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는 서평을 잘쓰고 싶어서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읽는 이유는 서평때문이다.
서평을 쓴 건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플 때 비참했던 나에게 희망을 주고 살고 싶고 건강해져서 책을 마음껏 읽고 싶은 소망이 생기게 했다.
그리고 책값도 비싼데 신간이나 좋은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을 부담없이 읽는 기회를 주고 글쓰기도 가르쳐준게 서평이라서 정말 서평을 잘 쓰고 싶다.
서평을 쓸 때 속상한 일이나 슬플 일이나 하고 싶은 얘기들을 그냥 쓰니까 나의 내면이 치유가 되는 느낌도 들고 마음가짐이나 생활태도도 바뀐다.
그리고 소설이나 세계명작, 한국명작을 읽으면서 한 인간에게서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겠지만 토지를 쓴 박경리같은 작가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탄생을 하고 글을 어떻게 쓰는건지 정말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내면이나 머릿속에 있는 것을 글로 표현을 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표현할 수 없고 들어 보지 못하고 읽어 보지 못한 그런 아름답고 창의적인 표현들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이 책을 읽으니까 궁금증이 좀 풀렸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는데 습작을 한 것이 수 백장이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떤 작가도 90살이 넘어서 쓴 작품도 많다고 한다.
그런 연륜이 있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도 이유중의 하나인 것 같다.
아니면 그런 능력이 있는데 책을 읽고 작가가 되거나 글을 쓰는 훈련이나 아카데미를 다녀서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그 의문에 대한 과정이 위대한 소설가의 생각법에 다 나와 있는 것 같다.
나도 진실하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서평을 써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난 아니지만 위대한 작가의 마음을 희미하게 느껴 보고 상상을 해보니까 공상속에서만 위대한 작가가 된 듯이 잠깜동안만 행복해진 듯하다.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는 책을 보면 창작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지리하게 창작이나 글쓰기작업을 계속 해야지 언제 이룰지 모르기때문이라고 한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기다리고 프로는 작업을 한다.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건지 그걸 몰라서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작업을 한다는 과정이 이 책에 전부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어 보고 소설가나 드라마작가, 극작가는 천재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공상의 어떤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 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이 책은 첫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나오고 캐릭터를 창조하는 방법이 나온다.
표절이나 시점에 대해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것처럼 대화의 기술을 얘기해 준다.
마지막은 어떻게 마감을 하는지 방법을 또 가르쳐 준다.
이 책은 재미있고 유쾌하고 소설가들의 마음속이 이랬구나를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그들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기지 않는다.
그들이 너무 대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문을 보면 소설쓰기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서머셋 모옴이 얘기를 했는데 너무 웃겼다.
이제 위대한 소설이 나오는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서른두 살의 지주 콘스탄틴 레빈이 예카테리나 키티 알렉산드로브나 시체르바츠카야에게 청혼하는 장면을 보면,,,,
이름이 정말 길어서 대박이다.
레빈은 열정적이지만 수줍음이 많은 귀족으로, 모스코바의 친구들과는 달리 그의 넓은 영지에서 전원생활을 한다.
레빈은 청혼을 두 번 한다.
첫 번째 청혼했을 때는 열여덟 살이었던 키티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서투르게 거절을 한다.
키티는 자신이 잘생긴 알렉사이 브론스키 백작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백작이 자신에게 청혼을 할거라고 기대를 한다.
청혼이고 뭐고 러시아사람들은 이렇게 긴 이름을 그냥 전부 다 부르는지 아니면 약칭으로 부르는지 궁금하다.
이름을 얘기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드는 것 같다.
너무 길다.
키티와의 관계를 장난으로 생각한 브론스키 백작은 안나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키티의 거절에 충격을 받은 레빈은 결혼에 대한 희망을 접은 채 키티를 잊기로 결심을 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 간다.
천성이 진지하고 내면을 탐구하기 좋아하며 평등에 관심을 가지고 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레빈은 자신을 창작한 작가와 비슷한 점이 많다.
레빈의 레브는 톨스토이의 앞 이름이다.
작가들은 자신을 소설의 인물에게 접목시키기 원하는 것 같다.
레빈이 갈등을 잘하는 인물이고 독자들은 키티가 마음을 돌리기를 원한다.
두 사람은 응접실에 친척에 의해서 단 둘이 남게 된다.
키티가 카드테이블에 가서 자리에 앉아 분필 한자루를 들고 초록색 천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한동안 둘은 말이 없다.
톨스토이는 키티의 눈이 은은하게 빛난다고 생각하고 레빈이 몸을 기울이고 분필을 가져가 끄적인다.
불, 대, 그, 아, 앞, 계,,,,,,
불가능하다던 대답은 그때만인가요,,,아니면 앞으로 계속인가요?
