 행동에 옮기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분노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고와 합당한 단어 선택이 필수적인 요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왕하 19:14-15)'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분노하였을 때 히스기야처럼 올바른 길과 지혜를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인도하심을 간구할 때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확신한다.
사실 분노의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낸다는건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단계적으로 추론하거나 유추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의 방법으로는 분노가 발생했을 때 신체적인 접촉을 절대 금지해야 한다.
배우자의 말을 집중하여 경청해야 한다.
의미를 공유해야 한다.
말을 끓지 말아야 한다.
다툼의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본인의 관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는 방식을 조심해야 한다.
무시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절대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
냉소적인 유머를 삼가야 한다.
상대방이 내 생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권위적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서로 원하는 말을 다할 때까지 계속 대화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아프고 병든 감정을 해결하고 서로를 막고 있는 벽을 허물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며, 부부의 경우라면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만 이 방법들을 따른다 해도 그 효과는 현저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느낀 점은 분노가 일어 난다면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사람들에게 유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