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혁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을 때 나보다도 아주 옛날시절 사람인데도 어떻게 여성의 권익에 대한 그런 의식이 구축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힐러리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굉장히 독립적인 멋진 여성이었다.
난 페미니즘을 대학교교양수업에서 들었다.
그때는 정말 센세이션하고 마음을 뻥 뚫어 줬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얘기들이었다.
가끔씩 여성학강의를 듣는 남학생들은 교수님에게 반박을 많이 했었다.
우리엄마도 여성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할아버지가 맨날 양반이 어떻고 여자는 이래야저래야 하고를 교육시켜서 엄마도 가끔 구시대적인 발상이 나온다.
엄마는 사람들의 이목이나 인식을 많이 의식하는게 여자라는 틀에 갖힌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했다.
난 남동생이 있는데 4대독자외아들에 장손이다.
그런데 그냥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기가 가장 사랑를 받는다고 했다.
난 그 얘기가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성은 그냥 정해져서 나오는건데 왜 그것때문에 차별을 받고 덜 사랑을 받아야 하는건지 납득이 안됐다.
엄마는 나이와 실력위주로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다행히 남동생이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좋은 대학을 못가서 여성상위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재산적인 분배나 돈분배에서 실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의식적인 차별을 느꼈다.
내 주변에는 엘리트부모님들이 많아서 그런지 딸들도 아들이랑 똑같이 대우를 하고 공부를 시켰다.
가끔 엄마는 나보고 성공을 하면 나한테 해달라고 하는게 너무 많은데 남동생에게는 뭔가가 생기면 주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법적으로 안된다고 하면 말을 바꾸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을 찾아서 읽었지만 많이 없었다.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었는데 예수님이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나오는데 진짜 최초의 페미니스트는 프랑스의 올랭드 구주였다.
그냥 남자랑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했다고 사형을 당했다.
왠지 짠하고 슬펐다.
페미니스트의 책을 읽으면 가슴 깊이 뭔가가 끓어 오르는 것 같고 뜨거운게 느껴진다.
여성적인 감동인 것 같다.
아니면 호르몬작용인가,,,
요즘도 김치녀, 여혐이 어떻고 하면서 여성차별적인 얘기들이 많다.
여성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장애인, 빈곤층, 노인층으로 확대된다.
조금이라도 약하고 다르면 적자생존같은 사회에서는 존중하지 않는게 문제같다.
항상 차별에 대항하고 이기고 싶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면 불합리한 것이 합리적이고 옳은 것으로 받아 들여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냥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더 나은 세계와 여성을 위한 삶을 산 것 같다.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불합리한 것과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사고의 균형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의, 평등, 공의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저자는 런던소프트웨어에서 일을 하고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쓰고 있다.
페이스북을 찾아 봐야 하겠다.
옥스포드에서 석사도 땄다.
저자는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초등학교를 6번 전학을 했다.
나도 아빠가 하시는 일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7번 전학을했다.
저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로 이민을 갔다.
나도 부산에서 서울에 전학을 갔는데 부산시골에서 왔다고 개구리 봤냐, 아파트 몇 평이냐, 차는 뭐냐,,아빠는 대학을 어디 나왔냐고 애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질문을 쏟아냈다.
또 서울에서 전라도로 가니까 엄마가 경상도라고 괴롭히고 나중에 춘천으로 가니까 전라도사투리 쓴다고 또 뭐라고 했다.
그때 지역감정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한국안에서 왔다갔다 했는데 저자는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간 것 같다.
남아공은 인종차별도 심하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도 엄청 성공한 것 같다.
나도 언제나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열심히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한다.
평범한 여자들은 페미니스트로 거듭나기 전에 셀수 없이 많은 차별을 거친다.