키티가 복잡한 질문의 뜻을 알아 내기란 힘들어 보인다.
키티가 아니라 나같은 독자가 힘들어 보인다.
레빈은 키티가 알아 내는 것에 목숨이 걸려 있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봤다.
키티는 레빈을 진지하게 바라 본다.
서로 무슨 첫글자만 따서 글씨를 쓰는 대화를 나눈다.
사랑을 안 해봐서 왜들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상상을 해보면 이해는 가고 조금은 가슴 떨리는 순간인 것 같기도 하다.
공감은 가지 않지만 아름다운 장면을 톨스토이가 만들어내긴 한 것 같다.
'전에 있었던 일은 잊고 용서해 주셨으면 해요'라고 하고 레빈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분필을 잡고는 분필을 부러트려가며 앞 글자를 써 내려갔다.
'용서하고 잊을께요,,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까"
키티가 레빈을 바라봤고 그녀의 머금은 미소가 사라져갔다.
알겠다고 키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이 장면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가슴 떨리는 사랑의 순간을 묘사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페이지 남짓한 길이에 쓰인 단어의 조합이 저자의 내면을 장악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저자를 도취시키고 가상의 인물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이입시켰다.
나중에 레빈이 어릴 때 방탕한 행동을 써 둔 일기를 부인이 될 키티에게 보여 주겠다고 우기는 장면이 톨스토이가 실제로 소냐 베르스에게 한 청혼을 재연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세 나왔다는 얘기같다.
이 책을 읽기전에 작가가 쓴 소설에서 나오는 내용이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생각만 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톨스토이는 사적인 일을 허구로 만들어 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이것이 저자가 일생을 거쳐서 쌓아올린 독서를 기반으로 해서 이 책에서 밝혀 내려는 이유라고 한다.
소설가는 테마와 캐릭터, 논쟁, 문화의 맥락 등 그 외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온전한 세계를 창조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세계명작을 아주 많이 접할 수 있다.
평상시에 아주 생각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의 뒷배경들을 많이 알 수 있다.
원래 알고 있던 소설을 또 다른 면으로 엿 볼 수 있어서 새로운 소설을 접하는 느낌이 든다.
허구 인물의 삶에 개입하는 경험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취미이고 도덕관을 형성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슨과 조지 엘리엇이 어떤 문제에 부딪혀가며 소설을 다듬었는지,,윌리엄 포크너가 여러 화자와 시점을 가지고 어떤 실험을 했는지 앨모어 레너드가 등장인물의 대화를 어떻게 퇴고했는지를 이 책에서 다룬다고 한다.
진정 가치가 있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얼굴이 밝아지며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 소설을 혼자서 그냥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글을 정말 잘 쓰고 싶다면 해야 하는 일은 집에 가서 신나게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
작품을 시작하는 것은 첫 문장, 첫 문단이다.
캐릭터 만들기는 압도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마크 트웨인은 남부 교도소에서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감옥에서 불이 나 자신까지 죽고마는 캐릭터를 두고 몇 달 동안 고민을 했다.
그 캐릭터는 마크 트웨인에 잘려 나가서 그의 소설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부터 제인 스마일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동조한 개념은 허구의 캐릭터들이 독립적인 생명을 얻어 작가의 노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는 표절이라고 한다.
모든 작가들이 작품이나 타인의 삶에서 이야기를 빌려오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시점을 정해야 한다.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 복합시점이라는 선택권이 있다.
복합시점으로 정했다면 얼마나 많은 화자를 둘 것이고 언제 시점을 이동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작품 속 행동에 작가가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서술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서술 거리를 잘 조절하는 작가로 톨스토이를 들 수 있다.
살만 루시다는 '한밤의 아이들'에서 사실과 판단에 대해 고의적으로 실수를 저질렀는데 나중에 보니까 의도하지 않은 실수들도 있었고 이것이 화자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려는 목적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라면 캐릭터와 또 다른 특정한 목소리를 가진다고 한다.
목소리라는 말하기를 내재하는데 일부 작가들은 거의 모든 것을 대사로 활용하고 대사를 거의 넣지 않은 작가도 있다.
글쓰기의 분야에서 최고의 책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고 한다.
퇴고는 직접 한 것이든 다른 이들의 조언을 듣고 한 것이든 아주 중요하다.
체호프는 자신처럼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형에게 무조건 줄이라고 했다라고 한다.
퇴고는 다시보기에 중요하고 글은 구성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P.G하우드는 재고를 싫어하고 발자크는 퇴고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떤 길이로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디킨스와 엘리엇은 마무리때문에 골치를 앓았고 헤밍웨이는 마지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 톨스토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위대한 작품뿐만 아니라 위대한 작가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고 평전같은 느낌도 들고 새로운 시각으로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게 정말 귀한 책같다.