과거에는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여자' 상에 자신을 맞추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착한아이, 동생을 돌보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 대가는 요즘 세상에 참 되바라지고 못돼 처먹은 애들도 많은데 너는 착하구나, 참 얌전하구나, 시집 잘 가겠구나, 남자한테 사랑 받겠구나, 라는 소위 덕담으로 돌아온다.
우리 엄마는 여자, 남자가 아니라 나 개인의 인격과 세상의 중심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우리가정은 평등가정이라 이런 말을 가지고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나의 큰 꿈을 건강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는게 억울하다.
부모님께서는 결혼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다 하나님께 맡기며 사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사춘기 때부터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차 성장이 나타나긴 했으나, 아직 성이나 남녀 간의 권력 구도에 대해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
그런 아이에게 세상은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했다는 이유로, 여성으로 보면서 온갖,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순수를 강요하는 동시에 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남자를 갖고 노는 요물 취급을 하기도 한다. 사랑스럽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에게, 갑자기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존재로 바뀌면서 여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왜 나는 섹시한 동시에 순진한 처녀여야 하는가 어떤 이는 직장인이 되어서야 차별을 실감한다.
공부 잘한다고 대접 받으며 자랐고, 대학시절에도 알파걸로 어디서도 무시받은 적 없는데 취업하고 나니 성희롱이 난무하고 여자라고 의견 무시 당하기 일쑤고, 여직원이니 커피나 타오라는 이도 있고 회식에서는 상사 옆에 앉아 술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당한다.
나도 술을 전혀 안 마셔서 술자리에 갔는데 술을 마시라고 해서 종교때문에 술을 안 마신다고 2시간을 버텼다.
목사아들, 장로아들, 기독교인들도 다 마시는데 너는 왜 안마시냐고 계속 얘기를 했고 나도 오기가 있어서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 서원을 해서 못 마신다고 술을 마시라는 건 나의 종교와 신념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고 바로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더니 술마시라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저자는 성우월로 빽빽거리는 건 남의 얘긴줄 알았는데 성희롱을 고발한 피해자 여직원은 조용히 직장을 그만 두지만 성희롱을 한 남자 가해자는 아무 일없다는 듯 계속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개인의 노력, 즉 혼자 '잘난'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게 된다.
저자의 남편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저자의 남편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으면 불편하다는 듯 웃으며 자리를 피할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가사를 분담하면서 생색 낸적 없고, 아이돌보는 것은 저자보다, 한 수 위이며, 냉장고를 살펴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애들을 먹인 후 뒷정리까지 싹 해놓는 사람이다.
저자의 남편은 설겆이뿐만 아니라, 부엌정리도 저자보다 더 깔끔하게 한다.
그는 사람들이 저자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면 상당히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
남아공의 마초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탓에 남녀 성역할 구분에도 좀 더 익숙하다.
저자의 남편은 전기사 자격증이 있기도 해서 집 안의 전기나 하드웨어 문제는 남편 전담이다.
이것 저것 고장이 났다 하면 나서서 고친다.
반면에 빨래를 전담하고 청소 도우미를 구하는 일이나 애들 학교에 관련한 일을 좀 더 맡아서 하는 '로맨틱마초' 부류의 남자가 아니다.
"내 여자는 내가 책임지겠다.""오빠만 믿고 따라와" 따위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성인들이 함께 살면서 같이 벌고 같이 집안일을 나누고 같이 아이 키운다는 생각 뿐이다.
누군가 여성혐오 발언을 좀 했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남편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하지 않지만, 그런 선언을 굳이 받아낼 필요가 없다.
완벽한 페미니스트라는 건 이상 속에나 존재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부조리에 대해서만 싸울 여력이 있다.
미디어 속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고, 성 차별 발언과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를 상대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임신한 여자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이름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차별에 대항하는 것이다.
함께 싸우고 있다면 당사자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우리는 이미 페미니즘 전우이니까, 이제 우리 사회도 누구든 여성평등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반 여혐의 거미줄을 치자 방문자가 그리 많지 않은 블로그에 둥지를 틀고 10년 동안 글을 썼다.
여성혐오 문제와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험한 욕도 듣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욕하는 이들에게 지쳐서 정든 블로그를 닫고 페이스북으로 이사를 갔다.
처음엔 지인들만 드나들었고, 방문자는 100명 남짓 했다.
저자는 페이스 북 페이지에 들어갈 때마다 묵직한 두려움을 느낀다.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이라는 책에서 다룬 일화 때문이다.
미국 인권운동가 로사 파스크의 단순한 거부가 어떻게 흑인 인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 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한 것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한줄기 빛과 함께 내려온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라"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 아니다.
로사 퍼크스 여사도 흑인 인권운동의 촉발재로 잘 알려져 있는 그날 "오늘은 내가 아주 각오하고 개겨서 이 사회를 뒤집어 보리라" 다짐함도 아니었다.
유색인종 칸에만 탑승할 수 있었고 이마저도 백인이 요구하면 당연히 자리를 내주거나 내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는 말로 자리를 양보하길 거부했고, 곧장 경찰에 체포되었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서 차별 받은 흑인 로사 파스크가 처음도 아니었다.
로사 파스크가 다른 이들과 달랐던 것은 그 지역사회에서 느슨한 유대관계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 오래 살면서 여러 방면으로 활발했던 그는 지인이 많았다.
권력 있는 절친이 많아 영양력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어느 사회에든 속해 있기 마련이고 그 사회의 눈치를 본다.
로사 파크스는 그 사회의 눈치를 본다.
로사 파크스는 교회에서 아주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녀가 체포되자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서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돌렸고 그 중 한명이 몽고 메리, 전미 흑인 지위 향상협회의 지부장 E D 닉슨의 부인이었다.
부인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닉슨 지부장은 곧바로 로사 파크스를 돕기도 하고 클리포드 포드 듀어라는 백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이 변호사는 로사 파크스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며, 다만 드레스 수선을 곧잘 하던 로사 파크스가 그의 세 딸의 드레스를 수선한 적이 있었다.
마침 차별 정책 철폐를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던 닉슨과 듀어는 로사 파크스에게 자신들의 하는 일에 함께 동참 하여 도움이 되어 주길 원했다.
하지만 이 파크스의 남편은 일이 커질까 무서워 이를 반대 했지만 로사 파크스는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동의했다.
이소식을 듣고 모든 멤버들에게 로사 파크스의 체포 소식을 알렸다.
그날 자정, 로빈슨은 임시 미팅을 열어 파크스의 법정 출두일 월요일까지 버스 보이콧을 하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전단지를 제작했다.
하루 새에 전단지는 몽고메리 곳곳에 뿌려졌다.
로사 파크스가 보석으로 풀려나는 날, 닉슨은 덱스터 애비뉴의 침례교회에 있던 마틴 루터 킹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킹목사의 지지와 보이콧 미팅 장소로 그의 교회를 원한다는 부탁이었다.
어린 자녀가 있던 킹목사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생각해 보겠다며, 답을 보류했으나 닉슨은 킹 목사의 절친에게 그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절친의 설득까지 외면할 수 없던 킹 목사는 닉슨의 부탁을 수락하게 된다.
수많은 사회운동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를 살린 것은 약한 연결고리를 통해 생겨난 잔잔한 압력이었다.
출퇴근이 불편해지자 흑인 택시기사들이 출퇴근을 도와주기기로 매주 모이고, 농성하고 , 킹 목사는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그래도 평화적으로 싸우자 다짐하고 힘들어지면 서로 지지해주고, 그러면서 인권운동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것은 로사 파크스가 독해서 가능해진 일도 아니고, 킹 목사의 카리스마 하나로는 불가능 했다.
아주 사소한 인연으로라도 연결된 여러 명이 조금씩 참가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다들 동참할 수 밖에 없게 되어서였다.
흑인들은 1년 넘게 승차 거부를 지속하면서 흑인인 승객이 70%를 차지했던 버스 회사들에게 엄청난 금전적 타격을 주었다.
결국 1956년 12월 연방대법원이 몽고메리시 정부에 버스 인종차별 대우를 철폐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의 연쇄 반응으로 미국 전역에서 여러가지 인종 차별 제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1964년 미국 의회는 인종과 종교 차별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을 통과 시켰다.
굉장히 앞선 나라 미국에서 인종차별 성 차별을 했으니 우리나라는 어떠 했을까.
왜 여자라서 묻지마 살인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대중의 관심으로 급부상하게된 계기 중 하나가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한국의 만연한 여혐 분위기에 탄생하며 한국의 만연한 여혐 분위기에 대한 논란이 꽤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나 여성혐오가 넷상의 키보드 배틀이 아닌, 보다 전방위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확실히 강남역 살이 사건이었다.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분명한 사건을 극렬히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여자들은 이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강남역에서 한 젊은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사건 이후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한참 동안이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이 사건이 대한민국 사회 전반이 여성혐오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라 했고, 다른 쪽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살인사건을 이용하여 '남성 혐오' 를 조장하는 것이라 했다.
조현병 환자의 의한 살인 사건은 흔하지 않다.
얼마나 흔하지 않냐면,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톱뉴스로 기사가 나올 만큼 드물다.
그러므로 여혐범죄 부정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는 10만번에 한번 정도 있을 만한 특이한 사건이다.
그저 그 정신병 하나의 망상에 하필이면 여자가 타깃이 되었을 뿐이다.
이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 작은 확률을 침소봉대 하여 사회 현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여성혐오가 공론화 되었으며, 많은 여성들이 이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훨씬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극도의 남초 환경에서 계속 공부하고 일했지만, 한 맺힐 정도의 여혐 트라우마는 별로 없다.
그러나 저자에게 아주 확실히 새겨진 것은 남아공의 치안 문제와 사회 폭력문제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자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치안이 나쁘기로 유명한 남아공에서 자라서 그렇다.
저자의 남편은 키 185센티미터에 몸무게 90킬로그램이 넘지만 이 덩치의 남자 역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저자의 부부는 영국에서 사는 지금도 차를 잠글 때 눈에 보이는 자동차 내부에는 짐을 두지 않는다.
비닐봉지 하나라도 눈에 보이게 두었다가 차 창문이 깨진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남아공 정도의 엉망인 치안 상황에서는 조심해야지 가 말이 된다.
저자가 떠날 때만 해도 남아공의 치안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했다.
영국에서도 칼 맞아 죽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강도와 강간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 나는 일이라고 했다.
저자의 어머니는 아직도 흑인을 보면 무서워 하신다.
인종 차별적인게 아닌데도 그렇다.
저자의 남편도 길에서 흑인 남성이 다가오면 일단 본능적으로 경계부터 한다.
저자에게 "흑인을 다 범죄자 취급하는 분란 종자" 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흑인 범죄자률이 높고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고 해도 뼛속 깊이 공포가 새겨져진 저자는 십년 후에도 늦은 밤 으슥한 곳에서 흑인 남자가 슥 다가오면 우선은 놀란다.
한국에서 여자들이 남자 때문에 나쁜 경험을 할 확률은 5분의 1보다 훨씬 높다.
싫지만 해코지 당할까봐 좋게좋게 거절할랬더니 쌍욕을 하면서 협박하는 남자,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금부터 다리까지 뚫어져라쳐다보는 개저씨나 할아버지는 괜히 대응했다가 얻어 맞을까봐, 재수 없으면 정말 칼이라도 맞고 죽을까봐 기분 더러워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택시 안에서 성희롱 발언하는 기사 아저씨의 말도 보통 참고 넘어간다.
나도 오랜만에 부산에를 갔는데 기사아저씨가 여자들이 국회의원에 나오면서 나라가 망해간다고 했다.
난 아저씨한테 왜 나라가 망하는게 여자탓이냐고 이때까지 나라를 이끈 건 남자들인데 남자탓이라고 했더니 엄청나게 화를 냈다.
여기에 매일매일 가볍게 당하는 여혐, 외모비하, 지적질, 직장/학교에서 남자 선후배들과의 불쾌한 해프닝을 더하고 좀 덜 흔한 아빠/ 오빠/ 남동생/ 친척에게서 받는 성적인/ 육체적인 학대, 심한 성추행/ 폭행 경험까지 다 더해보자.
이 모든 상황과 그 비슷한 상황에서 여자들은 이 남자들이 난해해 지지 않을까,
네가 미리 조심했어야 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 입을 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혐하는 남자가 위험한 남자고 여자들이 예로 드는 말들이 진짜 여혐이라면 저자는 매일 여혐을 하는 중이며 고로 여성들에게 위험한 존재다.
그들에게 여자들이 여혐이라 정의하는 것들은 사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겉으로 말만 하지 않을 뿐, 대부분 맘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여혐논쟁에서 가장 유감인 부분중 하나는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로 곧잘 보여진다는 점이다.
남자는 분명 여성혐오를 하지만 여자 역시 성차별과 여자혐오를 남자 만큼이나, 어떨 때는 그들보다도 더 심하게 한다.
진짜로 무서운 여혐은 "김치녀" 같은 단어보다 폭력과 차별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사회다.
하루 아침에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길 바랄 수는 없다.
그저 극히 폭력적인 사람들이 여자들을 대상으로 쉽게 저지르는 강력 범죄가 많아 하루하루가 두렵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거다.
여성을 만만하게 대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피해를 입힌 가해자 보다, 당한 여자를 탓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이다.
나쁜 엄마 되기는 아주 쉽다.
아무리 장보고 밥하고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 깨우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학습지 시키고 잔소리 해대고 씻기고 재우기를 수만번 반복해도 애들 미용실 가야 할 시기를 놓쳐서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거나 하면 애들 엄마가 그런 것도 신경 안쓴다는 소리를 바로 듣는다.
엄마는 열심히 해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아빠는 나쁜 아빠 되기는 참 어렵다.
나쁜 엄마는 육아와 살림의 그 많은 요구사항 중에 하나만 빼 먹어도 곧 바로 데뷔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역차별이다.
남자의 유리 천장, 정말이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많은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을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데에 보낸다.
"나쁜 아빠되기 힘들다." 는 말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남성 혐오성 글이 아니라, 여성들이 얼마나 오랜 역사 동안 남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최소한의 혜택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왔어야 하는지에 대한 짠한 증거다.
모든 결혼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머리털 나고 가장 잘한게 지금 남편과의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위에도 행복한 부부들도 많다.
그러나 그만큼 불행한 부부도 많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했다가 운 좋게 잘 풀린 경우지만, 만약 지금 저자가 싱글이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결혼 상대를 찾아야 한다면 비혼 선언이 남 얘기처럼 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나는 결혼이고,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과 노후까지 놓고 볼때 그 결혼이라는 선택은 러시안 룰렛에 가깝다.
이미 선택한 이들은 자기 선택을 합리화 하며 아직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 기대를 낮추라고 말한다.
나쁜 아빠가 되기가 힘들다는 말은 남성혐오가 아니다.
결혼과 남자를 최대한 끌어안아야 했던 여성들의 생존 본능의 결과다.
여성들의 가슴 아픈 역사다.
우리는 살아 오면서 여자는 남편에게 때론 어머니 같은 역활, 누나같은 역활을 감담해야 할 때가 있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등을 원하는 시간이 왔다고 본다.
나도 평등한 사회, 평등한 가정, 평등한 직장, 평등부부를 원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서 이런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과 위로와 앞으로의 생각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